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 우리는 '거지'였다

[어느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④] 페낭섬의 두 거지

등록 2013.07.22 08:58수정 2013.07.3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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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개월 동안 남편(미국인)과 인도, 네팔, 동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 등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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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의 거리 ⓒ 이수지


쿠알라룸푸르에서 밤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페낭. 말레이시아 서북부에 있는 섬으로 주도인 조지타운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밤 비행기, 밤 기차에 지난밤의 의기소침함이 더해져 몸이 매우 피로했지만, 바다내음이 코 아래로 훅 끼치는 낯선 섬에 떨궈지고 나니 새살이 돋듯 다시 여행의 새 기운이 돋았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눈의 띈 건 BMW 매장이었다. 말레이시아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하얀 바탕에 구불구불한 장식이 새겨진 오래된 유럽식 건축물이다. 이렇게 건축물 일부를 개조해 현대식 상점으로 쓰고 있는 형식의 건물들이 조지타운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도시라고 해서, 오래되어 사용하지 않는 전시식 건물만 많으리라고 생각했던 나의 촌스러운 발상에 일침이 가해지는 순간이다.

영국의 왕이었던 조지 3세의 이름을 딴 조지타운은 영국동인도회사가 말레이 주의 무역 기지로 삼을 목적으로 세운 도시다. 기지가 번창하자 조지타운은 머지않아 인구가 1만2000명에 달하는 다국적 상점들이 즐비하게 세워진 도시로 변모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더 전인 1700년대 말, 각국각색의 상점이 즐비하게 들어선 말레이시아의 한 섬. 뭔가 굉장히 '말레이'스럽다.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도 그랬지만, 페낭에도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스텔 근처에는 아침마다 눈이 돌아가게 무언가를 열심히 볶아대는 중국 식당들이 있었고, 오후에는 학교를 파하고 무리를 지어 거리를 걷는 인도계 소년들이 보였다. 히잡을 두른 소녀들이 수줍게 걸어가는 골목을 돌면, 붉은 한자가 진하게 새겨진 불교 사찰이 보이기도 했다. 이것은 무언가, 미국의 '멜팅팟(도가니. 다인종사회를 가리키는 말)'은 주름도 못 잡을 광경이다.

식민지의 상처까지 끌어안은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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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의 극락사붉은 한자가 새겨진 페낭의 불교 사찰 극락사 ⓒ 이수지


페낭, 더 넓게는 믈라카 해협의 이러한 다문화 유산은 영국이 조지타운에 기지를 세우기 훨씬 전부터 축적되어온 것이었다. 해상무역과 동서양 교류의 중심지였던 말레이 해협은 강력한 왕국들을 탄생시키는 동시에, 가깝고 또 먼 곳에서 오는 이민자들로 다문화적 정체성을 굳혀가고 있었다. 믈라카 왕국이 탄생한 15세기 무렵 급격히 성장한 이 지역에는 무수히 많은 민족이 살고 있었으며 무려 80개가 넘는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16세기 포르투갈이 이곳을 정복했고, 이전에 세워진 많은 이슬람 양식의 건물들이 인위적으로 손실되는 일도 있었지만, 민족 저마다의 문화, 그리고 다른 민족과 함께 어울려 사는 다문화주의는 더 굳건해졌다. 이후 네덜란드의 지배까지 거친 말레이시아는 중국식 저택, 불교 사찰, 회교도 성당, 힌두 사원에 크라이스트 교회와 같은 서양식 건물까지 고루 갖춘, 다양함에 다양함을 더한 다문화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500년에 걸쳐 이민자들과 함께 무역과 문화의 꽃을 피우며 발달한 도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지 시대를 거쳐왔지만, 그 잔해를 없애기보다는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고 말레이시아만의 독특한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도시. 상처를 받았지만 그것을 끌어안고 성장하는 멋진 한 인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차피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상처는 흐려질 뿐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순백의 깨끗했던 지난날이 아쉽지만, 길을 걷자면 넘어지는 것이고, 같이 있자면 상처를 받는 것이다. 어차피 완벽해질 수 없고,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불가하다면, 다 끌어안는 수밖에 없다. 과거의 아픈 기억도, 잘못도, 실수도, 떠나간 사람들도 다 인정하고 끌어안는 거다. 말레이시아처럼.

이런 잡생각에 빠져 있다, 길을 잃었다.

멀고도 험한 '야시장'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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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 거리의 해산물 식당 ⓒ 이수지


나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가진 기능 중 몇 가지 기능에 대한 성능이 현저히 부족한데, 그 중에 제일은 길눈이다. 수만 번 간 길임에도 불구하고 자칫하면 길을 잃고 헤매기가 일쑤이며, 20년 하고도 몇 년을 더 산 서울에서 외국인을 안내하다가도, 하루만 지나면 어찌 된 영문인지 외국인이 나를 안내하고 있는 꼴이 되어 버린다.

다행히도 짝꿍 더스틴은 길눈이 밝다. 덕분에 더스틴과 함께 어디를 갈 때면 평소처럼 넋을 놓고 있어도 원하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격한 능력 차이가 문제가 될 때도 있다. 길 찾기 능력이 제로치인 나는 고성능의 더스틴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고, 더스틴은 언제나 그렇듯 자신감에 넘친다.

