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연구원, 비행기표 들고 사표 낸 까닭은?

[찜! e시민기자] 훌훌 털고 세계일주 다녀온 김동주 시민기자

등록 2013.07.20 21:34수정 2013.07.20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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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올해부터 '찜e시민기자'로 선정된 시민기자에게는 오마이북에서 나온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편집자말]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 쳇바퀴 위를 뛰어다니듯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마무리하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다 보면 이따금 생각나는 곳이 있다. 하늘이 무척 푸르러 검게 보이는 곳, 티베트.


짧은 기간 있었지만, 그곳에서의 기억은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요새 같이 꿉꿉한 장마철이면 더욱이나 그곳이 생각난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그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지내던 때가 그립다.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다음 정거장은 합정역…"이라는 안내 방송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만다.

국내가 됐든 국외가 됐든 각기 다르겠지만, 누구나 꿈꾸는 자신만의 '이상향'이 있기 마련. 하지만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도 돈 벌고 먹고 살아야지…'라는 현실적 판단에 원대한 계획은 어느새 하염없이 작아지곤 한다.

이번 주 '찜! e시민기자'의 주인공은, 현실적 판단보다 직접 실천을 이룬 이다. 최근 '서른에 만난 창밖 세상'이라는 기사를 쓰고 있는 김동주(fsrknight) 시민기자. 소위 '잘나가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세계일주 여정에 올랐던 그를 부러움 가득 담아 인터뷰했다. 다음은 김동주 시민기자와의 일문일답.

☞ 김동주 시민기자가 쓴 기사 보러가기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면 하고 후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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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시민기자. 눈 속에 '창밖의 세상을 직접 만져보고 싶은 순수한 욕구'가 느껴지는 듯하다. ⓒ 김동주 제공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반갑습니다. 많은 지인들이 제가 쓴 기사에 표기되는 '김동주 기자'를 보고 직업기자가 됐느냐며 물어오지만, 저는 취미로 글을 쓰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 배낭을 메고 세계일주를 떠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첫 번째 기사(관련기사: 회사 때려치우고 세계여행 떠납니다)에도 나와 있듯이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언젠가 세계일주를 할 테다'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당시 시대상이 어린 저를 부추겼던 것 같습니다. <은하철도 999> <엄마 찾아 삼만리> <꼬마자동차 붕붕>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폴> <80일간의 세계일주>. 제가 참 좋아했던 작품들인데 하나같이 방랑벽 있는 주인공들이 자기 정체성(혹은 엄마)을 찾아 꿈과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들이에요.

아마 이때부터 책이나 TV를 통해서가 아닌 '창밖의 세상을 직접 만져보고 싶은 순수한 욕구'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2009년 초, 스물아홉 나이에 대기업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서울에서 새 출발을 할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날지 몰랐어요.

남들 눈에는 부족한 게 없어 보였을 테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습니다. 거의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며 일에 매달리게 될 때도 있었고, 해마다 한두 번씩 해외 출장에 다녀와서 의미 없이 겉도는 생활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 강제로 쉬어야겠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생겼던 것 같아요.

그러다 비교적 여유로운 회사 생활을 하게 됐어요. 근데 그 기간이 길어지자 점점 나태해지더군요. 어느 순간에는 회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없어진다는 느낌까지 받았어요. 그렇게 세월이 지나가던 중 제 방 한쪽에 붙어 있었던 세계지도를 자주 쳐다보게 됐어요. 그 후로 약 10개월 동안 진지한 고민을 계속하다가 결국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면 하고 후회하자'는 생각으로 2012년 여름에 사표를 던지고 떠났습니다.

오래 전부터 참아왔던 호기심, 창밖에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는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고 덤벼보기로 한 거죠.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면 하고 후회하자'는 말은 신입사원 교육 때 들은 말인데… 그걸 이렇게 써먹었네요."

"아직도 세상물정 모른다"던 부모님 반대 있었지만...

- 혹시 식구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다 때려치우고 떠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도 세상물정을 모른다'며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습니다. 직장 상사는 물론 제 동기들도 처음에는 대부분 쉽게 믿지 못하는 눈치였어요. 아마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는 핑계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 분위기를 알고 있었기에 사표를 낼 때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들고 갔었습니다. 제 굳은 의지를 알리기 위해서요. 내가 원해서 가지게 된 직업을 관두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건 확실해요. 그렇지만 저 창밖에 더 멋진 세상이 펼쳐져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멋진 직업을 그만둘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여행이 너무 지나치면 가족들에게 버림받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세요."

