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 병들었어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불혹 배낭여행기 30] 아름다운 폐허, 코토르

등록 2013.06.19 18:23수정 2013.06.19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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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의 코토르. 유럽의 해변도시들은 푸른 바닷빛과 붉은 지붕이 조화를 이룬다. ⓒ 류태규 제공


유럽. 재론의 여지없이 아드리아해(海)는 아름답다. 푸른빛 잉크를 흩뿌려놓은 듯한 바닷빛. 그 바다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올드타운의 붉은색 지붕. 이 배경에 양념처럼 등장하는 웅장한 석조 고성(古城)들.

두브로브니크, 아말피, 포지타노, 스플리트…. 남부와 동부 유럽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의 절반은 아드리아 바다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동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탈리아 아말피나 포지타노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는 아드리아해의 시끌벅적함도 나쁠 것 없고, 크로아티아 중세도시 혹은, 흐바르섬에서 만나는 아드리아해 서쪽은 여유가 더해져 보다 멋지다.


허나, 사견임을 전제한다며 아드리아해의 아름다움과 가장 낭만적으로 만날 수 있는 도시는 몬테네그로의 코토르다. 기실 '도시'라기보다는 조그만 어촌 규모의 마을인 그곳에서 나는 "때론 폐허가 더 매혹적"이라는 문장에 진심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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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악한 교통수단, 무더위 속을 달려 도착한 코토르의 풍경. 아름다움이 잠시잠깐 여정의 힘겨움을 잊게 했다. 붉은색 깃발은 몬테네그로의 국기. ⓒ 류태규 제공


코토르, 체력과 시간이 있어야 가닿는 도시

2011년 한여름. 풍문으로 들은 바 있는 몬테네그로 코토르로 가기로 결정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짐을 챙겼다. 하루에 알바니아-몬테네그로 국경을 넘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알바니아의 소읍 배랏을 출발한 몹시 낡은 버스가 가쁜 숨을 토해내며 4시간 만에 수도 티라나에 닿았다. 이상하게도 무슨 이유에선지 알바니아엔 '버스터미널'이란 게 아예 없다. 행선지에 따라 길거리 또는, 광장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데 도심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여행자에겐 곤혹스런 일이다.

그러나, 입은 두었다 무엇할 것인가? '모르면 물어라'. 이건 배낭여행자가 가슴에 담아둬야 할 가장 중요한 슬로건이다. 묻고 또 물어 수코드라행 버스를 타는 곳에 이르렀다.


기온은 섭씨 35도를 오르락내리락.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 많은 알바니아. 목은 타들어가고, 먼지는 코는 막는다. 언제 올지 기약 없는 버스를 기다린 지 1시간 남짓. 멀리서 털털거리며 버스가 온다. 시커먼 매연까지 뿜으며. 좌석은 삐걱거리고 에어컨도 없다.

수코드라에 도착하니 속된 말로 '진이 빠졌다'. 하지만, 멈춰선 안 된다. 하루에 딱 2번 있는 울치니행 버스를 수소문했다. 다행히 40분 후 출발이란다. 드디어, 국경을 넘는구나. 계산해보니 올리브와 통밀빵으로 새벽밥 챙겨 먹고 배랏을 떠나온 지 벌써 13시간째다.

국경을 넘으니 사용하는 화폐가 달라졌다. 알바니아에선 '리케'라는 단위를 사용하는데, 몬테네그로는 '유로'다. 체감 물가가 3배는 높다. 알바니아에선 카페에서 1500원쯤에 마시던 콜라를 몬테네그로 슈퍼마켓에선 2000원쯤을 주고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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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들어진 코토르의 석조 고성. 웅장함이 뒷편 돌산과 근사한 하모니를 이룬다. ⓒ 류태규 제공


어쨌거나 갖은 고생 끝에 자정 무렵 아드리아해와 접한 몬테네그로의 해변도시 코토르에 도착했다. 법이 없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착해 보이는 모녀가 늦은 밤 국제버스터미널에서 호객을 하고 있었다.

