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산먼지 '제로 제철소?'... 그들의 무모한 도전 계속된다

[르포] 세계 최초 '밀폐형 원료처리시스템' 갖춘 현대제철 당진공장

등록 2013.05.09 14:49수정 2013.05.0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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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당진제철소는 철광석 운반 과정에서 측면부와 하단부를 막은 컨베이어 벨트를 활용해 원료가 날아가는 문제와 비산먼지 발생 등 환경문제를 해결했다. ⓒ 유성호


지난 3일 오전 충남 당진시 송악읍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눈앞에 놓인 직경 120미터, 높이 60미터의 돔형 콘트리트 건물은 '무대포'라는 단어를 연상시킬 정도로 거대했다. 한 개도 아니었다. 멀리 보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밥공기를 뒤집어놓은 것 같은 돔 7동이 옹기종기 모였다.

화창한 날씨였지만 건물 안은 서늘했다. 당장 백묵가루로 선을 그어 야구를 해도 좋을, 잠실야구장 운동장만한 크기의 건물 내부에는 제철 원료로 쓰이는 커피가루 형태의 곱고 습기없는 철광석이 수십미터 높이로 얌전히 쌓여 있었다.

이곳에 쌓인 철광석은 지하로 연결된 밀폐형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고로로 직결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당진제철소에서만 구현되고 있는 친환경 시스템의 핵심인 밀폐형 원료처리시스템이다.

현대제철이 제철 후발주자로서의 불리함을 '친환경 경영'으로 돌파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9조 5000억 원을 투입해 만든 당진제철소는 올해 9월부터 3번째 고로를 가동한다. 준공 8년만에 세계 10위권에 해당하는 연간 2400톤의 철강 생산체제가 구축되는 셈이다.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특유의 시스템이 없었다면 단기간 내에 이루기 어려운 성과다.

원료 '밀폐보관'으로 환경오염 여지 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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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충남 당진 송악읍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내 원형(돔형) 저장고에 제철 원료인 철광석이 쌓여있다. 원형 저장고는 철광석 원료가 비를 맞을 때 발생하는 산화물 침출수로 인한 수질, 토양오염 방지하기 위해 지은 시설이다. ⓒ 유성호


원료 및 제품 수송 문제 때문에 통상 바닷가에 위치하는 제철소는 대표적인 환경오염 유발 공업 중 하나로 꼽힌다. 야적장에 쌓아놓은 제철 원료인 고철에서 발생한 쇳가루나 미세한 비산먼지가 인근 거주지로 날아가기 일쑤고 원료가 비를 맞는 날에는 산화물 침출수가 발생해 수질·토양오염을 발생시키기 때문.

날리기 쉬운 가루 형태의 철광석을 원료로 쓰는 일관제철소의 경우 환경오염 가능성은 한층 더 높아진다. 이날도 당진제철소에는 간간이 해풍이 불었다. 환경의식이 높아진 요즘 제철소 만들기가 상당히 까다로워진 이유다.


2006년 준공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역시 건립 초기부터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김상규 현대제철 제철기획실장은 "환경이라는 단어가 일상생활이나 제조업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한 기간은 철강 역사에 비해서는 매우 짧다"면서 "선진국에도 환경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포스코만 해도 거의 환경 생각 안하고 지은 건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는 제철소를 세울 때 친환경적 오염방지 시설에 신경을 많이 써야만 했다"고 덧붙였다.

수조 원이 드는 공장에 검증되지 않은 친환경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그러나 고민하던 친환경 설비 도입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게 풀렸다. 제철 원료를 보관하는 밀폐형 저장시설을 따로 짓기로 결정한 것. 그는 웃으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 많은 제철 원료를 지붕 밑에 가둔다? 이게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인 아이디어에요. 당진제철소 기공식 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왔었어요. 그래서 친환경 측면에서 내세울 게 없을까 하던 차에 정몽구 회장님이 뚝심으로 이렇게 하겠다고 발표를 해버리셨어요. 엔지니어링 검토가 덜 끝난 상태였지만 회장님이 발표했는데 어떻게 해요. 해야지."

