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집에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까지

발길 닿는 곳마다 어릴 적 고향마을 같은 나주 도래마을

등록 2013.09.19 14:45수정 2013.09.2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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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마을옛집. 서울 성북동의 최순우의집에 이어 시민문화유산 2호로 지정돼 있다. ⓒ 이돈삼


가을햇살이 따사롭다. 살갗에 와 닿는 바람결이 달콤하다. 쪽빛 하늘의 뭉게구름도 멋스럽다. 대봉을 주렁주렁 매단 감나무가 골목길 돌담에 살며시 기대 서 있다. 큰 호박덩이도 담장 위에서 대롱거린다.

까치발을 하고 내다본 기와집이 단아하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물 흐르듯 유연한 곡선을 그린 처마가 시선을 붙든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도 애틋하다. 빈터에 피어난 코스모스도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눈길 가는 곳마다 예스럽다.


'나주배'로 유명한 전남 나주시 다도면 도래마을이다. 골목마다 옛 정취가 넘실댄다. 요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어릴 적 뛰놀던 고향마을 같다. 지난 11일 마을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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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마을 돌담. 친구들과 어깨 걸고 거닐던 어릴 적 고향마을 같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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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마을 돌담. 고풍스런 분위기가 정겨움을 더해 준다. ⓒ 이돈삼


도래마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마을이다. 마을을 식산(食山)이 품고 있다. 식산 감투봉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세 갈래로 내 천(川) 자를 이룬다고 '도천(道川)마을'이었다. 이후 우리말로 바뀌면서 '도내'에서 '도래'로 바뀌었다.

고려 때 남평문씨가 들어왔고 조선 초 강화최씨가 들어와 마을을 이뤘다. 조선중종 때 풍산홍씨 홍한의가 들어왔다. 조광조와 인연을 맺었던 그는 기묘사화의 화를 염려해 낙향했다. 풍산홍씨의 집성촌이 된 출발점이다.

지금도 주민의 60% 이상이 풍산홍씨다. 소설 <임꺽정>으로 유명한 홍명희의 할아버지(홍승묵)와 1970∼1980년대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던 홍남순 변호사가 이 마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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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마을 영호정. 마을사람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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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마을 양벽정. 연못과 어우러져 한층 멋스럽다. ⓒ 이돈삼


마을로 가는 길을 걷는다. 오른쪽으로 영호정이 있다. 오래전 도천학당이 있던 자리다. 풍류의 장소였던 일반적인 정자와 달랐다. 지금은 마을사람들의 쉼터로 쓰이고 있다. 왼편은 양벽정이다. 양반들이 풍류를 즐겼던 정자다. 양벽정 앞으로 연못이 최근 만들어졌다. 기러기들이 연못을 지키고 있다.


영호정과 양벽정을 보고 '도래마을옛집'으로 간다. 마을의 안내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지정한 시민문화유산 제2호다. 시민들이 모은 돈으로 터를 사고 복권기금으로 안채와 문간채를 복원했다. '옛집'이라 부른 것도 특별하다.

"우리 옷을 한복, 음식을 한식, 집을 한옥이라고 하잖아요. 이 말에는 서양의 것이 훨씬 우수하고, 그것을 닮고 싶어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어요. 우리 것의 장점을 제쳐두고요. 옛사람들의 지혜를 소중히 여기자는 뜻에서 '옛집'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정감도 더 있잖아요."

도래마을옛집에서 만난 김현숙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전남지부 관리팀장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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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마을옛집.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복원한 시민문화유산 2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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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응 가옥의 배롱나무. 건물과 나무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 이돈삼


마을에 옛집이 많다. 모두 풍산홍씨의 고택이다. 도래마을옛집 주변에 모여 있다. 홍기헌가옥(중요민속자료 165호)은 마을에서 가장 오래 된 집이다. 도래마을옛집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홍기응가옥(중요민속자료 151호)은 현존하는 풍산홍씨의 종가다. 1892년에 지어졌다. 솟을대문 옆 배롱나무에도 세월이 스며있다. 옛날 부잣집의 기품 그대로다. 책을 보관하는 장서각이 따로 있는 것도 별나다. 옛주인이 책을 가까이 한 당대의 독서광이었던 모양이다.

홍기창가옥(전라남도민속자료 9호)도 오래 됐다. 본디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안채만 남아 있다. 나머지는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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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창가옥에 핀 옥잠화. 홍기창가옥은 도래마을에 있는 풍산홍씨 고택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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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마을 계은정. 마을 뒤 식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풍산홍씨의 옛집을 둘러보고 계은정(溪隱亭)으로 간다. 홍기창가옥에서 대숲 우거진 길로 이어져 있다. 감투봉 자락에 있다. 인공의 흔적을 최소화한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그 생김새가 소박하다. 계은정에서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누렇게 물들고 있는 들녘도 마음 넉넉하게 해준다.

계은정의 숲에서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산길을 걷는다. 길이 제법 넓다. 경사도 급하지 않다. 솔방솔방 걷기 좋다. 감투봉과 식산 정상이 금방이다. 드넓은 나주평야와 굽이굽이 흐르는 영산강이 눈에 들어온다.

식산 정상에서 길이 전남산림자원연구소로 나 있다. 전남산림자원연구소는 전남도의 임업관련 시험·연구기관이다. 담양에 버금가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연구소 정문에서 사무동으로 가는 길에 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길이가 500여m 정도 된다. 폭이 담양의 것보다 좁다. 그래서 더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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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산림자원연구소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 느티나무 고목 위에 베짱이 오케스트라가 눈길을 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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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짱이 오케스트라. 전남산림자원연구소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에서 만난다. ⓒ 이돈삼


메타세쿼이아 나무 아래로 보랏빛 맥문동이 줄지어 피어있다. 멋스럽다. 상사화로 알려진 백양꽃도 피고 있다. 숲길도 싱그럽고 호젓하다. 뉘엿뉘엿 혼자서 걸으며 사색하기에 그만이다. 둘이서 밀어를 속삭이기에도 좋겠다. 혼자 걷든, 둘이 걷든 모두 작품사진의 배경이 된다.

느티나무 고목에 설치된 조형물 '베짱이 오케스트라'도 재미를 더해 준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베짱이하고는 근성이 다른 것들이다. 날마다 쉬지 않고 합주를 하고 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 주변의 산책로도 호사를 선사한다. 치유의길, 숲내음길로 이름 붙여놓은 것도 반갑다. 희귀한 나무도 많이 만난다. 은청가문비, 들메나무, 개잎갈나무, 꽝꽝나무, 칠엽수…. 나무에 붙은 이름표를 하나하나 훑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배롱나무와 푸조나무, 붉가시나무도 있다. 수목원이 따로 없다. 산림자원의 보물창고라 해도 손색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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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산림자원연구소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 담양의 그것에 버금갈 만큼 운치가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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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산림자원연구소 산책로. 가을의 분위기가 묻어나 운치를 더해 준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동광주나들목으로 들어가 광주제2순환도로를 타고 가다 목포방면 1번국도를 타야 한다. 남평오거리에서 봉황·불회사방면(55번지방도)으로 전남농업기술원을 지나면 왼편에서 전남산림자원연구소와 도래마을을 차례로 만난다. 내비게이션에는 도래마을옛집(전남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199번지)을 입력하면 된다.
#도래마을옛집 #도래마을 #전남산림자원연구소 #홍기창가옥 #홍기응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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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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