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나... 다르지 않은 우리

[공모-가족이야기]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진리...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등록 2013.09.25 11:22수정 2013.09.2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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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여행박사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하는 '가족이야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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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저리 가거라 뒷태를 보자~."


오늘도 현관문 밖에서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바로 우리 앞집 할머니의 목소리다. 연세가 90이 넘으신 할머니는 아직도 천지를 뒤흔들 만한(?)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가지고 계시며, 늘 정갈한 모습에 인자한 웃음이 트레이드 마크다.

노인정 등의 외부출입을 전혀 하지 않고, 일층의 경비실 앞에 앉아 동네 터줏대감을 자처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신경 쓰이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료한 목소리로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그의 모습은 늘 인자하여 우리 아파트의 한 구석에 온기를 불어넣곤 했다.

그러나 그러한 분도 세월을 거스르지는 못한 모양이다. 거의 일 년쯤 전부터 주위 사람들을 못 알아보거나 경비원 아저씨에게 집요하게 시비를 거시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복도에 앉아 하염없이 노래를 부르거나 오가는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지시는 일들은 이제 할머니의 일상이 되었다.

변해버린 앞집 할머니, 그러나 가족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의 일이다. 새벽 2시 30분쯤 겨우 잠이 들었는데, 잠이 들자마자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외시경을 통해 확인해보니 앞집 할머니였다. 평소에도 종종 그 시간까지 안 주무시고 의자에 앉아 계시는 것을 알고 있는 터라 아주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시던 할머니는 몸을 돌려 당신의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는 다시 잠들었는데 새벽 4시쯤 되어 다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다른 가족들이 깰까봐 살금살금 다가가 다시 내다보니 역시나 할머니였다. 뭔지 모를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경비원 아저씨가 자리에 안 계셔서 그 이유를 묻고 싶으셨나 보다'라고 추측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아저씨가 오셔서 그 일은 일단락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추석이 되었다. 문을 열어놓은 할머니의 집 안에는 가족들이 명절을 보내려 와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한참 후 할머니는 그들을 배웅했는데, 외출하려 나서던 남편과 나를 발견하고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쟤가 우리 큰아들이여. 우리 큰아들. 추석 쇠러 왔다가 이제 가는 거야. 내 걱정은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했어. 뭔 걱정이여?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예. 할머니. 가족들 만나서 기쁘셨죠? 손자랑 손녀들도 오고."
"아! 좋다마다! 근데 내 걱정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어!"

당신을 걱정하지 말라 했다고 재차 강조하시는 할머니의 얼굴과 눈동자는 모처럼 아주 밝았다. 그간 경비원 아저씨에게 발견되어 119 구급차에 실려 가셨던 일도 여러 번이라 주위의 우려를 샀으나, 가족들을 만나자 조금은 회복된 모습을 보이신 것이다. 

지난번 새벽의 일이 있은 후, 명절을 지내신 할머니는 비교적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계신 듯하다. 마치 휴화산 같은 그 모습이 불안하긴 하지만, 바깥에서 간간이 들리는 할머니의 노랫가락에는 힘이 실렸고 흥 또한 살아 있어 정겹기 그지없다.

그러나 일련의 소식을 들은 나의 어머니는 할머니에 대해 우려의 말씀을 하신다.

"저 할머니 저러시다 큰일 나시는 거 아니냐? 낮에는 돌보는 사람이 있는 것 같던데 밤에는 없는가 보구나. 가족들한테 알려야 하는 거 아닌가?"
"새벽에 초인종 누르시는 일이 또 있다면 알려야겠죠. 관리실에서 연락처를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걱정은 걱정이네요. 밤에 혼자 계시면 안 될 텐데."

당신의 가족들에게는 걱정하지 말라 전하셨지만, 정작 앞집에 살고 있는 우리는 걱정이 태산이다. 그것은 아마도 경비원 아저씨를 포함한 우리 아파트 같은 동 사람들 전체의 것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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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뒷모습 어느 날 인천의 어느 부두에서 찍은 어머니의 모습이다. 야윈 어머니의 등에는 항상 배낭이 매여 있다. ⓒ 한경희


어머니와 나의 너무 다른 생활방식, 드디어 독립하기로 결정하다

앞집 할머니를 걱정하셨지만, 팔순을 바라보시는 나의 어머니에게도 노화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것은 때로 걷잡을 수 없는 수집벽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동안은 어디서 나셨는지 모를 김치와 음식들을 조금씩 가져오셔서 냉장고를 가득 채우시기도 했고, 온갖 두루마리 휴지를 당신의 방과 화장실 등에 늘어놓으시기도 했다.

