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올해 몇 년이에요?" 모르신다는 어머니

[공모-가족이야기] 기억력 감퇴하신 시어머니와 한글 공부를 하다

등록 2013.09.11 20:35수정 2013.09.1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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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여행박사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하는 '가족이야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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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이게 뭐야? 내 금시계가 없고, 뭐 이 시계가 여 있노?"

지난 6월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간병휴직을 신청하여 대구에서 잠시 떠나 시댁인 상주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작년 겨울은 어느 해보다 눈이 많이 왔다. 그 해 겨울, 어머니께서 눈에 미끄러져 머리를 다치셨다. 그때부터 여든 살의 고갯마루에 선 어머니의 병원 순례가 시작되었다.

뇌출혈로 입원하여 2주 가까이 치료를 받은 다음, 서울에 가서 종합 진찰을 받기도 했다. 올 봄엔 대구에 와서 쓸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셨다. 수술 후에도 어머니는 계속 통증을 호소하셨다. 평생 시골에 사셨던 어머니는 도시 생활을 못 견뎌하셨다. 그래서 내가 자청하여 시골에 내려왔다.

안방 진열장에서 시계를 꺼낸 어머니가 깜짝 놀라신다. 원래 차고 다니시던 금시계인 줄 알고 꺼냈더니, 그전에 차던 낡은 시계라고 한다. 나는 무심코 봐 왔는데 그동안 애지중지 차고 계시던 시계가 금 닷 돈이 들어간 금시계였단다.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밤이나 낮이나 차고 계셨다고 하신다.

"아니, 내 시계가 어디로 갔지? 맨 날 잠시도 안 빼 놓는데, 이기 언지 바뀐 기야."

기억을 되짚으시던 어머니는 낮에 빨래 할 때 잠시 빼놓았을 때가 시계가 없어진 시점이라고 결론을 내리셨다.

"그때 이웃에 원이(가명) 할머니밖에 집에 안 왔는데…."

몇 번을 찾은 끝에 그 결론은 좀 더 확고해졌다.

"거밖에 없다. 내가 시계를 빼놓질 않으니…."

가격도 비싸지만, 죽은 시누이가 준 금으로 만든 시계이기도 해서 어머니의 상심은 보통이 아니었다. 대구에 있는 남편이 시계가 걱정되어 다음 날 상주로 왔다. 뭐든지 잘 찾아내는 남편이 다시 한 번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어머니의 결론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때 이웃의 그 할머니가 오셨다.

"시계 찾았나? 잘 찾아보제."
"없어, 자네 밖에 없어. 가갔으면(갖고 갔으면) 내놔."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나 단정적으로 어머니는 들이대셨다.

"뭐라카노? 내보고 가갔다 카나? 진짜로 카나? 부로(거짓으로) 카나?"

그렇게 농담처럼 시작한 실랑이가 나중에는 다투는 수준이 되었다. '점점 문제가 심각해지는구나. 이러다 이웃 간에 원수 되는 거 아냐?' 이런 걱정이 살짝 들었다.

"자네 왜 이카나? 정신이 있나, 없나? 마한데(뭐하러) 날 오라 캐가 욕을 봬나?"

이웃집 할머니는 억울한 듯이 항변하셨다. 어머니 태도가 좀 과한 듯하여 걱정이 되었다. 나는 남편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여보! 이웃지간에 괘안켔나? 사실 증거도 없는데…."
"글쎄, 이제 그만 마음을 돌리라 캐야지. 할 수 없는 거…."

이튿날이 되어도 어머니는 이웃 할머니가 훔쳐갔다는 생각을 더 굳혔다. 저러다 앓아누우시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시내 나가는 길에  상주 경찰서에 들렀다.

"저, 어머니 금시계가 없어져서 어떻게 신고라도 해보려고 왔는데요."
"아! 그건 여기 오시는 게 아니라 파출소에 가면 됩니다."

돌아오는 길에 면소재지에 있는 파출소로 갔다.

"도난신고로 보긴 어렵고… 분실신고로 하면 됩니다."

근무하던 경찰관이 분실신고로 처리해 주었다.

