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토끼론과 '내시 정당'

[取중眞담] 30일 당·정·청 워크숍.... "가장 문제는 하향식 인사시스템"

등록 2013.03.28 15:01수정 2013.03.2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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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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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1일 오후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첫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모두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토끼는 남이 낸 길을 가는 것보다 자신이 만든 길로만 다니는 동물입니다."

지난 2011년 1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구시당 여성정치아카데미 신년교례회, '제2의 박근혜'를 꿈꾸는 예비 여성정치인들이 몰려들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진지한 표정으로 "여성 정치를 꿈꾸시는 여러분의 길 또한 마찬가지"라며 '토끼론'을 역설했다. "신묘년 토끼해가 여성의 해"라는 점을 들어 한 말인데, 오히려 이명박 정부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 노선과 정책으로 대권 행보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됐다.

2년이 지난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설파한 '토끼론'을 충실히 실천하고 있는 듯하다. 역대 정부 최다 장차관 낙마자를 낸 인사 참사가 대표적이다. 어느 대통령도 가지 않은 '자신이 만든 길'로만 가려는 것 같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박 대통령과 참모들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내시 정당', '식물 정당'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새누리당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첫 당·정·청 워크숍... '내시 정당' 오명 벗을까?

오는 30일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첫 당·정·청 워크숍이 열린다. 여당과 정부 각료, 청와대 수석 등 66명이 처음 대면하는 자리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시급한 민생과 국가안보 등 여러 현안을 시급히 해결하기 위한" 워크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새 정부의 각료 인사가 잇따라 실패하면서 '박근혜식 인사 스타일'을 비롯해 청와대의 인사 검증시스템이 도마에 오를 것 같다. 아니, 솔직히 그 얘기부터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닐까?

그런데 이한구 원내대표는 "입법과 행정이 손발 맞는 모습을 보여야 안정감 있는 국정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며 '자성'보다는 '화합'을 강조했다. "새누리당에서도 그동안 제기됐던 여러 가지 이슈들을 확실하게 얘기하고 정부와 청와대가 갖고 있는 생각도 얘기해서 그것이 완전히 융합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고도 했다.

이한구 원내대표의 말대로 "정부와 여당이 국정운영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공감하는" 것은 필요하다. 문제는 대통령이 여당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낮은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 그리고 여당이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할 수 있느냐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한구 원내대표의 말은 솔직하지 못하다.

정부조직개편안과 불량 인사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국회를 존중하겠다"던 박 대통령의 약속은 실언이 됐고, 거수기로 내몰렸던 새누리당은 누구 말대로 '내시정당'으로 전락했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부터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까지 무려 7명이 낙마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잇따른 인사 실패에 새누리당은 단 한 번도 제동을 걸지 못했다. 당 지도부가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느라 할 말을 하지 못하면서 무기력증에 빠진 것이다.

당이 이런 지경까지 온 데 가장 앞장서서 총대를 멘 인물은 다름 아닌 이한구 원내대표다. 그래서 이 원내대표의 말은 이렇게 바뀌는 게 맞다.

"새누리당에서도 그동안 제기됐던 여러 가지 이슈들을 확실하게 얘기하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정부와 청와대가 갖고 있는 생각도 적극적으로 설득해서 그것이 완전히 바뀔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집권 초반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대통령의 파워가 워낙 막강하다 보니, 당은 청와대의 그늘에 가려 예속 관계가 될 개연성이 높다. 막강한 대통령과 청와대의 권한이 부메랑이 되어 여권 전체에 상처를 입히지 않으려면, 당이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청와대도 정부도 여당도 미스(miss)가 잦다. 역량발휘도 안 되고 실수투성이다. 운도 없다. 국정전반에 걸쳐 일대변화가 필요하다. 이럴 때는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여당 대표도 작전타임을 요구해야 한다. 분위기 쇄신을 위한 특별한 시간이 필요하다."

2008년 7월 당시 친박(근혜)계 핵심이었던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이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제목은 '작전타임을 부를 찬스다' 였다. 이정현 의원은 "이대로 그냥 계속 가면 한나라당도 이명박 정부도 대한민국도 갈 수가 없다"며 "국정도, 당도 종합적인 상황분석과 신속 대응을 위한 총 점검팀을 가동하자"고 제안했다.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사) 내각'으로 대표되는 인사 난맥상에 미국산 쇠고기 파동까지 겹치면서 우왕좌왕하던 청와대를 향해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새겨들을 만한 말이다. 당시 강재섭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가 청와대에 들어가 남주홍 통일, 박은경 환경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이끌어냈던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새 정부 인사 난맥상의 한복판에 청와대 정무수석이 된 이정현 전 의원이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그나마 일부 의원들이 나서서 30일 워크숍 때 당 지도부의 역할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15년째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소장파'로 불리는 남경필 의원은 "워크숍에서 올바른 당청, 대통령과 관계가 정립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민이 가장 불안해하고 문제되는 것은 출범과 함께 단행된 인사가 문제,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검증팀의 무능이나 검증시스템 문제도 얘기되지만 가장 문제는 (박 대통령의) 하향식 인사시스템이다."

그는 이어 "근본적인 수술이 없다면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한 번 실수는 용납될 수 있지만 계속되면 신뢰를 잃을 수 있다"며 "지도부는 분명한 인식을 갖고 올바른 말씀을 하는 게 충언이고, 대한민국과 대통령 위한 말씀"이라고 당부했다.

'어리석은' 토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토끼가 다른 동물이 다니는 길을 가지 않고 자신이 만든 길로만 다니는 것은 '독자성' 때문이 아니라 겁이 많아서다. 눈이 많이 내려 먹이를 찾아 나선 토끼나 고라니, 산돼지 등은 밀렵꾼의 표적이 되기 쉽다. 그들에게 토끼나 산돼지를 잡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겁이 많은 토끼는 언제나 가던 길만 가는 습성이 있기에 그 길목만 노리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어리석은 산짐승들은 오줌을 누어 그들이 다니는 길에 표시까지 한다. 그리고는 그 길만이 정도(正道)라고 철석같이 믿고, 고집을 부리다가 끝내 올무에 머리가 걸리거나 함정에 빠진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멈출 줄 모르고 나가는 습성까지 있어 한번 덫에 걸리면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길을 '정도'라고 외치며 앞으로만 나아가다가 스스로 올무에 걸려들어 점점 조여 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MB 정권 5년 동안만 헤아려도 손에 다 꼽기 어렵다. 그래도 전직 대통령은 사과라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정·청 첫 워크숍 때는 토끼처럼 귀를 조금 더 쫑긋 세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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