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부디 놓지 마소서

[시인 서석화의 음악에세이] 지미 오스몬드의 < Mother of mine >

등록 2013.04.23 19:08수정 2013.04.2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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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 of mine
You gave to me all of my life to do as I please.
I owe everything I have to you.
Mother, sweet mother of mine
Mother of mine
When I was young
You showed me the right way things should be done.
Without your love, where would I be?
Mother, sweet mother of mine.
Mother, you gave me happiness
much more than words can say.
I pray the Lord
that He may bless you every night and every day.
Mother of mine
Now I am grown.
And I can walk straight all on my own.
I'd like to give you what you gave to me.
Mother, sweet mother of mine.

세상의 먼지가 하나도 묻지 않은 듯한 지미 오스몬드의 노래를 듣는다.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늘 함께 떠올려지는 노래, 거짓을 모르는 청아한 음색 때문일까? 마음이 몸보다 먼저 숨겨둔 '어떤 길'을 따라간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지미 오스몬드. 그에게 어머니는 "내가 해 달라고 할 때 내 삶의 모든 해야 할 것들을 다 주신 어머니며, 바른 길을 보여주신 어머니고, 행복을 주신" 그런 분이다. 때문에 "나는 어머니께 모든 것을 빌린 자식이고, 당신의 사랑이 없었다면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나"일 수밖에 없다.

이제 그런 나의 어머니를 위해 "나는 주님께서 매일 밤낮으로 어머니를 축복해주시기를 기도하며, 이젠 나도 자라 내 힘으로 똑바로 걸을 수 있으니, 어머니께서 내게 주셨던 것들을 이젠 내가 어머니께 드리고 싶다"고 고백한다.

애절함이 속속 깊이 우러나오는 가사와 함께 여린 듯 이어지는 곡조가 '어머니'라는 불변의 이미지에 이 이상 어울리는 노래가 또 있을까 싶다.

오늘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감당 못할 죄스러움과 자책으로 또 한 분의 어머니께 글을 써야 하는 순간에 서 있다.

또 한 분의 내 어머니, 천상의 어머니, 마리아! 그분의 자녀가 된 지 20년이 훌쩍 넘은 긴 세월 동안 나는 수도 없이 그분을 떠났었다. 그렇게 세상의 대못이란 대못은 다 박은 내가 오늘 또 초대장을 받았다.


오월은 가톨릭에서 '성모의 달'이다.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그분을 기리는 달이니만큼 <성모의 밤>이 열린다. 그런데 내게 '성모님께 드리는 글'을 쓰라고 한다.

무슨 자격으로, 무슨 낯으로, 수없이 떠났다가 붙들려 돌아오곤 했던 탕자의 몸인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분의 날에 초대되는 것만 해도 송구스럽기 말할 수 없는데, 그래서 가더라도 제일 말석에서 뵙고 오리라 미리 정했었는데, 수많은 자식들 앞에 나와 그분께 올리는 글을 낭송하라니... 이렇게 벌을 내리시나하는 생각, 한동안 나를 떠나지 않았다.

몇날 며칠이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도망가고 싶은 충동으로 불안하게 흘렀다. 그러다 지미 오스몬드의 노래에 마음을 붙잡힌 건, 그동안은 눈에 잡히지 않았던 다음 두 줄의 가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I pray the Lord / that He may bless you every night and every day."
"I'd like to give you what you gave to me." 

뒤늦었지만 어쩌면 이 마음이라면 기어서라도 그분께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손톱까지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늙고 허약한 육신의 내 어머니, 아니 세상 모든 어머니의 얼굴이 눈물로 쏟아져내렸다.

어머니, 놓지 마소서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당신을 부르다보면 세상 풍경이 어느새 쑤욱 물러납니다.
저도 숨을 곳 찾아 온몸의 핏줄이 그 폭을 줄이고
솜털 하나하나 거꾸로 고꾸라집니다.
당신 이름 앞에선 더 이상 귀한 것도 더 이상 어여쁜 것도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어지는 이 신비로움이
어머니, 사실 저는 무섭습니다.

