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보다는 전쟁이 떠오르는 나라, 베트남

[베트남의 문화유산 찾기 ①] 베트남의 세계유산

등록 2013.08.05 13:57수정 2013.08.1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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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9일부터 8월 2일까지 베트남의 세계유산을 찾아가는 여행을 했다. 베트남 중부에 있는 후에, 호이안, 미선유적을 보았다. 이들 문화유산 답사기를 쓰려고 한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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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 시내로 한강이 흐르고 뒤에 바나산이 보인다. ⓒ 이상기


이번 여행은 정말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여행 출발 일주일 전에 여행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가고자 하는 곳은 이란-페르시아 문명답사였다. 한국 문명교류연구소의 2013년 여름 실크로드 정기답사로 계획되었다. 그런데 두 달 전에 신청한 답사가 대기라는 이름으로 어정쩡한 상태가 되었다. 항공권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스리랑카 완전일주라는 패키지 여행상품을 신청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원이 안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부랴부랴 다른 코스를 찾다, 전부터 가고 싶던 다낭, 후에. 호이안 상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다행히 22명이라는 비교적 많은 사람이 신청을 했고, 우리도 그 팀의 구성원이 되어 6일짜리 여행(7월 29일부터 8월 3일까지)을 즐길 수 있었다. 사실 6일이라고 하지만 가는 날 오는 날을 빼면 4일짜리 베트남 중부지방 여행이었다. 베트남 하면 우리는 하노이와 호치민 시티를 생각하지만, 베트남의 고대 역사는 오히려 베트남 중부에서 번성했다. 그 흔적이 미선유적지, 호이안, 후에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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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유적지 ⓒ 이상기


4일간 우리는 미선유적지, 호이안, 마블 마운틴으로 알려진 오행산(五行山), 다낭, 하이번 고개, 바나산 등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큰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첫째 4일간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세 가지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셋째 날씨도 좋아 더운 여름치고는 관광을 하기에 괜찮았다. 넷째 가이드가 정말 성의를 다하는 게 보였다. 다낭 해변에서의 해수욕은 물론이고, 투본강 크루즈 등에서 관광객의 입장을 생각해 일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주마간산 격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 대단한 문화유산을 두세 시간 만에 주파를 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지만 패키지여행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둘째 박물관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게 유감이다. 다낭박물관은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보았고, 참 조각박물관(Museum of Cham Sculpture)은 아예 보지를 못했다. 그리고 미선유적지와 후에 그리고 호이안에 있는 박물관도 역시 볼 수가 없었다.     

베트남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몇 개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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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황궁 ⓒ 이상기


베트남에는 모두 7개의 세계유산이 있다. 이중 5개가 문화유산이고 2개가 자연유산이다. 문화유산으로는 후에(Hue), 호이안(Hoi An), 미선유적(My Son), 하노이 탕롱(Thang Long) 성채, 호(Ho) 왕조 성채가 있다. 이들 중 나는 거의 10년 전인 2004년 2월 하노이 탕롱 성채를 보았다. 그리고 이번에 후에, 호이안, 미선유적을 보게 되었다. 자연유산으로는 하롱베이와 퐁나케방이 있다. 하롱베이 역시 2004년에 보았다. 그러므로 전체 7개 중 5개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베트남 문화유산의 70%를 본 셈이다.


이번에 본 후에, 호이안, 미선유적은 1990년대 세계유산이 되었다. 후에가 가장 빠른 1993년에, 호이안과 미선유적이 1999년에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들은 모두 베트남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후에는 응유엔(Nguyen) 왕조의 수도로 150년간 번성했다. 후에의 원래 이름은 푸추안(Phu Xuan·富春)이었으며, 1802년 응유웬 왕조의 수도가 되면서 후에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호이안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동남아 무역의 거점도시였다. 호이안이라는 이름도 '모이기 좋은 곳'이란 한자어 회안(會安)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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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야경 ⓒ 이상기


미선유적은 4세기부터 13세기까지 천년동안 유지된 참파왕국의 사원이다. 참족은 4세기 경 그들만의 사회를 형성했다. 도시를 만들고 왕조 통치를 시작했으며, 산스크리트어와 힌두교를 받아들였다. 7세기 이후 참파왕국이 좀 더 강성해졌고, 북쪽의 하틴(Ha Tinh)부터 남쪽의 빈투안(Binh Thuan)까지 다스리는 커다란 왕국으로 발전했다. 875년께 인드라푸라(Indrapura)에 수도를 정하고 978년까지 번성했다. 인드라푸라는 인드라의 도시라는 뜻이며, 인드라는 리그베다(Rig Veda)에 나오는 신들의 제왕이다. 인드라푸라는 현재 미선유적지 근방에 있었다.

다낭 주변에 있는 세 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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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의 금포향현 ⓒ 이상기


후에에는 황궁과 황릉 그리고 사원이 있다. 황궁은 150년 지속된 응유엔 왕조의 궁성이다. 이곳에는 태화전(太和殿), 연수궁(延壽宮), 세조묘(世祖廟) 등 정궁과 침전 그리고 종묘가 있다. 태화전에서는 정치가 이루어졌고, 연수궁에서는 생활이 이루어졌다. 세조묘는 우리식의 종묘로, 역대 왕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황궁은 가로 세로가 각각 2㎞에 이르고 높이가 5m나 되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안에 가로 세로 각각 500m인 황궁이 있고, 그 안에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말 그대로의 자금성(Purple Forbidden City)이 있다. 후에 황궁은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을 모방해 만들어졌다.

