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젠틀맨' "알랑가 몰라"의 기원

[2013 전국투어-광주전라②] '욕보다'가 경상도 사투리라고요?

등록 2013.06.15 19:38수정 2013.06.1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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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6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광주전라입니다. [편집자말]
'욕보다'라는 말이 있다. 국어 사전에서는 '수고하다'로 풀이되어 있는 말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하 대사전)에서는 이 말을 경상도 방언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리적으로 경상도 지역과 가까운 구례나 순천, 여수 등 전남 동부 일대에서도 널리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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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과 구례 사이를 흐르는 섬진강의 중류 섬진강을 경계로 전남 구례, 순천, 광양과 경남 하동, 남해 등이 나뉜다. 이들 지역에서는 서로 겹쳐 쓰는 사투리가 많다. 이는 강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교류 때문이다. 이때 강은 경계선이면서 동시에 다리가 된다. ⓒ 정은균


'욕보다'의 중앙어(이 글에서 경우에 따라 '표준어' 대신 쓰는 말이다) 격인 '수고하다'에는 "일을 하느라고 힘을 들이고 애를 쓰다"라는 뜻이 있다. '수고하다'는 헤어질 때 인사말로도 자주 쓰인다. 하지만 그 의미 특성 때문에 학교 문법에서는 '수고하다'를 손윗사람 앞에서 인사말로 쓰면 언어 예절에 어긋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전남 순천 출신인 나에게는 이 '욕보다'라는 말이 한없이 정답게 다가온다. 그래서 손아랫사람은 당연하고, 인간적으로 친밀한 손윗사람에게도 이 '욕보다'라는 말을 쓰고 싶은 마음이 넘쳐난다. 중앙어인 '수고하다'로는 도저히 담아 낼 수 없는 미묘한 어감과 뉘앙스를 이 '욕보다'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성님(형님), 욕보씨요"라는 말과 "형님, 수고하세요"를 견줘 보라. 나는 친한 '형님'에게 후자처럼 말하면 정말 껄끄럽다. 말하는 이나 듣는 이 모두에게 따뜻한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욕보씨요'와 달리, '수고하세요'는 의례적인 인사말의 딱딱함만을 환기하기 때문이다.

'욕보다'에 대한 이런 진한 애정(?) 덕분에 큰 사달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때는 1992년 5월 초. 28개월 남짓의 기나긴 군대 생활을 마친 나는 2학기 복학을 앞두고 아르바이트(이하 알바) 자리를 물색하고 있었다. 맨 먼저 학과 사무실에 전화했다. 알바 정보도 얻고, 복학에 대비해 조교로 있는 학과 선배에게 인사도 할 겸해서였다.

친절했던 조교 선배... 친근하게 건넨 인사에 화 낼 줄이야

나는 사무실 조교에게 2학기에 복학할 예정인 예비역이라고만 간단히 소개하였다. 그런데도 선배는 이런저런 내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때 나는 군인 물(?)이 채 덜 빠진 예비 민간인이었던지라 나름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배의 그런 친절함에 긴장이 조금 풀어졌던가 보다. 대화를 마치고 조교 선배에게 이렇게 인사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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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입대하여 자대에 함께 배치된 동기와 함께 병장 초년 즈음에 찍은 사진(사진 오른쪽이 나다). 그야말로 세상 무서울 게 없던 때였다. ⓒ 정은균


"선배님, 욕보십시요잉."

대뜸 수화기 너머에서 "너 몇 학번이야?" 하는 말이 들려왔다. 무척 화가 난 목소리였다. 친절한 선배가 순식간에 돌변하니 나 또한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대한민국 육군 병장의 패기(?)도 남아 있었다. 그래서 큰 목소리로 '○○ 학번 정은균입니다'라며 대들었다. 그러자 대번에 선배 목소리가 날카로운 화살처럼 날아왔다.

"너 당장 과 사무실로 튀어 와."

이유를 알 도리가 없던 나는 화가 치밀 대로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선배라지만, 말년 제대한 육군 병장에게 '너'가 무언가. 주저하지 않고 학과 사무실로 달려갔다. 나는 '제대 병장'의 '강력한 아우라'를 내보이기 위해 전역 복장도 갖춰 입었다.

