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분향소 철거와 '박원순의 반성문'

[取중眞담] 불법철거 논란과 도덕적 비판... 서울시의 책임은 과연 없는가?

등록 2013.04.12 19:28수정 2013.04.1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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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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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청,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기습 철거 중구청 직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시민과 예술가들이 만든 솟대, 화분, 분향소 집기류를 강제철거한 뒤 차량에 옮겨 싣고 있다. 이날 서울 중구청은 오전 6시경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1년 가까이 농성을 벌여온 쌍용자동차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기습철거했다. ⓒ 유성호


분향소가 박살났다. 천막 안에서 자던 해고노동자들은 일 년 동안 지켜온 곳에서 신발도 못 신고 끌려나왔다. 새벽에 기습적으로 들이닥친 서울 중구청 직원들에 의해 분향소의 영정들은 또 다시 머물 곳을 잃었다. 중구청은 천막을 치운 자리에 화단을 쌓고 꽃을 심었다. 해고노동자들과 시민들은 또 다시 길에 주저앉았다. 중구청이 조성한 화단은 이제 추모동산이 됐다. 공권력에 의해 또 한 번 짓밟힌 이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지난 4일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이후 세상을 떠난 해고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을 추모하는 분향소가 철거됐다. 철거를 직접 시행한 중구청과 항의하는 해고노동자들과 시민 40여 명을 연행한 남대문경찰서에 비판이 쏟아졌다. 중구청은 '법 절차에 따른 집행'이라고 했지만 영장 없이 철거했다는 의혹과 화단설치를 놓고 불법논란이 불거졌다. 문화재청 또한 덕수궁 담벼락 보호와 보수공사를 이유로 중구청에 분향소 철거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철거의 원인제공자'로 지목 당했다.

비판의 화살은 박원순 서울 시장을 향하기도 했다. 보수 언론에서는 애초에 분향소 설치를 옹호했고 철거 책임을 중구청에 떠넘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와는 정반대 관점으로 철거 직후 SNS에서는 박 시장이 분향소를 지키지 못한 것을 질책하는 목소리도 쏟아졌다. 분향소는 서울시청 길 건너 바로 지척에 있었다. 또 박 시장은 분향소가 철거 위기에 있을 때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그를 든든한 '아군'으로 여겼고, 이번에도 그런 기대감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박 시장은 반성문을 쓰게 된다. 분향소 철거 다음 날인 지난 5일, 박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저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봄이 성큼 다가왔다는데, 어제 오늘 내내 제 마음은 다시 겨울로 되돌아간 듯했다"며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겨울은 언제 끝나는 것일까,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이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22명이라는 소중한 생명이 우리 곁을 떠났다, 더 이상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가 그들의 절규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중구청이 설치한 화단도 언급했다. 박 시장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은 그곳에 꽃이 피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상념이 깊은 밤"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측은 분향소 철거와 관련해 시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고, 철거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자연스럽게 박 시장의 글은 철거를 막을 권한이 없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담긴 것으로 읽혔다. 또 분향소를 철거하고 화단을 설치한 중구청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고 여겨졌다.

그렇게 박 시장을 향한 분노는 어느 정도 사그라졌다. 해고노동자들도 여전히 덕수궁 앞 그 자리를 지키는 시민들도 중구청과 남대문경찰서, 문화재청 등을 비판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분향소 설치에 박 시장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괜한 시비를 건다는 역풍을 맞기도 했다. 시장은 최선을 다 했지만 권한이 없지 않았냐는 것이다. 지난겨울 노숙자의 죽음에 반성문을 썼던 것처럼 항상 약자의 편에 서려 하는 박 시장의 진정성이 통했다고 볼 수 있다. 기자 또한 당시 박 시장 말에 공감하고 수긍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철거 사전 회의에 참석한 서울시... 하지만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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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가 강제 철거된 가운데, 중구청이 대한문 앞에 화단을 조성하고 있다. ⓒ 박소희


분향소가 철거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이 이야기를 다시 하는 이유는 며칠 전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이 낸 보도자료 때문이다. 은 의원은 지난 10일 문화재청이 중구청에 분향소 철거와 화단 설치를 요청했고, 직접 회의를 소집해 이를 계획·모의 했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국정조사까지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기관과 지자체에 잘못된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게 이번 분향소 철거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관련기사 : 은수미 "쌍용차분향소 철거, 문화재청이 요구")

문제는 문화재청이 분향소 철거와 화단 설치를 위해 소집했다는 이 회의에 서울시도 참석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4일 개최된 이 회의에는 서울시 도로환경개선과장 등 2명이 참석하기로 돼있다. 은 의원의 비판 논리로 따지자면 분향소 철거는 문화재청과 중구청, 남대문 경찰서뿐 아니라 서울시도 '모의·계획'한 것이다. 이날 회의는 '대한문 인근 불법 시설물 처리 및 방재대책 마련'이라는 하나의 안건으로 진행됐다. '처리'는 곧 철거고, '방재대책'은 곧 '화단 설치'라고 할 수 있다.

