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마지막 소원, 산티아고 순례길 걷는 것"

[찜! e시민기자] '여보! 일어나' 연재 중인 김재식 시민기자

등록 2013.08.12 11:51수정 2013.08.1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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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올해부터 '찜! e시민기자'로 선정된 시민기자에게는 오마이북에서 나온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편집자말]
지난달 <오마이뉴스> 광주지역 투어에서 시민기자들을 만났다. 책상에 앉아 시민기자들의 기사만 보다가 직접 만나니 반갑기도 했지만, 살짝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우려했던 걱정이 현실로 다가와서 많이 당황했다. 한 연륜 있는 시민기자가 내 목에 난 상처를 보고 알은체했기 때문. 더운 날에도 나름 철두철미하게 가렸는데, 들킨 것이다.


내가 가린 상처는 3년 전 발병한 갑상선암 때문에 갑상선을 제거하기 위해 난 것이다. 길지 않은 투병생활이었지만 나름 고통스러웠고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기에 잊히길 바랐다. 또 누구도 알은체하지 않기를 바랐다. 부끄러운 내 삶의 한 페이지처럼.

이런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지, 최근 <오마이뉴스>에서 본 그의 기사는 무조건 감추려고만 했던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러면서 자꾸 찾아보게 되는 그의 기사는 중독성도 강했다. 매번 그 용기에 감탄했다. 또 그가 만난 사람들에게 감동했다.

나를 부끄럽게 했던 그는 바로 '[간병일기] 여보! 일어나'를 연재 중인 김재식 시민기자다. 나에게 용기를 준 김재식 시민기자를 8월 둘째 주 '찜!e시민기자'로 선정해 소개한다. 아내를 향한 그의 사랑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상처를 가감 없이 보여준 그의 용기에, 그들을 응원하는 따뜻한 사람들의 감동에 박수를 보내며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지금부터 그의 감동스러운 사는이야기를 들어보자.  

☞ 김재식 시민기자가 쓴 기사 보러가기

"호랑이 남편, 아내를 토끼처럼 윽박지르며 살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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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방문한 사진촬영봉사팀들이 아내를 억지로 앉히고 우리 두 사람에게 연기를 시킨 사진입니다. ⓒ 김재식



- <오마이뉴스> 독자에게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또,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도 간략하게 전해주세요.
"저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아주 부자고, 잘난 사람인 줄 알고 세 아이와 아내에게 큰소리를 치고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작스러운 질병 하나가 집으로 들어오니 우르르 무너지더군요. 마음만으로는 부자가 못 되는 걸 깨달았지요.

6년 차 병원에서 중증 아내를 돌보며 지내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잘하려고 애쓰며 사는 중입니다. 경상도 남자가 서울사람보다 나긋해져 가는 중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행복한 가난뱅이가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의 적응 능력은 신기해서 병원이 집처럼 되어가기도 합니다. 안 그러면 못 견디기에 내가 나를 속이고 달래고 그럽니다."

- 2004년 4월 8일 <오마이뉴스>에 가입하셨습니다. 한동안 안 쓰다가 요즘 기사를 많이 쓰는데 된 계기가 있다면.
"<오마이뉴스>는 보기만 하기도 충분했습니다. 바른 소리, 내 편,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기도 하고, 워낙 잘 쓰는 분들이 많기도 하고요. 그래서 간혹 열 받는 기사에 댓글이나 한 번씩 달고, 뭐 그렇게 지냈지요.

결정적으로 글을 올리게 된 동기는 '10만 원 외식권'에 눈이 멀어서입니다. '당신의 혐오, 나의 차별'이라는 기사 공모에 응모했습니다. 그거 받으면 "아내와 딸에게 맛있는 스테이크를 한 번 사주리라!"고 욕심을 냈지요. 그러다가 다른 글도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뭐, 몇 년을 간병하며 쓴 일기들이 있으니 그건 쓸 수 있겠다 싶었지요. 욕심이 잉태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성경은 말하는데 제게는 큰 복이 되었습니다! ^^" (관련기사: 장애인들이 불편? 나는 당신들이 불편하다... )

- '간병일기, 여보! 일어나'를 연재하며 주로 아내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용기가 대단한 것 같은데 지인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아내가 아프기 전에는 제가 호랑이였죠. 아내를 토끼처럼 윽박지르며 살았지요. 가끔 지는 척은 했지만, 속으론 만만하기만 했지요. 그런데 '정말 이번엔 이별하게 될 것 같구나!' 하는 중환자실을 서너 번 경험하고 나면서 제가 아내를 많이 사랑한다는 걸 알았지요.