학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기골이 장대한 선배 하나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예의 선배였다. 애초에 통화할 때의 기세로는 2단 옆발차기가 날아올 듯했다. 그런데 "네가 정은균이야?"하며 묻는 말투에서는 전혀 그런 기세를 찾아볼 수 없었다. 선배의 그런 모습에 내 마음도 한껏 누그러졌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사달이 '욕보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친절을 베푸는 선배에게 정감을 드러내기 위해 한 말이, 서울 토박이였던 선배에게는 비아냥거리는 말처럼 들렸던 것이다. '욕보다'의 '욕'이 한자어 '辱(욕될 욕)'에 기원을 두고 있을 테니 그런 어감으로 받아들일 만하지 않았겠는가. 어쨌든 그때 이후로 그 선배와는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

한자말 '내일'의 우리말은 '아제'... 내일에 밀려 사라진 말

얼마 전, '농부철학자'라는 독특한 직함(?)으로 유명한 윤구병 선생의 글(<한겨레> 2013년 5월 31일 자 특별 기고문 "말길이 바로잡혀야 한다")을 읽다가 인상적인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 일부를 인용해 본다. 흥미로운 질문도 있으니, 그 정답을 맞혀 보기 바란다.

'지금'의 우리말이 '이제'이고, 오늘보다 하루 앞선 날이 '어제'인 것을 모른다고 할 사람도 없겠지. 그러나 한자말 '내일'(來日)에 짓밟힌 우리말은 무엇이었을까?

정답의 실마리는 이들 말의 모음에 있다. 현재를 나타내는 '이제'의 '이'는 중성 모음이다. 중성 모음은 어떤 특별한 음상(음의 이미지)이 없다. 과거를 나타내는 '어제'의 '어'는 음성 모음이다. 그 음상이나 어감이 크고 어둡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먼저 태어난 이를 '아른'이 아니라 '어른'이라고 부른다! '어른'은 '아이'들보다 크고 어둡지 않은가.

자, 이제 알 수 있겠는가. 인용문에 있는 질문의 정답은 '아제'다. 한자어 '내일(來日)'에 밀려 완벽하게 사라진 이 '아제'의 '아'는 양성 모음이다. 이것은 작고 귀엽고 밝은 어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우리는 '어른'보다 뒤선 사람을 '아이'로 부른다. 윤구병 선생의 논리에 기대면, "때가 되지 못하였거나 미처 이르지 못하였음을 나타내는 말"인 '아직'의 '아'도 '아제'의 '아'와 형제지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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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충남 보령 웅천읍의 무창포 해수욕장에서 찍은,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내 큰딸의 모습. 이 사진을 찍을 즈음 딸 녀석은 전라도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제 할아버지를 무척 무서워했다. 그래도 가끔 그런 할아버지 흉내를 낸다고 '긍게''했제잉'하며 웃음을 자아내곤 했다. 딸애는 요사이에도 제 할아버지 이야기를 가끔 꺼낸다. ⓒ 정은균


안타까운 사실은, 이렇게 한자어에 밀려 사라진 것으로 아는 우리말이 사투리 속에 꽤 넓게 살아 있다는 점이다. 우리말의 뿌리와 역사를 캐는 학자들이 각 지역의 방언, 곧 사투리를 중시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990년대 이후 국어학자들 사이에서 방언 연구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각 지역 고유의 사투리는, 심하게 말해 '비주류'와 '피지배층'의 언어로 인식된다. 이는 사투리에 대응하는 중앙어가 '표준어'로서 국가적인 대접을 받으면서 지배 언어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주요 어문 규범들 중의 하나인 <표준어 규정>에서 '표준어'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의했기 때문일까. 비표준어, 곧 각 지역의 사투리는 "교양 없는 지방민들이나 하층민의 언어"와 같은 식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다.

