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 못하면 이 땅에서 못 산다구요?

[공모-가족이야기] 여고 졸업식을 경험하지 못한 세 모녀

등록 2013.09.08 16:58수정 2013.09.13 17:34
0
원고료로 응원
특별기획-여행박사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하는 '가족이야기' 공모전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졸업장 없으면 사람답게 못 산다고? 

" 막내야! 절대로 학교를 그만 두면 안돼! 어무이는 왜 철없는 막내이야기를 듣고 그러시능교? 이 땅에서 사람답게 살려면 고등학교졸업이라도 시켜야 된다 말입니더! 더구나 청각에 장애가 있는데 어떻게 할려고! "       
"막내하고 우리도 많이 생각했으닝께 그냥 지켜보거래이!"

지금도 선명하다. 부산에서 한 반에서 60명인 중학교의 20명 정도의 상위권 성적들이 합격해 들어가는 베레모 쓰고 쌍갈래 머리를 땋는 여고에 들어갔을때 기뻐하시던 부모님 표정이. 그리고 매일 내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주면서 연신 웃던 엄마의 웃음이. 베레모를 한 쪽으로 쓰고 허리는 잘록하고 짧지만 치마는 우아하게 퍼지는 교복을 입고 내가 집을 나가면 안 보일 때까지 대문 앞에서 바라보던 부모님이다.

특이체질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닐때마다 꼭 중증청각장애때문이 아니라도 허약한 몸과 섬세한 감성과 신경을 쓰면 저절로 두통이 생겼다. 그 후유증으로 시도 때도 없이 코피가 쏟아지고 툭하면 넘어지기 일쑤라 학교 앞 5분 거리 이내로 집을 이사하셨던 부모님이다. 그렇게 내가 예쁜 교복을 입고 다니던 인문여고를 2학년 가을까지만 다니고 잠시 쉬고 검정고시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 침울한 안색은 더 생생하다.

장애로 인한 왕따와 소외감, 그리고 신체가 주는 온갖 허약함과 가난으로 떨어진 교복과 교육재료와 집단급식을 못 먹고 다니는 정규학교생활을 그런대로 견디었던 것은 내일에 대한 꿈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희망이 무참하게 사라졌다. 이 땅의 장애인차별 특히 노동차별에 대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문여고와 사범대와 교원임용고시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증증여성장애인이 교원면접에서 번번히 떨어져 30세가 넘도록 집에만 있다가 목을 매어 자살한 사건이 내가 살던 부산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딸을 위해 한의사자격을 따고 한의원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전재산을 딸과 같은 불행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환원을 한 기사가 대서특필되었고 나는 무척 충격을 받았다.

아침에는 여전히 엄마가 흐뭇하게 웃으며 땋아주는 쌍갈래머리를 하고 집을 나섰지만 나는 그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자주 가던 해운대와 광안리를 뺀 송도와 태종대와 다대포 그리고 철새도래지 하단과 범어사 등지로 가거나 또는 기장과 서울에 있는 오빠 언니들에게 간답시고 종일을 고속도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고속도로순찰대에게 실려서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아침에 엄마의 배웅을 받고 나섰다가 저녁에 어두워지면 아무일 없는 것처럼 능청스럽게 없는 에피소드도 만들어 막내로서 부모님을 약간은 웃게 해드리는 일상이 두 달간 반복되었다.

어느날 태풍으로 비가 많이 와서 돌아다니지 못해 책방순례를 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책방에서 운보 김기창 화백책을 보고 어떤 희망의 싹이 다시 내 안에 꿈틀거렸다. 물론 베토벤과 헬렌 켈러의 이야기도 내게 꿈을 주었지만 너무 막연한 비현실적인 그러한 거리감이 있었는데 운보 김기창은 현재에 실존하는 인물이었고 접근이 가능한 방식인 붓 한 자루의 길을 제시해주었던 것이다.

a

갈래머리 고등학교 마지막 수학여행 ⓒ 이영미


그래서 나는 그 길로 부산 시내의 서화원을 뒤져서 수업비가 없어도 청소를 해주는 대신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고, 다행힌 한 군데에서 나를 받아주었다. 그러한 우여곡절 끝에 나는 엄마와 아버지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희망의 실천을 위해 정규교육을 계속 받는것은 더 심신이 힘들어지고 시간이 아깝다고 말씀드렸다. 다행히 엄마와 아버지는 내 마음을 이해해주셨고 힘이 되어 주셨는데 서울서 일류대를 다니던 세 오빠는 그동안의 정황은 알리가 없으니 고등학교도 못 다니면 이 땅에서 사람취급을 못 받는다고 반대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주 말하셨다.

"사람이 사람이면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이라야 사람이지! 그러니 막내야 절대 기죽지 말고 용기내어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

그때는 무척 힘이 되는 말이었지만 지금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말한다.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사이좋게 해내는 것이 바로 인생이고 사람인 것 같아요! 그 두 개를 사이좋게 항상 웃으면서 즐겁게 해내면 축복인건데 가끔은 나도 모르게 웃음이 안 나올 때가 있으니 나는 아직 사람되려면 시간이 필요한가 보아요."

