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각하는' 스승은 없다!

[서평] 우치다 타츠루 <스승은 있다>

등록 2013.06.10 10:12수정 2013.06.1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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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있다> 표지 ⓒ 민들레

"똑같은 수수께끼 게임에서 장량은 장량의 규칙을 발견하고 나는 '나의 규칙'을 발견합니다. 똑같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아니 같아서는 안 됩니다. 배움의 풍요로움은 누군가에게 배움을 얻어낼 수 있는 식견이 배우는 사람의 수만큼 존재한다는 것을 담보로 하니까요.

'당신은 그렇게 함으로써 나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하는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상대방이 있는 한 배움은 무한으로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성숙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그 점에 있습니다. 제가 '스승은 있다'는 말로 전하고자 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스승은 있다> p150)

한나라 때 '장량'이란 자가 있었다. 그는 '황석공'에게 '태공망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제자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황석공이 신발을 떨어트리고 장량에게 줍게 한다. 다른 날, 또 다시 신발을 떨어트리고 주우라 한다. 그 순간 장량은 태공망비법을 터득한다. 뭐가 뭔지 모르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저자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오해라고. 황석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떠한 진리라 부를 만한 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데 '신발을 떨어뜨리는 행위'를 메시지라고 해석한 건 장량 자신 혼자라는 것.

"이 일화의 깊은 뜻은 황석공이 그저 치매 노인이었을지라도 장량은 태공망의 비법을 터득했을 것이라는 역설에 있습니다. 황석공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죠."(<스승은 있다> p143)

'배움은 수신자(제자)가 하는 것'. 아무리 훌륭한 강의라 하더라도 내가 졸고 있다면 쇠귀에 경 읽기나 다름이 없다. 저자는 내가 받아들이려는 넓은 마음과 자세, '나는 안다'는 오만함에서의 탈피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무언가를 칭찬하고 칭송하거나 혹은 비난하는 일은 참 쉽다. 그러나 문제, 사건의 본질의 뚜껑을 열어 성찰하고 고민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은 단순히 선생을 훌륭하다 강요하는 '교과서' 가 아니다. 저자는 이 시대의 흔한(그렇지 않음을 나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자기주장만이 옳다 믿고,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며 '내뱉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내가 틀린 것은 아닐까'라고 의심하고 고민한다. 책은 어느 부분에서나 저자의 깊은 사색을 느낄 수 있다. ''스승'을 어떻게 설명할까. 어떻게 청소년들에게 쉽게 전달할까. 이것의 본질은 무얼까.' 당연하다 생각하고 넘길 수 있는 말에 150페이지를 소비한다. 그리고 끝난다.

"배움의 모든 여정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스승은 있다> p149)

우리는 많은 문제에서 본질적인 것을 잊고 산다. 예를 들어, 아이가 언어를 터득하는 것은 사회가 가르치기 때문일까? '나는 학령기니까 모국어를 학습해야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이가 말의 의미를 발견하고 터득하는 것은 이미 성립되어 있는 언어에 동참하면서 기호인지 모르는 음성을 '이것은 뭔가를 전하려는 게 아닐까?'하고 스스로 물음을 던졌기 때문이다.

나는 충분한 질문을 던지고 살았던가. 단지 가장 편한 방법인 '비판'으로 교육을 탓하고, 가르치는 자들을 욕하고 운이 없음을 한탄하지 않았었나. 그저 스승은 어쩌다 운 좋게 만나는 것인 줄 알았다. 배움이란 누군가 내 앞에 다가와 진리를 가르쳐주는 것인 줄 알았다.

저자에 따르면 배움은, 스승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단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음이 틀림없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모두가 위대하다고 떠받드는 위인이 아니라 우리 근처의 평범한 아저씨여도 상관없다)과 '이 사람은 위대해, 나보다 지식이 높아'라는 오해(?)를 통한 관계를 가지며 스승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가르침을 받는 것이 배움이란다.

책 속의 말 하나하나가 간결하면서 쉽고, 깊다. 철학책들이 범하기 쉬운 어려운 말이 아닌 이런 말로도 넓고 깊은 사유의 세계를 전달할 수 있다니. 내 나이 열여섯. 일단 저자 자신이 "열여섯 살 청소년도 이해할 수 있게" 책을 썼다는데 그 때문에 더 친숙한 걸까.

이 책은 단순히 스승과 제자의 관계, 스승의 본질을 전하려 시작하지만, 결국 궁극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자세와, 앎의 영역을 탐구하고, 고민하는 책이다. 결국 이는 우리가 '진리'라 부르는 많은 것을 본질적으로 고민해보게 하고, 끊임없이 의심하게 하며, 상식을 밑바닥부터 흔든다. 꼭 한번 읽어보시라.
덧붙이는 글 류옥하다 기자는 열여섯 살 학생기자입니다.

스승은 있다 - 좋은 선생도 없고 선생 운도 없는 당신에게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동섭 옮김,
민들레,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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