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XX가 왜 전철을 타? 저 XX가..."

안내견 풍요와 지하철에서 봉변을 당하다

등록 2013.09.06 14:16수정 2013.09.0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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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지는 마음을 추스를 길 없어, 출근해서도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습니다. 아픈 가슴을 달래며, 떨리는 손길을 놀려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어제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가 있어, 급히 서울엘 가야했습니다. 아직은 안내에 익숙하지 않은 풍요와 더불어 가자니 약간은 망설여졌습니다. 그래도 워낙 풍요가 잘 해주고 있기에, 용기를 내서 길을 나섰었습니다.

인천에서 전철을 타고, 고속터미널역에 내려 다시 3호선을 갈아타야했습니다. 오후 5시쯤 중간에서 아내를 만나 함께 3호선 열차를 갈아탔지요. 그런데 열차에 타기가 무섭게 만취하신 어떤 어르신의 욕사발이 난데없이 우리에게 날아들었습니다.

"개새끼가 왜 전철을 타? 저 X놈의 새끼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계속 날아들더니, 급기야는 제게도 욕설이 날아듭니다.

"젊은 게 왜 개새끼를 데리고 다녀?"


옆에서 누군가가 안내견에 대해 설명을 하는 듯 했으나, 그 어르신의 언어폭력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어르신은 더욱 언성을 높여 소리쳤습니다.

"개면 개지, 무슨 다른 개가 있어?"

또 어떤 어르신은 말씀하시더군요.

"왜 내 앞에 개를 데리고 와?"

제가 탔던 칸에는 약주를 드신 많은 어르신들로 가득 찬듯 했습니다. 도무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황급히 저를 잡아끄는 아내를 따라 옆칸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가슴에서 치미는 뜨거운 비애는 저의 온몸을 달구다 못해, 서러움에 북받쳐 급기야 굵은 눈물 방울들을 만들어내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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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가 달빛을 바라보고 있다. ⓒ 김경식


왜 제가 죄인 취급을 당해야 합니까? 왜 우리 풍요가 그런 난데없는 욕설을 들어야 하냔 말입니다. 이전 안내견이었던 슬기에게 가해지던 폭행과 욕설을 우리 풍요에게는 더 이상 답습시키지 않으려 신문과 방송 등을 통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저의 노력은 모두 허사였나봅니다.

저의 그 많은 말들과 글 그리고 사진 등은 모두 앞 못 보는 사람의 한낱 헛짓거리에 지나지 않았었나 봅니다. 집으로 돌아와, 힘없이 돌아눕는 풍요에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앞이 안 보이는 게 그래서 안내견의 안내를 받아야하는 게 그렇게 여러분의 눈살을 지푸리게 하고, 생활권을 침해하는 걸까요?

앞이 안 보이는 주제에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사방을 싸돌아다니는 게, 그렇게 못할 일이냔 말입니다. 하루도 마음 편히 보행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과 참담함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도 어제의 그 울분과 설움으로 뛰는 가슴이 잦아들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들이 살아가기에는 정말 버거운 나라인가봅니다. 누구 하나 나서, 그 봉변을 말려주는 분이 없었으니. 다시금 솟구치는 피눈물을 이를 악물고 참으며, 옆에 누운 풍요를 가만히 안아봅니다.

"풍요야, 미안해. 내 설움을, 내 절망을 네게 전가시켜서…. 그러나 풍요야, 넌 결코 한낱 개새끼가 아니란다. 넌 내 어그러진 삶을 추스려 이끌어주고, 나를 바른 길로 안내하고 있는 내 삶의 멘토, 정인이란다. 사랑해…."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 홈피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만취 #주정뱅이 #전철 #봉변 #안내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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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시인으로 10년째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해바라기'동인으로 활동하고있으며 역시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사진가로 열심히 살아가고있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아내와 더불어 지천명 이후의 삶을 훌륭히 개척해나가고자 부단히 노력하고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탈시설만이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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