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아빠 50만명,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신세

국회 간담회 "가족으로부터도 소외 당해... 대책이 필요한 때"

등록 2013.05.13 17:34수정 2013.05.1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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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아빠 6년차다.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게 무섭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겪는 무서움은 불 꺼진 게 아니다. 사회적인 냉대, 무관심, 가족으로부터의 소외···. 그건 40대가 다르고 50대가 다르다. 50대가 되면 극한 상황에 생각을 잘못할 수도 있다."

개그맨 이상운씨는 13일 오전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과 한국워킹맘연구소(소장 이수연)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한 '기러기아빠 희망을 향해 날다' 국회 간담회 토론자로 참석해 기러기 아빠로서의 심정을 털어놨다. 이날 간담회는 기러기아빠의 어려움을 위한 정부와 국회 차원의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마련됐다.

이씨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아이 둘과 아내 모두를 미국에 보내고 홀로 한국에서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 작년에 화초를 350개 키우고 당구학교를 다니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제 통장에 4368원이 있다. 날지 못하는 기러기아빠들이 많다. 병도 35개나 갖고 있다. 대한민국 남자가 갖고 있는 병을 다 갖고 있는 셈"이라며 "기러기아빠이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다. 소외받는 사람들이 50만 명이라는데, 모두 보호받아야 한다. 건강한 가족, 국민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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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아빠로 6년째 지내고 있는 개그맨 이상운 씨는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기러기아빠이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다. 소외받는 사람들이 50만 명이라는데, 모두 보호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 정가영


지난 10년 간 아이들과 아내를 미국에 보내고 혼자 지냈던 허용무 박사는 "기러기아빠로 살며 견뎌야 하는 내 몫의 고통은 생각보다 컸다. 미국에 가족을 남겨놓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어느 순간 다른 세상 속으로 옮겨진 듯했다"며 "가장 먼저 부딪힌 곤란함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생활에서의 문제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들과 같은 기러기아빠는 현재 50여만 명. 기러기아빠들은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배우자와 자녀를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국내에 남아 경제적인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이날 주제 발제를 맡은 성균관대학교 엄명용(사회복지학과) 교수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1년까지 매년 평균 약 2만 2000가구의 기러기가족이 출현했다. 기러기가족은 국내 교육 체계의 문제나 세계화, 지구화에 발맞추기 위한 방편으로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기러기가족은 가족과의 거리감을 심화시키고 부모-자녀관계, 부부관계에서의 불편함과 문화적 이질감을 악화시켜 가족 재결합에 대한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특히 홀로 국내에 남겨진 기러기아빠의 경우는 심각하다.

엄 교수는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외국에서 생활하는 가정 내에서 어머니의 역할과 권한이 강화되는 반면, 한국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권위는 상대적으로 약화된다"며 "자녀들에게 아버지는 한국에 남아 돈만 보내는 기계적인 존재로 인식되면서 가족으로부터 소외될 수 있다. 이는 가족의 연대감을 약화시키고 방치될 경우 결국 가족해체의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많은 기러기아빠들은 경제적 부담과 신체적 고통은 물론, 외로움과 쓸쓸함 등을 호소하며 지낸다. 특히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이 몰려 있는 가정의 달 5월에는 큰 괴로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이들을 위한 생활 지원 대책은 미비한 현실이다.

엄 교수는 "한국의 기러기아빠들이 가족을 유학 보낼 정도로 경제적으로 중산층 이상이고, 또 자발적 선택에 의해 독거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사회서비스 수혜대상으로 거론되긴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러기아빠들의 삶을 보면 혼자 고통들을 감내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기러기아빠에 대한 개입은 기러기가족 발생의 원인이 되는 교육체계 개선과 함께 기러기아빠의 삶의 특징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채정호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교수도 "기러기아빠인 독거남의 정신건강지표는 불량하며 긍정요인도 취약하다"며 "이들에 대한 네트워크 중심의 지지체계 구성 및 스트레스 관리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정토론자로 나선 한국건강가정진흥원 박경은 사업기획팀장은 "사전예방적인 관점을 도입해 기러기아빠가 건강가정지원센터 프로그램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기러기가족을 준비하는 가정을 위한 통합지원서비스 제공이 필요하다"며 "기러기가족으로 살기로 결정한 후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지켜야 할 가족규칙 세우기 프로그램, 부모교육 및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교육 등으로 구성하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박 팀장은 "남성 자조모임이나 상담프로그램은 물론, 아빠와 자녀 및 어머니 사이에 커져 가는 문화적 격차를 극복할 수 있도록 가족문화 프로그램, 가족캠프 등도 운영돼야 한다"고 전했다. 

기러기아빠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아빠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회적 분위기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정토론자로 참석한 윤석만 <중앙일보> 기자는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미 많이 바뀌어왔다. 우리나라처럼 교육이 바뀌는 곳도 없다"며 "우리사회의 공통된 편견, 아빠는 희생해도 될 것 같단 생각들, 아빠는 원래 교육에 무지해야 한다는 편견 등이 가장 큰 문제다. 교육의 최종 기착점이 무엇인지 본질적으로 고민하고 사회, 제도, 문화들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학교든 가정이든 잘먹고 잘사는 것만 가르치는데 어떻게 잘먹고 잘사는지를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교육이 맘에 안든다고 외국에 가면 자연스레 영어도 늘겠지하는 기대감이 있는데,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 고민하고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가정내에서의 아빠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인성교육이 제도화되는 것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를 주최한 문정림 의원은 "최근 대구에서 기러기아빠인 치과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비동거 가족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라며 "기러기아빠가 되는 시점이 아이들에게 아빠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하게 되는 사춘기라는 점은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러기아빠로 인한 가정붕괴가 국가와 사회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점은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도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육아전문지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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