저 아직도 세상의 욕망을 놓지 못해 시시각각 죄를 부르고,
부르는 만큼 줄어든 희망을 또 놓지 못해,
파랗게 죽어가는 이마를 얹고 있는데,
어머니,
당신은 저를 딸이라 하십니다.
사랑한다 하십니다.
보고 싶다 하십니다.
아직도 품을 벌려 저를 안고 계십니다.

세상 안과 밖을 잇는 사랑의 무한성,
깊이도 알 수 없고 끝도 알 수 없으며
모세혈관 한 가닥까지 당신 마음으로 데워지는
분에 넘치는 이 사랑이,
당신이 저를 이기는 길입니까?

어머니,
당신은 그렇게 무서운 분입니까?

돌아서도 열두 번은 더 돌아섰고
당신 사랑을 찢은 가위는 어느새
살아온 날만큼 쌓여,
억지로 든 잠에서조차
머리며 목에서 흘린 피 낭자한데,
저 어찌 놓지 못하시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부르십니까?
날마다 새벽이면 또 하나 늘어난 수인번호가
온몸에 지옥의 바코드로 타오르는 저를,
어찌 보고 싶다 하십니까?
왜 잊지 못하십니까?
이 무슨 당치 않은 초대입니까?

어머니,
모른다, 내 딸 아니다, 너를 잊었다,
천둥 같은 목소리로 저를 내치소서.
왜 하지 못하십니까?

네가 나를 버린 가위
이제는 그것으로 내가 너를 잘라 내리라,
왜 시퍼런 칼날 벼르지 못하십니까?
아! 왜 저를 또 부르십니까?
어찌하여 저를 버리지 못하십니까?

어머니,
부끄러움과 송구함으로 몇 날 밤을 밝히고
천만 번을 생각해도 딸의 이름 들려드릴 자신이 없어
이제는 제가 오히려 당신을
모른다, 본 적 없다 울부짖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결국, 들었지요.
듣고야 말았지요.
생을 열 번 산다 해도 잊히지 않을
당신의 울음소리를 말입니다.
그리고 보았습니다.
주먹으로 치고 또 친 제 가슴에
멍으로 새겨진 당신의 모습.

아! 어머니.
피에타 상으로 곁에 계신 내 어머니.
당신의 무릎에 안겨있는 사람은 바로 저였습니다.
당신 무릎에서 천 번을 죽고
그러다 다시 천 번을 깨어난 못난 딸이었습니다.

당신 사랑은 천상의 수액인가요?
생의 절반 이상을 걸어와 기울고 있는 이 나이에
목숨의 소리 제 안에서 진동합니다.

단테의 [신곡] 천국 편 33곡 첫 구절
"동정녀 마리아, 당신 아들의 딸이시여!"
당신을 향한 단테의 경외감은
미켈란젤로에 의해
천상의 순결과 생사를 초월한 아름다움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당신의 비극적 탄식을 초월한 그 아름다움은
저로 인한 어머니의 무한량의 슬픔으로 투사되어
먹물보다 진한 자책의 밤을 견디게 합니다.

어머니...
후들거리는 무릎으로 기고 또 기어
오늘 어머니 앞에 선 지금,
봄볕이 흐드러지게 내리 쬐이고 있는 나무도 꽃도,
당신 치마폭 같은 하늘의 구름도 어느새 사라져,
눈앞엔 당신의 울음 철벅이는 캄캄한 길만 보입니다.
자식에 대한 연민으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곳까지 걸어가신
까맣게 부푼 당신 발뒤꿈치도 보입니다.
아직도 떠도는 허술한 영혼들 붙잡아 주려
세상 끝나는 날까지 모으고 있을 당신의 두 손,
짙푸르게 불거진 당신의 한숨도 느껴집니다.

어머니.
당신의 무릎은
저희가 죄를 벗을 우주보다도 큰 요람입니다.
원죄 없으신 고운 어머니,
말갛게 씻기운 새사람으로 태어날 수많은 자식
당신 가슴으로 안고 놓지 마소서.
어머니,
피에타 상의 내 어머니,
자비를 베푸소서!

부디 놓지 마소서.
부디 놓지 마소서.
부디 놓지 마소서.   (*)
#음악에세이 #피에타 #지미 오스몬드 #마더 오브 마인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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