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 백화점... 내 영혼도 서서히 말라갔다

[아줌마 구직자의 취업실패기⑥] 하지정맥류, 장염, 비염... 판매원은 아프다

등록 2013.07.25 10:45수정 2013.08.0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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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노동전문잡지에서 일했던 나. 지난해 가을 한 백화점 명품매장에서, 그리고 올해 봄 한 대기업의 대리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한다. 이 글은 잠입취재기가 아니다. 한 아줌마 구직자의 취업기일 뿐이다. 또한 두 곳 모두 스스로 그만뒀기에 취업 실패기이기도 하다. 글에 나오는 인명은 모두 가명임을 밝힌다. - 기자 말

출근하면 곧장 앞 매장으로 차 마시러 가는 게 일상이 됐다. 그곳의 터줏대감인 진경 언니는 커피 마시기 전에 꼭 약통을 꺼내 알약들을 입에 털어 넣는다. 칸칸이 나뉜 약통에는 종합비타민, 오메가3, 칼슘제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진경 언니가 내게 비타민을 먹는지 물었다. "아니오"라고 답하자 언니는 "아직 젊어서 그래. 우리는 얘네 없으면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어"라고 말한다. 아직 40대인 진경 언니가 영양제의 힘으로 일한다는 게 과장인 줄 알았다. 근데 둘러보면 백화점 곳곳엔 병자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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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터줏대감인 진경 언니는 커피 마시기 전에 꼭 약통을 꺼내 알약들을 입에 털어 넣는다. ⓒ sxc


함께 일하는 혜수 언니만 해도 백화점에서 일하면서 비염에 걸리고 광대뼈 쪽에 염증이 생겨 수술을 했다. 그 때문에 2년 가까이 일을 쉬어야만 했단다. 그 영향인지 언니에겐 매일 녹즙이 배달 왔다. 녹즙 판매원 언니가 혜수 언니한테 녹즙을 갖다 주면서 내게도 시음용 녹즙을 자꾸 권했다. "저는 별로 필요 없어요"라고 말하니 판매원이 "곧 녹즙이 필요하게 될 거예요"라며 웃는다.

녹즙 판매원 언니가 자신할 만하다. 백화점 안에 계속 있으니까 곳곳에 먼지가 많다. 우리 매장만 해도 틈날 때마다 청소를 하고 매대를 닦는데도 그때마다 걸레가 금세 까매진다. 옷에서 먼지가 이렇게 많이 나는지 몰랐다. 택배 청년이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매장에 들렀다. 물류창고에서 보내거나 다른 매장에서 상품들이 배달돼 왔다. 우리 매장에서 보내는 택배도 있었다. 택배를 싸고 풀면서 먼지가 났다. 또 창고와 매대 뒤 서랍에 상품들을 채워 넣고 다시 빼낼 때마다 또 먼지가 났다.

백화점 안 무수한 먼지는 판매원과 고객들 입으로

그건 약과였다. 행사나 세일에 들어가면 몇 개월에서 1, 2년씩 묵힌 옷들을 창고에서 꺼낸다. 그럴 때면 잠시 눈앞이 뿌옇게 변할 정도로 먼지가 날아다녔다. 그 속에 옷먼지 진드기는 또 얼마나 많을지, 생각만 해도 겁이 났다. 그래도 우리 매장은 명품이라고 묵힐 옷도, 꺼낼 옷도 그리 많지 않아서 나오는 먼지도 적은 편이었다. 다른 의류 브랜드들은 어떨지 안 봐도 비디오다. 게다가 백화점에는 창문도 없으니 아무리 환풍기를 틀어대도 제대로 환기가 될 리 없다. 그 많은 먼지를 일하는 이들이, 쇼핑하는 고객들이 입과 코로 흡입하고 있는 셈이다.

비염만이 아니다. 포스에서 계산을 하는 경자 언니는 휴무날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고 왔다. 지금은 포스 직원들이 의자에 앉아서 일하지만 그렇게 된 지 얼마 안 됐다. 하루 종일 서있는 게 다리에 얼마나 무리가 가는지는 하루만 일해 봐도 안다. 몸이 바로 신호를 보낸다. 백화점 출근 이틀째 밤, 집으로 돌아와 혜수 언니가 알려준 대로 족욕을 하려고 바지를 걷다가 깜짝 놀랐다. 왼쪽 종아리에서 푸른 멍을 발견한 것이다. 어디 부딪힌 적도 없다. 그냥 서서 일해서 생긴 거다. 하지정맥류가 남 일이 아니라는 큰 깨달음을 얻고 급히 종아리를 꾹꾹 주물렀다.


