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주가 뛰어내리자고 한 성곽, 여기였네

[서평] <드라마, 서울을 헌팅하다>

등록 2013.07.19 11:56수정 2013.07.1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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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자


우리 동네에 있는 학교의 가을풍경이다. 교문에서 교정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처럼 아름다운 데다가 운동장도 넓고 나무가 많기 때문인지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자주 찍곤 했다. 

2000년대 초에는 이 학교를 배경으로 P라는 학생(청소년) 드라마까지 몇 달 동안 방영된 적도 있다. 드라마가 계속되면서 이 학교를 일부러 찾아와 사진을 찍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당시, P 드라마 운운하며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묻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아마도 도시 학교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풍경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겠지만, 인근의 문방구나 분식점, 슈퍼마켓 등까지 드라마의 또 다른 배경이 되면서 이런 장소들까지 인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드라마 촬영지인 학교를 찾았던 외부인들 중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드라마 속에서 갔던 분식점에 들러 주인공들이 먹었던 것들을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P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그리고 그 후 한동안 드라마 속 분식집 앞을 지나면서 보면 눈에 띄게 손님이 많아진 것이 종종 보이곤 했으니 말이다.

드라마의 힘은 이처럼 강하다. 드라마 마니아가 아닌데도 우연히 촬영 현장을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춰지곤 한다. 드라마를 보다가 괜찮아 보이는 음식점이나 커피전문점 등을 비롯한 괜찮은 산책로나 나들이 장소 등을 보게 되면 어디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드라마, 서울을 헌팅하다>(이숲 펴냄)는 우리 동네 모 학교처럼 드라마 촬영 단골 장소가 된 곳들을 탐방하는 책이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1395년에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해 한양 둘레에 성곽을 쌓을 작업에 착수했다. 정도전은 현재의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연결하는 성터를 결정했고 다음해인 1396년부터 본격적으로 총 둘레 길이가 18킬로미터에 달하는 성곽 구축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 안에는 사대문인 동의 흥인지문, 서의 돈의문, 남의 숭례문, 북의 숙청문과 사소문인 동북의 홍화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 서남의 소덕문 등을 건설하는 작업도 포함돼 있었다. 1년여의 작업 끝에 성곽은 완성되었고 이후 세종 때 개축되고 숙종 때의 수축 과정을 거쳤다. - <드라마 서울을 헌팅하다> '서울 성곽 길 편'에서

그러나 조선시대와 운명을 같이해 온 성곽은 일제강점기에 훼손되고 만다. 일제는 근대도시 건설이라는 명분으로 성벽들을 무너뜨리고 성문들을 훼손하고 만다. 그리고 숭례문(국보 제1호), 흥인지문(보물 제1호), 돈의문처럼 나름의 뜻을 지닌 고유 이름 대신 단지 방향을 뜻하는 남대문이나 동대문, 서대문 등으로 부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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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서울을 헌팅하다> ⓒ 이숲

그리하여 조선 건국과 함께 축성된 성벽들은 거의 무너지고 말았다. 현재는 삼청동과 장충동 일대에만 성벽이 남아있고 성문도 일부만 남아 있다. 이 성곽을 서울 성곽이라 부른다. 서울시는 2014년을 목표로 현재 서울 성곽 복원 중에 있다.

문화재청과 문화재보호재단은 2006년 4월 1일을 시작으로 홍련사~숙정(청)문~촛대바위(1.1km)' 구간을 개방, 2007년 4월에는 '와룡공원~숙정(청)문~청운대~백악마루~창의문(4.3km)' 구간을 전면 개방함으로써 시민들 누구나 성곽 길을 따라 걸을 수 있게 했다.

이 서울 성곽 길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자신에게 겹친 고난(불행)을 꿋꿋하게 이겨나가는 여주인공 은성의 성장 혹은 성공 스토리인 <찬란한 유산>(2009년, SBS)이다. 드라마 2회, 계모에게 쫓겨난 은성(한효주 분)과 은우(연준석 분) 남매는 갈 곳이 마땅하지 않자 찜질방에서 자기로 한다.

그러나 서번트 증후군(정상 이상의 지능을 가졌거나 감정 폭이 극히 제한적인 사람이 특정 분야에서 경이적인 지적 재능을 보이는 희귀한 증상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인용)이 있는 은우 때문에 시비가 붙어 찜질방에서마저 쫓겨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와중에 계모에게 받은 돈 봉투까지 잃어버린 은성은 살아갈 날이 막막하다. 어둠도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에 남매는 이 서울 성곽 길에 선다.  

"우리 이곳에서 날아보자. 날아서 엄마 아빠 보러 가자."

앞날이 막막하고 슬픈 은성은 은우를 성곽으로 끌어 올린 후 이처럼 묻는다. 이에 은성은 천진한 얼굴로 행복해하며 "엄마 아빠 보러 가자"고 대답한다. 그리고 뛰어내리려고 한다. 그 순간 은성은 깜짝 놀라 은우를 주저앉히고 만다. 그리고 은우를 감싸 안고 "미안하다"며 운다.

주인공이라 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성곽 길을 배경으로 한 첫 장면이 성곽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은성의 흰 캔버스화인 데다가, 성곽 위에 선 남매의 모습이 위태롭게 느껴졌다. 게다가 은우가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상태라 한순간 아찔하게 그리고 서늘하게 와 닿았던 장면이다.