결혼하고 20년이 지나서 나이 오십에 사랑이 어떤 건지 처음 제대로 느꼈습니다. 그러니 무슨 말을 못하고 누구 시선이 걸리겠어요? 그냥 솔직하게, 따뜻하게 대놓고 하다 보니 뜻밖에 사람들이 좋아하더군요. 서로 '봐라, 봐!' 아님 '본 받아라 좀!'이라고 하면서. 그래서 용기를 냅니다."

- 기사를 읽다 보면 자녀들이 참 착하고 바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지면을 통해 자녀에게 한마디 한다면.
"가끔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요. 사실 아이들은 기대치보다 훨씬, 남들의 염려를 벗어나 똑바로 살아주었어요. 집이 쑥대밭이 되고 난파선의 난민처럼 된 6년여 동안, 참 고맙지요.

위의 두 아들들에겐 어릴 때 엄격하게 했던 기억들이 참 미안해요. 지금 이럴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래도 막내딸은 부모 노릇 경험과 반성 덕분에 듬뿍 사랑해주었지요. 매 한 번 없이, 그런데 가장 필요한 초등학생 고학년 무렵부터 혼자 두고 우리는 병원을 떠돌았지요. 그럼에도 세 아이는 공부든, 군 복무든 잘 해내고, 하루아침에 집도 방도 없어진 상황에도 원망 없이 잘 버텨주었어요. 내가 어쩌자고 이 험한 세상에 아이들을 데려만 놓고 잘 돌보지도 못하면서, 무책임한 부모가 되어 버렸나 자책합니다. 혹시 이 '간병일기'를 나중에 책으로 누가 내준다면 아이들에게 유일한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습니다. 부모인 우리도 느닷없이 주어진 불행에도 열심히 살았다는 기록으로..."

- 최근 기사에서 좋은 기사 원고료가 많이 들어왔네요. 어떻게 쓰셨는지요. 또 어떤 마음이 드는지요.
"좋아요! ^^, 그 덕분에 한 5년 동안 단돈 만 원도 돈을 벌지 못했던 제가 큰아들 생활비로 20만 원을 주었어요. 5년 만에 처음으로, 큰아들은 등록금 대출도 부담된다고 유급 군인을 자원하여 1년을 추가 근무하여 3년을 복무하고 나왔습니다. 그 돈으로 등록금은 국립이라 어찌 버티는데 밥값이랑 과 회비, 책값 등 작은 용돈도 없어 애먹더군요. 밥 한 그릇 천 원, 반찬 두어 개 천 원, 그렇게 2천 몇 백 원짜리 세끼를 사 먹고 버티는 게 딱했지요. 그러니 <오마이뉴스>가 아버지된 제 체면을 세워주었지요!"

- 시민기자를 하면서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짐작은 했지만, <오마이뉴스> 독자층이나 파급력이 참 크다는 걸 확인했어요. 방송국 한 곳에서 모금용 프로그램에 출연시켜주겠다고 연락이 왔었고, 또 한 곳은 복지 문제를 다루는 기획프로그램에 실제 사례자로 인터뷰를 좀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사를 본 아는 분들이 자세한 내용은 모르다가 그렇게 힘들었구나! 하고 미안하다는 말도 전해왔어요. 안 그래도 된다고는 말은 했지만, 이해받고 알아준다는 그 사실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더군요."

