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용서했다는 아이의 시, 얼얼합니다"

[찜! e시민기자] 행복한 학교 위해 기사 쓰는 이무완 시민기자

등록 2013.05.15 17:36수정 2013.05.1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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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올해부터 '찜e시민기자'로 선정된 시민기자에게는 오마이북에서 나온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편집자말]
스승의 날이다. 하지만 어째 '참스승'의 삶을 실천한 교사들의 미담 기사보다 '학생 지도가 고통스럽다'는 교사 설문조사 기사가 더 눈에 띈다. 한국교총 등이 스승의 날을 맞아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중·고교 교사 1269명 가운데 71.6%가 '학생 지도가 고통스럽다'고 응답했다 한다.


가르치는 사람조차 '고통'으로 여기는 교육이 배우는 사람에게만 고통이 아닐 리는 없다. 공부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학생과 자녀 교육 때문에 등골이 휘는 부모의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를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만드는 우리 교육의 현실. 이런 현실을 교육 현장에서부터 바로잡으려 애쓰는 교사들이 있다.

이무완 시민기자 역시 그 가운데 하나. 올해 3월부터 학교폭력 감시 CCTV 설치 문제, 온종일 돌봄교실 확대 정책, KBS 어린이 독서왕 논란 등 "교육을 뒤흔드는 음흉하고 불순한 바람"들을 기사로 날카롭게 짚어 내왔다. 교육문제 해결의 당사자로, 아이들의 건강한 삶과 우리말을 지키는 스승으로 분주히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며 사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이무완 시민기자가 쓴 기사 보기

"두려움 떠도는 교실에선 아무것도 배울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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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완 시민기자 ⓒ 이무완


- 자기소개부터 간단히.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쭉 학교만 다녀서 가방끈(?)은 좀 길다. 앞쪽 16년은 학생으로 살았고 뒤쪽 19년은 초등학교 선생으로 살면서 일곱 학교를 옮겨 다녔다. 아내와 두 아이가 있다."


- 올해 3월부터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하셨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우연찮은 기회에 파견교사로 강원도교육청에서 일하고 있다. 학교 안에서 바깥세상을 보다가 거꾸로 학교 밖에서 학교를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컸다. 현미경으로 보다가 망원경으로 바꿔 들고 본다고 할까. 시민기자 활동도 생각난 김에 같이 해보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물론 곁에서 부추긴 분도 있다."

- 선생님인데 기사를 쓰신다. 그것도 정치적으로 예민한 주장이 담긴 기사를. 보통 선생님들은 그런 점을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교육이든 정치든 궁극으로 지향하는 바는 '사람답게 행복하게 사는 삶'이라고 본다. 아이가 행복해야 어른도 행복하다. 거꾸로 어른이 불행하면 아이도 불행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는 세상도 같이 불행해진다. 예민한 주장이란 게 딱히 있었나 싶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을 기사로 썼다. 다만 교사는 어디까지나 교사 처지에서 자기 말과 생각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한다."

- 기사에서 교육 현장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자신만의 교육 원칙이 있다면?
"무엇보다 '소통'이 있어야 한다. 무겁거나 또는 두려움이 떠도는 교실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소통의 방법이라면, 되도록 아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 아이들 말을 많이 들어주는 것. 아이가 '샘하고는 말이 안 통해요' 하고 말하는 순간, 앞으로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통이 안 될 때, 속으로 끙끙 누르고 불만과 반발을 키워서 더욱 일을 어렵게 만든다.

학급 규칙도 교사 일방으로 정하면 저항을 부를 수밖에 없다. 아이들처럼 나도 한 표를 가진 사람으로 내가 바라는 바를 말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지난해 우리 교실 아이들은 '교실에 오면 손전화를 끄고 집에 갈 때 켠다', '부모님하고 연락할 일이 있으면 교실 전화를 쓴다', '손전화를 일과 중에 켜거나 수업을 방해할 때는 담임한테 맡겨두었다가 집 갈 때 찾아간다'고 정했다. 교실을 움직이는 건 교사가 아니다. '우리'라는 생각을 하게 해야 한다."

- 우리 교육의 여러 문제 가운데 '우리 아이들이 살려면 이것부터 없애야 한다'하는 것 하나만 꼽자면?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 시스템'이 아닐까. 능력보다는 졸업장이 사람을 줄 세우고,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끌어주고 밀어준다. 그러니 졸업장을 따기 위한 과열 경쟁, 공교육 불신, 사교육 팽창 같은 수많은 부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한두 문제, 0.1점 차이로 당락이 바뀌고 뒷날 사회적 성패가 갈린다. 어렵겠지만, 대학 서열 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

"아이들 자기 삶 풀어내면서 살아야 마음 병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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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는 이무완 시민기자 ⓒ 이무완


- 우리말에 대한 애정 또한 돋보인다.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됐나?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이다. 글쓰기회는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가치있게 생각한다. 거기서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고 선생님이 쓴 책, <우리 글 바로쓰기>(한길)를 읽었다. 쉽게 정직하게 쓴 글이 좋은 글이라는 걸 알았다. 그 뒤 글쓰기회보 편집 일을 맡아 하면서 더 관심을 두고 공부를 했다."

