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앞두고 두 번째 해고..."가족에게 뭐라 할지"

[取중眞담] 한국타이어 정승기씨

등록 2013.09.20 12:18수정 2013.09.2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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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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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대전공장에서 근무하다 회사를 비판, 명예훼손 등 이유로 지난 2010년 3월 해고된 정승기씨가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추석 앞두고 심란하네요.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지난 14일 정승기(51)씨가 기자에게 보낸 휴대폰 문자 내용이다. 그는 이날 아침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복직한 지 두 달 만에 받아든 해고통지서에 그는 당황했다.

전화통화를 하는 내내 그는 기자에게 몇 번씩 되물었다.

"제가 정말 두 달 동안 해고될 말한 일을 했나요? 복직됐다고 기뻐하던 가족친지들을 추석에 만나면 뭐라고 말해야 하죠?"

1993년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 입사한 그는 회사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주는 상을 열 몇 번을 받았다.

2004년 동료의 죽음에 '충격'

2004년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일이 벌어졌다. 친한 동료 한 명이 작업 도중 기계에 머리를 눌려 사망했다. 회사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기계를 돌렸다. 노조도 태연했다. 노조는 동료의 죽음에도 대의원 연수를 떠났고 집행부와 대의원 누구도 장례식장을 찾지 않았다. 근조 리본을 작업복에 달고 작업장에 가자 관리자가 "이곳은 일하는 곳이지 장례식장이 아니다"며 리본을 뗄 것을 요구했다. 정씨는 당시 일에 대해 "추모마저 못하게 하는 회사 분위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6년 5월부터 2007년 9월 말까지 각종 질환으로 10여 명의 동료직원들이 죽어나갔다. 그는 회사를 상대로 쓴소리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상장 대신 징계가 뒤따랐다. 그는 지난 2010년 3월 해고됐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행정법원 1·2·3심 모두 '부당해고'로 판정했다. 사측은 고등법원 재판부가 재판과정에서 '정직 3개월'에 '원직 복직'을 조정안으로 제시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등법원은 지난 2월 판결문을 통해 "해고처분은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이 있는 경우 행해져야 한다"며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어 해고처분은 (징계범위를) 일탈 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한국타이어가 고등법원 판결에 불복해 상고하자 이례적으로 '심리불속행 기각'했다. 심리를 할 이유조차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씨는 법원의 판결로 지난 7월, 3년 4개월여 만에 복직됐다. 그로부터 두 달 만에 또 다시 한국타이어는 갈 수없는 곳이 됐다.

두번째 해고사유 "연차를 3일이나 사용하고 유인물 배포"

복직된 지 두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정씨는 "복직 이후 정말 성실히 일했다"고 말했다. 반면 사측 징계위원회가 보낸 해고통지문에 기재된 내용은 이렇다. 

"복직해 근로를 시작한 지 보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노조활동을 빙자하여 연차를 3일이나 사용하고 (3회에 걸쳐 허위사실이 기재된)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본래의 업무를 소홀히 하였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회사에 정상적인 근로를 제공하겠다는 진정한 의사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사측은 이외에도 지난 2008년 있었던 일부터 끄집어 내 해고사유에 포함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에 대해 '부당 해고'여부를 다투면서 '해고에 이를 정도로 무거워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복직 이후 두 달간 있었던 일은 '3일간 연차를 사용하고 회사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3차례 배포'한 게 전부다. 연차는 '사업자가 직원에게 1년에 일정 기간씩 주도록 정해진 유급 휴가'다. '무단결근'이 아닌 '정해진 유급휴가를 사용한 일'이 징계 또는 해고사유가 될 수 없는 건 자명하다. 게다가 사측은 지난 2008년 정씨를 대전물류센터로 전보발령하면서 근로조건과 관련 '법령 및 사규에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노조활동 및 정당 활동에 어떠한 제약도 없다'고 안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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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 대전공장 ⓒ 심규상


유인물을 배포한 일 또한 '해고 사유'로 삼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정씨 등은 통상임금 문제와 관련 조합원에게 배포한 홍보물에서 "조합원의 체불임금마저 사측에 팔아먹으려 한다"고 노조를 비판했다. 이어 "기껏해야 수당 몇 개 포함되는 통상임금산정 논의 반대", "체불임금은 임단협 협상 대상이 아니다"며 노사협상 과정을 견제했다. 이와 관련 한국타이어 노동자 140여 명은 지난 3월과 6월 정기상여금과 근속수당, 교대수당, 휴가비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어야 한다며 대전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노동조합 조합원이 노조 집행부를 비판한 일을 사측이 징계하고 나선 것은 노조와 한통속이라고 자인하는 게 아니라면 오지랖이 넓다고 밖에 할 방법이 없다.

정씨 "통상임금 소송 취하 강요" vs 사측, 진위파악 없이 "허위사실 적시"

때문인지 사측은 징계사유에 "회사가 조합원들을 상대로 통상임금 소송을 취하하도록 강요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적시했다"고 강조했다. '사원을 선동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적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징계 양정을 다투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씨는 지난 11일 징계위원회에 출석해 "진위여부를 입증할 증거자료를 갖고 있다"며 "허위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측 징계위원회는 정씨의 얘기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정씨가 기자에게 건넨 녹취록에는 통상임금 소송에 참여했다 취하한 직원들의 음성이 담겨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사측 관리자가 소송을 취하하도록 강요해 할 수없이 취하했다"고 밝히고 있다(녹취 내용에 대해서는 별도 기사로 소개). 그런데도 징계 심의위원 중 누구도 정씨에게 어떤 증거가 있느냐고 묻거나 사실여부를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정씨는 "한 차례 형식적인 징계위원회 직후 해고를 통지했다"며 "미리 해고를 결정해놓고 심의를 벌인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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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아침, 정승기씨에게 전달된 해고통지서 ⓒ 심규상

정씨는 다시 두 번째 복직 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객관적 사실만을 놓고 보면 노동위원회와 법원이 이번에도 '부당 해고' 판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해고'를 통한 사측의 목적은 이미 성취된 것으로 보인다. 사측의 징계 목적은 회사를 비판하는 눈엣가시 같은 직원을 법원판결이 날 때까지 회사와 격리시켜 놓는 것 자체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이기 때문이다. 

정씨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네 식구의 가장인 정씨에게 또 다시 꿋꿋하게 빈주먹으로 수년간 해고의 고통을 감내하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상식적인 문제 제기조차 통하지 않는 회사에 대한 미련을 접으라고 해야 할지.

분명한 것은 정씨에게 2013년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 달무리는 근심과 걱정의 그림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국타이어 #추석 #부당해고 #정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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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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