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 속에 숨겨진 참파사원

[베트남의 문화유산 찾기 ③] 미선유적지

등록 2013.08.18 10:55수정 2013.08.1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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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유적지는 어떤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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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유적지 입구의 다리 ⓒ 이상기


미선유적지로 가려면 호이안을 지나가게 된다. 우리는 농누옥(Non Nuoc) 해안을 따라 호이안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레바트루옌이라는 베트남식 레스토랑이다. 이곳에서 나는 베트남 사람들도 새 기르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원의 새장에 온갖 새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구관조 비슷한 녀석은 불안한지 새장 안을 계속 옮겨 다닌다. 또 온갖 꽃들이 정원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베트남 사람들도 꽃과 새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미선유적지는 투본강(Thu Bon River) 중하류에 위치한다. 투본강은 쾅남(Quang Nam) 지역의 대표적인 강으로 라오스와의 국경 부근에서 발원한다. 이 강은 프라오, 탄미, 캄둑과 같은 중상류 도시를 지난 다음 호이안에서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미선유적으로 가는 길은 호이안에서 투본강을 따라 나 있다. 버스는 투본강을 건너고 철로를 지나서 1시간쯤 후 미선유적지 입구에 도착한다. 입구에는 매표소와 미선박물관(My Son Museum)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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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유적지 지도 ⓒ 이상기


박물관을 베트남 사람들은 바오탕(Bao Tang)이라 부른다. 그럼 미선은 무슨 뜻일까? 알고 보니 한자로 미산(美山)이다. 그렇다면 미선유적은 아름다운 산에 있는 유적이 된다. 우리는 이제 미선유적지로 들어간다. 다리를 건너고 숲을 따라 한참 들어가자 버스 주차장이 나온다. 우리는 이곳에서 내려 유적지까지 걸어 들어간다. 일반적으로 답사는 길을 따라 B,C,D지역으로 간 다음, A지역, G지역, E,F지역을 보고, 나오면서 K지역을 들르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길을 잠시 벗어나 H지역에 먼저 들른다.

H지역은 시바 신전으로, 4개의 구조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중심 사원인 칼란(Kalan), 강당인 만다파(Mandapa), 탑문인 고푸라(Gopura), 탑인 카사그라(Kosagraha)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으로 대부분 파괴되고 현재는 칼란의 서쪽 벽만 남아 있다. 13세기 때 작품으로 크메르의 바이온(Bayon) 사원와 같은 시대로 보고 있다. 칼란의 벽을 살펴보면 사암으로 만든 벽돌 건물이다. 이곳에 여덟 개의 팔을 가진 시바가 춤을 추는 장면이 묘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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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유적의 연꽃봉오리 ⓒ 이상기


그런데 여기서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파괴된 벽 옆에 서 있는 연꽃봉오리다. 하나는 받침이 없고, 다른 하나는 복련 받침이 있는 완형이다. 완형의 꽃봉오리에서 나는 유럽 고전주의에서 말하는 미의 기준인 '고귀한 단순(Edle Einfalt)'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래는 원형 받침이고, 위는 원형이 가미된 사각뿔이다. 그곳에 연꽃잎을 조각해 넣었는데, 그 아름다움에 숨이 막힌다. 언뜻 보면 포탄 같기도 한데, 베트남 전쟁이 가져다준 선입견 때문이다.

미선의 핵심사원 구경하기

H지역을 나온 우리는 길을 따라 유적관리사로 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유적 전체 개념도를 다시 한 번 살펴본다. 그리고 바로 핵심사원이 있는 B,C,D지역으로 간다. B사원과 C사원이 나란히 있고, 그 뒤에 D사원 지역 유물이 산재해 있다. B사원과 C사원은 직사각형 건물(Kalan)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사원 내부에는 가운데 성스러운 산 메루(Meru)가 있다. 사원 안에는 시바신과 링가가 있고, 벽면에는 무희 압사라, 코끼리 같은 동물상이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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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잘 남아있는 사원의 벽과 부조 ⓒ 이상기


