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마흔, 남편이 헤어지자네요

[공모-가족인터뷰] '자아 찾기' 블랙홀에 빠져든 나, 그의 생각은?

등록 2013.09.12 11:34수정 2013.09.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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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여행박사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하는 '가족이야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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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마흔 하고도 하나. 나는 나의 반평생, 20년을 함께 해온 남자를 인터뷰하기로 작정했다.

나이 마흔을 왜 불혹이라고 했을까? 마흔의 세계로 진입한 나는 나의 선배 아줌마들이 겪은 혹독한 40대 통과의례를 치렀다. 아니 치르고 있다.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의지하다가, 이제 남편 말 잘 들으며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의지하던 나는 '자아 찾기'라는 폭풍 속에 진입했다. 사춘기 때도 겪지 않았던 질풍노도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고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1년여의 긴 성찰, 팟캐스트 강좌들….

그리고 해답이 '꽝' 내 가슴 속을 치자 나는 파랑새가 되었다. 매일 가슴이 설레고 하루하루가 기쁨이고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방황이 아닌 고뇌가 아닌 나는 내 삶의 주인. '진격의 이소영'이 되었다.

이 행복한 순간. 8년의 연애와 15년의 결혼생활을 한 내 첫사랑이자 내 인생의 동반자, 나와 반평생을 함께해 온 세 아이의 아빠는 그런 나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각자의 길을 가기를 바랐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남편을 인터뷰하려는 이유이다.

파랑새가 된 나... 남편 생각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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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의 자아 찾기를 그린 영화 <써니> ⓒ CJ 엔터테인먼트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한 단어로 알고 싶었지만 늘 실패했던 나는 그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강력하게 아니 간절하게 아니 처절하게 그를 알고 싶다. 그게 허망할지라도. 이 인터뷰는 예전 우리의 대화 속에서 그도 나도 인터뷰인지 몰랐던 것들을 나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것들과 인터뷰를 위해 실제로 묻고 답했던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그는 찢어지게 만큼은 아니지만 언제든 찢어질 수 있을 만큼 가난한 집에서 자라났다. 대한민국의 너무나 가난한 보통 아버지처럼 술 마시고 노름하던, 가끔은 아내에게 손찌검도 하시던 아버지와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 같은 어머니. 그리고 형 하나, 누나 하나, 남동생 하나다.

그는 가능한 많은 학생을 입시에 합격시켜야 한다는 고3 담임의 목표와 자기 뜻과의 괴리 속에 시험 보러 가던 날까지 자신이 무슨 과에 지원했는지 알지도 못했다. 그렇게 본 대학 시험에 덜컥 붙어버리자 아버지는 거하게 한턱내시고 밤새 뿌듯해 했다. 이후 학과 교수님들 눈치를 받으며 얻은 교직 이수 덕에 고교 시절 하고 싶었던 영어 교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는 8년간 데이트 비용을 대고 강원도 인제까지 수없는 면회를 왔던, 그를 자기 부모보다 좋아했던, 그를 너무나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의 별명은 대학 때 스스로 붙인 '천진난만 순진무구'였고 남들이 현재 부르는 것은 '샤프', '잔머리의 대가'이다. 오후 10~11시에 퇴근하면서 시민기자로 활동도 좀 하고 사진도 좀 찍고 보드도 좀 탄다. 뭔가 부당하다 느끼면 어제까지 농담하던 사람에게 대꾸도 안 한다. 그가 상사일지라도.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처럼. 내 머릿속 과거에서 가져온 인터뷰로 시작하자.

"당신은 무슨 색깔을 좋아해?"
"생각 안 해 봤는데?"
"말이 되나? 40 평생 사는 동안 좋아하는 색깔을 정하지 못했다니 그런 사람 처음 보는데? 초록색은 어때?"
"초록색? 음 생각해보니 초록색을 좋아하는 것 같아. 하지만 내가 초록색이 좋다고 하면 나는 초록색이라는 색깔에만 갇히게 되잖아. 하지만 다른 색을 생각해보면… 그래 검정색은 싫어하는 것 같아. 좋아하는 색은, 하얀색도 초록색의 느낌처럼 좋아. 왜 한 가지 색만 좋아한다고 말해야 하지? 나는 많은 색깔이 좋아."

이 사람은 색깔에 대해 생각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내 질문이 '모든 상식에 도전하라'는 정신에 정말 딱 맞는 '도전 받아야 할 질문'이었을까? 너무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또 다른 질문.