"엄마. 냉장고가 음식들로 꽉 찼어요. 가뜩이나 크지도 않은데 다른 물건 넣기가 힘들어요. 식구도 몇 안 되는데 이제 조금씩 담아 먹게 그만 가져오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휴지를 가구 사이사이에 그렇게 마구 끼워 넣으면 곰팡이가 피게 되거든요. 공기가 통해야 곰팡이가 피지 않아요."
"알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뭘 자꾸 주니 안 가져올 수가 없구나. 그리고 나는 휴지를 그렇게 끼워 넣어야 곰팡이가 피지 않는 줄 알았어."

견디다 못해 제발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읍소를 전하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생활방식과 가치관 등의 차이는 상상 이상의 분란을 만드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어머니 나름대로는 가족들을 위해서 하신 일이고 나름 타당하다고 생각하시는 이유도 있겠지만, 일상이 그로 인해 침범당하는 느낌이 들자 나는 문득문득 독립을 꿈꾸는 날이 많아졌다.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어머니를 위해서도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잔소리는 일상에 파문을 만들기도 하거니와 나와 어머니의 독립성에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열거한 일들만 제외한다면 어머니의 건강 상태는 아직까지는 무척이나 좋으신 편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낮에 잠깐 들렀다 저녁 무렵 들어오시는 것이 어머니의 일상이다.

게다가 어머니는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내가 얼른 독립을 해야 할 텐데. 너희 신세를 언제까지 지겠니."

그럴 때마다 남편은 넌지시 나에게 말하곤 했다.

"연로하신 분들은 혼자 사시면 확 늙으시더라구. 아무래도 외로우실 테니까. 난 안 나가셨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어머니가 변하지 않으시니 같이 살 자신이 점점 없어져요. 소소하지만 다툼이 계속된다면 서로에 대한 애틋함도 점점 사라질 것 같아요. 그리고 멀리가 아니라 근처에 사실 거니까."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양의 김치, 음식들과 휴지에 담긴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정말 '별 것 아닌' 것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전체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신념, 가치관 같은 것들이 상충될 때에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배부른 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치매 등의 이유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경우와 결코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앞집 할머니를 예로 든다면 조금 설명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무 걱정 말라는 어머니의 당부에 그런 줄만 알고 있을 아들, 그러나 전후사정을 많이 알고 걱정하는 주변사람들과의 입장 차이 말이다. 한마디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수많은 변수가 있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다는 것 등이다.

어머니의 변한 모습은 내가 예전에 알고 있었던 어머니와 너무나도 달라 문득문득 의아해지곤 한다. 이제는 그것이 노화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랬던 분이었는지도 헷갈릴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어머니와의 대화 끝에 결국 방을 얻어 나가시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남편은 거실 한 켠에서 묵묵히 아무 말도 없었고, 나는 야속하고 못된 딸이 되었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더 연로해지고 힘들어지시면 다시 모셔올 거라는 마음의 약속은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떨어져 있으면 더욱 애틋해지고 반가운 사이가 될 거라는 바람과 나름의 합리화(?)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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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핸드폰 배경화면 다소 '오글거리는' 글귀지만, 어둠 속에서 쓸쓸히 걸어오시던 어머니의 야윈 모습은 언제까지고 잊지 못할 것이다. ⓒ 한경희


어둠 속에 걸어오시던 야윈 어머니, 사랑하기 위해 그 모습 기억할게요

그리고 저녁이 되었다. 밖은 어둑했지만 어머니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으셨다. 남편과 나는 동네를 한 바퀴 돌기 위해 집을 나섰다. 가을 저녁의 선선한 공기는 최적의 산책을 돕고 있었다.

어머니와의 대화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한번 결심한 일이니 지키기로 마음을 다잡아 보았다. 십몇 년을 함께 지냈으니 잠시 떨어져 있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자기위안도 다시금 마음을 잡는 데 도움을 주었다.

걷는 도중 남편에게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어떻게 생각해요? 나와 엄마의 결정에 대해."

온전히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쪽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남편의 답을 기다렸다.

"나는 반대지만, 당신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지 뭐."