우리는 먼저 C사원을 살펴본다. 이것은 8-12세기에 만들어진 신전인데, 1968년 미군에 의한 폭격으로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 사원은 아래에 직사각형의 바닥이 있고, 그 위에 제단이 만들어졌으며, 상층부에 지붕을 얹은 형태였다. 그런데 지금은 지붕은 다 날아갔고, 제단도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제단 위에 있던 시바신의 부조와 조소가 일부분 남아 있다. C사원에서도 사원의 외벽과 주춧돌 일부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B,D사원도 파괴가 심한 편이다. 그러나 벽은 대체로 남아 있고, 밖에 팔각형으로 깎거나 선을 표현한 튼튼한 기둥을 볼 수 있다. 그 옆에는 시바신의 부인 샥티신을 상징하는 요니도 보인다. 벽 안 내부에는 시바신을 상징하는 링가가 요니 위에 놓여 있다. 이것을 링가요니라 부른다. 요니가 여성성의 상징이라면 링가는 남성성의 상징이다. 벽에 남아있는 문기둥도 예사롭지 않다. 받침과 기둥 그리고 기둥머리를 정교하게 조각해 놓았다. 국내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죽절문 석주를 연상시킨다. 한 옆으로는 절에서 보던 석조(石槽)가 놓여 있다. 석조에는 물이 가득 고여 있다. 이들을 보면서 나는 힌두교와 불교의 뿌리가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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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유적의 머리가 잘려나간 신상 ⓒ 이상기


사원 주변에는 비석, 주춧돌, 석상, 석상좌대가 놓여 있다. 비석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산스크리트어로 보인다. 주춧돌은 사원 건축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주변에 널려 있다. 석상은 두 가진데, 한 종류는 신상이고 다른 한 종류는 압사라로 불리는 천상의 여인이다. 신상은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있는 자세인데 머리가 잘려 나갔다. 가슴과 허리, 손목과 발목의 장식이 아름답다. 머리만 있다면 함께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석상의 좌대에는 수많은 힌두교와 불교 신상이 앉거나 서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신전 안 유물전시관에서 만난 조각품들

나는 이제 D지역의 중심사원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 내부에 신상과 조각 등 일부 유물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곳 미선유적의 조각 상당수는 다낭의 참조각 박물관으로 옮겨졌지만, 일부 유물이 이곳 간이 유물전시관에 보관되고 있다. 그것은 이 사원의 사면 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천정에는 유물을 보호하기 위해 판넬로 덮개를 만들어 씌웠다. 사원 입구에 보니 조금은 색다른 조각이 세워져 있다. 반원형의 석판에 한 쌍의 신상을 고부조로 새겼다. 얼굴부분이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면 반인반수의 신상일까? 틀림없이 이름이 있을 텐데,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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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개의 팔을 가진 시바상 ⓒ 이상기


직사각형 모양의 사원전시관 안에는 수십 종의 조각품이 널려 있다. 그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여덟 개의 팔을 가진 시바상이다. 불교의 천수관음상을 연상시키는데, 조금은 더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모습이다. 시바상의 양쪽에서는 공양보살이 무릎을 꿇고 꽃을 바치고 있다. 한쪽에는 연꽃봉오리 부조들을 모아 놨다. 꽃받침과 봉오리의 모양과 양식이 다른 것으로 보아 시대차가 있는 것 같다. 크게 나누면 꽃봉오리의 끝이 뾰족하고 각이 진 것과 꽃봉오리가 반구형이면서 끝이 뾰족한 것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동식물 문양이 새겨진 조각품이 모여 있다. 동물은 코끼리로 보인다. 웃는 모습이며, 작게 표현해 귀엽기까지 하다. 그 옆에는 도깨비 문양의 조각이 있다. 벽면의 조각인데 우리나라에서 보는 귀면와(鬼面瓦)의 도깨비 같은 모습이다. 그 외 당초문 또는 불꽃무늬 조각품도 보인다. 또 다른 한쪽에는 압사라 조각이 있다. 우리의 비천상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옷을 벗은 나체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 측면에서 힌두교의 조각들이 불교조각에 비해 훨씬 더 선정적이다.