"당신은 어렸을 적 꿈이 뭐야?"(이 질문을 들으면 나는 아프다. 어른이 되어 버린 내가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가 이 질문을 했을 때 가장 대답하기 힘들었고 생각 없이 살아온 나를 들키기 싫었고 포장하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둘러댔었다)
"그런 거 없었는데?"(아주 당당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말해?"
"진짜로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때 가장 짜증나는 질문이 '너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거였다. 아니 내가 아는 직업도 없는데 뭐가 되고 싶냐니? 엄마가 만날 '변호사 되라'는 말에 '변호사'라고 대답하거나, 드라마에서 스튜어디스나 비서도 멋진 것 같다는 생각에 '비서'라고 했더니 수의사 삼촌이 '남의 심부름이나 하는 비서를 뭐 하러 하냐'는 핀잔을 준 후 '비서가 좋은 것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 외에는 꿈이나 직업에 별 관심이 없었다. 크면서 사람들은 꿈을 가지라고 강요했다. 꿈이 없는 나는 바보 같았다. 그래서 어른인 나는 지금 요 모양 요 꼴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꿈을 강요하는 세상에 "나는 꿈이 없었는데? 그게 뭐"라며 오히려 나를 이상한 질문을 하고 앉아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세상의 통념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나에겐 선물을 받는 것이 당연한 크리스마스도 자신의 생일도 그는 선물 받을 의미를 찾지 못했다며 패스. 아이들 요구에는 어쩔 수 없는 아빠였지만.

그는 연애할 때도 '밀당'을 하지 않았다. '척'이라도 하라는 친구의 충고에 "난 그런 거 안해"라며 솔직하게만 나를 대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이유를 둘러대지도 않고 정말 솔직하게, 내가 싫어졌다며 각자의 길을 가자고 요구했다. 변해버린 나를 남편은 참기가 어려웠나보다.

남편의 고백 "당신에게서 내 모습을 봤어"

내가 변하면서 남편을 불쾌하게 했던 대화들을 떠올려 봤다. 변하기 전의 나는 한 마디로 견해가 없는 바보 같았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야단을 쳐야할까, 놔둬야 할까? 여행 전 쇼핑을 할 때도 가까운 마트 가서 튜브를 사야하나, 백화점으로 가서 상품권을 써야 하나? 남편에게 묻는 것이 편했고 정치적 사안이건 물건 구매건 남편 뜻이 대부분 옳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남편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했던 나는 언제부터인가 사사건건 "내가 맞다"는 주장을 폈다. 베란다 천정에 붙어 있는 빨래걸이에서 끊어진 매듭 묶는 방식도 "매듭이 한 개 있어야 튼튼하다"고 주장하는 남편에게 "한 개건 두 개건 이미 묶어놓았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했다. 유난히 집을 안 치우는 나는 "허리 아파서 20분도 서있기 힘든 내가 2~3시간씩 어떻게 집을 치우냐"며 "난 노력하고 있고 이것 이상 못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할부로 책을 사나 만든 목돈으로 책을 사나 내가 알아서 샀는데 뭐 어떠냐"고 화내며 아주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지지고 볶고 투쟁하며 살아온 다른 사람들의 10년을, 싸움 모르던 우리가 이렇게 1년으로, 일시불로 치르고 있었다. 나는 나름 확신이 있었고 선택에 책임질 용의가 충분히 있었으며 내 결정들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된 내가 바보 같지 않게 느껴졌다.

이런 소소한 문제들을 부딪치며 보낸 1년여 끝에 교육문제도 부딪치기 시작했다. 시험 전날 문제집 한 장 들춰보지 않은 아들에 대해 나는 "공부하겠다는 애만 시킬 거라서 공부하기 싫다는 둘째는 시험공부 안 시켰다"고 서슴없이 이야기 했고 남편은, 놀라 자빠졌다(나도 나름 생각이 있었는데…).

아이들까지 내가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 남편은 각자의 길을 가자고 했다. "오늘 이 문제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민했다"며. 나 역시 남편이 독재자 같았고 나의 많은 결정들을 타박하면서 나를 못 믿고 나를 지지해 주지 않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결국 아픈 어머니 문제나 직장 문제 등을 고려하여 겨울에 도장을 찍기로 결정하고 한 달을 보냈다. 그는 어제와 똑같이 출근하고 퇴근했고, 나는 밥하고 빨래하고 옷을 다리고 어머니 밥을 드렸다. 꼭 필요한 대화만 하다가 그는 소파에서, 나는 식탁에서 각자의 술을 따랐다. 그렇게 같은 집에서 살며 한 달이 지났다. 우리는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카톡 메시지가 왔다.