"상주 시내의 금은방에 한 번 수배를 해주시면 좋겠는데요."
"노인네들, 정신없어서 그런 경우가 많으니, 다시 한 번 집에 옷 주머니하고 샅샅이 찾아보이소."
"예, 잘 알았습니다. 다시 찾아보고 저녁에 연락 드릴께요."

집에 와서 벽에 걸린 어머니 옷 주머니를 만져 보았다. 그래도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께 파출소에 신고했다는 말씀을 드렸다.

"오늘 내가 그 할마씨에게 또 그캤디마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대이. 그래서 내가 오히려 잘못했다 캤대이."

2차전을 하신 모양이다.

"파출소에서 동네 이장을 통해서 방송해줄라 카던데, 우야까예?"
"동네 야단시리 카는 건 좀 그렇대이."
"혹시 잃어버린 거 누가 주웠으면 갖다 달라고 방송하는 긴데…. 싸운 것 땜에 괜히 부담스러워 그러시지예?"
"그래."

파출소에 전화를 해서 동네 방송은 하지 말고, 금은방에 수배만 부탁한다고 말씀드렸다.

다음날 새벽 6시쯤,

"야야! 자나?"

어머니가 나를 깨우시더니 내가 자고 있는 방에 들어오셨다.

"시계 찾았대이."
"어디에 있었으예?"
"찬장 쟁반 속에 있드라."
"아이고, 우야꼬? 그래도 찾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키(=그러게) 말이다. 근디 남 우사하게 되었으니 우야노? 우째 그리 찾아봤는데, 거는 못 봤으까?"
"남이 갖고 갔을 거라고 생각하니, 다른 생각은 더 못했는 갑지예."

사과하기가 얼마나 남세스러우셨을까? 나도 파출소에 시계 찾았다는 전화를 드렸다. 늘 끼고 다니시던 옥반지와 목걸이가 안 보이길래 여쭤봤더니, 언제 그런 게 있었냐는 반응을 보인 적도 있었다. 칠순 때인가 장만해 드려서 적어도 오륙년은 몸에 지니셨는데,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 못하심에 적이 놀랐다.

어머니 스스로도 치매가 올까봐 걱정을 많이 하셨다. 적십자 병원에 전화해서 치매 검사 받는 절차를 문의했더니 보건소에서 미리 예비 검사를 받고 오면 비용이 절약된다고 조언해 주셨다. 어머니를 모시고 인근에 있는 보건소에 갔다.

"할머니 올해 몇 년이에요."
"몰라, 올해 몇 년인지…."
"그럼 할머니, 오늘 몇월, 며칠이에요."
"몰라. 가만 음력 사월인가?"
"뭔 요일이에요."
"몰라, 뭔 요일인지…."
"할머니 이키 안 그렇더니 언제 갑자기 이래 기억력이 없어졌어요?"

오래 전부터 보건소 소장과 아는 사이인지 총기 있던 어머니의 변화에 보건소장님이 걱정을 하신다. 날짜와 요일은 모를 수도 있다. 나도 휴직으로 학교에 안 나가고 시골에 있으니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제가 하는 말 따라해 보세요. 나무"
"나무"
"기차"
"기차"
"모자"
"모자"
"나무, 기차, 모자"
"나무, 기차, 모자"

"이제 혼자 해 보세요."

"몰래. '모자'라 캤나?"
"나머지는요."
"몰라."
"다시 한 번요. 나무, 기차, 모자."
"나무…. 모르겠대이."

노인성 치매는 요즘 급상승하는 병이다. 특히 '트라우마'에 해당하는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 상처에 대해 은폐와 소거 수준에 가까운 기억력 장애가 생긴다고 한다. 그 상처와 다시 대면하고 싶지 않아서 생기는 일종의 심리 방어기제 현상인데, 그렇게 되면 다른 기억도 희미해지는 '동반 기억력 감퇴'가 진행된다는 것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어머니의 경우에도 일찍이 당신 삶에서 잘 키워 놓은 다 큰 자식을 갑자기 잃은 상처가 있어서 촉진된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전보다 많이 안 좋아지셨네요. 이키 안 그랬는데…. 다음 주에 다시 연락 드리끼예."

보건소장님의 안쓰러운 시선을 뒤로 두고, 문을 나섰다.

"약 먹으면 괘안겠제."