이날 회의 후 3월 8일 중구청은 분향소 철거에 나선다. 당시 오전에 철거가 진행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분향소 앞으로 모였다. 은수미 의원을 비롯해 다수의 국회의원들도 보호막이 됐다. 은 의원은 앞선 회의 결정이 이날 집행됐다고 보고 있다. 그 회의를 소집한 문화재청 문건에는 서울시가 명시돼 있다. "중구청의 철거 계획을 몰랐다"는 해명이 거짓말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사안이지만, 은 의원 보도자료에서는 서울시를 언급하지도 않았다.

서울시에 사실 확인을 했다. 문화재청 문건에 나오는 담당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다른 회의랑 겹쳐 (직접) 못 가고, 우리 직원이 갔다"며 "정확히 알아보고 해라, 문화재청이 문화재 보호 관련 협조요청을 한 거지 철거 문제는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3월 8일 철거 시도도 전혀 몰랐다, 기사보고 알았다, 쌍용차 관련해 할 말 없다"며 더 이상의 취재를 거부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직원과 통화를 요청했지만 이 또한 거절했다.

서울시와의 통화에 앞서 문화재청에 전화를 했다. 역시 중구청, 서울시와 함께 하는 회의를 소집한 담당자다. 그는 3월 8일 회의에서 "분향소 철거를 요청했고 그에 따른 각 기관의 협조를 부탁했다, 서울시도 참석해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과 서울시,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실제로 철거가 진행됐다는 점에서 문화재청이 딴 소리를 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거짓말일까? 아니면 일선 실무자들이 박 시장에게 보고를 하지 않은 문제일까?

서울시의 공식적인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이창학 대변인과 통화했다. 이 대변인은 "사전에 통보 받은 게 없다, 이번에는 기습적으로 해서 구청 공보팀에서도 모르게 했다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는 일관되게 강제집행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고 했다, 법 집행 자체를 반대하기는 어렵지만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니고, 갈등을 유발하기 보다는 대화로 풀어나가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담당자가 분향소 철거를 '모의·계획'한 회의에 참석한 사실을 묻는 질문에는 "디테일한 것은 몰라 대답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어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은수미 의원실과 통화를 했다. 그날 회의에 참석한 기관과 지자체를 비판했지만 왜 서울시를 빼놓았는지를 물었다. 의원실 관계자는 "서울시가 철거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아 확인 중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회의록을 입수해 보려고 한다"고 했지만 공식적인 위원회 회의가 아닌 이상 자료가 남아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분향소 철거과정에서 서울시의 역할 분명히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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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일 문화재청이 서울시와 중구청, 남대문경찰서 등에 보낸 공문.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 공문을 근거로 문화재청과 중구청, 남대문경찰서가 분향소 철거를 사전 모의, 계획했다고 비판했다. ⓒ 은수미 의원실


여기저기 전화통화를 하면서 명확히 확인된 것은, 문화재청이 소집한 회의에서 분향소 철거와 화단설치가 거론됐고 그 회의에는 서울시도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그 뒤에 과정은 알 수 없다. 서울시가 적극 만류했지만 다른 기관이 동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서울시가 방관했거나 동조했을 가능성도 당연히 있다. 어떤 상황이 있었던 "철거 계획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서울시의 해명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나머지 회의 주체들이 서울시 담당자만 따돌리고 철거 계획을 공유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철거가 '욕먹을 일'이 된 이유는 몇 가지 있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와 노조의 옥쇄파업 그리고 경찰의 폭력진압, 일명 '쌍용차사태'는 국회 청문회까지 열릴 정도로 반드시 풀어야 할 사회적 사안이었다. 청문회에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계조작 등 새로운 문제가 제기됐고 국정조사 요구가 거세졌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당시 최고 참모들의 입을 통해 이를 약속했다. 해고노동자들은 박 대통령이 이 약속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당한 명분을 갖춘 투쟁임 셈이다. 거기다 분향소는 집회신고도 돼 있는 합법적 집회 공간이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이 쌍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아니다.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만의 문제도 아니다. 쌍용차 사태로 대변되는 정리해고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돼 있다. 박 시장도 이를 잘 알 것이다. 평소의 그의 모습이라면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자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분향소 철거에서 서울시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비판 받을 부분이 있다면 받아야 한다. 이번 사태를 놓고 그가 남긴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이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는 말의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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