그러다 보니 둘 중 어느 하나도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은 채 일단 가고 봤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생기고, 그렇게 잘못된 길임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3킬로미터는 족히 걸은 후이다. 인생이 항상 그런 식이듯, 그런 때는 밥을 제대로 먹지 않은 채로 산 중턱에 올라와 있을 때라던가, 밥을 먹으러 가기 위해 위를 깔끔히 비우고 길을 나선 때이다. 페낭에서 야시장을 찾으러 갈 때가 그랬다.

더스틴은 페낭의 지도를 유심히 살피더니 말했다.

"거니 드라이브, 이 야시장으로 가고 싶다는 말이지? 조지타운이랑 많이 멀지 않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금세 나오겠어."

이미 부처의 와상이 있는 태국 사찰을 찾아 헤매다 오후 반나절을 내내 걸은 후였다. 사찰에 도착했을 땐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부처의 와상은 철조망 사이로 얼굴을 겨우 끼워 넣고 볼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에게는 평화와 자비의 미소로 다가왔을 부처의 저 미소가, 나에게는 길을 잃어 늦게 온 걸 비웃는 듯한 얄미운 미소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페낭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음식이었다. 페낭에서 유명한 음식은 '뇨냐' 음식. 무역이 번창하자 말레이시아에 정착하게 된 중국 남성들 중 많은 수가 말레이계 여성들과 결혼을 했고, 그렇게 해서 생겨난 일종의 말레이시아-중국 퓨전 요리가 바로 '뇨냐' 음식이다. 이중의 하나인 '아쌈락사'는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50개 중 7위에 드는 음식이다. 그리고 그것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향하는 페낭의 야시장이다!

하지만 임을 봐야 뽕도 따듯 야시장에 도착을 해야 뭘 먹든가 말든가 할 것인데. 1킬로미터 정도만 걸으면 금세 도착할 줄 알았던 이 망할 야시장은 아까 그 부처의 와상과 작당을 했는지 1시간을 넘게 걸어도 코빼기도 보여주지 않았다. 뇨냐 음식이고 뭐고, 길거리에 앉아 크래커라도 뜯어 먹고 싶은 심정이다.

길을 헤매다 찾은 '페낭'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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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먹은 로띠 칸나이 ⓒ 이수지


이런 심정을 어찌 알았는지 때마침 노점상이 짠하고 나타났다. 인도계로 보이는 아저씨가 탐스러운 로띠(인도식의 납작한 빵)를 구워내고 있었다. 로띠 칸나이라는, 로띠 빵을 커리 소스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뇨냐 음식이 말레이시아와 중국의 퓨전 음식이라면, 로띠 칸나이는 인도 음식의 영향을 받은 말레이시아와 인도의 퓨전 음식이다.

커리라면 환장을 하는 우리는 노점상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따뜻한 로띠와 커리 '봉다리'를 얻어냈다. 아! 코끝을 스치는 이 커리의 향! 하지만 노점상인 탓에 먹을 곳이 없다! 커리향이 코를 찌르는데 먹지를 못하고 있으니 약이 올랐다. 우리는 일단 도로변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끔찍하게 맛있어!"

따뜻하고 쫀득한 로띠 빵에 톡 쏘는 커리 소스를 담아 혀에 살포시 올려놓고 나니, 이 세상에 내 혀와 커리만 존재하는듯, 주위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어젯밤 나를 의기소침하게 했던 여행에 대한 불안감과 초조함도 커리의 맛과 함께 녹아드는 듯했다.

이미 뱃속으로 사라진 커리를 아쉬워하며 우리는 비닐봉지에 묻은 커리를 조금이라도 더 맛볼 수 있을까 하여 봉지를 이리저리 살폈다. 이 순간 우리는 거지였다. 두 시간여를 걸어 먼지와 땀에 전 두 더러운 행객이 도로가에 주저앉아 더러운 손으로 봉다리에 든 음식을 먹고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다 먹은 음식 봉다리를 뒤적대고 있다니. 헌데 고백하자면, 그때가 집을 떠나온 후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거니 드라이브의 야시장은 멋진 곳이었다. 야외에 잔뜩 늘어선 노점상에서는 말레이시아 음식부터 시작해 중국 음식, 인도 음식, 뇨냐 음식, 꼬치구이와 사탕수수를 갈아 만든 주스 같은 신기한 먹을거리와 마실거리를 팔고 있었다. 이런 밤을 두고 아름다운 밤이라고 하는가. 저물어 가는 해를 등지고 우리는 세계에서 7번째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배도 부르겠다, 숙소까지 걸어갈까?"
"너만 좋다면, 안 될 거 있어?"

투덜대며 걸어가던 그 길이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멋진 밤 산책이 되었다. 미련함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도 좋다. 미련한 우리가, 선선한 이 밤이. 미련하게 걷는 걸 즐긴다는 것이 우리의 가장 멋진 공통점인 것 같다. 뭐 이런 식의 여행도 괜찮겠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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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의 야시장, 거니 드라이브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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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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