수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쓸개 수술하느라 몇 번 마취하고 그래서 그럴 수도 있어예. 나중에 적십자 병원에서 정밀 검사 받은 후에 시키는 대로 하믄 되겠지예."

시골에서 논밭뙤기 하나 없이 시작한 살림에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젊은 날 너무 용을 쓰면서 살아오신 어머니시다. 뭐든지 포기하는 법이 없이 기를 쓰며 하신다. 그러다보니 잔걱정이 점점 많아지고 신경도 예민해지면서 밤에 잠을 못 이루신다. 나이 들수록 몸이 편찮으니 잠을 못 이루는 날도 많아지고 불안증세도 심하다.

건망증도 정도를 더해가니 좋은 방법이 없을까를 궁리하다가, 경전을 베끼는 사경을 생각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문전에도 못 가보신 어머니지만 한글 사용은 자유로우셨는데 요즘은 쓰기가 갈수록 안 되는 걸 느낀다. 사경(寫經)을 하다보면 쓰기 공부도 겸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광명진언' 사경 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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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쓰신 사경시어머니께서 쓰신 광명진언 사경을 며느리가 검사해 드린 것 ⓒ 박영숙


"어머니! 낮에는 제가 어머니 시키는 대로 어머니 선생님께 농사 열심히 배웠으니까 밤에는 어머니가 제 학생 되셔야 해요. 이제 학교 휴직해서 가르칠 학생도 없으니까 어머니가 제 유일한 학생이에요."
"뭐, 이 나이에 죽을 때 다 됐는데 공부하라카노?"
"어머니가 제일 겁내는 게 치매잖아요. 이게 치매 예방에 약보다 더 효험이 있는 거예요."

그래도 싫진 않으신지 책을 드신다.

"제가 진하게 한 번 먼저 써 볼 테니까 다음 줄부터 어머니가 써보세요."
"내 친정집 앞에 초등학교가 안 있었나. 그 학교가 얼매나 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또 치다보고 또 치다보고…. '나는 언제 학교 한 번 다니 보나?' 생각했다. 내 공부 시키줬으면 정말 잘 했을 긴데…. 허기사 남동생 중에도 학교 안 보낸 아도 있는데, 딸자슥인 나를 안 시킸는 건 당연하제. 그래도 내가 혼자 다 안 캐칬나. 시집와가 형님하고 둘이서 며칠 저녁만 공부하니께 읽을 줄 알겠대."
"어머니야, 남들처럼 공부했으면 대통령도 못 하셨겠어요? 그렇게 똑똑하신데…. 그때 못 하신 거 지금 하시면 되잖아요."
"인지(인제) 뭐."
"육십 넘으신 할머니들이 공부에 포은 져서 한글부터 시작해서 대학교까지 가시는 분도 있잖아요."

"그래, 그런 사람들 테레비 많이 나오데. 그래도 그기 쉽나?"
"글자 새로 배우라카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 원래 아시는 거 계속 써보자카는 건데 그게 뭐 어려워요? 이제 잠 안 온다 카시지 말고, 잠 안 오면 요 부처님 말씀 글자 쓰시면 돼요. 쓰다가 쓰기 힘들면 얼른 주무시면 되잖아요."
"이기(이게) 무슨 글자고?"

시범 글자를 진하게 써놓았어도 번번이 글자를 잘못 쓰신다.

"옴이요. ㅇ에다가 점찍고 아래에 작대기요."

일일이 글자 한 자씩을 불러 드렸다. 틀리게 써도 사기가 떨어지실까봐 그냥 가만히 있었다.

"쓴 거 한 번 읽어 보시고 쓰입시더."

진언이 어려워서 입에 쉬이 익질 않는다.

"야! 글자 잘 썼다."

한 페이지를 완성해놓고 스스로 감탄을 하신다.

"정말 잘 썼네요. 검사해 드릴게요."

빨간 볼펜으로 '참 잘 썼습니다'라고 검사 글자를 써드리니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신다. 며느리 선생님에게 받은 칭찬에 주경야독(晝耕夜讀)하는 늦깎이 학생의 얼굴이 박꽃처럼 환해졌다.
덧붙이는 글 가족 인터뷰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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