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디 벨레> 자유분방하게 자기 의견을 말해온 학생들은, 점차 손을 들고 허락을 받아 이야기하는 벵어의 방식에 익숙해진다. ⓒ Constantin Film
전체주의나 독재자를 다룬 영화들은 대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만들어진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실존 인물과 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하여 당시의 실화를 각색하는 식이다. 인류가 불러온 역사적 재앙을 '잊지 않도록'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그러나 2008년 독일에서 만들어진 영화 <디 벨레>는 독특하게도, 우리 곁에 여전히 존재하는 전체주의 부활의 가능성을 경고한다.
우리 대부분은 독재와 전체주의는 이미 지난 역사라고, 잊지 않고 있으면 재현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현대의 고등학생들이 스스로 집단의 부속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이 영화는, 단지 기억하는 것만으로 재발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단순한 것인지를 깨우쳐준다.
영화는 독일의 한 평범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교사들이 특정 주제를 가지고 일주일치의 강의를 준비하고, 학생들은 그 중 원하는 수업을 선택해 듣는 '프로젝트 수업 주간'이 시작되는 월요일. 교사인 '벵어'는 '독재정치' 수업을 담당하게 된다. 수업에는 평범하지만 다양한 학생들이 참여하고, 벵어는 그들에게 첫 질문을 던진다.
"독일에서 더 이상의 독재자가 나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당연하죠. 그건 이미 수없이 토론된 걸요. 끔찍했다는 걸 잘 알고 있잖아요."
▲ 영화 <디 벨레> 유니폼으로 지정된 흰 셔츠와 청바지를 거부한 학생은 어떤 발언권도 갖지 못한다. ⓒ Constantin Film
조국에서 나온 독재자 히틀러에 대해 수없이 배우고 그들의 만행을 반성하도록 교육받아온 학생들은, 그와 같은 일이 절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지겨워하는 학생들을 위해 벵어는 수업방식을 바꾼다. 독재정치의 형성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기로 한 것이다.
벵어는 강의실 내의 학생들을 공동체로 규정지은 뒤 스스로 그 대표자가 된다. 그는 수업시간의 발언권을 통제하고, 자신에게 존댓말을 붙이라고 요구하는 등 몇 가지 규칙을 세운다. 학생들은 어리둥절해하지만, 이를 색다른 놀이쯤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첫 수업이 끝날 즈음, 학생들은 평소와 다르게 차분하고 정돈된 교실 분위기에 매력을 느낀다. 특히 자유분방한 수업 분위기에서 자주 무시당했던 소심한 아이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상황을 통제하고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는 절대권자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 것이다.
두 번째 수업에서, 벵어는 이미 규율에 익숙해진 학생들에게 이 수업의 우월함을 반복해 강조한다. 단체 행동을 지시하고 다른 수업의 학생들을 '적'으로 표현하는 그의 방식에 학생들은 재미를 느끼고, 자신들과 다른 집단을 구분 지어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이 과정에서 내부인들 간의 친밀도는 높아지게 된다.
그리고 이어진 세 번째 강의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복장을 맞춰보자는 제안을 하고 좋은 반응을 얻는다. 그 후부터, 같은 옷을 입지 않은 학생은 본래 친했던 친구들에게서도 철저히 무시당한다. 반면 이전까지 학생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받던 아이는 옷을 맞춰 입고 다른 학생들과 동등한 발언권을 행사하며 적합한 존중을 받는다.
집단 밖에서 학생들이 가지고 있었던 인간관계와 별개로, 집단 내에서의 행동이 그들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반발하던 학생들은 규율에 순응하거나 집단을 빠져나간다. 이 과정을 거쳐 내부의 결속을 강화한 이 작은 공동체는, '벨레(파도)'라는 이름과 그들을 상징하는 표식 그리고 나름의 수인사까지 창안해내며 점점 성장해간다.
'벨레'의 구성원들은 이것이 수업에서의 실험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공동체에 빠져든다. 어딘가 소속되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며 자신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점점 배타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것은 수업을 처음 제안한 교사 벵어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는 자신이 학생들을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 영화 <디 벨레> 시청 공사현장에 새겨진 '벨레'의 표식.
학생들의 행동은 점점 과격해진다. ⓒ Constantin Film
제어할 사람이 사라진 실험은 점점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교실을 벗어나 규모를 키워가던 '벨레'는 폭력적인 성향마저 보인다. 주변의 경고와 학생들의 반복적인 폭력행위에 뒤늦게 현실을 깨달은 벵어는 '벨레'의 구성원들을 모두 불러 모은다.
그는 짐짓 히틀러를 방불케 하는 전체주의적 연설을 쏟아내지만, 대다수 구성원들은 어떤 거부감도 없이 그에게 열렬하게 환호할 뿐이다. 그 분위기에 반발하는 한 명의 학생에 대한 그의 비난 몇 마디는 곧 반역자에 대한 집단적 살의를 불러온다. 반발하던 학생은 다른 구성원들에 의해 앞으로 끌려나오고, 그 시점에서 벵어는 실험의 종료를 선언한다.
"내가 첫 시간에 했던 질문 기억하니? 더 이상의 독재가 가능할 것인지……. 이게 바로 그거다. 파시즘. 우린 우리가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 우리가 틀렸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이것이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진실이다. 학생들은 전체주의와 독재의 역사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유사한 상황이 설정되더라도 자신들이 과거의 대중들과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공동체가 주는 소속감과 독재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분담되는 역할은 각자가 가지고 있던 약점과 결핍의 많은 부분을 가려주었고, 학생들은 물론이고 실험을 주도하던 교사마저도 차츰 공동체 자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 시작했다.
그 믿음은 공동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접어들 때도 흔들리지 않았고, 그 결과 절대 재현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던 과거가 부활했다. 극단적인 픽션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 영화는 1967년 미국의 한 학교에서 실제 행해진 실험을 근거로 제작된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종종 나타나는 독재 하의 집단적 광기는, 절대로 상황의 특수함이나 구성원의 무지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독재자의 논리가 불안과 고독 같은, 인간의 보편적 성질에 호소하는 바가 컸기 때문이다. 인간의 불안과 고독은 시대가 변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뒤집어 생각하면 국가를 막론하고 이 위험에서 자유로운 세대는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 당시의 상황만을 곱씹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재발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뜻도 된다.
물론 어두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만으로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나는 과거의 사람들과 다를 것이라는 오만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끊임없이 스스로 경계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영화 <디 벨레>는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 영화 <디 벨레> 강의실 하나에서 시작된 '벨레'는 일주일만에 전교로 확대되었다. ⓒ Constantin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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