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푸른거탑'에 배꼽 잡다 남는 이 씁쓸함은 뭐지

[고백] 어느 예비역 병장의 '아웃팅'…지금 당신의 조직은 안녕하신가요?

13.03.28 10:55최종업데이트13.03.2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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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스타가 22일 오후 경기도의 한 부대에서 진행 중인 tvN 군디컬드라마 <푸른거탑> 촬영현장을 방문했다. 배우 최종훈, 김민찬, 김재우, 백봉기가 휴가를 나가기 위해 군화를 닦는 장면을 리허설 하고 있다. ⓒ 이정민


먼저 이 지면을 빌어 2년여의 세월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군복무 동료들에게 심심한 그리움을 전한다. 그들의 의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연락은 이미 다 끊겼다. 물론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그때의 상황이 아닌 그때의 사람들은 종종 그리울 때가 있다.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는 이미 훌쩍 지나 남보다 다소 늦게 입대한 나의 군 경험은 외로움과 괴로움 사이 어느 지점에 있었다. 뭐 당연한 말이다. '개구리 마크'(군대용어1. 전역 시 전투복과 전투모에 붙여주는 예비군 표식)를 달고 사회로 방출돼버린 이 땅의 예비역 중에 군 생활을 유쾌하게 기억하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 시절을 추억한다며 회상에 젖는 예비역이 있다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간첩'일 수도 있다.

<푸른거탑>의 성공 포인트는 남다른 디테일함에 있다

전격 군디컬(군대+메디컬) 드라마를 표방하며 케이블 채널 tvN에서 방영 중인 <푸른거탑>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제목부터 일단 철저히 B급 감성을 드러내며, 패러디성이 농후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추억의 코미디프로였던 <유머일번지>의 '동작그만' 코너가 떠오른다.

오마이스타가 22일 오후 경기도의 한 부대에서 진행 중인 tvN 군디컬드라마 <푸른거탑> 촬영현장을 방문했다. 배우 백봉기와 김재우가 스태프들이 다음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촬영장소인 내무반에서 쉬고 있다. ⓒ 이정민


<푸른거탑>의 패러디 대상은 겉보기엔 인기리에 방영됐던 MBC <하얀거탑>이겠지만, 본격적으론 대한민국 군대의 그 '뽀얀 속살'이다. 그렇게 탈출하고 싶었던 그곳이 요즘에 들어 다시 추억담처럼 회고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는 게 새삼 신기하기도 하다.

보안을 철저히 중시하는 조직이면서도 그 내부 생리는 알려질 대로 알려진 게 바로 대한민국 군대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신체 건강한 남성이라면 예외 없이 다녀와야 하기에 그간 그곳을 거친 이들로부터 축적된 자료만 해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푸른거탑>은 디테일에 승부를 건 것 같다. 말년 병장 최종훈에서 이등병 이용주까지 이어지는 인물 관계 설정부터, '짬밥(군대용어2. 남은 잔반) 고양이'를 데려다 이름을 붙여 키우거나 휴가 때 만날 사람이 없어 선임병과 어색한 시간을 보낸다는 등의 이야기 소재까지 버릴 게 없다. 있는 그대로 사병들의 모습이다.

군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동과 사건은 '여자' 혹은 '휴가'로 귀결되는 묘한 이치까지 이 드라마는 꿰고 있었다. 단순히 군 시절을 모방하며 웃기고 마는데 그치지 않고 군인들의 심리까지 매우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게 바로 2013년 이 시점에서 <푸른거탑>이 입소문을 타는 큰 이유라 생각한다. 

오마이스타가 22일 오후 경기도의 한 부대에서 진행 중인 tvN 군디컬드라마 <푸른거탑> 촬영현장을 방문했다. 배우 이용주와 정진욱이 사진기자의 카메라 앞에서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왼쪽은 백봉기. ⓒ 이정민


미안하지만 그 웃음과 씁쓸함은 비례관계

이쯤에서 내 이등병 시절을 살짝 고백하자면 '그들 관점'에선 당돌한 병사였다. 전투화 닦는 법, 침구류 각 잡는 법을 내 아버지군번(군대용어3. 입대일이 1년 차이가 나는 고참 병사를 일컫는 말. 입대 날짜까지 같으면 친아버지라 부르기도 함)에게 배웠어야 했는데 그가 차일피일 미루던 상황이었다.

그 상황을 두고 난 "후임을 챙기지도 않고 장 모 상병님은 참 바쁘네요"라는 말을 직속 고참인 최 모 일병에게 했다가 그 말이 부대에 퍼져 장 모 상병 및 그 이하 고참들에게 '상욕'을 들었다. 군 경험치 레벌 제로였던 난 '엄청나게 욕을 먹다 보면 정말 배가 부를 수도 있다(입맛이 싹 달아남)'라는 사실을 처음 깨닫기도 했다.