호이안에는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만들어진 사원과 상가 그리고 상인조합이 있다. 이 기간 동안 호이안은 동남아 해양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큰 역할을 했다. 유럽의 포르투갈, 네덜란드, 아시아의 인도, 중국, 일본의 무역상들이 이곳에 거주하며 물건을 사고팔고 향료를 거래했다. 이때 생겨난 건축물로는 올드 마켓, 복건회관 금산사(金山寺), 천후궁(天后宮), 광조회관(光趙會館), 내원교(來遠橋), 금포향현(錦鋪鄕賢) 등이 있다.

금포란 비단을 파는 상점을 말하고, 향현은 훌륭한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금포향현은 비단장수로 성공한 사람을 모시는 일종의 사당이다. 그리고 전통예술 공연의 집, 역사문화박물관, 민속박물관 등으로 전용된 건물도 있다. 그런데 이들을 보기 위해 호이안 올드 타운에 들어가려면 표를 사야 한다. 그것은 호이안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일종의 기부금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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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유적지의 도깨비 문양 ⓒ 이상기


미선유적지의 사원에는 힌두교의 유산이 남아 있다. 힌두교의 상징인 링가도 보이고, 시바신상도 있다. 또 사원의 기둥과 주춧돌도 여기저기 널려 있다. 그리고 건물 옆에는 비석도 여럿 보인다.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코끼리도 있고, 우리의 기와에서 볼 수 있는 도깨비 문양도 볼 수 있다. 유적의 상당부분이 밀림 속에서 폐허화되고 있지만, 이들 건축과 조각들에서 우리는 당시 힌두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

베트남은 어떤 나라인가

베트남 하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것이 베트남 전쟁이다. 1965년부터 1975년까지 계속된 이 전쟁에 우리 군인들이 참전했기 때문이다. 1965년 3월 공병부대인 비둘기부대가 파병되었고, 10월 보병부대인 맹호부대와 청룡부대가 파병되었다. 1966년에 보병부대인 백마부대가 추가로 파병되었으며, 1973년 이들이 귀국할 때까지 파병된 총 인원은 30만 명에 이르렀다. 베트남 전쟁을 통해 우리는 5000여 명이 전사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군장비 현대화와 경제개발이라는 반대 급부도 얻을 수 있었다는 시각도 있다.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 현대사의 큰 상처다. 전쟁 결과 나타난 국토의 황폐화, 대규모 난민의 발생, 이웃 국가와의 국경 분쟁 등으로 베트남은 전후 10년 이상 큰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남북 분단을 극복할 수 있었고, 1986년부터 시작된 도이모이(Doi Moi : Renovation)정책으로 경제와 사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도이모이의 핵심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도입이다. 사기업을 허용하는 등 경제를 자유화하고, 서방과 동아시아로부터 자본투자를 받아들였다.

1990년대 들어 베트남은 7~8%의 고도성장을 기록한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글로벌 기업이 투자하면서 제조업 분야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더욱이 베트남은 2007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경제개혁을 가속화하고 있다. 2011년에는 미국 시티은행이 베트남을 향후 40년 동안 성장잠재력이 큰 11개국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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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쪽에서 바라 본 다낭 ⓒ 이상기


첫째 국민총생산과 1인당 국민소득의 증대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인구가 9000만에 이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1527달러에 불과하다. 그리고 빈부격차도 심각한 편이다. 당원과 경찰공무원의 권력남용과 같은 사회문제도 있다. 여기에 아직도 여성의 사회진출과 여권신장이라는 과제도 안고 있다. 이들 문제를 해결해야만 베트남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은 이제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의 전환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전체 산업에서 농업이 차지는 비중이 20% 이하로 떨어지고 있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물류와 서비스 등 3차 산업의 비중을 늘려나가면, 베트남의 미래도 점점 더 밝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정치적인 면에서 베트남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아직도 공산당 1당 독재국가이며, 공산당 서기장이 모든 정책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이 국가의 원수로 외교와 국방을 책임진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2인자에 불과하다. 총리 역시 정부 수반으로 경제와 사회를 담당하지만 서열 3위의 행정가일 뿐이다. 베트남은 정치적인 면에서 진정한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정치와 경제의 두 수레바퀴가 공조하며 진정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 중부 다낭, 후에, 호이안 여행 일정
<7월 29일>
오후 7시                         인천공항 출발
오후 9시30분                   다낭공항 도착

<7월 30일>
오전                               다낭 한강(Song Han: 汗江) 산책
오후 1시-2시30분              미선유적지 관광
오후 3시40분-8시15분        호이안 관광

<7월 31일>
오전 10시40분-11시40분     오행산 관광
오후 2시-5시                    다낭해변(Pham Van Dong Beach) 해수욕
오후 7시-9시                    다낭 야경 관광

<8월 1일>
오전 9시30분-10시30분      다낭대성당, 다낭박물관 관람
오전 11시-오후 1시           하이번 고개, 랑꼬비치(Lang Co Beach)
오후 2시20분-4시45분       후에황궁, 티엔무사(Chua Thien Mu: 天姥寺),
                                    카이딘황릉(Lang Khai Dinh) 관광
오후 6시30분-8시30분       후에 야경 관광

<8월 2일>
오전                              후에에서 바나산으로 이동
오후 1시15분-4시45분       바나산(Ba Na Hills) 관광
오후 6시-6시 30분            영응사(靈應寺) 관광
오후 10시30분                  다낭공항 출발

<8월3일>
오전 5시                          인천공항 도착

#베트남 #후에 #호이안 #미선유적지 #다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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