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과거를 배회할 때 만나는 골목길

[시인 서석화의 음악에세이] - 디셈버 'She's gone'

등록 2013.08.24 20:11수정 2013.08.2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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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란 사전적 의미로만은 해결되지 않는 복합적인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법적으로 명사인 그리움은 '그리워하는 마음 혹은 사모하는 정'으로 부정적인 요소는 전혀 개입되지 않은 고운 감정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게 그리움의 속성이 맞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고개가 저어진다. '그리워하는 마음'의 "마음"과 '사모하는 정'의 "정"을, 선행하는 "그리워하는"과 "사모하는" 뒤에 갖다놓아서 그렇게 느껴질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마음'과 '정'은 그리움의 기본 속성이 맞다. 마음에 똬리를 틀어 머물고 있지 않다면, 속 깊은 정이 건너갔던 어떤 시기 어떤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울 이유가 없다. 그러나 '마음'과 '정'은 자신도 짐작 못 할 만큼의 많은 방이 있는 기이한 무엇이다.

그것은 어떤 명의의 처방으로도 완벽하게 열리거나 닫히지 않고 어떤 권유나 설득으로도 다잡거나 내려놓아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인데도 자신마저 손 쓸 수가 없을 때가 많고, 자신이 키운 정인데도 자신이 내몰지 못한다.

이렇듯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상태인 마음과 정을 '그리워하는'과 '사모하는'에 붙였다고 그게 그리움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마음이 가는 길과 정이 느껴지고 쌓이는 길엔 환한 대로도 있겠지만, 희미한 가로등 하나도 없는 침침한 골목길도 천 갈래 만 갈래 숨어 있다. '그리워하고 사모하는'이란 길을 향해 떠났지만, 한길 하나도 건너기 전에 '아프고 서러운' 혹은 '두렵고 무서운' 골목길이 연달아 나타나 그 안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움이란 결국 과거를 배회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놓치거나 떠나온 게 아니라면 그래서 언제든 다시 마주할 수 있는 무엇이라면, 우리는 '그리움'이란 말의 상찬(上饌)을 준비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움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 중에서 가장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난공불락의 감정이다.


놓쳤기에, 떠나왔기에, 그래서 이젠 마주할 기적 같은 건 일어날 리 없기에 사무치는 어떤 순간을 갖게 하는 것이 그리움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결국 과거라는 시기가 전제가 되고 회상이라는 상태가 동반될 때 어젯밤 희미하게 기억되는 꿈처럼 모호한 상태로 나를 이끄는 것.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감정의 그래프를 그릴 엄두도 낼 수 없으며 계속 머물기도 뛰쳐나오기도 망설여지는, 아름다운 겉옷 속에 겹겹이 겹쳐 입은 남루한 속옷 같은 것. 그리움이란 그런 것 아닐까?

길을 걸을 때 이 노랠 들으면 one love
내 생각나는지
슬픈 노랠 들으면 내 얘기 같아서
자꾸 눈물 나는지

I missing you
baby still loving you
너를 정말 사랑했나봐
baby i missing you
baby still loving you
바보처럼 너를 못 잊어

my love is gone
니가 보고 싶은 날엔
눈물 한 방울에 하루를 버텨
one love is you
벌써 날 잊었겠지만 아직도 난 I wait for you

get it get it get it
wait it wait it wait it
너를 정말 사랑했나봐
get it get it get it
wait it wait it wait it
바보처럼 너를 못 잊어

버스를 타고 무심코 내린 곳은 너의 집 앞 골목
늦은 밤 취한 밤 널 바래다주며 잡던 손목
이러다 또 니 생각이나
지갑 속 사진에 눈물이나
she`s gone you are the only one
i can`t live without you
love is gone

비오는 날을 참 좋아했던 너 one love
너도 생각나니
아직도 비가 오면 니 생각이 나서
이렇게 눈물이 나

I missing you
baby still loving you
너를 정말 사랑했나봐
baby i missing you
baby still loving you
바보처럼 너를 못 잊어

my love is gone
니가 보고 싶은 날엔
눈물 한 방울에 하루를 버텨
one love is you
벌써 날 잊었겠지만 아직도 난 i wait for you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단 하루도 난 안될 것 같아서

My love is gone
니가 보고 싶은 날엔
눈물 한 방울에 하루를 버텨
one love is you
벌써 날 잊었겠지만 아직도 난 I wait for you

get it get it get it
wait it wait it wait it
너를 정말 사랑했나봐
get it get it get it
wait it wait it wait it
바보처럼 너를 못 잊어
       - 디셈버 <She's gone>

모든 노래가 거의 다 그렇지만 제목부터 노래의 가사를 짐작하게 한다. 가사의 주제와 전편에 흐르는 주된 감정, 즉 화자의 그리움까지 그대로 읽힌다. 화자의 그녀는 이미 "떠난", 과거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고 없이 불현듯 닥치는 감정인 그리움!

"길을 걸을 때", "슬픈 노랠 들"을 때, 문득 떠올라 보고 싶은 사람, 분명히 이미 떠난 사람인 줄 알면서도 그녀가 "보고 싶"을 때면 "눈물 한 방울로 하루를 버"티고 "아직도" 그녀를 "기다"린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자기최면은 때론 부질없는 실행을 감행케도 한다. "버스를 타고 무심코 내린 곳"이 "너의 집 앞"인 것처럼. 그러면서 감정에 가속을 가한다. "너를 정말 사랑했"다고, "바보처럼 너를 못 잊"는다고.

그리움이란 들출수록 부피가 커지는 듯한 착각을 동반하는 감정이다. 그런 착각 때문에 감정 중에서도 가장 과장되기 쉽고 속기도 쉽다.

이미 이 노래의 화자는 <She's gone>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반복되는 "너를 정말 사랑했나봐"라는 과거형의 말이 그 인정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비오는 날을 참 좋아했던 너"를 기억하며 "비가 오면 니 생각이 나"고 "지갑 속" 너의 "사진에 눈물이 나"며 "늦은 밤 취한 밤 널 바래다주며 잡던 손목"을 잊지 못하는 순간을 경험 중이다.

화자는 지금 그리움을 배회한다. 보고 싶음과 끝났다는 자각, 기다리고 있다는 자신의 의지가 도사리고 있는 여러 골목길을 배회중이다. 

그리움 속에는 너무 많은 길이 있기 때문이다.
#디셈버 #SHE'S GONE #그리움 #과거 #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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