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 죽은 장수태왕에게 도전장을 던지다

[사극으로 역사읽기] KBS 드라마 <칼과 꽃>, 첫 번째 이야기

등록 2013.07.18 20:22수정 2013.07.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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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칼과 꽃>. ⓒ KBS


7월 3일 첫 방송을 탄 KBS 드라마 <칼과 꽃>이 초반부를 벗어나고 있다. 연개소문 시대가 배경인 <칼과 꽃>은 두 연인의 사랑과 복수를 통해 고구려 말기의 역사를 조명하는 드라마다. 주인공은 연개소문의 아들인 연충(엄태웅 분)과 영류태왕의 공주인 고무영(김옥빈 분)이다. 두 사람은 드라마가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들이다.

지금까지 방영분에서 좀 더 관심을 끄는 것은 두 연인보다는 두 연인의 아버지들이다. 강경론자인 연개소문(최민수 분)은 당나라와 정면으로 부딪힐 것을 주장하는 반면, 온건론자인 영류태왕은 당나라와 평화적 관계를 갖기를 희망한다. 드라마 속 고구려의 국론은 이들을 중심으로 양분되어 있다.

참고로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군주의 칭호가 '왕'이라고 했지만, 광개토태왕릉비·중원고구려비 등에 따르면 왕이 아니라 '태왕'이었다. 신라인의 무덤인 경주 호우총에서 나온 고구려 그릇에 새겨진 글자나 고구려인의 무덤인 만주의 모두루 묘지도 동일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고구려는 태왕 밑에 왕을 둔 국가로서 중국식 황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국이었다. 영류왕을 영류태왕이라고 부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극에서는, 외세에 대해 온건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어딘가 나약하고 신념이 부족하며 현실 순응적인 사람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칼과 꽃>에서는 영류태왕을 그렇게 묘사하지 않는다. <태조 왕건>에서 궁예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김영철에게 영류태왕 역할을 맡긴 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드라마에서는 영류태왕을 소신과 능력을 갖춘 온건론자로 묘사한다. 그래서 강경론자 연개소문과 온건론자 영류태왕의 대결이 한층 더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다.

'연개소문은 강경론자, 영류태왕은 온건론자'로 보는 관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접근법으로는 연개소문이란 인물의 역사적 의의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연개소문은 단순히 강경론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큰 쟁점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제국 고구려의 국가적 패러다임을 바꿀 것을 요구한 인물이다. 그가 들고 나온 쟁점은 무엇일까?

서진전략이냐 남진전략이냐

연개소문(최민수 분). ⓒ KBS


한나라를 계승하여 통일 중국을 지배하던 후한이 약해지면서, 중국은 3세기부터 위·촉·오 삼국으로 분열됐다. 진나라(진시황의 진나라와 다름)에 의해 삼국이 통일됐지만, 4세기부터 중국 위쪽 및 왼쪽의 5대 유목민족이 북중국을 차지하면서 기존의 중국 한족은 남중국으로 밀려갔다. 중국 주변의 5대 유목민족이 북중국에 들어가 16개 왕조를 건설하고 한족이 월족(베트남족의 조상)을 몰아내고 남중국을 지배한 이 시기를 5호 16국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에는 중국대륙의 분열이 매우 극심했다.


고구려의 급성장은 이 같은 중국의 분열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고구려의 대약진은 후한이 약화된 때부터 5호 16국 시대가 종결될 때까지 계속됐다. 중국의 분열이 최고조가 된 시점에서 고구려가 만주 전역을 지배하고 또 이것을 기반으로 중국을 위협한 것이다.

이 시대에 고구려의 국가전략은 서진(西進)전략이었다. 남쪽의 한반도보다는 서쪽의 중국으로 진출하는 것이 국가적 목표였다. 광개토태왕(재위 391~412년)의 대활약은 이런 국가전략의 산물이었다. 북중국에서 135년 동안 16개의 왕조가 명멸하는 5호 16국 시대를 이용하여 고구려는 만주 지배자의 위상을 굳히고 중국을 위협했다.

