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이 복받은겨, 이런 사람이 와서 살다니..."

[강은경의 지리산 날적이⑥] 할머니들의 한글교사로 나서다

등록 2013.07.03 09:16수정 2013.07.0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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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껏 한 자 한 자 글씨를 쓰시는 할머니의 손 ⓒ 강은경


"우리 마을이 복 받은겨. 이렇게 좋은 사람이 우리 마을에 와서 사니…."

길에서 마주친 어르신들이 대놓고 나를 칭찬했다. 볼 때마다 밭에서 상추, 아욱, 파, 미나리 등 푸성귀들을 뽑아 내게 안겨줬다. 옆집 조갑내 할머니는 지금 막 캤다며 감자 한 바구니를 들고 왔다. "우리 선상님 감자 좋아하시나…"라며. 그럴 때마다 나는 고맙고, 한편 낯 뜨거웠다. 내 안에 숨어있는 '이기적 유전자' 때문에.

내가 이 마을 한글교사 강사로 참여한 이유

마을 한글교실에 강사로 참여한 지 4개월쯤 됐다. 이미 한글교실이 그 몇 달 전에 시작됐다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다. 지리산 자락으로 귀촌한 후 2년 동안, 나는 마을 돌아가는 형편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먼발치서 멀뚱멀뚱 했다. 마을회의나 행사에도 발길을 두지 않았다. 관광버스 타고 다 같이 삼천포로 봄나들이 갈 때도 끼지 않았다.

복작복작 모여 매일 점심을 같이 해 먹는 농한기에는 마을회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땀을 빼며 둘러앉아 노닥거리는 한겨울의 마을 찜질방에도…. 당산제나 정월대보름 행사 정도 구경삼아 나가 봤을 뿐이다. 나는 그저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적으로 가볍게 교제하고 왕래하는 게 편했다.

그런데 어느날 김순애 할머니가 길 가던 나를 불렀다. 마을 초입께 혼자 살고 있는 집으로 나를 들이셨다. 연세가 여든다섯인 김 할머니는 억척같이 바지런하고 유별나게 꽃을 좋아하는 분이다. 금잔디, 우담동자, 채송화, 과꽃…. 그 집 화단에서 꽃씨를 많이도 받아왔다.

"아이구, 다리야! 아이구…. 끙끙…. 안 아픈 데가 읎어. 이러다가 저러다가 곧 죽으려나…. 시방, 즘심 먹었어?"
"예, 먹었어요."

안 먹었다고 하면, 아픈 다리를 끌고 또 상 차린다고 할까봐 거짓말을 했다. 불러들여 점심을 먹인 적이 몇 번 있었기에.

"그럼, 글 쪼깨 갈켜 주고 가."
"할머니, 한글 배우세요?"
"긍께, 마을회관에서 한글교실 혀. 할매들은 많고 선생은 하나닌께 영…. 죽기 전에 꼭 글자를 배우고자픈디…."

그래서 김 할머니랑 나란히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았다.

"나-비- 이? 으짜서 자꾸 엄한 디로 연필이 간댜? 모-자- 어, 또 틀린 겨? 지랄 났군, 지랄 났어. 무슨 글자라구? 긍께 아는 것도 까먹는 판인디, 대갈통이 늙어서…. 이거는 뭐여?"

한 시간 넘게 앉아 있었다. 빈 뱃속이 요동을 치는데도 나는 차마 일어서지 못 했다. 할머니는 지치지도 않고, 떨리는 손으로 한 칸 한 칸 공책을 채워 나갔다.

"으이구, 으짠댜? 내가 너무 붙잡구있구먼. 근디, 요 거는 워처케 쓰는 겨? … 요 거는 뭐여?…."

마치 한을 풀려는 듯 늦은 배움에 열심인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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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교실 열심히 공부하시는 할머니들... ⓒ 강은경


그날 당장 나는 마을 사무장에게 연락해 한글교실 강사 지원 의사를 알렸다(교사 자격증이나 한글지도자 자격증은 없지만 미국에서 교포2세들에게 한글 지도를 다년간 했던 경험이 있으니, 잘 할 수 있다고 큰소리 뻥뻥 치며, 그리고 우리 마을 일이니 순전히 봉사라고 나의 이타심을 슬쩍 강조하며). 사무장은 흔쾌히 허락했고, 남원시 지원으로 강의를 나오는 이 선생과 연결시켜 주었다.

이 선생도 스무 분이나 되는 할머니들 수준이 천차만별이라 지도하기 힘들었는데, 잘 됐다 했다. 그래서 이 선생이 1, 2반을 맡고 내가 3, 4반을 맡기로 했다. 시간은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 두 시간씩이었다. 수업 분위기는 뜨거웠다. '늦은 배움'에 할머니들은 열심이었다. 마치 평생의 한을 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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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교실에서 여든 다섯 최고령 김순애 할머니 ⓒ 강은경


글을 모른 채 칠팔십 평생을 산 할머니들의 고충을 내가 얼마나 알 수 있을까. 그 심정을 그저 안타깝게 짐작할 따름이다.

"공문 쪼가리가 와도 못 봐, 어디 가도 탈 버스를 못 찾아, 간판이나 표지판도 못 읽어, 농협이나 면사무소 가서는 내 이름도 못 쓰니…. 부끄럽고, 등골에 식은땀이 흘러…. 글자도 모르면서 평생 투표는 꼬박꼬박 했는데 누굴 뽑은 건지…."

할머니들은 왜 글을 배우지 못했을까.

