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면, 숲이 있다, 수백년 모래바람 맞선

[한국의 아름다운 숲 23] 볼수록 매력적인 섬, 전남 진도 관매도

등록 2013.06.06 13:05수정 2013.06.1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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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사)생명의숲국민운동>이 2012년 7월부터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한국의 아름다운 숲' 50곳 탐방에 나섭니다. 풍요로운 자연이 샘솟는 천년의 숲(오대산 국립공원), 한여인의 마음이 담긴 여인의 숲(경북 포항), 조선시대 풍류가 담긴 명옥헌원림(전남 담양) 등 이름 또한 아름다운 숲들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땅 곳곳에 살아 숨쉬는 생명의 숲이 지금, 당신 곁으로 갑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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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과 모래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대대로 일구어낸 국내 최대의 해송림이 있는 관매도 해변. ⓒ 김종성


오랜만에 긴 여정이 담긴 섬 여행을 다녀왔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5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전라남도 진도. 다시 군내버스와 카페리 배로 갈아타고 비로소 도착한 곳은 매화가 아름답다하여 이름 지어진 관매도(觀梅島)다.

정확한 행정지명은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리. 7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정이었지만 비췻빛 남해바다와 맑고 청정한 해변, 낮은 돌담길이 이어진 정겨운 마을, 오랜 시간 자연이 빚어놓은 관매 8경의 절경이 단번에 여독을 풀어준다.


관매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조도 6군도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 섬이다. 아름다운 절경뿐만 아니라, 2010년 제 1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생명상(대상)을 받은 해송림(海松林)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면적이 9만 9000m²(약 3만 평)로 해변 송림 가운데는 국내에서 가장 큰 솔숲이란다. 숲속을 거닐다보면 이곳이 멀고 먼 외딴섬이라는 게 좀처럼 실감나지 않는다.

관매도 여행은 진도 공영버스터미널에서부터 시작된다. 군내버스를 타고 관매도로 가는 배를 타러 팽목항으로 달려가는 길, 진도의 푸근한 농촌풍경과 시골마을이 버스 창밖에 펼쳐진다. 30분 후 도착한 팽목항은 조도와 관매도를 오가는 배를 탈 수 있는 곳이다. 남해바다의 부드러운 물결을 몸으로 느끼며 작은 섬들이 점점이 박힌 다도해 바다를 1시간 반 동안 여행한다.

다도해 국립공원 지역답게 갖가지 모양의 섬들이 수면 위에 피어난 안개와 어울려 한 폭의 아름다운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섬들의 유연한 능선이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참 닮았다. 뱃놀이라도 나온 기분에 배안에 가만히 있질 못하고 2층  갑판 위에 올라가 다도해 섬 구경에 푹 빠지다 보면 어느새 관매도가 나타난다.

1시간반 다도해 구경 빠지다 보면 어느새 관매도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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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바다와 안개, 다도해의 섬들이 만든 수묵화를 감상하며 가는 관매도 뱃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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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의 모래언덕에서도 잘 자란다는 소나무류의 곰솔나무숲. ⓒ 김종성


긴 여정이었던 만큼 반갑게 내린 관매도 선착장엔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걷거나 자전거 타고 다녀도 될 정도로 작고 아담한 섬임을 짐작케 한다. 왼편으로 가면 해송림이 펼쳐진 관매 해변, 관매마을이 있고, 오른쪽 길로 가면 마을 전경이 호수를 닮았다는 관호마을이 있다. 관매 8경 가운데 관매 1경인 관매 해변은 2km의 긴 바닷가로 남해바다 특유의 비췻빛 물결이 아름답다. 깨끗한 모래사장을 보고 있자니 달려 바다로 뛰어들고 싶다.

파도가 부드럽게 오가는, 아직 사람없는 한적한 바닷가엔 모래 위의 수많은 작은 구멍들과 그 속에 사는 귀엽고 작은 게들이 한여름의 피서객처럼 들어차 있다. 입자가 촘촘해 떡처럼 뭉쳐 있다고 이름 붙은 '떡모래' 위를 맨발로 걷다가 관매 해변에서 죽음을 맞은 돌고래의 한 종류인 '상괭이'를 난생 처음 보기도 했다.

