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한 소고(小稿)

[시인 서석화의 음악에세이] - 해바라기 <행복을 주는 사람>

등록 2013.05.05 17:08수정 2013.05.0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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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의 정갈함보다도 더 순결한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생각한다. 그 곁에 나란히 선 단정한 턱시도 차림의 건강한 정신을 가진 신랑도 생각한다.

아름다운 웨딩마치 속을 이제는 한 몸이 됨을 허락받은 신랑 신부가 축하 세례를 받으며 걸어 나온다. 폭죽이 터지고 박수소리가 끝날 줄 모른다. 가족과 친척과 친구와 지인들이 신랑 신부를 에워싸고 각자의 염원을 담은 미소로 오늘을 기념하는 사진 촬영, 그리고 신부의 손에 있던 부케가 누군가의 손으로 옮겨진다.

부케는 신부가 처녀시절을 마감하는 날, 아직 미혼인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아름답게 장식된 부케를 결혼식 날 신부가 드는 이유는, 이제는 멈춰야 될 환상과 지녀야 될 각오의 의미가 복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케를 받는 행운을 얻은 친구는 다음 차례 신부가 될 수 있다는 주위의 환호 속에서 결혼에 대한 마음가짐을 미리 다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부케는 신부가 돌아서서 뒤를 향해 어깨 너머로 던진다. 왜 그럴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건, 차마 떨쳐내 지지 않는 아쉬움과 결혼에 대한 자각의 충돌 때문이 아닐까 한다.

미혼시절과의 이별, 모든 가슴 아픈 이별이 그렇듯 차마 마주보고 떠나보낼 자신이 없어 시선이 비켜간 기억, 누구든 하나쯤은 갖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라 해도 새로운 생활의 시작은 적지 않은 두려움과 불안감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단숨에 떨쳐 내고자하는 용기인 동시에, 미련 없음을 나타내는 마음의 표현으로 뒤로 돌아서서 그야말로 '던지는' 혹은 '던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자기암시 적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결혼! 두 사람이 새로운 세계로 동시에 입주하는 성스럽고도 엄중한 의식. 미혼시절에 갖고 있었던 허황된 기대를 하나씩 부셔나가는 피나는 도정의 시작. 환상을 버린다는 것은 순간에 미혹되기 쉬운 부피만 컸던 애정에서, 바닥부터 다시 다져가고 쌓아가는 신뢰 관계로의 승화를 말한다.

이제는 '너와 나' 라는 독립된 개체로서의 행, 불행에 연연해서는 '우리' 라는 통일된 가정의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 부케가 주는 아름다움이나 꿈같은 어여쁨, 웨딩마치가 무조건 행복을 가져다주는 신호탄으로만 기억돼서는 안 될 일이다.

흔히 사람들은 외롭기 때문에 결혼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적어도 외로움에서는 벗어날 수 있는 훈훈한 따사로움이 늘 나를 지켜 주리라고 믿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 그럴까? 홀로 있을 때 외로운 건 당연한 외로움이니까 여기서는 논하지 않기로 한다. 중요한 건 외롭지 않으려고 결혼을 했다면, 상대가 나를 외롭지 않게 해 주리라는 기대에 앞서, 내가 그를 외롭지 않게 해주겠다는 마음가짐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결혼생활에서 느끼는 외로움이야말로 참담하고도 고독하다는 것. 이것은 몇 번을 곱씹어 생각해도 무서운 일이다. 거기엔 상대에게 거는 기대만 우선되었지 나에게 거는 상대의 기대를 간과한 탓이 무엇보다도 크다.

결혼이 환상이라는 부케를 던지지 않고선, 그리고 부케를 던지는 순간의 아쉬움과 허전함을 겪지 않고선, 무조건 얻어지는 행복한 미래로의 에스컬레이트나 낙원 보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상대의 즐거움보다는 상대의 아픔에, 상대가 웃고 있을 때보다는 울고 있을 때, 상대가 즐겁게 떠들고 있을 때보다는 잠깐이라도 침묵하고 있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그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을 설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유이지 않겠는가. 또한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권 속으로 자발적 편입을 한 목적이지 않겠는가.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우리 가는 길에 아침 햇살 비추면
행복하다고 말해 주겠네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때론 지루하고 외로운 길이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때론 즐거움에 웃음 짓는 나날이어서
행복하다고 말해 주겠네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 해바라기 <행복을 주는 사람>

결혼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을 만나는 의식인 동시에, 내가 상대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성스러운 약속이자 실천의 시작이다. 

따라서 부부란, 평생 비즈니스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는 만큼 받는다. 내가 주지 않으면 그도 주지 않는다. 결혼이라는 거대한 비즈니스가 성공하려면 '주고받고'가 수평을 이룰 때만 가능하다.

행위의 밀고 당기기나 감정의 일방적인 우위 점령은 연애에만 가능한 게임이다. 연애는 세금을 같이 낼 필요가 없고 적금을 같이 부을 책임이 없으며 당사자 외에는 그 누구도 책임과 의무의 대상이 되지 않는 단 둘만의 관계다. 거기에 영원성을 담보로 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선 수직관계도 가능하고 일방적인 구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결혼은 다르다. 사소한 공과금 하나라도 같이 내야하고, 적금이나 예금 내역을 공유해야 하며, 각자의 부모 형제가 내게도 절대 남일 수 없다. 거기에 자녀 출산과 더불어 '부모' 라는 절대적인 위치에 나란히 서게 된다. 관계의 수평, 감정의 수평, 배려와 이해의 수평이 필수적이며, 그것은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연애가 꿈같은 밀월기간이라면, 결혼은 함께 감당하고 함께 견디며 함께 이뤄 나가야 하는 긴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나쁜 남자'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제멋대로인 여자'는 연애에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연애를 지속시키는 최음제로 작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 상대자로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그건 불행을 넘어서 '살아 있는 지옥'으로 가는 티켓을 손에 쥐고 있는 것과 같다. 

평생을 함께 할 희노애락의 동반자로서 상대를 내 반쪽으로 수락했다면, 나 또한 그의 반쪽임을 먼저 자각해야 할 것이다. 몸이란 좌우대칭이 완벽해야 온전한 몸이라고 할 수 있다. 반쪽이 불편한데 한 걸음인들 휘청이지 않고 뗄 수 있는가.

상대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려면, 내가 먼저 그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 이 돼야 한다는 건 가장 기본 공식이다. 먼저 주었을 때 상대도 줄 준비를 한다. 어디 결혼뿐이겠는가. 모든 관계에선 그것이 관계 행복도의 제 1 조항이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말, 복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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