욕실에서 나와서는 바로 컴퓨터 앞으로 가 스트레칭법과 서서 일할 때 편한 운동화를 검색했다. 오래 서 있어도 굽 낮은 구두만 신으면 안 아플 줄 알았는데 단화는 쿠션이 없어서 발뒤꿈치가 콕콕 쑤셨다. 비싸도 좋은 운동화를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떴다. 오랜 시간 인터넷을 헤맸지만 10시간씩 서서 일하면서도 발에 무리가 안 가는 신발을 찾기는 힘들었다. 어쩌면 내가 무리한 답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제야 백화점 교육 커리큘럼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화점에서 하루만 일해도 받아야 한다는 교육에서는 서비스교육, 소방 및 안전교육, 위조 상품권 판별법 등을 다룬 총무과 교육만 이루어졌다. 만약 백화점 경영진이 직원들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서비스를 하기를 원한다면 서비스교육에 앞서 하지정맥류 예방법, 틈날 때마다 할 수 있는 스트레칭 등 건강관리법을 가르쳐야 한다. 내 몸이 아픈데 웃으라고만 강요하면 억지웃음밖에 더 되겠냐는 말이다. 그건 진정한 서비스가 아니다.

여전히 서비스직에게 눈 앞의 의자는 '그림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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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선 늘씬한 모델이 몸에 딱 달라붙는 정장을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이 정도는 돼야지'라고 으스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속으로 혜수 언니의 말을 그림 속 그녀에게 그대로 돌려줬다. '너, 그대로 일하면 죽을 맛일 걸.' ⓒ sxc


흥분한 김에 한 마디 더 하자면 스트레칭법도 좋지만 손님이 없을 때는 의자에 앉아도 된다고 하면 안 되나? 대기할 때조차 등을 벽에 기대거나 짝다리를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아무리 봐도 가혹한 처사다.

백화점 사장 및 간부들에게 1주일만 10시간씩 서서 일해보라고 하면 그런 지침은 사라질 것이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서서 일하는 서비스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 덕에 마트와 백화점 포스에 의자가 생겼지만 여전히 서비스노동자들에겐 눈앞의 의자가 그림의 떡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편해야 서비스도 좋아지고 매출도 오른다는 두 수 앞을 경영진은 읽지 못한다.

어느 날 본사에서 유니폼 가이드라인을 알리는 메일이 왔다. 셔츠는 윗단추 두 개를 풀고 재킷이나 카디건 밑으로 소매가 약간 보이도록 입으라는 등 유니폼 지침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머리는 백화점 교육 때와 마찬가지로 어깨를 넘으면 하나로 묶든가 꽁지머리를 하란다. 자연스런 화장법도 친절하게 설명해 놨다.

혜수 언니가 동복으로 입을 카디건을 드라이해놨으니 그걸 입으면 된다고 얘기하면서 가이드라인 속 그림을 보더니 "저렇게 신으면 죽지"라고 한 마디 한다. 그림 속에선 늘씬한 모델이 몸에 딱 달라붙는 정장을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이 정도는 돼야지'라고 으스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속으로 혜수 언니의 말을 그림 속 그녀에게 그대로 돌려줬다.

'너, 그대로 일하면 죽을 맛일 걸.'

그리고선 내 발을 감싼 검정 신발을 쳐다봤다. 휴무날 사려다가 도저히 못 참고 취직 6일 만에 쉬는 시간을 반납하고 스포츠매장에 가서 산 스니커즈다. 내 사전에 세일기간도 아닌데 백화점에서 신발을 사는 일은 등록된 적이 없지만 사람이 궁하면 안 하던 짓도 하는 법. 그만큼 내겐 편한 신발이 간절했다. 백화점 교육 때 신발은 검정색 구두와 스니커즈만 가능하다고 했다. 신발 매장엔 쿠션이 좋은 운동화가 많았지만 검정색이 아니어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여러 매장을 돌다 거의 유일하게 검정색이던 스니커즈를 집어 들었다.

확실히 스니커즈가 단화보다는 편했다. 그렇다고 스니커즈가 내 다리건강을 책임질 거라고 마음 놓을 수도 없었다. 나처럼 스니커즈를 신고 일하는 혜수 언니가 갑자기 아침에 출근을 못하겠다고 전화한 적이 있다. 무척 괴로운 목소리로 언니는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니는 병원에서 무릎에 염증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고 몇 달 동안 쉬는 날마다 정형외과에 가야했다. 백화점은 직원들의 종합병원이나 다름없었다.

비타민제도 먹었는데 장염은 왜?

주위에서 계속 아픈 사람을 보니 나도 진경 언니처럼 내 건강은 내가 챙기자는 주의로 돌아섰다. 비타민제도 샀다. 꼬박꼬박 챙겨먹었다. 다리 찜질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그런 내 노력도 별로 소용은 없었다. 취직 1달여 만에 감기와 장염에 시달렸다. 내가 갑자기 기침이 심해지자 혜수 언니는 올 게 왔다는 듯 의무실에 가서 물약을 타오라고 말했다. 기침감기엔 그 약이 최고라면서 언니는 내 등을 떠밀었다.

