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위기 속 독일은 승승장구 , 비결은 '중견기업'

'중견기업 육성 독일에서 배운다' 컨퍼런스 열려

등록 2013.04.12 18:11수정 2013.04.1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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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중견기업 육성: 독일의 경험에서 배운다' 컨퍼런스. 이날 컨퍼런스는 <중앙일보>와 세계경제연구원이 주최했다. ⓒ 김동환


"가장 중요한 것은 혁신입니다. 자기 기업에 책임을 지는 경영자와 높은 수준의 기술 투자, 정부의 집중적 지원도 있어야 하지요. 반면 바보같은 조세 규제나 관료주의는 없애야 합니다."

연단에 서서 중소기업 육성 필요성을 강조하는 백발 노인의 얼굴에는 '해본 사람' 특유의 자신감이 흘렀다. 독일 집권당인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의 원내 부대표이자 중소기업 정책을 맡고 있는 미하엘 푹스 의원은 1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중견기업 육성 : 독일의 경험에서 배운다' 국제 컨퍼런스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자국의 '미텔슈탄트'(중견기업)의 특징과 성공 비결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꼽은 성공 중소기업의 조건은 혁신과 자유였다. 푹스 의원에 뒤이어 발표에 나선 독일 만하임대학 중소기업연구센터 미하엘 보이보데 소장은 이밖의 조건으로 높은 R&D 투자와 적극적인 수출시장 개척, 산학협력 등을 강조했다.

슈퍼 중견기업 '히든 챔피언'... 비결은 '혁신'과 '자유'

중소기업 활성화는 박근혜 정부 경제 정책의 중요한 기둥 중 하나다. 한국이 일자리를 늘리고 선진국형 경제로 가기 위해서는 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층이 두터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더욱 강한 면모를 보이는 독일 특유의 중견기업 미텔슈탄트와 전문기업인 '히든 챔피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날 회의장에도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비롯해 200여 명의 인파가 빼곡히 자리를 메웠다.

미텔슈탄트란 종업원 수 500명 이하의 중견기업들을 일컫는 독일 말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전체 중소기업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독일 내 순부가가치의 51%를 생산한다. 사회보험이 되는 일자리의 60%를 담당하고 있으며 취업 견습생들의 85%가 이곳에서 훈련을 받는다. 독일 경제 활성화와 고용창출, 취업학교의 역할을 한번에 해내는 셈이다.

독일의 최근 3년간 성장률은 약 8%. 글로벌 불황 속에서 선진국치고는 이례적으로 높은 성적이다. 푹스 의원은 이런 성과의 상당한 비중을 미텔슈탄트가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독일의 실업률이 6% 미만이고 독일 남부지역 같은 경우는 실업률이 0%인 곳도 있다"며 "고용이 늘어나니 20년만에 모든 사회시스템에 흑자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이런 '잘 나가는' 중견기업을 어떻게 키워냈을까. 푹스 의원은 기업 경영자가 가져야 할 조건과 정부 지원 형태를 함께 거론했다. 기본적으로 책임감이 강한 경영자가 적절한 형태의 정부 지원을 만나면 중소기업이 미텔슈탄트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필요하면 채용했다가 필요없으면 해고하고 이런 게 아니라 가족처럼 한 번 채용하면 평생 고용하는 기업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미텔슈탄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혁신입니다. 정부에서는 미텔슈탄트의 혁신을 위한 전담 부서를 두고 집중적인 지원을 하고 있지요. 또한 기업가들이 자유롭게 경영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나 관료주의도 없앴습니다. 제가 의회에서 하는 일이 그런 것이죠."

미텔슈탄트 중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수준으로 성장한 기업은 '히든 챔피언'이라고 불린다. 이날 히든 챔피언에 대한 발표를 맡은 보이보데 소장은 이 기업군의 특징으로 고도의 R&D 투자와 높은 수출지향성을 꼽았다.

통상 미텔슈탄트가 매출의 3% 정도를 R&D에 투자하는 반면 히든 챔피언은 대기업과 비슷한 수준인 5% 이상을 쏟아부어 기술적으로 차별화된 제품을 만든 뒤 50% 이상을 수출한다는 것이다. 경영 안정성도 히든 챔피언의 강점 중 하나다. 보이보데 소장은 "글로벌 위기를 겪고 나서는 자기자본 비율이 30%에 육박하도록 증가하는 등 경쟁력이 더욱 강화됐다"고 덧붙였다.

보이보데 소장은 "히든 챔피언 역시 혁신에 상당한 강점을 보인다"며 "변화에 유연하기 때문에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인재들을 많이 받아들이며 유능한 학생들도 히든 챔피언 기업에 입사하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윤상직 "한국형 '히든 챔피언' 만들어야"

이날 컨퍼런스에는 국내 학자들과 정부 관계자들도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윤상직 산자부 장관은 "한국에도 독일의 히든 챔피언 같은 중소기업의 등장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독일의 사례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중견기업 중 히든챔피언 수준의 수출 1억 달러 이상 기업은 약 100개. 윤 장관은 "국내 중견기업 비중은 전체 사업체의 0.04%로 극히 미미하다"며 "2017년까지 수출 1억 개 이상의 글로벌 전문기업 300개 이상을 육성해 창조경제의 허리를 튼튼하게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중소기업을 육성하면서 양보다는 질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을 물리적으로 키우는 게 능사가 아니라 자생력을 가진 전문기업으로 만드는 게 정부의 과제라는 얘기다.

조 교수는 "대기업도 이제는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에 의존할 게 아니라 자신들이 개발한 능력을 가지고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망 중소기업을 옭아매 다른 곳에는 납품을 하지 못하게 압박하는 일부 대기업들의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성윤모 중소기업청 중견기업국장은 "정부 내에 중견기업 담당 부서가 생긴 게 불과 12개월 전"이라며 "정부의 종합 계획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의 성장사다리 발전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올 6월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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