현대제철은 철광석과 함께 원료로 쓰이는 석탄 저장고도 따로 만들었다. 7개의 돔형 창고에 보관하는 철광석과는 달리 석탄은 너비 98미터 높이 51미터, 길이는 635미터인 선형 창고 4동에 나눠 보관한다. 각각의 밀폐형 저장시설에는 30일~35일치 원료가 담긴다. 제철소를 통틀어 원료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기왕 친환경 설비를 구축하는 김에 운반 과정 중에 원료 먼지가 날리는 것도 방지하기로 했다. 원료 운반선에서 철광석 가루를 하역하는 단계서부터 측면부와 하단부를 막은 운송용 컨베이어 벨트를 활용하도록 운반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렇게 만든 컨베이어 벨트 길이는 현재 약 35km. 완공하면 총 길이 60km의 밀폐 컨베이어 벨트가 제철소 곳곳에 원료를 운반할 예정이다.

7000억 원 투자한 친환경시스템... 경영 측면에서도 '이득'

현대제철이 7000억 원을 들여 만든 밀폐형 원료처리시스템은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이득이었다. 원료의 적치 효율이 평당 32톤 수준을 높아지면서 원료 저장 부지의 면적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당진제철소는 원료를 개방형 부지에 쌓아놓는 타 제철소에 비해 40% 면적만 있으면 원료를 보관할 수 있다. 공간이 한정적인 제철소 부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비가 내리더라도 원료가 젖을 일이 없으니 기상이 나쁘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던 추가 연료비도 줄어들었다. 현대제철이 지난해 달성한 원가 절감량은 약 5750억 원. 대부분이 원료 부문의 비용 절감이었다.

이승희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홍보과장은 "개방형 부지에 원료를 저장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많게는 전체 무게의 14% 정도 수분을 머금게 된다"면서 "밀폐형 저장 방식은 6~8% 수준으로 수분이 유지되기 때문에 연료비가 줄고 바람에 날려서 유실되는 원료도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이득은 친환경 이미지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큰 반발 없이 빠른 시간 내에 애초 계획대로 제철 시설을 차근차근 늘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기공식을 한 지 39개월 만인 지난 2010년 4월에 제 1고로를 가동하며 연간 400만 톤의 생산능력을 갖추더니 그해 11월에는 제 2고로를 완성했고, 올해 9월에는 제 3고로까지 가동될 예정이다.

철강사에 유래 없는 급성장을 거듭하면서 세계 20위였던 철강 생산능력 순위도 10위 수준으로 껑충 뛸 예정이다. 현대제철은 내년부터 연간 2400만 톤의 생산량을 유지하면서 고급 강종인 자동차 강판 및 조선용 특수 강재를 생산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쇳물에서 완성차까지...그룹 내 '자원 순환형 구조'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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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충남 당진 송악읍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내 열연공장에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슬래브(반제춤 철)가 롤러에 의해 얇게 펴진 뒤 다음 공정으로 옮겨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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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충남 당진 송악읍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내 열연공장에 압연공정을 거쳐 둘둘 말린 열연코일이 쌓여있다. ⓒ 유성호


화로에서 1300도 이상으로 가열된 시뻘겋게 달아오른 슬래브(반제품 철)가 컴퓨터로 제어되는 레일 위로 미끄러져 나오자 30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얼굴이 후끈거린다. 쏟아지는 냉각수를 맞으며 롤러를 통과하길 수 차례, 400여 미터의 압연 공정 끝무렵에는 길이가 10여 미터 정도이던 슬래브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길게 펴진다.

슬래브는 처음의 붉은 색을 거의 잃을 때쯤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돌돌 말린 압연롤 형태로 완성됐다. 최종제품의 온도는 약 300도. 당진제철소의 열연공장 풍경이다. 현대제철은 현재 연 650만 톤의 열연강판을 만드는데 그 중 300만 톤 가량은 자동차용 강판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용 강판 물량 대부분은 현대하이스코에서 냉연강판 처리를 거쳐 현대·기아차로 간다. 완성차 중 수명이 다한 제품은 폐차 처리되어 다시 현대제철 철 스크랩 원료로 사용된다. 쇳물에서 완성차까지 현대차그룹 내에서 해결하는 구조를 구축한 것이다. 세계 자동차회사 중 유일한 사례다.

현재 현대·기아차는 생산에 필요한 강판 중 40% 정도를 이렇게 공급받고 있다. 3고로 가동 이후 연간 열연강판 생산량이 늘어나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정몽구 #친환경 #제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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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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