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vs. 이탈리아, 아드리아해 어디서 볼까?

[불혹 배낭여행기 27] 꿈처럼 내가 만난 세상의 바다들

등록 2013.04.29 10:53수정 2013.04.2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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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제주 우도 산호사해수욕장. 청옥빛 물빛이 더할 수 없이 곱다. ⓒ 홍성식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대형 통유리와 자동차의 소음. 도시의 일상에서 그것들을 추방하면 어떤 공간이 그려질 수 있을까? 아마도 바다와 강, 호수와 산,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과 사막이 아닐지. 지금까지의 내 모든 여행이 그랬다. 우리가 생활하는 거대 도시와 대척점에 서있는 인공미 배제된 공간들. 먼저 내가 만난 '바다' 이야기다.

색채 곱기로 말하자면 제주 우도와 안다만 피피섬 물빛


인간의 눈으로 보는 바다의 빛깔은 그 아래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서해와 동해의 바다 색깔이 다른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혹당하는 바다의 빛깔은 청옥색. 이른바 코발트블루 색채다. 바다가 그 빛깔을 띠기 위해서는 아래에 산호가 있어야 한다.

일천한 내 지식에 기대서 말하자면, 한국엔 논란의 여지없이 코발트블루 빛깔로 빛나는 해변이 딱 한 곳. 제주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우도의 산호사해수욕장이다. 이름 그대로 산호가루의 모래로 형성된 공간.

그 눈 시린 푸른색은 서로에게 심상한 '아주 오래된 연인들'까지도 낭만적 감상으로 내몰아 바닷가에서 입을 맞추게 할 정도다. 2번을 가봤는데, 시끌벅적한 여름보다는 겨울의 우도가 더욱 매혹적이다. 바다 빛깔 역시 그때가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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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의 안다만 피피섬. 쓰나미의 상처가 채 아물기 전 모습이다. ⓒ 홍성식


색깔 근사하기로 치자면 태국과 인도 사이의 바다인 안다만(灣)도 빼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피피섬이다. 한국 패키지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높은 곳이라, '남들 다 가는 거기가 뭐 대단하겠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일대 바다는 왕조시대 청옥을 수만 보따리 빠뜨린 것처럼 맹렬한 코발트블루 색채를 띤다.

2006년과 2011년에 가본 피피섬. 첫 번째로 그 섬을 여행했을 때는 태평양 일대를 폐허로 만든 쓰나미의 상처가 채 여물기 전이었다. 수십m의 파도에 휩쓸려 가버린 조그만 호텔과 생활기반 시설을 복구하며 땀을 흘리는 사람들.


그럼에도 관광객이 뿌리는 돈에 경제가 좌우되는 나라(태국)인 터라 여행자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유람선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죽은 사람은 안 됐지만, 바다가 한번 휙 뒤집혀서인지 색깔은 더 멋지네." 그 말에 바다 빛깔에 감탄하던 마음 한켠이 무너졌던 기억. 모든 여행자가 철든 교양인은 아니다.

석양이 아름다운 해변이라면 인도의 베나울림

일출이 희망과 다시 시작함의 은유라면, 일몰은 스산한 낭만과 적멸의 메타포다. 해서, 낙관적인 인간들은 일출에 감동하고, 비관과 냉소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일몰에서 더 큰 매력을 느낀다. 난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인도를 홀로 여행했던 2006년. 저녁 무렵 지는 해, 석양의 풍경이 아름답다는 고아(Goa)에서 보름쯤 머물렀다. 그 붉은빛이 '사람의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든다'는 아라비아해의 석양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명불허전(名不虛傳). 과연 그랬다. 거기 머문 보름 동안 해질녘만 되면 석양빛에 감동한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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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베나울림해변. 핏빛으로 붉은 아라비아해의 석양이 지고 있다. ⓒ 홍성식


유럽 여행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안주나해변이나 팔롤렘해변보단 개발의 손길이 채 닿지 않아 아직까진 적요한 베나울림해변이 가장 좋았다. 거기서 5일을 묵었다.