여전히 남편의 얼굴이 어둡다. 그럴 때마다 더욱 철없는 아내, 딸이 되는 것만 같아 괜스레 심술이 난다. 못나고 쪼잔한 인간의 전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일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문이 닫힌 소방서의 어두운 앞길을 지나고 있는데 가녀린 실루엣이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어머니였다. 작은 키, 바짝 마른 몸은 힘없이 흔들거리고 있었고, 땅을 내려다보는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 쓰러질 듯 걸어오시는 그 모습에 말문이 턱 막혔다. 고민을 거듭하신 탓인지 더욱 깊어진 주름살이 보이는 듯했다.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참으며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어디 갔다 이제 오세요. 집에 가서 좀 쉬고 계세요. 한 바퀴 돌고 갈게요."

그제야 우리를 발견하신 어머니의 힘없는 얼굴에 놀란 빛이 가득하다.

"그래. 다녀와라. 먼저 들어가 있으마."

집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어깨에 힘이 하나도 없다. 쓰러지실 듯한 그 모습에 연신 마음이 쓰라리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사진에 글씨를 써넣을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탐색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쓰러질 듯 걸어오시던 슬픈 모습만 기억해'라는 글씨를 사진에 새기고 배경화면으로 등록했다. 그 충격적이며 슬픈 모습만 기억할 수 있다면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충분히 극복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나와 어머니는 다시 식탁에 마주 앉았다. 어머니는 할 말이 있다 얘기하는 나에게서 나올 말들에 미리 대비하시는 듯 비장한 모습이었다. 

"이제 방 알아볼게. 걱정하지 마라."
"아니에요. 엄마. 우리가 소소한 몇 가지의 약속만 지킬 수 있다면 함께 살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어려운 것은 아니실 거라고 생각해요. 몇 개 되지도 않고,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요. 사실 결혼을 하게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되지 않다 보니 나에게는 커다란 부담이었나 봐요. 같이 살더라도 그 점만 보장이 된다면 좋겠어요."

어머니의 얼굴에 그제야 웃음이 번진다. 안도의 한숨이 언뜻 보인 것은 나의 착각만은 아니었으리라.

그런 다음 우리는 어머니의 수첩에 서로의 약속을 적었다. 번호를 매겨가며 적어 내려가는 동안 우리는 마치 소녀들처럼 웃기도 했다. 그 바람이 철저히 지켜지리라는 것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아들의 휴가, 어머니는 또 다시 당신의 약속을 잊으셨다

추석이 지나고 아들이 휴가를 나왔다. 2박 3일의 짧은 휴가지만 말년병장의 여유가 보인다. 아이를 위해 나는 밥상을 차렸다. 오랜만의 집밥이 녀석을 행복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말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조용하시다. 다른 때 같으면 같이 밥상을 차리느라 분주하실 텐데 말이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나에게 온전히 일임하시기 위해 방에 들어가셨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괜스레 기뻤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한참 후 현관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어디 다녀오신다는 말씀도 없으셨는데, 손에는 백화점에서 사 온 음식을 한보따리 들고 계셨다. 열어보니 족발 및 여러 음식들과 양념 등이 한 가득이다. 그것이 아니어도 이미 식탁에는 빼곡히 음식이 차려진 상태였는데 말이다.

덕분에 조미료가 적게 들어가 싱겁기 짝이 없는 소박한 집밥으로 아들을 기쁘게 해주려던 나의 계획은 또 다시 어그러지고 말았다. 결국 음식들은 엄청나게 많이 남게 되었고, 나의 머릿속은 그로 인해 또 다시 어지러워졌다. 어머니와의 약속수첩에는 분명 '밖의 음식은 되도록 들여오지 않는다'라는 것이 있었는데, 불과 하루 만에 뒤집어지다니. 이 노릇을 어쩐단 말인가.

밥상을 물리고 난 후 나는 아들에게 나의 핸드폰 배경화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여태 있었던 일들에 대해 털어놓았다.

"어쩌면 좋으니. 너 제대할 때도 멀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일들로 할머니와 엄마가 말다툼 하는 모습을 제대 후에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다시는 할머니께 잔소리 안 한다고 이렇게 다짐까지 했는데."

눈물이란 참 신기하다. 한번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멈추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덕분에 아들 앞에서 눈물이나 흘리는 바보 같은 엄마가 되고 말았다.

"엄마. 예전에 엄마가 말씀하셨잖아요. 할머니 세대는 살아온 세월이 워낙 험했고, 그에 걸맞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셨기 때문에 참으로 불행한 세대라고. 그분들이 변하기는 참 쉽지 않다고. 그러니 할머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할머니가 하시는 일들이 결국은 우리를 위하는 것이니 말이에요."

아들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는 몹시도 부끄러워졌다.

아들을 통해 본 나의 모습... 나도 할머니·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날 밤이었다. 대학 동기들을 만나러 나갔던 아들이 밤늦게 돌아왔다.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아들에게 말했다.