"아홉 살 때 전쟁이 났어. 쫓겨 다니느라고…. 먹고 살기도 고단할 땐데 월세금이 있나 학교는 무슨…. 여자가 공부하면 시집 가서 잘 못 산다고 딸은 안 가르쳤어…. 학교가 얼마나 가고 싶은지 동생 둘러업고 옆집 언니 따라 매일 학교 앞까지 갔었어. 학교 앞에서 서성이다 돌아오곤 했지…."

할머니들은 모두 지리산 자락 근처에서 나고 살아온 분들이었다. 한국전쟁과 빨치산과 산골짜기 가난을 혹독하게 치른 분들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글을 배울 엄두를 내지 못할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배움을 향한 할머니들의 열의는 정말 높았다. 그 영향에 나 역시 열심히 가르쳤다.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곰곰이 궁리했다. 우선, 생일카드와 동화책이 필요하다고 지인들에게 알렸다. 친구 J가 카드 수집 장을 사 보내주었다. 그 덕에 생전 처음 할머니들은 아들에게 딸에게 손녀에게 삐뚤빼뚤 생일축하 카드를 썼다. 생일이 오면 건네 줄 고운 그림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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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이야기 책을 읽으시는 할머니들 ⓒ 강은경


또 나의 지인들이 조카나 친구들에게 연락해 동화책을 모아 보내주었다. 나는 또 생전 처음 이야기책을 읽으며 감동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날, 책을 다 읽은 4반(읽고 쓰기가 웬만큼 되는 할머니들 네 분. 가장 실력이 좋은 반) 김복순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김 할머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었다.

"소년이 혜택을 겁나게 봤구먼. 뭐시냐, 나무헌티 소년이 모든 걸 요청혀서 다 가져갔어. 거시기, 낭중엔 나무가 지 몸땡이까지 다 줘버렸어. 나무는 너무나 착허구, 소년은 얄미운 자식이네!"

이어 안금례 할머니가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 평을 했다.

"큰 나무가 하나 있는디…. 이 사람이 오만 것을 다 그 나무 탓 허네. 고렇게 요거이 귀찮은께, 베 버렸어! 근디 후회되고 아쉽게 된 겨. 그늘도 읎어, 빨랫줄도 매달지 못혀…. 긍께, 세상에 쓸모 읎는 게 읎다, 다 소중허다, 그런 야기구먼. 뭐시냐, 보리방에 물 부어놓으니 시어머니가 생각난다, 그 짝인 거지."
"예? 보리방, 시어머니요?"

내가 물었다. 사투리 때문에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들을 때가 있다. 경상도와 가까운 곳이라,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가 섞일 때는 더더욱.

"긍께, 시집살이 오지게 시키는 시어머니 은제 죽나 혔는디, 시어머니 죽구나니께 아쉽고 생각난다 허는 겨. 읎으면 귀허구 있으면 원수다, 라는 말이지."
"아, 예…."
"근디 베 버린 나무 똥구멍에서 낭중에 새 줄기가 나왔응께 다행이구먼. 물도 주고 잘 키운댜. 참말로 좋은 책이구먼."
"그려, 이런 좋은 책도 읽고, 아이구, 좋구먼!"
"긍께, 글자 공부도 되고…. 내가 읽은 이 책은…."

할머니들이 각자 읽은 책을 놓고, 앞 다투어 평을 했다. 그때 어쩌면 할머니들이 느낀 재미보다 내가 받은 감동과 재미가 열 배는 더 컸을지도 모른다. 저릿저릿…. 그러면서 내 안에 감춰진 이기성이 순화되지는 않았을까. '인간은 이기적으로 태어났다'라고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주장했다. 인간의 이타적인 행동 뒤에도 이기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동기가 숨어 있다 했다.

귓가에 걸리는 할머니들 수다 소리... 됐다!

그렇다면 내가 이 '봉사'를 결심했을 때, 내 속에 숨어있던 동기는 무엇이었나. 그렇다. 동네에 돌 내 '평판'을 고려했다. 어쩌면 돌아올 호의와 보상도.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에 대한 나 스스로의 평가였다. 내가 자랑스럽고 흐뭇하다. 그러나 정말 그게 전부였을까. 순수한 이타심이 한편 더 크게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이제 그 동기야 어쨌든, 할머니들이 즐겁고 내가 즐거우면, 됐다! 주는 이도 기쁘고 받는 이도 기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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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푸성귀를 뽑아주시는 할머니 ⓒ 강은경


수업을 끝내고 막 일어서려는 참이었다. 안 할머니가 내게 눈짓을 보냈다. 책상으로 쓰고 있는 밥상 밑으로 뭔가를 밀어 넣으며. 눈들을 피해 안 할머니가 내게 건네준 건 미숫가루 한 봉지였다. 눈치껏 꺼내 품에 감추었다. 감사하다는 말도 눈인사로 보냈다.

"선생님, 싸게 먼저 가쇼!"

안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집에 오자마자 봉지를 풀었다. 그렇잖아도 두 시간 쉬지 않고 수업을 하고 나면 허기도 지고 목도 아팠다. 서둘러 미숫가루를 한 대접 걸쭉하게 탔다. 미숫가루 맛이 할머니들의 수다처럼 구수했다.

"여그 올라고 낮에 고사리 끊었는디, 워치게 날이 뜨거운지 죽는 줄 알았어…. 인제 바쁜 고사리철도 지나 갔은께 공부 빠지지 말구 와야 허는디…. 아이구, 가려워라! 환장허겄네! 깔따구 한 방 물린 게 오지게 가렵네…."

미숫가루를 마시는 내내, 할머니들의 구수한 수다가 귓가에 즐겁게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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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2017년도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출간. 유튜브 <은경씨 놀다>. 네이버블로그 '강누나의깡여행'. 2019년부터 '강가한옥펜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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