- 세계일주를 마친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세계일주를 떠나기 전에는 내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전혀 다른 일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여행을 떠나 제가 직접 만나본 세상은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았어요. 어쩔 수 없는 부조리나 아픔과 마주칠 때마다 '한국에서 내가 느꼈던 불만이나 불평등은 별 것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돌아가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은 무선 통신과 관련된 기술을 연구하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직업과 별개로 책을 꼭 내고 싶어서 혼자 쓰고 있는 중이기도 해요."

- 현재 연재를 하고 있는데,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세계일주 중 실시간으로 블로그에 포스팅했어요. 다만 그때는 풍부한 느낌과 감정을 담기보다는 어디를 갔고, 여기는 이렇게 가면 된다 정도의 정보 전달만 했었죠. 한국과는 인터넷 환경에서 실시간으로 매일매일 글을 쓰는 것 자체도 무리였고요. 만약 누군가 나와 같은 경험을 꿈꾸는 이가 있다면 더 쉽게 이루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연스레 소싯적 조금 하던 글쓰기를 활용하기로 했지요."

- 현재 연재 중인 기사에는 아프리카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앞으로 어떤 곳의,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알려주세요.
"여행했던 대륙의 순서는 아프리카→중동→남미→중미→북미입니다. 시작을 낯선 아프리카로 정했던 건 지금 생각해봐도 잘한 결정인 것 같아요. 처음에 아프리카에 가지 않으면 나중에 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 지난 세계일주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를 꼽아본다면?
"세 가지가 기억에 남는데요. 아프리카에서 원숭이에게 가방을 빼앗겼던 이야기(관련기사 : '소매치기' 원숭이 때문에 목숨 걸고 저벽 아래로...), 어느 태평양에서 한 남자가 저를 사랑(?)했던 이야기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친구 JUN과 합류했던 이야기. 원숭이 사건은 이미 기사로 나갔지만, 나머지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나중에 기사로 공개하겠습니다."

"세계일주 꿈꾸는 당신, 욕심부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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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다지만, 또다시 떠날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는 김동주 시민기자 ⓒ 김동주 제공


- 혹시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어디를 계획하고 계신가요?
"그동안 모아뒀던 재산을 털었으니 이제는 저축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다고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다녔지만, 제 컴퓨터 구석에는 언젠가 떠나게 될 다음 여행지 계획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중국 상해로 들어가 남경과 황산 그리고 항주를 거쳐 <삼국지>에 나오는 촉나라 수도인 성도로 가는 계획이죠. 거기서부터 실크로드를 거쳐 티베트, 네팔, 인도까지 가는 겁니다. 지난 세계일주에서 아시아가 빠졌거든요. 한편으로는 차를 몰고 북미를 횡단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이건 은퇴 후에도 가능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역시 지나치면 버림받겠죠? 사실 이제 홀로 떠나는 여행은 그만하고 싶기도 하고요."

- 주변에 보면 세계일주를 꿈꾸는 이를 볼 수 있지요.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다면 가감 없이 해주세요.
"꿈만 꾸는 것과 직접 배낭을 꾸리고 출발하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어쩌면 꿈을 꿀 때가 행복할 수도 있어요. 빈번히 일어나는 현지인들과의 마찰이나 궂은 날씨, 부상 등등 내 돈 쓰면서 하는 일이지만, 내 마음대로 안 될 때가 많고 고통스러울 때도 더러 있어요. 때문에 긴 여행에서는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느 노랫말처럼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간다는 기분으로 말이에요. 여행의 끝에는 뭐가 있을지, 여행에서 무엇을 찾을 것인지, 이런 고민들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세계일주를 마치고 왔을 때 '결국 아무것도 없구나' 싶었지만 돌이켜 보면 무언가를 찾아왔다기보다는 많은 걸 버리고 온 여정이었어요. 그 빈 공간을 다시 일상에서 채워나가는 거죠. 여행 중에는 물론이고 다녀와서 더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언젠가 이런 힘든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행복해할 순간이 올 것이라 믿어요."

- 기사를 보니, 기간 으뜸 혹은 오름에 배치됐더군요. 본인이 여행 기사를 쓰는 방법을 공유한다면? 다른 시민기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사실 제 블로그에 여행하면서 실시간으로 여행 정보들을 썼던 것을 토대로 그때의 느낌을 다듬어요. 아직 송고한 기사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여전히 '기사를 쓴다'는 건 멀게 느껴지지만, 멋진 풍경이나 장소에 대한 표현은 생각날 때마다 휴대전화에 메모해놨다가 기사에 활용하는 편이고요.

뭔가 서술이 부족할 때는 인화된 사진을 바라보기도 하고,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있었던 제 모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여행기사이기 때문에 사진의 활용도가 높은 편인데 단순히 사진을 설명하는 위주로 글을 쓰니 무언가 잘 읽히지 않는 글이 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글을 설명하기 위해 사진을 올리는 느낌으로 기사를 쓰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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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찜E시민기자 #여행 #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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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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