게다가 새벽 어스름의 푸른색 톤을 좋아하는지라, 또 드라마를 볼 당시 이 서울 성곽 길에 대한 정보가 없어 이런 저런 드라마에서 성곽길이 나올 때면 어떤 곳일까? 어디로 해서 가야 저 곳에 갈 수 있을까? 궁금해 하곤 하던 참이라 무척 인상 깊게 남고 있는 장면 중 하나다.

이 책에서 다루는 촬영지는 모두 70곳이다. 장소마다 드라마 3~5편씩을 소개한다. <천년의 유산>과 함께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드라마는 삼순이 열풍과 개명 열풍을 일으켰던 김선아가 주인공인 <여인의 향기>(2011년. SBS)와 북한 특수부대 여자 장교와 천방지축 남한의 왕자가 우연히 만나 사랑을 키워간다는 스토리의 코믹 멜로인 <더킹 투하츠>(2012년. MBC)

서울 성곽길은 <찬란한 유산>에선 앞날이 막막한 주인공을 성곽 위로 올려 묘한 긴장감을 준 후 미래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원점이 되는 것과 달리 <여인의 향기>에선 죽음을 앞둔 주인공 김선아가 지난날을 돌아보고 자신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사색의 장소가 된다. 그리고 <더킹 투하츠>에선 시경과 재신의 수채화 같은 장면이 이곳 성곽 길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서울 성곽 길' 탐방에 앞서
개방 초기 인터넷 사전 예약을 통해 탐방할 수 있었던 '서울 성곽 길'은 자율개방으로 바뀐 2007년 7월 1일부터 탐방 절차가 간소화됐다. 신분증을 지참한 후 현장에서 신청서를 작성, 간단한 확인 절차만 마치면 되는 것으로 바뀐 것. 그러니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이 외에도 5시까지만 탐방을 허용한다거나 일부 장소만 촬영을 허용하는 등처럼 탐방자들이 지켜야 할 것들도 있다.

탐방 가기 전에 가는 방법을 비롯하여 탐방자들이 지켜야 할 것 등이 안내된 '북악산 서울 성곽' 누리집(http://www.bukak.or.kr/)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북악산 서울성곽 누리집 참고 정리
이 책 <드라마 서울을 헌팅하다>에선 이 세 드라마를 손꼽았지만 필자가 알기론 참 많은 드라마들이 이곳 서울 성곽 길을 배경으로 다양한 분위기의 장면들을 연출했다. 그래서 지난 몇 년 간 가장 궁금해 했던 드라마 촬영 장소. 조만간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산행을 하는 친정 식구들과 가벼운 산행을 해도 좋을 것 같아 염두에 두게 됐다.

서울 성곽 길은 일부 구간에 불과하지만, 산과 산을 잇는 능선을 따라 걷기 때문에 서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걸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연을 접할 수 있어 가벼운 걷기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많다니 가족들과 그리고 친구들과 한번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곳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서울 성곽 길의 고단한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여러 드라마들이 줬던 감동과 따뜻한 만남 등을 스스로 연출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책은 드라마 촬영지 접근에 머물지 않고 주변의 명소까지 소개한다. 서울 성곽 길 인근에는 스포츠 매디컬 드라마인 <닥터 챔프>(2010년), 딸과 끊임없이 대립을 했던 고집불통인 엄마가 딸에게 찾아온 불치병을 통해 변해가는 <웃어요 엄마>(2011년), 입양한 다섯 동생을 돌보는 한 여자와 생모에게 버림받은 변호사와의 사랑을 그린 <별을 따다줘>(2011년), 얼마 전에 종영된 <오자룡이 간다>(2012년) 등을 촬영한 낙산공원이 있다. 서울 성곽 길과 낙산 공원을 연결해 하루 나들이 일정으로 잡아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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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찬란한 유산> 제2회 한장면. 앞날이 막막하고 슬픈 은성은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동생 은우와 서울 성곽 길에서 자살을 시도하는데... ⓒ sbs


<드라마 서울을 헌팅하다>는 서울 성곽 길과 낙산공원 외에 ▲<제빵왕 김탁구>와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 <러브레터> 등을 촬영한 '약현 성당(사적 제 252호)' ▲<49일>과 <그대를 사랑합니다>(영화) 등의 '종로 서촌' ▲<아이리스> 외에 영화 <아저씨>와 <심장이 뛴다>의 '광진 차이나 타운' ▲<커피 프린스 1호점>과 <반짝반짝 빛나는>, <쩐의 전쟁>, <신사의 품격>의 '계동' ▲드라마 <시크릿 가든>, <파리의 연인>, <부자의 탄생> 외에 영화 <티끌모아 태산> 등의 배경이 된, 서울에서 몇 남지 않은 달동네인 '창신동' 여러 골목들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외에 영화 <체포왕>과 <육혈포 강도>를 촬영, 최근 10년 새 가장 극적으로 변모한 곳 중 하나인 DMC 등을 소개한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드라마와 드라마를 촬영한 장소에 얽힌 이야기들을 골고루 섞어 들려주고 있어서 누구나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드라마, 서울을 헌팅하다>| 남도현 (지은이) | 이정학. 유혜인 (그림) | 이숲 | 2013-06-30 |15,000원

드라마, 서울을 헌팅하다 - 드라마가 사랑한 서울 촬영지 70곳

남도현 지음, 이정학.유혜인 그림,
이숲, 2013


#드라마 #찬란한 유산 #드라마 촬영지 #서울성곽길 #낙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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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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