사람들이 사투리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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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개그 콘서트>의 인기 코너였던 '서울 메이트'의 한 장면. 정감 어린 경상도 사투리를 소재로 하여 한참 인기를 끌었다. ⓒ KBS 제공


실상 표준어 정책은 대단히 정치적이다. '표준'이라는 말 자체가 '일반'이나 '평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때문에 비표준어인 사투리는 자연스럽게도 본의 아니게 '특수'나 '평균 이하' 등을 함의하게 된다. 나는 사람들이 사투리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이유의 많은 부분이 이와 관련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대사전에서는 '사투리'의 한자어 단어로 '와언(訛言)'이나 '와어(訛語)'를 제시해 놓기까지 했다. 이 말들을 풀이하면 "그릇되거나 거짓된, 또는 속이는 말"이다.

그래서 이 나라의 '중심'인 서울로 이주한 '지방민'들에게 표준어 구사는 곧 '생존'을 위한 중대 과업이 된다. 오죽하면 표준어인 서울말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방민의 모습이 개그의 소재가 되었을까. 순진한 지방민들이, 개그맨 허경환이 <개그콘서트>에서 목청 높여 외친 "서울말은 끝만 올리면 되는 거 모르니?"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면 결국 허탈해질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왜 그런가.

"서울말은 끝만 올리면 된다"라는 것은, 그것이 (다른 어느 지역의 말이 아니라) 서울말'만'의 독특한 억양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는 곧 서울말이 다른 여느 지역의 말과 마찬가지로 그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적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이러고", '했고'의 말끝 '고'를 '이러구', '했구'에서처럼 '구'로 말하는 것은 서울말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요컨대 위에서 말한 '진짜 의미'는, 결국 서울말 또한 우리나라에 있는 많은 사투리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서울말과 사투리'와 같은 단어 배열은 모순이다. 서울말이 표준어 대접을 받는 것은, 그것이 마침 중앙어의 위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통치에서는 언어든 정치 체제든 중앙을 기준으로 해서 모든 것을 통일하는 것이 아주 많은 도움이 된다.

흔히 말하는 표준어와 사투리 사이에는 위계 서열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들 간에는 상대적인 우열 비교도 불가능하다. '표준'을 중시하는 완고한 언어 규범주의자들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언어학자들은 그것이 표준어이든 지역 말이든 모든 말은 근본적으로 평등하다는 명제를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현실은 언어학자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펼쳐진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반듯한' 표준어를 매끄럽게 구사하는 주연 배우와, 그 대척점에서 사투리를 쓰면서 전형적인 악인 역을 맡는 조연 배우의 구도를 자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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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KBS 2TV의 월화드라마 <울랄라부부>에서 나르샤와 함께 출연한 배우 변희봉씨(오른쪽). 그는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감초 같은 역을 맡아 극을 살려주는 탤런트로 유명하다. ⓒ KBS 제공


1970~1980년대의 '국민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탤런트 변희봉씨는 범인 역을 많이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가 맡은 범인 배역은 대체로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오죽하면 당시 전두환 정권이 드라마 연출자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압력행사했다는 말까지 돌았을까.

하지만 사투리는 그 특유의 정감을 바탕으로 한 미묘한 뉘앙스 덕분에 언어 생활을 풍성하고 다채롭게 해 준다. 이는 가령 내가 위에서 소개한 '욕보다'에 심하게(?) 애착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라도 지역에서 두루 쓰던 말인 '거시기'... 쓰이는 맥락이 무척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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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황산벌>의 한 장면. 왼쪽이 백제 병사 '거시기'로 분한 이문식 씨(맨 왼쪽)의 모습이다. 영화 <황산벌>은 사투리의 문화적인 ‘힘’을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린 최초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 중심에 배우 이문식씨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영화 <황산벌>


이제는 '자랑스럽게도(?)' 대사전의 표제어로 실려 있는 '거시기'를 통해 이런 점을 좀 더 알아보자. 원래 전라도 지역에서 두루 쓰던 말인 '거시기'는 대사전에 대명사와 감탄사로 분류되어 풀이되어 있다. 그런데 이 '거시기'는 그 쓰이는 맥락이 무척이나 다양하다. 이제는 표준어가 된 '거시기'는 전라도 말에서 마치 언어의 마술사와도 같은 구실을 한다. 