긴 관매 해수욕장 뒤편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이 숲은 처음에 모래바람을 막기 위한 방사림(防沙林)을 목적으로 태어났다. 조선시대인 1600여 년 강릉 함씨가 들어와 마을을 이루면서 심은 나무들이다. 당시 섬에 사는 처녀가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을 간다고 말했을 정도로 모래바람이 심한 섬이 관매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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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풍림, 방사림으로 주민들과 마을을 보호한 고마운 숲. ⓒ 김종성


매년 무섭게 불어 닥치는 모진 해풍과 태풍, 모래바람을 수백 년 견디며 당당히 서 있는 두꺼운 껍질의 아름드리나무는 흡사 낡은 갑옷을 입은 장수 같다. 든든함을 넘어 경외감마저 든다. 오래된 바위나 고목에서 피어난다는 초록색의 '일엽초'가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많이 보인다.

해방 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노태우 정권 때 들어서야 섬에 전기가 들어왔단다) 주민들은 소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걸 방지하기 위해 마을에서는 따로 숲 관리인을 두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바람이 세게 불어 나뭇가지가 떨어지는 날엔 숲을 개방하고 주민들에게 땔감을 가져가도록 했단다.

이런 노력 끝에 50∼100년생의 아름드리 곰솔(해송)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곰솔은 소나무류의 일종으로 해풍이 불어오는 바닷가 해안사구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다. 해송(海松)이라고도 한다. 현재 관매 해변 일대와 주변 마을, 북쪽의 해안가까지 4천여 그루의 오래된 소나무와 곰솔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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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풍상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살아온 소나무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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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바위나 고목에서 피어 산다는 일엽초. ⓒ 김종성


마을의 세월과 함께 살아온 마을 숲

해변을 걷다가 숲 안에 들어서니 파도와 바람소리가 뚝 끊기며 갑자기 아늑해진다. 소나무 숲은 긴 해안을 따라 200m 폭으로 넓게 형성되어 있고, 해안 너머의 관매 마을과 장산편 마을에까지 숲길이 이어진다. 모진 시집살이를 하던 며느리의 슬픈 사연이 담긴 붉은 '꽃며느리밥풀'을 처음 마주치기도 했다. '매애~' 귀여운 목소리의 까만 염소가족과 눈인사도 하며 소나무숲속에서 실컷 삼림욕을 한다.

예전부터 진도, 목포 등지에서 온 사람들의 휴가나 학생들의 소풍장소로 유명했다는 관매 해변과 솔숲에 야영을 할 수 있도록 캠핑 시설도 갖추어 놓았다고 한다. 따로 야영장 사용료도 없고 쓰레기 처리 비용(5천 원)만 받는단다. 여름엔 시원한 그늘과 해수욕에 휴식까지, 여러모로 고마운 숲이다.

숲길을 걷다보면 보이는 '관매마을' 나무 이정표를 따라 가보았다. 마을 초입에 있는 관매초중학교는 폐교가 돼 버렸지만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학교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특히 마을의 성황림으로 보호받고 있는 천연기념물 212호 후박나무는 매년 정초에 주민들이 마을과 집안의 평화와 행복을 빌며 당제를 지낼만한 풍모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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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폐교되었지만 해풍으로부터 학교를 지켰던 나무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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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이 안녕을 기원하며 당제를 지내는 성황림 후박나무는 천연기념물이기도 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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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몰아치는 강력한 해일에 솔숲의 서식지 해안사구가 파헤쳐졌다. ⓒ 김종성


민박을 겸하는 마을 식당에서 식당 주인이자 마을 주민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마을과 숲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역사를 고스란히 전해 듣게 된다. 수년전만 해도 관매 해변의 해송림은 지금보다 더 울창해서 숲속에서 촛불을 켜도 바닷바람에 불이 꺼지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매년 이름을 달리하며 불어 닥치는 태풍과 모래바람, 소금바람을 잘 견디던 솔숲이 하나 둘 쓰러지게 된 건 2004년 발생한 '깍지벌레'때문이었다. 관매도 해송림의 30~40%를 쓰러뜨린 병충해의 정식 이름은 '솔껍질깍지벌레'. 병충해로 인해 사람으로 치면 면역력이 약해진 숲에 '소나무좀'까지 발생해 고사가 이어졌다.