그런데 5세기 초반부터 5호 16국 시대의 분열이 수습되기 시작했다.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5세기 초반부터 6세기 후반까지는 중국 남북부에 각각 하나의 왕조가 존재했다. 이 상태에서 북중국 왕조와 남중국 왕조가 중국대륙 지배자의 정통성을 놓고 경쟁을 벌였다. 그래서 이 시대를 남북조 시대라고 부른다.

남북조 시대가 시작되고 북중국의 통합이 강화되자, 고구려가 중국 진출에 성공할 가능성은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이런 상태에서 백제·가야·신라의 경제·군사적 역량이 커지자, 고구려는 한반도 쪽에 좀더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때문에 고구려는 중국 쪽과 한반도 쪽에 거의 대등한 수준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양쪽을 상대로 동시에 윈(win)-윈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느 한쪽에 역량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집중해야 했다. 양단간에 선택이 필요했던 것이다.

고구려가 내린 선택은, 중국과의 관계를 현상유지 차원에서 묶어두고 한반도 쪽에 좀 더 역량을 쏟아 붓기로 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서진전략을 포기하고 남진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광개토태왕의 아들인 장수태왕이 만주에서 한반도로 도읍을 옮긴 사건인 평양 천도(427년)는 그런 배경의 산물이었다. 이후 고구려는 한반도 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데에 상대적으로 더 집중했다. 연개소문이 등장하는 7세기 초반까지 이것은 대외전략이었다.

중국의 통일과 연개소문의 구상

영류태왕(김영철 분). ⓒ KBS

그런데 장수태왕의 평양 천도 이래 약 200년간 유지된 남진전략을 뒤흔든 이가 바로 연개소문이다. 그는 남북조 시대의 분열을 수습하고 통일 중국을 건설한 당나라에 맞서 국가를 지키려면 남진전략을 폐기하고 광개토태왕 때의 서진전략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중국을 통일한 당나라가 더 이상의 팽창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연개소문도 전략 변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당나라는 중국 통일의 여세를 몰아 이웃나라들에게 '중국의 51번째 주(州)'가 될 것을 요구했다. 이때 당나라는 자국의 지방행정구역인 도호부나 도독부에 편입될 것을 이웃나라들에게 요구했다. 종전처럼 이웃나라 군주를 책봉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이웃나라 군주를 자국의 지방장관으로 임명하려 한 것이다. 당나라는 그 시대 나름의 세계화를 추진한 것이다.

오만한 당나라를 놔두고 남진전략을 계속 고수하면 고구려의 서부 방어선이 뚫릴 수 있으므로 200년 전의 서진전략을 부활시켜 중국과 정면승부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 연개소문의 판단이었다. 세상을 마음대로 요리하고 싶어 하는 유일 초강대국 당나라에 맞서 나라를 지키는 길은 당나라 식의 세계화를 거부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연개소문은 백제·신라와의 동맹도 추진하고 돌궐족(중국 북쪽과 서북쪽)과의 제휴도 추진했다. 고구려 중심의 국제체제를 결성해서, 중국에 대한 태도를 방어 모드에서 공격 모드로 전환하고자 했던 것이다. 645년에 고구려가 당나라 태종(당태종)의 침공을 물리치고 안시성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데는 최고 지도자인 연개소문의 이 같은 의지도 크게 작용했다.

연개소문에 의해 쫓겨나기 이전의 영류태왕은 기존의 남진전략을 고수했다. 따라서 연개소문과 영류태왕의 갈등은 <칼과 꽃>에서처럼 강경론 대 온건론의 대립이 아니라, 실은 서진전략 대 남진전략의 대립이었다. 연개소문은 중국을 치는 데 집중하자는 쪽이고, 영류태왕은 백제·신라를 제압하는 데 집중하자는 쪽이었던 것이다.

연개소문의 서진전략은 장수태왕 이래의 국가전략에 대한 도전이었다. 따라서 그의 등장은 이미 죽은 장수태왕에 대한 도전적 의미를 띠는 것이었다. 그는 광개토태왕 시대로 되돌아가 중국식 세계화를 타도하고 고구려의 전성시대를 부활시키고자 했다. <삼국사기>에서는 그를 왕을 배신한 반역자 정도로 묘사했지만, 그런 시각으로는 연개소문의 진면모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연개소문은 그보다는 훨씬 더 큰 인물이었다.
#칼과 꽃 #연개소문 #영류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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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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