그보다 더하거나 비슷한 상황은 이어졌고, 가해자와 피해자는 언제나 고참 대 후임이었다. 상명하복이 진리인 조직에서 속으로 '내가 고참이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를 주문처럼 되뇌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새 나 역시 그 위치가 되자 그렇게 이해가 가지 않았던 그들만의 기준으로 후임병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상욕은 하지 않았지만, '오호 요놈 봐라'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도 알 수 있지 않나. 이게 바로 군대 조직의 생리이며 그곳을 살아나가는 젊은 청춘 병사들의 심리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지만 적을 섬멸하기 위한 목적이 뚜렷한 조직이기에 뜻밖의 폭력성을 배워버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푸른거탑>을 보며 박장대소를 할수록 뒷맛은 씁쓸하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후임이었으며 선임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지금의 내 현실을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취업전선을 뚫으면 뭐하나. 우리를 반기는 곳은 어쩌면 군대보다 더한 음모와 술수가 가득한 온갖 조직들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회사라는 게 결국 조직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이 조직 문화의 근원이 바로 군대 문화와 매우 밀접하다는 사실은 때론 우리를 암울하게 한다.

오마이스타가 22일 오후 경기도의 한 부대에서 진행 중인 tvN 군디컬드라마 <푸른거탑> 촬영현장을 방문했다. 배우 최종훈, 백봉기, 김재우(왼쪽부터)가 촬영 준비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우리 조직엔 쓴맛보다 단맛이 필요하다

쓰다 보니 마치 무슨 아나키스트 같다. 이런 내가 2년의 군 생활을 별 탈 없이 마쳤다는 건 나 역시 조직 문화와 크게 동떨어지지 않은 족속임을 보여주는 증거란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하다.

푸른거탑 에피소드 중에 여러 명의 신병을 받는 내용이 있었다. 신병의 군기를 잡기 위해 고참들의 갖은 갈굼(군대용어4. 심리적으로 거칠게 압박하는 모든 행위를 뜻함)을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코믹하게 표현한 에피소드였다.

그들이 분노하며 신병을 갈구는 이유는 군대 조직 문화에 비췄을 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조직 문화의 질서를 잡아 신속 정확한 임무수행력을 키우기 위해, 또 하나는 짓밟혀버린 자신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권위라는 걸 돌아보자. <푸른거탐>의 선임병이 신병을 이리저리 갈굴수록 신병은 "예쁜 여자친구가 있다" 혹은 "군생활 중 부사관에 지원하겠다(병사에서 간부가 되는 기회)" 등으로 이리저리 피해간다. 그 잘난 권위는 결국 모든 사람 앞에서 우스워지기 쉬운 속성인 셈이다.

실은 이런 일은 사회에서 늘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공직자든, 학교 선생이든, 직장 상사든 우린 스스로 자기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거나, 비합리적 지시를 일삼는 이들을 꾸준히 봐왔고, 직접 경험하기도 한다. 이들을 '꼰대'라는 전문용어로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

오마이스타가 22일 오후 경기도의 한 부대에서 진행 중인 tvN 군디컬드라마 <푸른거탑> 촬영현장을 방문했다. 배우 최종훈, 김민찬, 백봉기, 김재우가 리허설을 하고 있다. ⓒ 이정민


군 시절을 떠올리며 <푸른거탑>에 웃다 씁쓸함이 남는 이유는 현실에 존재하는 숱한 꼰대들 때문일 것이다. 나이와 성별을 떠나 우린 모두 조직의 쓴맛을 종종 누군가에게 겪고 느끼지 않나. 물론 혹자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자기 일만 잘하면 되지 않나'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처럼 무책임한 말이 또 없다. 사람과 관련한 사건은 대부분 혼자가 아닌 관계 속에서 벌어지지 않나.

혹시 조직을 없애고 뛰쳐나가자는 말로 들리는가. 우리가 무슨 짜라투스트라도 아니고, 그럴 순 없을 거다. 단지, <푸른거탑>이 재치 있게 담아낸 군대 문화가 현실 사회에선 그렇게 유쾌하게 작용하지 않을 때 느껴지는 섬뜩함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이쯤에서 가수 유희열의 말을 좀 인용해보겠다. 붙잡으면 으스러질 것 같은 몰골이지만 그는 1995년 해군으로 전역한 자랑스러운 예비역 출신이다. 동원훈련도 다 받았을 거다.

"가까운 사람 중 누군가 나를 인정해줄 때 칼슘보장 우유 1리터를 한 번에 마실 때처럼 든든해진다"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오프닝 멘트 중)

우리에게 필요한 건 조직의 쓴맛보단, 조직의 단맛이 아닐까. 서로를 인정해주며 존중하는 조직 문화. <푸른거탑>에서도 투박해 보이지만 관계에 대해 하나씩 배워가는 묘사들이 있어 박장대소 할 수 있는 면이 있다. 처음부터 알 수 없으니 몸으로 부딪히며 그렇게 깨달아 가는 거다. 갑자기 휴가를 가고 싶어졌다. 사람과 휴식의 소중함을 느끼기 위해 오늘 하루도 열심히 뛰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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