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e사람43화

"재벌체제 극복없이 한국미래 없다
독일 보수정권 나서 경제민주화 이뤄"

[e사람] 기자 출신 30년 독일전문가 김택환 교수의 충고

등록 2013.08.07 09:24수정 2013.08.0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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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전문가인 김택환 경기대 교수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가 크다"며 경제민주화의 철학도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고 했다. ⓒ 남소연


"글쎄요. 이미 말을 한 것 같은데…."

그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와의 인터뷰가 끝날 즈음이다. '혹시 박근혜 대통령과 마주할 기회가 있다면 무슨 말을 해드리고 싶은가'라고 물었다. 김택환 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 교수에게 말이다. 30여 년째 독일과 인연을 맺어온 그는 말 그대로 '독일 전문가'다. 김 교수는 "박 대통령도 우리 사회의 문제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로는 이미 한계에 와 있지 않은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 극복이 최우선이고, 이미 국민에게 약속한 경제민주화부터 제대로 실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대통령의 결단도 중요하다고 했다. 또 사회경제시스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개혁도 필요하다고 했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를 우리식으로 발전시켜나가자는 제안도 내놨다. '지금이라도 현 정부가 독일의 정책 가운데서 가져다 쓸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의 답이다.

"(곧장) 많죠. 특히 기업이나 고용관련 여러 정책들이 그래요.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정책만 제대로 배워서 집행해도 크게 달라질 거예요. 지금 우리가 대기업에 지원해주는 각종 연구개발과 세제지원을 중소기업으로 돌려도 아마 효과가 상당할 거예요. 물론 지금껏 중소기업 지원 대책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대기업에 편중돼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기자 출신 30년 독일전문가의 충고, "이대로 가다간 미래가 없다"

그는 바쁜 여름을 나고 있었다. 지난 6월엔 독일도 다녀왔다. 최근에 책도 냈다. <넥스트 이코노미>(메디치출판사)다. 지난해 독일사회 전반을 다룬 <넥스트 코리아>를 펴낸 데 이어 두 번째 책을 냈다. 독일식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의 고찰이다. 지난 2일 그와 마주 앉았다. 김 교수는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이다. 특히 재벌개혁에 대한 그의 목소리는 어느 개혁적인 지식인보다 컸다.

- 재벌개혁은 그동안 많은 정권이 앞다퉈 한다고 해왔다.
"(웃으면서) 그랬다. 그리고 예전보다 일부 성과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본질은 그대로 아닌가. 오히려 일반 서민들 입장에선 (재벌의 골목상권 진출 등으로) 더 힘겹게 살고 있고…."


- 현 정부 들어 재벌개혁을 위한 법률 개정 등이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시대적 요구인 만큼 (국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우리 재벌은 알다시피 공과(功過)가 있지 않나. 재벌 스스로 개혁하는 게 옳다. 개혁을 하지 않으면 죽게 된다. 공룡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 경제가 이대로 가기만 하면 미래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 여전히 일부에선 경제위기 속에서 경제를 먼저 살린 다음에 개혁을 해도 하자는 의견이 많다.
"(고개를 끄덕이며) 물론이다. 바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민주화가 필요한 것이다. 민주화의 요구가 가장 센 곳이 바로 중산층이다. 중산층이 튼실해야 위기를 극복할수 있다. 대기업 중심의 담합, 불평등한 계약과 하청관계의 피해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지 않은가."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비롯해 여야 모두 경제민주화를 외쳤잖아요. 지금 보세요. 일부 법률 고치는 것을 두고 '재벌 죽이기', '재벌 때리기' 등 이야기가 나오죠. 정치권과 언론, 학자들이 이런 프레임을 만들어서 경제민주화를 왜곡하고 선동하고 말이죠. 이런 식이면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됩니다. 99%가 힘들어 죽겠다고 하는데 말이죠. 문제는 잘사는 1%도 오히려 불안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냥 놔두면 민란(民亂)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독일엔 재벌이 없다... 보수정권이 나서 복지국가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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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환 교수는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이다. ⓒ 남소연


그의 입에서 꺼리낌없이 '민란(民亂)'이라는 말까지 튀어 나왔다. 자본주의 총본산이라는 미국에서 일어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상징적이다. 김 교수는 "미국 월가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그렇게 모여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찾으려는 학자들이 다시 들여다본 나라가 바로 독일"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도 "독일을 배우자"고 말할 정도였다.

- 최근 유럽 재정위기 속에서도 독일만 거의 유일하게 견고한 성장을 보인다.
"실제 여러 경제수치들이 보여준다. 작년 기준으로 실업률은 유럽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 4%이고, 경제성장률은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3%대다. 수출만 따지고 봐도 중국을 제치고 경상수지가 1위다."

- 독일도 한때 '유럽의 병자'라는 말이 돌 정도로 어려웠던 때가 있지 않았나.
"(고개를 끄덕이며) 1990년대 말 통일비용과 함께 사회보장지출 등으로 실업률이 크게 높았던 때가 있었다. 2002년에 슈뢰더 총리가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내놨다. 노조 출신 총리였지만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복지혜택을 과감히 줄이고,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면서 개혁을 단행했다. 물론 그 이전부터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체제의 뿌리가 바탕이 됐다."