"업그레이드된 것 중에 '가상 홈버튼' 기능이 있더라. 네 홈버튼 잘 안 눌러지잖아. 그거 사용해 봐."
"아니에요. 엄마. 잘 돼요. 바꿀 필요 없어요."

만류하는 아들의 손에서 핸드폰을 건네받고 나는 설정을 바꾸어주었다.

"괜찮은데…. 바꾸니 좀 불편한데…."

아들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곧 깨닫게 되었다. 분명히 괜찮다고 하는 아들의 말이 있었음에도 나는 내 임의대로 아들의 핸드폰 설정을 바꿔버린 것이다. 아들의 뜻은 무시한 채 뜻을 관철시킨 나의 옹고집이 대체 앞집 할머니, 어머니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나는 곧 방 안에 있는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미안하구나. 설정을 마음대로 바꿔서.'

아들에게서는 "아니에요. 이미 다시 바꿨어요. 하하"라는 답장이 왔다.

머리가 띵했고, 아들이 몹시 고마웠다. 아들은 나의 의도가 자신에게 해를 입히려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번거롭고 성가신 일이라 해도 일단 받아들인 후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그것을 바로잡았던 것이다.

그렇다. 나도 앞집 할머니, 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들이 결코 꺾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이제부터 발동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노화든 아니든, 내가 찾는 답은 이미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인간이란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마련이며, 그것이 세월이 지나며 완화되기는커녕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말이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노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나는 자주 잊는다. 수많은 치매노인들을 바라보며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오만함도 가끔 발견한다. 그러나 앞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내가 내 눈앞 노인의 어눌함을 탓하는 사이, 내 뒤에 서 있던 젊은이들이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가정은 아마도 가정으로만 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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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뒷모습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뒷모습은 늘 쓸쓸한 풍경을 만든다. ⓒ 한경희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 무조건 불행한 일만은 아냐

늙어가며 기억이 점차로 사라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것은 아마도 몹시 불행한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아예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경우라면 모르지만, 좋고 나쁜 기억들이 인식할 수 있을 만큼만 아주 서서히 잊힌다면, 그리고 그것이 주위 사람들을 서글프게 만든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면 말이다.

앞집 할머니는 한 해 전만 해도 자신이 새벽에 다른 집의 초인종을 연거푸 누르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밤을 꼬박 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아셨다면 할머니는 분명 몹시 괴로워하셨을 것이다.

할머니뿐만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모른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남들에게 계속 민폐를 끼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늘 자신을 자각할 수 있다면, 내가 한일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가를 두루 생각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생로병사,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겠는가. 그것이 남녀노소, 빈부격차 등에도 불구하고 거의 공평하다는 점은 우리에게 안도감을 전한다. 그리고 우리가 퇴행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지 생각하지 못하는 지경에 다다르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일지라도.

낮에 잠깐 집에 들르셨던 어머니가 다시 집을 나선다.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명절도 지났으니 진짜 내가 집을 알아볼게. 근데 전세가 많이 올랐더라."
"그런 생각 이제 하지 마세요. 어떻게 해야 우리가 잘 살 수 있을까만 생각하자고요."

어머니의 얼굴에 다시금 안도감이 퍼진다. 웃으며 현관문을 나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경쾌하다.

이제 나는 다짐 같은 것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흘러가는 세월에 그저 몸과 마음을 한번 맡겨볼 참이다. 다만 변하는 것은 변하는 대로, 그렇지 않은 것은 또 그렇지 않은 대로, 있는 그대로 한번 받아들여 볼 생각이다.

밖에서는 여전히 앞집 할머니의 낭랑한(!) 노랫소리가 들리고 있고, 언제고 새벽에 또다시 우리 집의 초인종을 누르실지도 모른다. 나의 어머니는 나와의 약속을 잊으신 채 외부의 음식들과 휴지 등을 잔뜩 가지고 오실 것이고, 나 또한 퇴행인지 성장인지 모를 시행착오를 계속하여 겪게 될 것이다. 다만 아직 나는 내가 한 일의 인과관계와 유기성을 어렴풋이는 깨닫고 있는 상태이며, 두 분은 그 기능을 많이 잃으셨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그것은 내가 그분들에 비해 조금은 젊어서이지, 결코 그들보다 현명해서는 아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나날이 스산해지는 가을바람이 왠지 싫지 않은 저녁이다.
덧붙이는 글 '가족 인터뷰(가족 이야기)' 공모 응모글입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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