당사자 입장에서 경험하지 않은 상황은 백 번을 전달해 주어도 알 수가 없다. 부모님은 내 마음의 갈등과 아픔을 말하지 않아도 사랑으로 전해져서 같이 동고동락해주시지만 형제들은 그게 잘 안된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란 원래 자신이 경험하지 않으면 당사자보다 잘 알 수가 없다. 알려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알 수가 있겠지만.

정규교육 대신 택한 붓길은 올해로 39년이 되어간다. 사범대를 나와 선생님이 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어쨌든 선생의 길을 가고 있다. 그동안 붓 길을 가면서 필요한 여러개의 자격증도 취득해서 붓길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를 함께 나누면서 사람들에게 선생이란 누구를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어떤 분야를 좀 더 먼저 공부하거나 많이 공부하고 경험해서 그 길의 방향을 가리켜주는 신호등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등학교나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어느 한 분야에 오래 꾸준히 좀 더 깊이 공부하면 누구나 다 그 분야의 선생님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게 배우는 사람들은 저마다 붓길 말고도 어느 한 가지를 오래 한 사람들이 많다. 구두방 수선아저씨도 있고 무술인도 있으며, 평범한 가정주부이지만 퀼트나 또는 남몰래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도 있고 산을 오백 개 이상 탄 분들도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나와 한 번 인연 맺으면 십 년 이십 년 이렇게 서로가 동행이 되어 길을 간다. 서로가 서로의 선생이 되어서.

나는 불혹이 지나서 고졸검정고시를 보고 대학과 대학원을 공부했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모르는 분야의 공부를 선택해서 퇴근하면서 하고 있다. 평균 성적 이상이면 주는 국가장학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특별히 애를 쓰는 것은 시간 관리이다. 나에게 시간은 정말 금쪽같은이 아니라 금쪽보다 귀하다. 그래서 틈틈이 쓰는 글 한 줄이 내 마음의 세심이 되고 틈틈이 산책하면서 만나는 풀꽃 하나와 바람 한 보시기가 천 개의 꽃향기와 천상의 바람이 되어 내 가슴에 귀하게 들어온다.

정규고등학교 졸업장보다 중요한 것

"그래도 너! 다니던 외국어고등학교는 계속 다녀 졸업해야지!"
"아빠! 난 엄마와 의논해서 검정고시 보기로 했어요!"

나와 헤어졌던 아이가 아파서 내게 다시 왔고 치유되었을 때 이혼한 아이 아빠는 아이를 다시 데려가려 했고 복학을 권유했지만 아이와 나는 일 년을 아까운 시간을 학교에 다시 들어가기보다는 성인야학교에서 무료로 검정고시 공부하고 나와 가난하게 살면서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고 나와 더 없이 소중한 모녀의 사랑을 키워가는 것을 선택했다. 아이는 검정고시를 통해 사범대를 갔고 지금은 대안청소년학교에서 자기가 어려웠던 그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에게 이 사회가 정석처럼 가리키는 그 정규라는 길이 아니라도 꿈과 희망의 길은 일곰무지개처럼 다양히 만들어 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큰 아이와 자매가 되어서 항상 언니의 우산이란 보호막 아래 천진하게 지냈던 작은 아이가 언니가 내게로 오자 아프기 시작했다. 제 언니가 아팠던 것처럼... 그렇게 아프면서 나와 6년을 떨어져 살았던 작은 아이다. 새엄마와 갈등이 생길 때마다 할머니집을 오가면서 떠돌이처럼 살아가느라  심신의 병이 점점 깊어질 찰나 수능을 보았다. 별로 좋지 않은 성적이 나왔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는 수능을 보자마자 맨 몸으로 나와 제 언니가 있는 곳으로 왔다.

"어! 너 갑자기 왜 왔어? 졸업식도 안하고?"
"그깟 졸업장 안 받는다고 졸업이 안돼? 수능만 보았으면 된 것 아냐?"
" 아 그래도 졸업은 하고 와야지..?
"언니랑 엄마랑 하루 빨리 살고 싶어서 그랬어. 다시 그 곳에 가기 싫으니 가라하지마!"


작은 아이는 수능성적이 문제가 아니라 건강관리가 시급했다. 속이 상할 때마다 폭식을 하거나 아예 안 먹거나 해서 위장과 체중이 비만수준이었다. 우선 한약을 짓고 운동을 하는 것부터 일 년을 먼저 하고 건강이 회복된 뒤에야 본격적으로 공부를 했다. 매일 새벽에 나가서 공부하고 운동하면서 새벽에 들어오기를 몇 년동안 했다.

제 언니가 다녔던 사범대에 들어갔는데  큰 아이 등록금은 어찌 어찌 해결해나갔는데 작은 아이 등록금은 내가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작은 아이는 3년동안 전체수석을 한 번도 놓지 않으면서 전액 장학금으로 다녔다. 그리고 그 학교 개교 43년 역사상 처음으로 3년만에 전체수석으로 졸업하고 그 학교 역사 처음으로 학교가 자랑스러워하는 대학원으로 들어갔고 대학원 역시 처음 잠시만 내가 감당했을 뿐 곧 대학원 조교가 되면서 등록금을 면제 받았다.