상대에게 말을 꺼내기가 조금 거북스러우면 "거시기 있잖아"로 시작해 보라. "좀 거시기합니다"는 확실하게 결론을 끝맺는 게 어색할 때 쓰면 좋다. 어떤 사람이 '많이'는 아니고 '조금' 맘에 안 들거든 "거시기하다"로 자신의 미묘한 정서를 전달해도 좋다.

'쓰다'는 '거시기'처럼 자주 쓰이면서도 이들과는 또 다른 맛을 내는 전라도 사투리 중의 하나다. 이 '쓰다'는 물론 '사용하다'나 '글을 짓다', '소태 맛과 같다'라는 뜻의 그 '쓰다'가 아니다.

(1) 몸도 찌뿌드드헌디 사우나나 해야 쓰겄다.
(2) 너한테 돈 좀 빌려야 쓰겄는디···.
(3) 학생이 그렇게 허먼 쓰겄어?

우리는 (1~3)의 '쓰겄다', '쓰겄는디', '쓰겄어' 등에서 '쓰다'라는 용언(동사와 형용사를 아우르는 말)을 분석해 낼 수 있다. 이 '쓰다'는 표준어 '되다'에 대응한다. 따라서 (1~3)의 '쓰다' 활용형들은 각각 '되겠다', '되겠는데', '되겠어' 등으로 풀이하면 '쓰것다'(?!).

그런데 사투리 '쓰다' 유의 뜻을 중앙어 '되다' 유와 대응하여 풀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어감까지도 완벽하게 '번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3)에서 '쓰겄어' 대신 '되겠어'를 넣어 보라. 만약 내가 학생인 처지에서 이들 말을 모두 듣는다면, '되겠어'라고 말하는 이보다 '쓰겄어'라고 말하는 이에게 더 크게 마음을 열 것 같다.

<젠틀맨>의 '알랑가 몰라', 정말 각별하게 다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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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싸이가 그의 최근 작 '젠틀맨'을 부르는 모습. 지난 4월의 한 기자회견에서 싸이는 외국인이 자신의 노래를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우리말 중에서 발음하기 쉬운 말을 찾아 쓰는 데 신경을 썼다고 말했는데, 이때 그가 든 예가 바로 "알랑가 몰라"였다. ⓒ 권우성


"알랑가 몰라" 싸이가 부른 <젠틀맨>에서 리드미컬하게 반복되는 후렴구다. "알랑가 몰라"의 음상은,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후렴구로 쓰이면서 부드럽게 흥을 돋구는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가 주는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우리나라의 대중 가요 노랫말이 영어 가사 천지가 돼 버린 지는 오래다. 그래서 내게는 <젠틀맨>의 "알랑가 몰라"가 정말 각별하게 다가온다.

"알랑가 몰라"는, 중앙어로는 "알려는가 몰라"로 풀이할 수 있는 전라도 사투리다. '알랑가'와 '알려는가'를 견줘 보면 '알랑가'가 전체적으로 모음이 축약되면서 음절이 줄어든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축약 형태는 전라도 사투리에서 아주 널리 쓰이면서 부드러운 리듬감을 자아낸다. 동사 '가다', '하다'의 활용 형태인 '갈랑가', '할랑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요근래 이 "알랑가 몰라"가 흥을 돋우는 <젠틀맨>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새삼 우리말 사투리의 힘을 강조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젠틀맨> 이전에도, 각 지역의 걸쭉한 사투리들이 개그 소재나 예능의 한 자락을 차지하면서 그 문화적·경제적인 잠재력을 높이 사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모두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괜히 쓸데없는 걱정이 앞선다. 사투리로 '돈맛'을 좀 본 이들이 갑작스레 사투리의 우수성을 운운하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여러 지역의 사투리를 대상으로 사투리 경연 대회 같은 것을 열면서 그 사투리들 간에 우열을 가리거나 하면 또 어떻게 하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사투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 건 좋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사투리간의 우열을 따지고 독특한 정감과 뉘앙스를 과장되게 말하는 건 문제다. 그러다가 사회·문화적으로 사투리가 유행하는 분위기가 숙지막해지면 사투리가 영영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충청도 말이든, 전라도나 경상도 말이든,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사투리는 다 소중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사투리에 대한 편견이나 부정적인 인식을 버리는 게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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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사투리 #중앙어 #표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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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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