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면 마음대로 해도 되나? 그것도 언론사에서...

[주장] <한국일보> 사태는 심각한 언론자유 탄압

등록 2013.07.03 14:59수정 2013.07.0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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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큰 용역이 점령한 한국일보 편집국 한국일보(회장 장재구) 사측이 지난 6월 15일 용역직원들을 동원해 편집국을 봉쇄한 가운데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빌딩 15층 한국일보 편집국 비상구 입구에서 건장한 체구의 용역들이 책상 등 사무집기로 바리케이드를 쌓은 채 노조원들을 막고 있다. ⓒ 권우성


민주주의가 정착된 사회에서는 좀 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 대한민국 서울에서 펼쳐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신문사 사주가 용역업체 직원들을 앞세워 자신이 소유한 신문사 편집국에 들이닥쳐 기사를 쓰고 있던 기자들을 몰아내고 편집국을 장악한 뒤 기자들의 편집국 출입을 봉쇄했다. 독재국가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때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해서 기사를 읽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60년의 전통을 자랑하며 한때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신문사중 하나였던 <한국일보>가 최근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의 비리 문제로 촉발된 노사간의 갈등으로 인해 편집국이 봉쇄되고 기자들이 기사를 쓸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됐다.

이번 사태에 대해 노조와 사측은 서로의 입장을 내세우며 상대방이 문제라며 서로 책임을 떠 넘기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문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 실현을 위해 여론의 공론장 역할을 담당하는 언론사 편집국을 폭력을 이용해 장악하고 봉쇄한 비민주적이고 야만적인 행위다.

물리력을 이용해 언론사 편집국을 장악하고 기자들의 출입을 막는 것은 군사독재 시절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가 여론의 통제를 위해 쓰는 방법 중 하나다. 이런 군사 쿠데타 시대에나 등장할 법한 사태가 민주주의를 국가 통치이념으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 민주적인 행위를 아무 거리낌없이 실행에 옮기는 <한국일보> 경영진의 용기 또한 놀랍다.

<한국일보> 사태, 언론사 사주들의 왜곡된 인식에 기인

<한국일보> 경영진의 상식 밖의 행동은 신문사를 경제적인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다른 일반 기업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론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망각한 채 신문사를 개인 소유 기업으로 인식해 사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후진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론사 사주의 언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후진적인 인식은 결국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언론사의 소유권와 편집권의 분리를 인정하지 않는 폐해를 낳게 됐다. 특히, 우리나라 언론사들의 사주들은 대체로 언론사를 사주 개인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후진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과거 몇몇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다른 일반 기업들을 권력기관들과 다른 언론사의 비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으로 언론사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사태도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러한 우리나라 언론사 사주들의 왜곡되고 삐뚤어진 인식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한국일보>는 사주의 간섭으로 부터 신문사의 편집권을 보호하기 위해 신문사의 소유권과 편집권 분리의 방편으로 지난 1991년부터 노사합의로 편집국장 임명동의제를 실시해왔다.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한국일보> 노조는 사측이 일방적으로 이영성 편집국장을 보직해임하고 하종오 사회부장을 편집국장으로 내정하자 노조원들이 표결을 통해 압도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그런데 사측은 이러한 노조의 의견을 묵살하고 이사회를 열어 이영성 편집국장을 아예 해고 시키고 말았다.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노사합의로 만들어진 편집국장 임명동의제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것이다.

편집국 봉쇄도 모자라 타사 시론 표절까지

언론은 우리사회의 많은 권력기관들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통해 권력기관들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쳐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리는 역할이 담당하는 사회 공적 기관이다. 따라서, 언론은 어떠한 외부의 압력과 간섭 그리고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미국의 수정헌법 1조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그런데 <한국일보>에서는 언론사 사주가 물리력을 동원해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활동을 방해하고 있다. 이는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절대로 묵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일보> 편집강령에는 "한국일보사는 편집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정치권력이나 특정 집단·광고주 등 사회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함은 물론 경영진 등 사내의 부당한 간여도 받아들이지 않는 독립된 언론임을 내세운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일보> 경영진은 이러한 편집강령을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

물리력을 이용해 기자들을 쫓아내고 편집국을 봉쇄한 뒤 사측의 의견을 따르는 10여 명의 기자들로 신문을 제작하던 <한국일보> 경영진은 지난 27일 <연합뉴스>의 시론을 표절해 신문의 사설로 발행하는 범행을 저질러 한국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았다. 다른 사람의 글을 표절하는 것은 엄연한 범죄 행위다. 그것도 사회 공적기관인 신문사가 자사의 사설에 다른 언론사의 글을 전면적으로 표절한 것은 사상유래가 없는 일로 해외토픽감이다. 사주 한 명의 잘못된 언론관이 60년동안 쌓아온 신문사의 신뢰와 권위와 명예 그리고 품위를 송두리째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일보> 경영진은 이제 이 반민주적이고 비상식적인 언론탄압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 만약 경영진이 언론탄압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이제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사주 개인의 비리를 들춰냈다는 이유로 기자들의 입을 틀어막고 펜을 꺾겠다는 시도는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최진봉 기자는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 오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 #편집권 #언론자유 #최진봉 #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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