작은아이는 지금 서울에서 공부하면서 조교를 하면서 졸업논문을 쓰느라 무척 바쁘다. 그러나 아무리 바쁜 중이라도 매주 한 번은 학교 근처의 복지시설을 찾아 청소년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나와 제 언니가 그러는 것처럼 단순히 공부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혼가정이라도, 졸업장이 없어도 마음에 희망의 빛을 잃지 않고, 나와 제일 가까운 누군가 한 사람과도 마음을 나누면 제 길을 찾아 갈 수 있다는 것을 굳이 말이 아니라도 그렇게 몸으로 보여준다.

a

정이란 단어는 늘 푸른 믿어주는 마음.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더욱 필요한 정. ⓒ 이영미


두 아이들이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자기들이 어려웠던 그 모습을 찾아 나누는 것이 정말 고맙고 평생을 살아가면서 그렇게 나누기를 소망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엄마와 아버지가 내게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빠들이 반대를 극심하게 해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내가 하는 일에 사랑을 담아 마음의 힘을 보태주었던 것처럼 아이들 아빠가 반대해도 아이들이 선택해나가는 것에 경청을 하고 믿음을 준 것이다.

"엄마! 우리가 가르치는 청소년들은 집이 가난하거나 학비가 어려운 아이들이 많이 없어!"
"그러면 그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인데? 왜 학원에 안 가고 대안센터에 오는데?"
"가족들이 이혼하거나 병마에 잡히면 마음 여유가 없어져서 서로 안 쳐다보고 안 만나니
마음이 고프고 정이 고픈 아이들이 더 많아!"
"아, 그렇구나! 그러면 너희들이 걔들에게 어떻게 도와줘?"

"아이 엄마! 요즘 아이들은 너무 똑똑해서 도와주는 티를 내면 안 나와! 그냥 그네들이 이야기하는 것 진지하게 들어주고 그네들이 어떻게 사는지 물어만 줘도 좋아하고 자꾸 이야기 하고 나중에는 물어보지 않아도 절로 절로 고민을 이야기하고 어떤 아이는 맞춤해서 멘토링을 해주기도 해!"
"이해가 잘 안 가네."

"어떤 아이는 아버지가 빌딩이 몇 개인데 엄마는 외국에 살아! 그 아이는 학교를 마치면 아무도 없는 집에 가기가 너무 무섭대! 그러면 내가 옛날에 내 경험을 기억해내서 그 아이에게 말해주는거야! 매일 저녁에는 불 다 켜놓고 아무에게도 혼자 산다고 말하지 말고, 틈 나는 대로 엄마를 찾아가라고! 그리고 그 아이에게 특별히 시간이 걸리는 영어숙제를 내줘! 그러면 그 아이는 아빠를 졸라 주말마다 엄마를 만나러 비행기타고  숙제 해내느라 바빠서 외로움에 점령당할 시간이 없어지게 돼! "

누군가의 가족이 되거나 누군가와 인연이 되거나 중요한 것은 마음을 나눠주는 것이다. 대부분 나눈다고 하면 물질적인 것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거나 그것을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가끔은  잘 나눈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저런 인연들이 물질과 관련된 어려움이나 이 땅에 유용한 친환경적 사업이야기를 시종일관 이야기할 때가 더러 있다.

침묵을 벗하는 가난한 서생(書生)에게 그러한 이야기가 부질없음은 자연스럽게 스스로 알게끔 시간이 일깨워준다. 한때는 오지랖 넓은 짓도 종종하며 살았지만 이순을 향해 서서히 정리를 해야 하는 지천명이 훨씬 넘은 이 나이에 사람마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지어야 하는 십자가와 업이 있어 섣불리 나설일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물질과  무관한 보이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 자신들의 삶에 너도 나도 바빠 아무도 관심있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잘 견디라고 힘을 실어주고 그리고 기도를 해주고 자주 만나 웃어주는 것이다. 내가 정말로 어려웠을때 내게 정말 힘이 된 것은 고등학교나 대학과 대학원 졸업장보다 중요한 것인  마음의 힘을 나눠준 부모님과 또 많은 스친 인연들이 나눠준 웃음과 기도였다.
덧붙이는 글 '가족이야기(가족인터뷰)' 공모 응모글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AD

AD

인기기사

  1. 1 다시 싸움 시작하는 변희수 전 하사... 이젠 법정투쟁
  2. 2 "배신감 느꼈다" 문재인 정부에 사표낸 교수의 호소
  3. 3 유명한 베를린 한식당에 혐오 문구가 걸린 이유
  4. 4 20년 내 일자리 47% 사라진다? 빌 게이츠의 이유 있는 호소
  5. 5 8000원짜리 와인을 먹고 나서 벌어진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