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 전 대통령 서거... "가장 위대한 인간 잃었다"

남아공 민주화·인종차별 철폐의 상징, 95세 일기로 타계

등록 2013.12.06 09:21수정 2013.12.0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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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95세 일기로 타계했다. 사진은 넬슨 만델라의 95세 생일 당시 모습. ⓒ EPA/NIC BOTHMA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아래 존칭 생략)이 5일(현지시각) 95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그가 평화 속에 잠들었다"며 "남아공의 위대한 아들을 잃었다"고 만델라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전했습니다.

만델라는 지난 6월 폐 감염증으로 입원해 한때 '위독설'이 나왔습니다. 석 달만인 지난 9월 퇴원해 자택에서 치료받았지만, 병마는 끝내 그를 영원한 안식으로 이끌었습니다.

만델라는 1918년 7월 18일 남아프리카공화국 트란스케이(Transkei) 움타타(Umtata) 근교 쿠누(Qunu)에서 추장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38년에 이스턴케이프(Eastern Cape) 주 앨리스(Alice)에 있는 포트헤어 대학교(University of Fort Hare)에 입학해 1943년에 졸업했습니다. 1943년부터 1952년까지는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에 있는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교(University of the Witwatersrand)에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흑인들 삶을 보며 '무장 폭력 투쟁'에 나서다

이때 만델라는 흑인들 비참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1944년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청년동맹을 설립하는 등 흑인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52년에는 남아공 첫 흑인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흑인들 권익을 위한 변호활동을 펼치며 흑인들의 희망이 됩니다. 특히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에 저항하다가 1956년 반역죄로 기소되지만 1961년 무죄로 석방됐습니다.

무죄로 석방된 그는 무장 폭력 투쟁에 나섰습니다. 비폭력 투쟁에서 무장 폭력 투쟁으로 전향한 이유는 1960년 70여 명이 숨지는 '샤프빌 대학살 사건' 때문입니다. 그는 아프리카민족회 안에 '국가의 창'(Spear of the Nation)이란 뜻을 가진 '움콘트 웨 시즈웨'(Umkhonto We Sizwe)라는 군사조직을 창설하고, 최고사령관으로 무장투쟁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1962년 체포돼 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어 1964년에는 '사보타지 및 정부 전복 음모죄'가 추가돼 종신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만델라는 웨스턴케이프(Western Cape) 주 케이프타운(Cape Town) 항구 인근에 있는 로벤 섬(Robben Island) 교도소에 수감돼 19년간 복역했으며, 1982년에 케이프타운 교외 폴스무어(Pollsmoor) 교도소로 이감돼 다시 8년간 수감, 약 27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지난 6월 30일 남아공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만델라가 18년간 수감됐던 로벤섬을 찾아 방명록에 '불의와 맞서고 굴복하기를 거부한 용감한 사람이 있던 자리에 서게 돼 매우 겸허한 심정을 느낀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무장 폭력 투쟁에서 '비폭력 투쟁'으로

국제사회는 만델라 석방운동을 펼쳤고, 1989년 대통령에 취임한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Frederik Willem de Klerk) 남아공 대통령은 아파르트헤이트, 만델라와 협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 2월 만델라의 무조건 석방, 비상사태의 부분해제, 정치범 석방, 아프리카민족회의(ANC) 합법화를 선언했습니다. 만델라는 백인정부와 협상해 350여 년에 걸친 인종분규를 종식시킨 공로로 1993년 데클레르크 대통령과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1994년 4월 남아공 최초로 모든 인종이 참가하는 총선거가 실시됐고, 여기서 아프리카민족회의가 승리하면서 만델라는 대통령이 돼 그해 5월 10일에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그의 임기는 1999년 6월에 끝났습니다.

만델라는 우리나라와 특히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습니다. 두 나라 모두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역사를 경험했고, 두 사람 역시 민주주의 투쟁을 하다 투옥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1995년 7월과 2001년 3월, 만델라는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될 때 소속된 새정치국민회의라는 이름은 만델라가 소속했던 아프리카 국민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에 따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8일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밝힌 비무장지대(DMZ) 내 '세계평화공원' 조성 제안은 박 대통령 첫 작품이 아닙니다. 지난 2001년 3월 만델라가 방한했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DMZ 내 평화공원 설치'를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화공원으로 하거나 유네스코가 환경보전구역으로 지정하는 방법도 있다, 북한에 제안해 협의하겠다"고 답했지만,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습니다.