지하식당 옆 작은 의무실엔 간이침대와 책상, 의자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의자 두 개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던 간호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맞는다. 의자에 앉을 필요도 없이 증상을 말하니 익숙한 듯 혜수 언니가 말한대로 물약을 지어준다. 간호사는 무심히 약을 건넸지만 효과는 혜수 언니의 말 그대로였다. 약국에서 산 감기약으로는 멈추지 않던 기침이 그 약을 먹고 나서는 잦아졌다.

태어나서 처음 걸린 장염은 감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집에서부터 속이 아팠지만 꾹 참고 출근을 했다. 매장에 나가서는 10분이 멀다하고 화장실을 찾았다. 고객에게 상품 설명을 하다가 화장실로 뛰어가기도 했다. 나중엔 서 있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얼굴이 노래진 날 보고서 혜수 언니는 빨리 점심을 먹고 와서는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고맙다는 얘기도 제대로 못하고 바로 가방을 챙겨들고서 병원에 갔더랬다.

혜수 언니도 몇 달 전에 장염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내가 고생한 얼마 후엔 매장 점장도 장염에 걸렸다. 반년 안에 한 공간에서 일하는 세 사람이 모두 장염에 걸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세 사람의 식습관이나 소화기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만큼 면역력이 떨어졌다는 진단에 손을 들련다.

백화점에서 영혼이 상처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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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우리 매장 안에만 본사에서 2개, 백화점에서 1개의 CCTV를 달아두고 있었다. ⓒ sxc


몸의 면역력뿐일까. 사실 백화점 노동자들의 마음의 면역력까지는 파악 못했다. 다만 백화점 안에는 직원들의 '힐링'을 담당하는 상담실이 있다는 건 알았다. 허나 워낙 직원들이 이동하는 동선과 떨어져 있어서 얼마나 이용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주변에서도 가봤다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의무실과 붙여 놓으면 직원들이 의무실 갈 때라도 한 번씩 볼 텐데, 그러면 의무실 간호사도 그렇게 무료해 보이지는 않을 텐데, 라는 주제넘은 생각을 잠깐 해보긴 했다.

그렇다면 당신의 영혼은 언제 손상을 잆었나, 라고 묻는다면 나는 "내내 조금씩"이라고 답하겠다. 스트레스 받지 않은 직업이 어디 있을까마는 백화점에서는 내내 '누가 날 보고 있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으로 자꾸 주위를 돌아봤다. 혜수 언니랑 얘기를 하다가도 이러다 서비스팀에 사진이 찍힐까 싶어 우리는 앞을 보고 말을 했다. 고객 응대를 하다가도 이 사람이 미스터리 쇼퍼가 아닌지를 의심하며 내 멘트를 돌아보곤 했다.

혜수 언니는 물건을 팔면 꼭 습자지를 일정하게 접어서 포장을 했다. 또 상품을 쇼핑백에 담고서는 꼭 리본을 묶었다. 고객이 대충 달라고 해도 언니는 꼬박꼬박 리본을 묶었다. 어느 날 내가 습자지를 잘못 접자 혜수 언니는 머리 위쪽 천장에 달린 물체를 가리키면서 본사에서 보고 있는 CCTV라고 했다. 본사에서 일러준 포장법대로 포장을 하지 않다가 걸리면 문제가 된다는 말과 함께….

알고 보니 우리 매장 안에만 본사에서 2개, 백화점에서 1개의 CCTV를 달아두고 있었다. 도난 방지용이기도 했지만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도 카메라 뒤 누군가의 감시 아래 있었다. 섬뜩했다. 내 영혼이 따뜻해지기엔 터전이 척박했다.

장염으로 조퇴한 다음 날 직원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있는데 근처 매장의 형숙 언니가 식판을 갖고 와 내 앞에 앉았다. 언니는 내가 전날 아파서 조퇴한 걸 알고선 괜찮냐고 안부를 물었다. 열다섯 살인 둘째딸이 어렸을 때 장염으로 두 번 입원했다면서 걱정을 많이 해줬다. 아직까지 몸이 다 낫기 전이라 배가 자꾸 꾸르륵거리는 게 신경 쓰여서 언니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언니는 내가 숟가락을 놓고 있는 걸 보고서는 "밥 다 먹었으면 일어나도 돼요. 우리에겐 황금 같은 시간이니까"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난 기다렸다는 듯이 "네"라고 답하고선 얼른 일어섰다. 금세 후회했다. 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서 스스로를 꾸짖었다.

'넌 애가 왜 이렇게 인정미가 없어졌니? 언니가 밥을 먹으면 얼마나 오래 먹는다고, 거기서 일어서고 난리야.'

백화점 안에서 점점 메말라가고 있는 건 아닌지, 순간 내 자신이 두려워졌다. 그곳에선 내 영혼이 차가운 날들이 계속됐다.
#백화점 #하지정맥류 #판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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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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