"자기야 나두 사랑하는데. 머리가 복잡할 따름인 거야. 당신 생각 많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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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보낸 카톡 메시지. ⓒ 이소영


다시 인터뷰. 물어봐야 하는데 묻고 싶은데 도통 어디부터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그가 먼저 대답을 했다.

"너무 강하게 확신에 차 말하는 당신, 그것이 마음에 안 들어. 잘 모를 때는 '그건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이래'라고 말했으면 좋겠어. 변한 당신 모습이 사실에 대한 확인이나 통찰 없이 맞다고만 우기고, 다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욕하는 과격한 내 후배처럼 보여. 그런 모습이 너무 낯설어.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아마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몰랐던 건지도 모르겠고."

"강하게 말하고 확신에 차 말하는 것은 내가 느끼는 당신이었는데?"
"그래, 그렇지. 사실은 당신에게서 내 모습을 봤어. 그래서 요즘 나는 나가서 정치얘기 안 해. 같은 쪽에 서 있더라도 일부러 안 해. 내가 저랬구나. 나와 얘기 할 때 사람들이 이렇게 느꼈었겠구나. 아이들에게 말하는 당신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아이들을 저렇게 대했구나."

"난 오히려 그렇게 강하게 확신하는 당신 모습이 좋았는데. 결국 우린 똑같아져서 문제인가? 당신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겠어. 나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우리 관계가 개선되리라 생각했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당신을 통해 내가 어떤지 사람인지 볼 수 있게 되었네. 당신이 나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고 사랑한다고 문자했잖아. 내 어떤 점이 좋아?"
"익숙하니까 좋지. 편하고. 그냥 그런 거 아냐? 이유가 어딨어. 그냥 좋은 거지. 당신은 왜 좋은데?"
"당신이 강해서 좋아."
"강한 게 없어지면 내가 싫어지는 거잖아. 누군가가 이 사람은 이래서 좋다, 좋다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좋은 게 없어지면 싫은 거잖아. 그건 끊임없이 싫다고 말하는 거랑 같아."
"헐~ 역시 당신은 강하네. 정말 단정적으로 말하고. 당신 그거 모르지?"
"……"
"도종환 시인의 시중에서 부부를 가구로 표현한 시가 있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가구는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잖아. 뭐가 문제지? 가구는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십년 후, 더 튼튼해진 다리로 강을 건너기 위해

최대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강한 사람보다는 편안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가구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으면서 <설국열차> 메이슨 총리의 대사처럼 각자의 자리를 알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가 갑자기 변해서 아이들 공부도 안 챙기고 자아찾기 '탈선 열차'를 탔다고 생각했을까? 그는 관습에 복종하지 않는 특별한 사람인 것과 동시에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관습에 아주 충실한 남자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그도 오전 7시에 나가서 오후 10시, 11시에 들어오고 주말이면 뻗어 있는 2013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고단한 그리고 아주 평범한 40대 가장이었다. 자기 인생을 둘러볼 틈도 없는 고단한 40대 가장에게 난 어쩌면 자아 찾기, 꿈 어쩌니 하며 그에게 외로운 주부의 투정을 부렸을 수도 있다. 물론 내 입장에선 아니지만.

뜨거웠던 이 한여름, 나는 마흔의 강을 다리 위로 건너오지 못했다. 다 젖어 비틀거리고 넘어지다 기어서 두 다리로 건너왔다. 50살의 강은 다리 위를 건널지 두 다리로 걸어서 건널 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또 다시 내 두 다리가 사용될 것 같다. 하지만 더 튼튼해진 다리로 건널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긴다. 그 십년, 내가 읽은 40대 가장의 고단한 눈이 행복 가득한 반짝이는 눈으로 바뀌기를, 내 질풍노도의 방황이 결실을 맺기를 바라며 열심히 다리운동을 할 것이다. 숙제처럼.

그리고 오늘 나는 깨끗이 청소를 하고, 시를 쓰고, 토요일에도 일터에 있는 남편을 위해 그가 가장 좋아하는 돼지고기 가득 든 김치찌개를 보글보글 끊일 것이다. 십년 후 건널 강에서 나에게 보여줄 내 숙제를 위하여.
덧붙이는 글 <가족인터뷰>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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