개울 건너에 있는 또 다른 유적과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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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지역의 사원 ⓒ 이상기


이들을 보고 나는 잠깐 A지역엘 들른다. 그런데 그곳은 훼손상태가 더 심하다. 나는 바로 G지역으로 옮겨간다. 그 동안 복원작업을 거쳐 지난 5월에 개방했다고 한다. 이곳의 사원은 2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좀 더 컸음을 알 수 있다. 사원의 내부를 살펴보니, 앞에 방이 있고 뒤에 더 큰 방이 있는 형태다. 건물 옆으로 석상좌대가 보이고, 뒤쪽 벽 모서리에는 도깨비 같은 특이한 형상이 사원을 지키고 있다. 이 사원의 벽면에서는 도깨비 조각을 여럿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사원의 앞쪽에는 역사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산스크리트어 비석이 있다. 이 사원의 비밀은 이 비석을 통해 풀릴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 산스크리트어를 아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E,F지역이다. 이곳도 현재 발굴 복원중이다. E지역 사원 밖으로는 비계가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사원 주변에 널려진 유물만 살펴본다. 이곳에도 비석이 있고, 맷돌 모양의 요니가 있고, 목이 날아간 신상이 있고, 소 모양의 조소상이 있다. 신상은 사람의 크기로 서 있는데, 조각이 단순하면서도 아름답다. 소는 편안하게 앉아 있다. 그리고 시바신을 상징하는 링가도 보인다. 이들 조각은 12-13세기 작품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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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신을 상징하는 링가 ⓒ 이상기


   
F지역은 사원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을 해 덮었다. 사원은 들어가지 말라고 써 붙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볼 게 별로 없다. 거의 벽돌만 남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있는 기둥, 석상좌대, 비석 정도만 유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이들을 보고 우리는 밀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K지역으로 간다. 그곳에서도 역시 사원의 벽면 일부만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미선유적에 대한 답사를 마쳤다. 우리는 길을 따라 처음 출발한 유적관리사로 간다.

그곳 건물 안에는 이곳 미선유적의 사진이 걸려 있다. 대부분 답사를 하며 본 것들이다. 이곳 미선유적지에서는 매년 6월 쾅남유적지 축제(Quang Nam Heritage Festival)가 열린다. 금년 6월에도 제5회 축제를 열었다고 한다. 이곳 유적관리사는 또 공연장이 되어 전통춤과 전통음악을 공연한다고 하는데, 공연이 열리지 않아 유감스럽게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 이곳 미선유적을 보면서 나는 땀을 많이 흘렸다. 한여름의 문화유산 답사, 그것은 우리 모두를 힘들게 만든다.

그럼 참파 왕국은?

참파왕국은 말레이-폴리네시아계 참족이 베트남 중남부지방에 세운 나라다. 7세기부터 13세기까지는 이웃하고 있던 크메르 제국과 경쟁할 정도로 강성했다. 9-10세를 참파왕국의 전성기로 본다. 875년 인드라바르만 2세가 왕국을 건설하고 대승불교(Mahayana Buddhism)를 채택한다. 이때 참파왕국은 중국과 인도 그리고 인도네시아 사이의 중개무역으로 번창할 수 있었다. 당시 호이안 항구를 통해 비단과 향료 그리고 생활용품과 사치품의 교역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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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욘 사원에 새겨진 크메르제국과 참파왕국의 전투 장면 ⓒ 이상기


그 후 참파왕국은 크메르 제국과의 경쟁에서 밀려 내리막길을 걸었으며, 11세기에는 베트남 북부에 생긴 다이 비에트(Great Viet, 大越: 1054-1400) 왕국의 공격으로 더 약해졌다. 그 결과 14세기 이후에는 중남부 지역에서 겨우 왕국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1471년에는 다이 비에트의 공격으로 수도인 비자야(Vijaya)가 점령되고 트라-토안왕이 잡혀 죽었다. 이때 6만명의 참족이 죽고 3만명이 노예로 끌려갔다고 한다. 그러자 참족은 남쪽의 캄보디아, 말라카 등으로 이주했다. 그 때문에 베트남의 중남부에 남아 있던 참족은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간 참족이 판두랑가(Panduranga)를 중심으로 참왕국을 세우고 명맥을 유지했다. 참왕국이 멸망한 것은 1832년이다. 응유엔 왕조의 민망황제가 판두랑가를 점령하면서 응유엔 왕조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참파왕국의 수도는 인드라푸라(875-978), 비자야(978-1485), 판두랑가(1485-1832)로 옮겨졌다. 인드라푸라는 현재 다낭 근처에 있는 동두옹(Dong Duong)이다. 비자야는 현재 빈딘 지역의 차반(Cha Ban)이라는 곳으로, 고고학적인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판두랑가는 현재 닌투안 지역의 판랑(Phan Ra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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