엄마와 딸 모두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그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조그만 팸플릿을 통해 가격과 방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1박 10유로. 내가 그 모녀를 따라가 그들의 아파트 방 한 칸을 숙소로 삼은 건 딸의 다리가 너무나 예뻤기 때문이 아니었다, 라고 말하면… 다들 거짓말이라고 하겠지. 전해들은 두 사람 삶에 관한 이야기가 소설책 한 권 분량이지만, 그건 잠시 후에.

거대한 고성, 멋들어진 크루즈선박 그리고, 가슴 아픈 폐허

코토르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딸이 끓인 터키식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챙겨 먹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검은 산'이라는 나라 이름을 증명하듯 이끼 낀 거대한 성벽을 담고 있는 가파른 돌산이 절경이다. 해변엔 고급 요트가 줄지어 정박돼있고, 거대한 크루즈선박도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아드리아의 바닷빛이야 더 말해 무엇 할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런데, 조금만 시내 외곽으로 나오자 전혀 다른 풍광이 나를 맞이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손님이 들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는지 가늠키 힘든 텅 빈 호텔과 관리가 안 된 수영장, 깨어진 유리창 뒤로 푸른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폐건물, 거기에 무슨 이유에선지 조금은 주눅이 든 표정으로 해변을 서성이는 동네 주민들.

몬테네그로의 요약된 역사는 포털사이트 검색기능을 이용하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 여기서 그걸 오래 인용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직접 그 도시를 경험한 사람의 느낌이 추후 여행객들에게 더 유용한 정보로 다가오지 않을까.

최근 독립을 이룰 때까지 너무나 긴 시간을 불가리아와 이탈리아, 오스만제국의 식민지로 지냈던 몬테네그로의 역사. 거기에 현재까지 이어지는 극악한 경제적 궁핍 때문일까? 눈이 부신 바다와 입이 떡 벌어지는 웅장한 석산 풍경 아래 그림처럼 펼쳐진 도시임에도 코토르는 어딘지 모르게 '폐허'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였을 것이다. 코토르에서 만난 석양은 터무니없이 낭만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어차피 '낭만'이란 단어 속에는 '폐허'와 '퇴폐'의 이미지가 숨겨져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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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 역시 코토르 시내 외곽에서 발견한 것인데, 외부는 비교적 멀쩡하나 내부는 완전히 털린 듯(?) 건물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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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에서일까? 규모가 거대한 호텔이 수년 째 방치된 듯 폐허로 변해있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 시절 공산당 간부들의 휴양용으로 지어진 듯. ⓒ 홍성식


비극의 역사는 개인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던 것일까

내 숙소의 주인인 50대 엄마와 20대 딸은 이방인인 내게 자신들의 주방까지 기꺼이 개방해주고, 포도주 안주로 먹으라며 소시지까지 내준다. 그러고는 손짓 발짓을 통해 이런 말을 전했다.

"30년 전쯤 큰 지진이 우리 마을을 덮쳤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나니 '내가 감지했던 폐허의 냄새엔 이유가 있었구나'라는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어느 민족에게 식민지 경험이 유쾌할 수 있겠는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겪은 한국인이라면 그 심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식민의 상처 위에 덮친 자연재앙의 공포. 그러한 고통의 집단체험이 코토르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떤 '폐허'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괜스레 나까지 쓸쓸해졌다.

코토르에서의 셋째 날. 숙소 주인여자의 시누이가 올케의 아파트이자 내가 묵은 숙소인 곳으로 놀러왔다. 그녀는 영어를 잘 했다. 그 여자가 들려준 숙소 모녀의 이야기가 마음 아팠다. 그에 관해선 다음 회에 상세히 쓰도록 하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내가 코토르를 슬프지만 매력적인 도시로 기억하는 이유는 '불행했던 몬테네그로 모녀'의 삶과 마찬가지로 내 삶 어디에도 막막한 '폐허'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지.
#몬테네그로 #코토르 #아름다운 폐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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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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