- 아이들과 함께 시 쓰기와 글쓰기를 해온 것으로 안다. 어떤 이유에서 시작한 건가?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나면서, 글쓰기 교육의 목표는 무엇보다 삶을 가꾸는 데 있다는 데 마음이 끌렸다. 삶을 어떻게 보고 가꾸는지에 따라 글도 달라진다. 남의 말, 남의 삶을 흉내 내는 아이가 뒷날 어떤 삶을 살아가겠는가. 아이들은 자기 삶을 풀어내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병들지 않는다.

어른이 동심을 흉내 낸 동시를 따라 쓰는 게 우리 시 교육의 모습이다. 아이들한테 딱히 이건 시고 저건 이야기 글이다, 이렇게 가르치진 않는다. 아이들 머릿속 '동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려고 많이 애쓴다. 본 대로 느낀 대로 생각한 대로 쓰라는 말로, 시든 줄글이든 쓰도록 지도했다. 아이들과 함께 펴낸 책 <샬그락 샬그란 샬샬>(보리)을 읽어보면, 산문 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한 글들이 대부분이다.

바로 앞날이나 그날 아침 일을 손바닥만 한 종이(A4 종이를 여덟 조각으로 낸)에 써서 같이 이야기를 나눈다. 불순한 의도로 쓸 때도 있다. 받아쓰기 같은. 이렇게 할 때는 나도 받아쓰기를 한다. 한 아이가 '신발 바닥에 닿은 땅이 물렁물렁하다. 지구도 뱃살도 물렁살이다' 하고 부르면 다 같이 받아 적는다. 그런 아이 말이 그대로 시일 때도 있다."

- 어린이 시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좋은 어린이 시 한 편 소개 부탁드린다.
"지지난해 4학년 아이가 쓴 시인데 <할 말>이라는 시다.

선생님한테/ 나도 할 말이 있다// 잔소리 그만 좀 해요/ 내 말도 좀 잘 들어줘요/ 선생님도 복도에서 뛰지 마요/자꾸 시범 볼 꺼야 겁주지 마요/ 소리 좀 지르지 마요!// 선생님 때문에/ 학교 갈 마음이 없다./ 그치만 선생님을 봐주겠다./ 나는 다 용서했다.(<할 말> 전문, 초등 4학년 남)

이 시를 쓴 아이는 싸움닭처럼 분주하게 교실 안팎을 돌아치며 일들을 만들어냈다. 나도 학교 끝나는 시간마저 가로채고는 잔소리를 일삼았다. 그런 선생이 밉다가 말다가 그랬겠지. 그랬는데 먼저 '그치만 선생님을 봐주겠다. 나는 다 용서했다'고 먼저 손을 내민다. 이런 시 한번 받으면 얼얼하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교육 뒤흔드는 음흉하고 불순한 바람, 꾸준히 짚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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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완 시민기자가 아이들과 함께 펴낸 문집들 ⓒ 이무완


- 교사의 입장에서 보기에 <오마이뉴스>는 아이들에게 권할 만한 신문인가? 아니라면 어떤 점이 부족한지.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살아가는 우리 둘레 이야기들이나 사회적 약자들 이야기가 많지만, 대체로 기사가 너무 길다. 게다가 배너 광고들 가운데 몇은 얼굴 화끈거리게 한다."

-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교사들이 여럿 있다. 그중 어떤 분의 기사를 눈여겨보나?
"윤근혁 선생님의 글을 눈여겨본다. 전교조 신문 <교육희망>에서도 자주 보던 이름이고, 내가 생각지 못한 일들, 궁금한 교육 분야 기사를 시기적절한 때에 많이 써주신다. 자료들을 어떻게 취재하는지 궁금하다."

- 지금까지는 주장이 들어 있는 칼럼 류의 글을 주로 써주셨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서 겪은 이야기들도 참 궁금하다. 앞으로 그런 이야기들도 써주시리라 기대할만 한가?
"지금은 조용한 방이 되었지만, 다음 카페(cafe.daum.net/peasam)에 지난 몇 해 동안 써온 교실 일기가 다 남아 있다. 교실 이야기를 풀어내면 좋겠는데, 학교를 나와 파견노동자(?)로 사는 까닭에 교실 밖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졌다.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고 하나 바람이 멎지 않는다고 했던가. 교실이나 교육을 뒤흔드는 음흉하고 불순한 바람이랄까, 그런 일들을 짚고 싶다. 암튼 본업은 교사이니 글쓰기 교육, 우리말 바로 쓰기에 관한 글들을 꾸준히 쓸 생각이고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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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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