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도 문제라지만... 위안부는 '인간존엄성' 문제

[서평]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등록 2013.08.25 09:48수정 2013.08.2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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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 뿌리와이파리

"(독도 및 교과서문제)는 냉정히 대처하는 일본을 보면 일본쪽이 한수 위라고 생각한다"

MBC 라디오 <지금은 라디오시대>를 최유라 씨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조영남씨가 지난 2005년 4월 <맞아 죽을 각오로 쓴 100년 만의 친일선언>를 펴낸 후 일본 극우신문 <산케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말은 책 제목처럼 당시 이 발언은 "맞아 죽을 정도"로 엄청난 비판을 자초했었다.

특히 그해는 '을사늑약 100년', 공복60년과 맞물려 분노는 더 컸다. 그럼 아래 글을 읽고 든 생각은 어떤가?


"위안부의 피해는 보상되어야 하지만 조선인 위안부는 한국이 바라는 방식으로 기림을 받기에는 모순이 없지 않은 존재다."


"'위안부'도 강제로 끌려왔다면, 일본군도 강제로 끌려와"

쉽게 읽으면 일본 극우세력이 쓴 글로 보인다. 한 발 더 나아가 "똑 같은 가혹한 '운명'을 겪고도 그 운명에 대한 '태도는 위안부마다 달랐고, 지금도 다르다"면서 "그런 그녀는 일본군이 아닌 업자를 '폭행 주체로 기억한다. 혹독한 체험을 한 이들에게도 '즐거웠던' 순간은 없지 않았고, 군인에게 신세타령을 하면서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교감'없지 않았다"는 주장까지 들어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분노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쯤되면 영락없이 '친일파'다.


"일본군이 이용했다고 해서 아시아 전역에 있었던 그런 유의 시설들을 전부 '일본군 위안소'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 (38쪽)

물론 그는 "군인이나 헌병에 의해 끌려간 경우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개별적으로 강간을 당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위안부'가 '강제로 끌려온' 피해자였다면일본 군인들 역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가에 의해 머나먼 이국땅으로 '강제로 끌려온' 존재였다"며 일본군을 '강제성'에서 위안부와 같은 반열에 놓는 것을 보는 순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잠깐 그를 '친일파'로 매도하기 전 위 글들이 담긴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를 읽은 후, 판단을 내리자. 글쓴이 박유하 교수(세종대 일문과)는 민족주의를 넘어선 연대를 모색하는 한일 지식인모임 '한일, 연대 21'을 조직하는 등 탈제국·탈냉전적인 시각에서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한 연구와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학자다.

그가 쓴 책은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 따위가 있다.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는  2006년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고, 2007년에는 일본어판이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논단상'(아사히 신문사)을 수상했다.

'소녀상'.... 위안부 리얼리티 표현 아니라 '민족의 딸'로 보여주기 위한 것

박유하 연구와 활동, 그리고 펴낸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제식민지를 겪은 우리가 일본을 무조건 비판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이성적인 접근을 통해 새로운 한일관계를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도 "조선인 위안부와는 거리가 있다"면서 "리얼리터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위안부'를 바람직한 '민족의 딸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한다.

조선인 위안부'란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저항했으나 굴복하고 협력했던 식민지의 슬픔과 굴욕을 한 몸에 경험한 존재다. '일본'이 주체가 된 전쟁에 '끌려'갔을 뿐 아니라 군이 가는 곳마다 '끌려'다녀야 했던 '노예'임에 분명했지만, 동시에 성을 제공해주고 간호해주며 전쟁터로 떠나는 병사를 향해 '살아 돌아오라'고 말했던 동지이기도 했다. 그들은, '한복'을 입은 댕기머리 조선인이기도 했지만, 일본옷을 입고 일본머리를 한 청초한 '야마토 나데시코'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의 모순'을 가장 처절하게 살아낸 존재였다. 협력의 기억을 거세하고 하나의 이미지, 저항하고 투쟁하는 이미지만을 표현하는 '소녀'상은 협력해야 했던 '위안부'의 슬픔은 표현하지 못한다." (207쪽)

2011년 12월 세워진 '평화 소녀상'은 일본제국주의 만행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 박유하 주장은 충격이다. 특히 그는 "미국에 설립된 위안부 기림비는 '강제로 끌려간 20만명의 소녀'라는 문구를 담고 있다"며 "그러한 그 비는 '위안부'에 관한 대한민국의 '공식 기억'을 표한 것일 뿐 위안부 자체를 표한 것은 아니다"는 데까지 이른다. 위안부와 소녀상에 대한 그의 생각을 더 따라가보자. 미군기지 주변 여성들이 현대판 '위안부'라고 한다.