이에 산림청과 진도군청에서는 매년 나무 주사를 놓고 항공방제를 하고 있으며 국비를 들여 구실잣밤나무 같은 후계림을 심는 사업을 하고 있다. 섬 주민들이 어렵게 만든 해송림은 주민의 삶을 지켜주었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숲의 생존을 돌봐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옛날 이름은 볼매도 : 볼수록 매력 있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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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근하고 정겨운 기분이 드는 관호마을의 낮은 돌담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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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관매도는 톳이 제철이다. ⓒ 김종성


마을 식당이나 슈퍼에서 마주치는 할아버지들에 의하면 관매도의 옛날 이름은 '볼매도'였단다. 일제 강점기 때 전국의 지역 명을 한자어로 바꾸면서 관매도가 되었다고. 매화가 볼만하다는 뜻은 같지만 왠지 볼매도란 이름이 정이 간다. 요즘말로 볼수록 매력적인 섬이라 해도 되겠다.

관매도의 매력은 '관매 팔경'으로 요약할 수 있다. 1경 관매도 해변, 2경 방아섬과 남근바위, 3경 돌묘와 꽁돌, 4경 할미중드랭이굴, 5경 커다란 절벽 바위 사이의 하늘다리, 6경 서들바굴폭포, 7경 다리여, 8경 하늘담(벼락바위) 등이 그것이다. 각각의 절경마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전설이 서려있다.

수만 권의 책을 켜켜이 쌓아놓은 듯한 변산의 채석강을 닮은 해식절벽과, 억겁의 세월동안 파도와 비바람에 깎이고 씻긴 해식동굴도 걸어 가볼 수 있다. 예전에는 배를 타고 섬 주변을 한 바퀴 돌아야 관매팔경을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관매도 곳곳에 사통팔달로 개설된 마실길을 통해 육로로도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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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탄을 자아냈던 관매도 해변의 분홍빛 노을, 관매 제 1경 답다. ⓒ 김종성


해송숲과 해변이 있는 관매마을과 달리 관호마을은 아담한 어촌마을의 풍경을 지니고 있다. 일본으로 전량 수출하는 바람에 귀하게 된 톳이 마을 앞 포구에 펼쳐져 볕을 쬐고 있다. 처음 섬에 도착했을 때 어디에선가 싱싱한 해초 냄새가 난다 했더니 바로 톳이었다. 마을 식당이나 민박집에서 밥을 시켜먹으면 톳 무침이 기본 반찬으로 나온다.

향과 씹는 맛이 좋은 톳도 그렇고 관호마을 언덕위에 미로처럼 난 돌담길은 제주도를 떠올리게 한다. 크고 작고 모나고 둥글고 울퉁불퉁 제각각인 돌들이 모여 이루어진 돌담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다. 집에 돌담만 둘러쳐져 있을 뿐 대문이 없는 것도 제주의 오래된 마을 풍경과 참 닮았다. 조선시대엔 진도, 관매도와 추자도를 거쳐 제주에 갔다고 한다. 맑은 날 관매도의 언덕 위 꼭대기에 오르면 한라산이 우뚝 솟은 제주섬이 잘 보인단다.

된장을 넣은 돌미역국으로 저녁밥을 잘 먹고 파도 소리가 더욱 고즈넉한 해 저무는 관매 해변을 걷다가 분홍빛의 아름다운 관매도 노을과 마주쳤다. 주홍색 지붕을 한 대문없는 정다운 마을과 돌담길, 보기 드문 분홍빛 노을은 또 다른 관매도의 비경이지 싶다. 찾아오는 긴 여정만큼이나 오래 머물고 싶은 섬이다.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는 전국의 아름다운 숲을 찾아내고 그 숲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여 숲과 자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대회로 (사)생명의숲국민운동, 유한킴벌리(주), 산림청이 함께 주최한다. 생명의숲 홈페이지 : beautiful.forest.or.kr | 블로그 : forestforlife.tistory.com

교통편, 숙박 정보 ; http://www.gwanmaedo.co.kr
진도 공용버스터미널 ; 061-544-2121
관매도 가는 팽목항 ; 061-544-0833, 5353
관매도 조창일 이장님 ; 010-8620-0608
#관매도 #관매도 해송림 #관매마을 #관매 해변 #관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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