"우리 부부의 마지막 소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어요"

- 기자님의 기사를 보면 가슴이 뭉클할 때가 많습니다. 힘들고 슬픈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언제 웃는지요? 또 한 달간 휴가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지요?
"한 달이나 휴가? 그럼 '꺄악!'하고 기절해서 한 20일은 보내지 않을까요? 그동안 이틀, 삼일만이라도 좀 쉬고 길 떠나서 걷다가 오고 싶다고 소원을 빌어도 안 되는 형편이었으니... 정말 병원에 둔 아내를 걱정하지 않고 한 달을 보낼 수 있다면 우리 부부의 마지막 소원이자 계획이었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고 싶습니다.

지금은 거의 포기한 꿈이지만 짧게 시간이 난다면 제주도 올레길이라도 대신 걷고 싶어요. 아무도 없이 마냥 며칠을 걷고 또 걸으면서 거의 비운 제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지 좀 더 새기고, 그동안 애쓴 저를 위로하고 싶어서요. 병원에서 산 5년 정도 기간에 아내 곁을 비우고 밖에서 잔 날은 딱 하루입니다. 막내딸이 응급실에 실려간 날, 밤에 응급실로 달려가서 날을 새고 다음 날 아침에 돌아왔던 딱 하루, 그러니 한 달은 꿈 같은 꿈입니다."

- <오마이뉴스> 기사 중 주로 많이 보는 기사는 어떤 것인가요?
"아무래도 정치, 사회 이슈에 대한 기사와 여러 시각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여행 쪽 기사들을 재미있게 봅니다. 예전 정민호 시민기자의 산티아고 길, 문종성 시민기자의 글도 잘 보았고요. 물론 거의 메인에 오른 글들은 거의 보는 편입니다. 늘 감탄하면서요. '야, 이렇게 글을 잘 쓰는 분들이 부럽다!'라고 생각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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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환우를 위한 성탄음악예배에 집사람과 참석했던 날의 사진. ⓒ 김재식


- 지금껏 쓴 기자님의 기사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기사가 있다면?
"'간병일기'만 썼어요. 일기 형식의 사실 기록이나 무거운 분위기들이 다 바닥에 있어서 좀 자신있게 마음에 든다고 하기가 그렇네요. 채플린의 인터뷰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느 기자가 '당신의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질문하자. 그랬다지요? '다음!'이라고, 다음에 올 그 무엇이 가장 뛰어난 작품이 될 거라는 그의 말에 참 공감했습니다. 저도 아직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은 앞으로 쓰는 기사에 있다는 자세로 쓰겠습니다."

- 앞으로 어떤 기사를 쓰고 싶나요? 계획이 있다면 간략하게 써 주세요.
"소소한 생활 속에서 재미도 있고, 아름다운 깨달음을 나누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고요. 큰 사건이 있어야만 시선을 끌고 공감을 부르는 글이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고, 대수롭지 않은 일, 감정들이지만 쌓이면 사는 행복을 좌우하는 그런 내용을 같이 쓰고 읽고 싶어요."

- 앞으로 시민기자로 활동하게 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의 가장 가깝고 솔직한 이야기나 관심을 가진 분야를 꾸준히 물어보고 대답을 구하는 글들을 써주면 좋겠어요. 누구도 그런 사람만큼 잘 이해하거나 경험할 수 없잖아요? 책이나 글은 간접경험으로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는 귀한 세계잖아요. 그 세계를 만드는 분들이 시민기자라고 생각해요. 글에서 진심과 깊은 시선을 느끼면 생판 모르는 분야도 감동하게 되더군요."

- 그밖에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모두 독자이면서 그 글들이 만들어지는 세상의 주인공이지요. 어떤 잘난 사람이거나 힘 가진 단체라도 세상의 주인공인 사람을 낮추어보고 수단으로 삼거나 상처를 입히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 독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기사를 보고 각자의 생각과 같은 것을 발견하는 재미로 읽지만, 그 뒤쪽의 연결에는 행동이 있어야 하고, 때로는 피해도 감수하는 저항도 당연히 한다는 자세였으면 합니다. 그게 아니면 자칫 힘없는 사람들의 놀이터거나 놀이로 전락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미 <오마이뉴스> 독자들은 충분히 자랑스러운 삶의 동료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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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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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유를 꿈꾸는 철없는 남편과 듬직한 큰아들, 귀요미 막내 아들... 남자 셋과 사는 줌마. 늘, 건강한 감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 남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수련하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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