-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것이 잘 와닿지 않는다.
"2차세계대전 후 독일 정치인과 학자들의 고민이 나치즘과 공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경제체제를 건설하는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독일 재벌이 해체의 길을 걷는다. 이어 사회적 시장경제가 등장하게 된다.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에 기반을 둔 시장의 경쟁을 인정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선 정부가 개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김 교수의 설명은 계속됐다. 그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가 크다고 했다. 경제민주화의 철학도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고 했다.

"독일의 에르하르트 총리라는 사람이 있어요.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를 시스템으로 장착시킨 인물인데, 독일에서 우파이자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당 출신이예요. 그가 내놓은 슬로건이 '모두를 위한 번영'이에요. 독일 보수파가 나서서 보편적인 복지와 공평한 시장경제를 외치고 나섰던 것이죠."

경제민주화로 성장 이끈 독일... 한국형 성장해법을 찾다

그와 마주 앉은 시간이 금세 1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중앙일보> 미디어 전문기자로 10년 넘게 일을 해온 그는 왜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독일 알리기에 나섰을까. 경북 의성 출신인 그는 영락없는 경상도 사나이였다. 유신시절 대학을 다니던 그는 1983년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독일 본 대학에서의 유학시절이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문화적 쇼크가 컸다"고 했다. 이미 대학 등록금도 없고, 외국 유학생이던 자신에게도 동등한 사회보장제도가 유지되고, 대학가의 반전(反戰)운동도 활발해서 말 그대로 '쇼크'였다고 했다. 그에게 독일에서의 인상깊었던 경험을 말해달라고 했다. 그의 회상이다.

"독일 남부 슈트트가르트에서 3개월 넘게 한 가정에 머문 적이 있어요. 학생인 저를 아들처럼 보살펴준 노부부가 있었는데, 참 많은 공부를 했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문학과 예술 등 이야기도 하지만, 빠지지 않는 것이 토론이에요. 그것도 정치적 이슈를 가지고 말이죠. 대부분 독일 사람들이 그래요. 검소하고, 자신의 일에 대한 소명의식도 분명하고, 또 국민들 스스로 정치에 대한 관심도 높죠."

- 요즘 우리 정치권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에서도 독일 모델에 관심이 높다.
"우리가 해낸 한강의 기적이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에서 유래하지 않았나. 물론 독일사람들은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웃음). 독일과 한국은 유사한 점이 많다. 둘다 전쟁을 통해 강대국에 의해 분단을 겪었고, 경제기적과 수출강국으로 도약한 점 등이 그렇다. 민족도 단일민족으로 평등의식이 강한 것도 있고…."

그는 "독일식 경제민주화를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하기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할 조건이 있다"고 했다. 독일의 민주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독일엔 토론과 타협의 문화가 형성돼 있다"면서 "독일 헌법도 좌우 정치인의 타협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 독일식 경제민주화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만한 것들이 있다면.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지역간의 경제민주화다. 부자 도시 예산을 가난한 도시로 이전하는 '균형재정' 정책이 한 예다. 특정 지역으로 경제집중이 일어나지 않도록 법으로 규제를 한다. 둘째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민주화다. 정부는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나 독점 횡포를 적극적으로 감시한다. 그리고 가혹할 정도로 처벌한다. 앞서 말한 대로 독일엔 재벌이 없다. 황제경영이라는 말도 없고, 일감 몰아주기 등도 찾아볼 수 없다."

- 노사관계에도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이 많은 것 같다.
"(끄덕이며) 물론이다. 독일에선 사장이나 경영자가 노동자 위에 군림하지 못한다. 평등한 관계다. 노사관계의 민주화가 확실히 보장돼 있다. 그 유명한(?) 노사공동결정법으로 노사가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독일 노사는 투쟁관계가 아닌 '사회적 파트너' 관계다."

그는 이어 나머지 독일의 경제민주화로 부자와 가난한 사람과의 격차 해소와 외국인 차별이 없는 점을 꼽았다. 김 교수는 "독일에선 돈이 없어 학교에 못 다니거나 병원에 못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철학이 있다"고 했다. 누구나 교육 또는 재교육을 받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때 국민경제도 성장한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그와의 대화에서 인상깊었던 말이다.

"결국 사람인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하면 사람이 나와야죠. 독일엔 경제정치인들이 있어요. 앞서 말한 에르하르트 총리를 비롯해 헬무트 콜, 메르켈 총리도 그렇죠. 유능하고 도덕적이고 국민적 신뢰도 높아요.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이런 사람들이 나와야죠. 물론 지금 대통령과 국회도 나서서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경쟁력을 높이는 것과 사회안전망을 동시에 구축하는 개혁이 절실하죠. 이것으로 성장과 고용,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게 우리 살길이 아닌가 싶어요."
#넥스트이코노미 #김택환 #독일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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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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