때는 '태풍경보'가 내려진 인도여행의 비수기 5월. 저녁 7시쯤이 되면 소수의 사람들만이 지는 해와 이별하러 바닷가를 서성였다. 어디선가 낡은 스피커에서 밥 말리의 레게나 짐 모리슨(록그룹 '도어스'의 보컬리스트)의 음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20대를 인도의 해변에서 히피로 보냈다는 이탈리아 할머니와 프랑스 여대생 칼라, 살리나와 함께 베나울림해변의 모래밭에 앉아 아라비아해의 서쪽으로 까무룩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던 그날들. 그 시간을 떠올리면 있는지 없는지도 불명확한 내 영혼까지 핏빛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듯하다. 지금까지도 그렇다.

푸른 잉크를 몇 병이나 쏟아 부은 것일까? 아드리아해

동쪽으로는 크로아티아,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를 끌어안고, 서쪽으로는 이탈리아를 품은 아드리아해. 거기 물빛은 한국의 우도나 안다만 피피섬보다 조금 더 짙은 색깔을 낸다. 네이비블루의 잉크를 수십 만 병 쏟아 부어 만든 것 같다. 필리핀 비사야군도(群島)의 외딴섬 발리카삭에서 본 바다빛깔과 몹시 닮았다.

아드리아 바다의 푸른빛 아름다움을 더욱 도드라지게 해주는 건 고풍스런 붉은색 지붕으로 축조된 동유럽의 건물들이다. 야트막한 산에 올라 옅은 붉은색 지붕과 근사한 조화를 이루는 짙은 푸른색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낭만' '놀라움'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도트프린터의 소리를 내며 머릿속으로 '촤르륵'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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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바라본 아드리아해. 붉은 지붕과 푸른 바다가 멋들어진 하모니를 이룬다. ⓒ 류태규 제공


동쪽에서 서쪽으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는 최고의 '뷰포인트(viewpoint)'는 어디일까?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모두에서 아드리아해와 만나 입 맞추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아드리아를 빛나게 하는 동유럽 최고의 공간은 크로아티아의 고도(古都) 두브로브니크다.

두브로브니크 메인비치에서 조금만 벗어나 사람이 서넛밖에 없는 매끄러운 자갈 깔린 조그만 해변에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면 '행복의 절정'이 무엇인지를 실감케 된다. 이 진술이 과장이라고 느끼는 사람들,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거길 가보고도 그 생각을 바꾸지 않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아드리아해가 지구 위의 사파이어라면, 두브로브니크의 이름 없는 작은 해변들은 아드리아해가 선물한 보석이다.

이탈리아의 남부 해변도시 아말피와 포지타노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는 최고의 뷰포인트다. 깎아지른 바위 위에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도시.

수백m 절벽을 끼고 2차선 좁은 도로를 낡은 버스가 위태롭게 달린다. 그러나, 누구도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 차 창밖으로 내내 펼쳐지는 엽서 같은 풍경 탓이다. 아름다움을 앞에 두고 터뜨리는 감탄사는 동양인과 서양인, 백인과 흑인, 노인과 아이가 다르지 않다는 걸 그 길에서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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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의 아말피와 포지타노에서 보는 아드리아해도 절경이다. ⓒ 홍성식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포지타노의 한 레스토랑. 종업원 한 명이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보다 잘 생겼다. 아드리아해의 빛깔을 닮은 푸르스름한 수염자국과 뚜렷한 이목구비. 세련된 헤어스타일에 훤칠한 키까지.

그런데, 왜 이렇게 녹인 버터를 한 숟가락 떠먹은 듯 느끼하지. 그 이탈리아 미남자, 주문하는 여자들 모두에게 윙크를 날린다. 그 모습을 보며 여자들은 깔깔대며 즐거워하고. 조금 더 부추기면 '돌아오라 소렌토로'까지 부를 기세다. 이게 이탈리아식 낭만인가?

오른쪽에서 본 착한 사람이 왼쪽에서 본다고 나쁜 사람이 될 리 없다. 그랬다. 아드리아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보건, 서쪽에 서서 동쪽을 향해 눈과 입을 맞추건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다시 만나고 싶은 바다 아드리아. 두브로브니크 붉은색 지붕은 물론, 그 느끼한 이탈리아 웨이터까지 가끔 아니, 자주 그립다.

다음 회에선 여행 중에 만난 강(江) 이야기를 하자. 메콩과 짜오프라야, 다뉴브와 사바….
#아드리아해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아라비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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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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