대한민국을 '기독교 국가'로 여긴 이승만

등록 2013.03.21 09:37수정 2013.03.2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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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31일 제헌의회 개원 모습. 당시 이승만은 이윤영 목사에게 기도를 시켰다. ⓒ 자료사진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복을 내리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 동안 이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셔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셨으며 세계인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써 역사적인 환희의 날이 우리에게 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드러나게 하셨음을 믿나이다.

어느 교회 예배 시간에 한 기도문이 아니다. 놀랍게도 대한민국 국회에서 울려퍼진 기도문이다. 그것도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제1차 본회의에서다.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이승만은 단상 의장석에 등단하여 전 국회의원들에게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제의한 목사인 이윤영 의원를 통해 기도를 시켰다. 기도는 이렇게 이어진다. 길지만 전문을 인용한다,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伸寃: 원통한 일을 풂)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 땅에 오지 않을 수 밖에 없을 줄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하옵건데, 우리 조선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우리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여 저희들은 성스럽게 택함을 입어 가지고 글자 그대로 민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우리들의 책임이 중차대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고, 우리 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할 때 지(智)와 인(仁)과 용(勇)과 모든 덕(德)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요소를 저희들이 간구하나이다.  

이제 이로부터 국회가 성립이 되어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되는, 세계만방이 주시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며, 또한 이로부터서 우리의 완전 자주독립이 이 땅에 오며, 자손만대에 빛나고 푸르른 역사를 저희들이 정하는 이 사명을 완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이 회의를 사회하시는 의장으로부터 모든 우리 의원 일동에게 건강을 주시옵고, 또한 여기서 양심의 정의와 위신을 가지고 이 업무를 완수하게 도와주시옵기를 기도하나이다,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우리의 환희와 우리의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국회속기록 1호> 인용)


이승만 "제헌의회 개헌 하나님께 감사"

임시의장이었던 이승만은 개헌 발언에서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라며 "종교·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우리가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왜 당시 의원들은 반발하지 않았을까? 제헌 국회의원 구성을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잇다. 제헌의원들 중 목사가 4명이 있었다. 기도한 이윤영 목사를 비롯해 오택관 목사, 이남규 목사, 오석주 목사 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승만과 윤치영 등 50여 명이 기독교 신자였다. 제헌의원은 북한에 배정된 100명을 빼고, 200명이었다. 제주는 4·3항쟁 때문에 선거가 연기되어 198명이었다.

즉 198명 중 54명이 목사와 기독교 신자로 약 27%가 기독인이었다. 당시 기독교 신자는 전체 인구 5% 내외였다. 기도로 시작해도 누가 하나 강하게 반발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이승만은 1945년 11월에는 "여러분께서도 하나님 말씀을 반석 삼아 의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매진하자"고 했고, 이후 성탄절을 공휴일로 만들고, 군종제도 도입 등 친기독교 정책을 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를 봉헌하겠다는 말을 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승만은 이렇게 대한민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고 싶었던 게다.

이렇게 기독교 신앙에 신실했던 이승만은 공산주의는 사라져야 할 악으로 생각했다. 1946년 6월 11일 서울정동교회에서 열린 독립촉성국민회의 전국대표자 연설에서 "소련 사람 내보내고 공산당을 이 땅에 발 못 붙이게 하자"고 역설했다. 이 짧은 문장은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게 된다. 수구기득권 세력은 비판세력을 규정할 때 '빨갱이'이라는 단어로 단죄했다. 지금은 '종북'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공산주의 '공'자만 말해도 살떨리는 시대지만, 당시 해방공간에서 이념은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더 가까웠다. 1946년 미군정이 정치이념조사를 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중 '귀하가 찬성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8453명 응답 중 70%에 해당하는 6037명이 사회주의를, 7%에 해당하는 574명이 공산주의였다. 그럼 자본주의는 얼마였을까? 1189명으로 14%에 불과했다.(2012. 8. 5. <국민일보> <[이상규의 새롭게 읽는 한국교회사] (74) 이승만 정권과 기독교> 참고)

그러므로 공산주의 척결을 외친 이승만은 굉장한 도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는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었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활동하던 1923년 3월 <태평양잡지>(31호)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 제목 글에서 "▲ 재산을 나누어 가지자 함이라 ▲ 자본가(資本家)를 없이하자 함이라 ▲ 지식계급을 없이하자 함이라 ▲ 종교단체를 혁파하자 함이라  ▲ 정부도 없고 군사도 없으며 국가 사상도 다 없이한다 함이라" 따위를 들어 공산주의를 허용할 수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설령 세상이 다 공산당이 되며 동서양 각국이 다 국가를 없이하야 세계적 백성을 이루며, 군사를 없이하고 총과 창을 녹여서 호미와 보습을 만들지라도, 우리 한인은 일심단결로 국가를 먼저 회복하야 세계에 당당한 자유국을 만들어 놓고 군사를 길러서 우리 적국의 군함이 부산항구에 그림자도 보이지 못하게 만든 후에야 국가주의를 없이 할 문제라도 생각하지, 그 전에는 설령 국가주의를 버려서 우리 2천만이 모두가 밀리어네아(백만장자)가 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원치 아니할지라. 우리 한족에게 제일 급하고 제일 긴요하고 제일 큰 것은 광복사업이라. 공산주의가 이 일을 도울 수 있으면 우리는 다 공산당 되기를 지체치 않으려니와 만일 이 일이 방해될 것 같으면 우리는 결코 찬성할 수 없노라.

이처럼 이승만은 공산주의와 타협할 수 없었고, 14년 집권 기간 동안 공산주의 세력을 몰아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워낙 강한 의지는 정적이었던 죽산 조봉암을 간첩죄로 몰아 제거하기에 이른다.

대한민국은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가진 나라다. 그러므로 특정 종교를 정치 현장에 끌어들이면 안 된다. 유독 기독교 장로들이 대통령이 되면 종교편향 논란을 일으켰다. 이명박 정권이 대표적이다. 개인 신앙과 대통령이라는 공직을 구별하지 못한 결과였다. 당연한 비판이다.

아직 불교와 천주교 등 다른 종교 신자가 국가지도자가 되어 종교편향 논란을 일으킨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이들 종교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신앙을 공직사회와 정치에 개입시키면 안 된다. 대한민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고 싶었던 이승만 같은 대통령은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
#이승만 #이윤영 #제헌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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