미군, '위안소'에서 자유롭지 못해... 새겨 들어야

"'조선인 위안부'가 '군수품'이었다면, 강간당한 네덜란드 여성이나 중국인 여성은 '전리품'이었다. 물론, 전리품이든 군수품이든,' 일본군' '남성'에게 물건처럼 착취를 당했다는 점에서는 '남성 중심 국가'로서의 일본의 사죄는 당연하다. 그러나 그 경우의 일본 패전 후에 일본이 만들어준 위안소를 이용했고 한국전쟁 때 한국 정부가 만들어준 위안소를 이용했던 미국 역시 그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그동안 미국이 이 문제에서 한국 편을 들어온 것은, 그들의 '위안소' 문제를 지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9쪽)

박유하가 미군도 위안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런 여성들을 재생산하지 않기 위해서도, 위안부 문제에서의 미국의 위치를 제대로 보는 것이 동아시아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박유하 이 지적은 우리가 새겨야 한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미군 '위안부'는 성역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2년 10월28일 경기 동두천 보산동에서 한 여성이 성폭행 당한 후 참혹하게 살해(범인은 맥주병을 시신에 넣었다)당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미군 케네스 마클(당시 20세)이었고, 피해자는 윤금이씨였다. 윤금이씨같은 이들을 일본군 '위안부'와 같다고 할 없지만, 가해자가 일본군에서 미군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강제성과 여성들 인간존엄성이 파괴된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설혹 그렇다라도 이런 주장은 지난 5월 일본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도루(橋下徹)가 "성노예인지 아닌지는 국제사회로부터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며 "세계 각국 군대는 제2차 세계대전때 같은 방식으로 여성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일본만 비판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말한 것이 연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정부에 '배상 요구'는 무리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에게 배상을 요구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청구권협정으로 배상은 끝났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식민지 때 강제징용했던 신일철주금(옛 일본제철)이 한국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면 징용 배상금을 낼 의사를 밝히자,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배상문제는)해결이 끝났다"고 했다. 박유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송자들이 소송을 낸 근거는 위안부들이 '강제노동'과 '인신매매'를 당한 것이었다. 그것이 당시 국제법을 어긴 것이었다는 것이 '배상'요구의 근거였는데, 당시의 법을 실제로 어긴 직접적 주체는 일본국이 아닌 업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소송자들의 '법적 책임'과 '배상 요구' 자체에 무리가 있었다."(237쪽)

일본 우익세력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한일청구권협정'이 나온 배경을 설명하면서 "한일협정은 또 하나의 제국이었던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체제하에서 이루어진 탓에 식민지배에 대해 철저하게 되물을 기회를 한일 양쪽에 주지 않았다는 점일 인식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박유하는 "반제국의 의미를 가졌던 저항이 그곳에서는 어느새 민족권력화되어 있었다"며 정대협이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차원 배상 요구를 강하게 비판하는 장면에 이르면, 받아들일 수 없는 단계에 이른다.

위안부는 '민족'문제가 아니라 '인간존엄성'문제

특히 "수요 시위를 비롯한 정대협 활동에 어린 학생들을 대거 동원되는 상황은 극히 우려스럽다"면서 "그들이 새롭게 심어진 '반일'적 적개심을 넘어서 같은 또래의 일본 청소녀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대립과 감정소모의 시간이 필요할까?"라는 말을 들으면 '위장된 일본 우익'이라는 세간의 평이 낯설지 않다. 그는 후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정대협의 '운동'을 거대한 '국가적 소모'라고까지 느끼는 내 감성을 그저 '친일파'로 간주하려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빨갱이'이나 '친일파'라는 명칭이 그저 개인에 대한 공격 자체를 목표로 하는 세월이 이어지는 한 제국과 냉전으로부터의 '해방'은 오지 않는다." (320쪽)

박유하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이 아닌, '제국'으로 희석시키고 있다. 책 제목 역시 <제국의 위안부>다. 이렇게 되면 '일본'에 대한 직접 책임을 묻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일본군 '위안부'는 그들이 조선인 여성을 짓밟앗기 때문에 분노하기 이전에, 인간존엄성이 짓밟힌 문제다. 그러므로 어린 학생들이 소녀상 앞에서 분노한다.

책을 덮어면서 머리에 든 생각은 '일본 우익들이 박유하가 쓴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겠구나'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제2판 34곳 삭제판

박유하 지음,
뿌리와이파리, 2015


#위안부 #박유하 #일본군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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