'평화'를 말한 만델라와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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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대통령이 지난 2001년 3월 12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만찬에서 건배를 한뒤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인들의 민주화 투쟁과 남북간 화해, 통일에 대한 염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라며 "그는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뉴스위크>도 지난 2009년 9월 23일 인터넷판에서 김 전 대통령을 조국의 미래를 혁신적으로 바꾼 11인의 지도자 중 1명으로 선정하면서 이렇게 설명해놨습니다.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도 불구, 평생 조국의 민주화에 헌신한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한국 정치사상 첫 '여야 간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내며 1998년 2월 취임한 김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한국을 아시아 금융위기의 나락에서 구출해 내는 데 성공했으며,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 포용정책을 통해 남북한 간 관계개선에도 기여했다. 평생을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로 불렸던 김 전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만델라는 저서로 <투쟁은 나의 인생>(The Struggle is My Life, 1961)과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Long walk to Freedom, 1995)을 남겼습니다.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은 <뉴욕타임스>가 뽑은 20세기 최고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만델라는 이 책에서 "소년 시절의 자유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리고 젊은 시절 이미 자유를 빼앗겼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부터"라며 "나의 형제와 자매들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게 됐다"고 자신이 자유를 위해 투쟁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또 "나는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임을 배웠다, 나는 내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수없이 많은 두려움을 느꼈으나 용기라는 가면 속에 두려움을 감췄다"며 "용감한 사람이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정복하는 사람"이라고 밝혔습니다. 자유를 위해 싸울 때 두려움은 반드시 있다는 것으로, 그를 극복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는 이야기입니다.

"내 사명은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 모두를 해방시키는 것"

만델라는 "피부 색깔이나 가정 배경과 종교 때문에 다른 사람을 증오하도록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증오를 배울 수 있다"면서 "그리고 사람들이 증오를 배운다면 사랑도 배울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 마음에서 사랑은 그 반대보다 훨씬 더 본성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착함이란 가려져 있으나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은 사람은 증오의 포로가 돼 편견과 편협심의 창살에 갇혀 있게 된다"면서 "내가 만약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다면 남에게 나의 자유를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하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1년 6월 27일에는 <자신이 본 넬슨 만델라 : 공식 인용어구>(Nelson Mandela By Himself)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에 담겨 있는 만델라의 말들을 한번 읽어보시지요.

"만약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다시 같은 방식으로 살겠다. 사나이로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 그렇게 할 것이다."(1962년 11월 프리토리아 유대교회당 연설)

"나는 일생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웠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기회를 갖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필요하다면 그런 소망을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1964년 4월 20일 내란 혐의 재판 최후진술)

"나는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와 민주주의, 자유의 이름으로 인사합니다."(1990년 2월 11일 27년간 복역을 끝내고 석방되면서)

"화해는 과거의 정의롭지 못했던 유산을 고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1995년)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이 속한 국민과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 마쳤다면 그는 평안하게 안식을 취할 수 있다. 난 그런 노력을 했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영원히 잠잘 수 있을 것이다."(1994년 한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

"지구는 가장 위대한 인간을 잃었다"

무장 폭력 투쟁에서 비폭력평화 투쟁을 지향한 만델라의 정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의 어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만델라 서거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습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hopeparkyongjin)은 "만델라 타계소식, 인류의 거인이 쓰러졌다, 줄루족추장의 아들, ANC저항군사조직 '민족의 창' 초대사령관에서 대타협의 정치지도자, 화해의 대통령까지. 그의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이 여기서 끝났구나, 위대한 영혼의 안식을 빈다"고 밝혔습니다.

백혜련 변호사(@100HyeRyun)는 "김대중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네요, 명복을 빈다"고 말했고, 진중권 동양대 교수(@unheim)도 "지구는 가장 위대한 인간을 잃었습니다, 명복을 빕니다"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굿바이 만델라.'
#만델라 #김대중 #남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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