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죽음... '슈퍼맨'이 돼야 했던 형님 이야기

[공모-가족인터뷰] 형님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등록 2013.09.25 12:09수정 2013.09.3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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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여행박사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하는 '가족이야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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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더 이상 쓸쓸해하지 마요. 이제 나와 같이 가요.


싸이의 <아버지>라는 제목의 대중가요 가사이다. 아버지의 힘든 삶은 반영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아버지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을 보면 누구나 이 노래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눈시울을 붉힐 것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은 예외였다. 그분은 바로 우리 형님이시다.

우리 형님은 20세부터 실질적인 우리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무거운 부담감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가족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말이다.

옹기종기 식구들이 모여 앉았다. 형님, 형수님, 나, 세 조카들. 이렇게 우리 여섯 식구가 한집에 같이 산다. 그리고 형님이 들려주는 우리 집 이야기를 들었다. 그 순간 마치 어린 아이가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님의 말이 끊기려고 하면 그 짧은 순간에 참고 있던 질문을 쏟아냈다. 그럼 이내 형님이 침착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날은 술에 취한 아버지가 늴리리야, 늴리리야 노래를 흥얼거리시면서 집으로 들어오셨어.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놉 얻어서 벼 베라고 돈 줬더니 어디서 술 퍼먹고 이제 기어 들어오는겨? 너한테 빚내서 준 돈 다 어쨌냐?' 하셨어. 그런데 아버지가 하신 행동이 가관이었어. '아. 아버지. 돈? 아~ 잠깐 기다려보세요' 하는데 천 원짜리와 몇 개의 동전이 주머니에서 떨어졌지. 할아버지께서 주머니에서 마저 돈을 꺼내고, 떨어진 돈을 주웠지.

화가 난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두들겨 맞는 니 마누라는 밭일에, 농사일에 허리 필 날이 없는데 새끼는 줄줄이 낳아놓고 어째 키우려고 맨날 술에 쩔어 사는겨?'라고 아버지를 혼내셨어. 근데 아버지는 잠자코 들으면 좋으련만 '뭘 해줬다고 나한테 큰소리야? 당신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하면서 할아버지께 대들었지 뭐야.


할아버지께서 '이~ 이놈이' 하고 아버지를 때리려고 하시려다가 체념하시고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거 애지중지 키웠더니. 휴~' 한숨을 내쉬시고는 말을 이어 나갔어. '내가 너를 잘 먹이지도, 잘 가르치지도 못했다마는 어찌된 인간이 지 마누라도 때리고 저를 낳아준 어미까지 때리니~ 어휴~ 내가 전생에 죄가 너무 많은가 보다. 어휴~ 이 꼴 저 꼴 안 보고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겠다.'

그리고 분에 못이겨 화장실에 있던 쥐약을 가져와 마시고 그 자리서 쓰러지셨어. 그게 이 형이 본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단다. 태균아, 그리고 너한테 큰누나 말고 누나가 있다는 사실 알고 있었냐?"

죽음으로 얼룩진 우리 가족 이야기... 형님은 어떻게 견뎠을까

사실 내 위로 작은누나가 있다는 것은 동사무소에서 호적등본을 뗄 때마다 보았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형님이 그 작은누나 이야기를 해주려 하신다. 

"아버지가 술병을 들고 휘청거리며 집에 들어오셨어. 그리고 어머니께 '야! 술 더 가져와~술!' 하면서 소리치셨지 수진이(작은누나, 가명)를 무릎에 앉히고 있던 어머니가 수진이를 얼른 내려 세우며 '수진야 너 나가서 놀다가 아빠 자면 그때 들어와. 알았지?' 하셨지. 심성이 착하던 수진이는 '네. 엄마' 하고는 어리광 없이 바로 엄마 말을 들었어. 근데 그게 화근이었어. 그리고 술을 더 받아 오라는 아버지의 성화에 어머니는 '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내 얼른 받아 올게요' 하며 주전자를 들고 나갔다 들어오셨지.

그 순간에 이웃집 아주머니가 밖에 다급한 목소리로 수진이 엄마 수진이 엄마 하며 우리 엄마를 찾는 거야. 등에는 수진이를 업고 있는 채 말이야. '왜요?'라고 묻는 엄마에게 이웃집 아주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셨어. '수… 수… 수진이가 물…가에서' 그리고 수진이를 바닥에 내려놓으셨어. 그런데 몇 시간 전까지 생글생글 해맑게 웃던 수진이가 아무 표정이 없는 거야. 아무 말이 없는 거야. '엄마!' 하고 반갑게 와락 안겨야 하는데 그냥 그렇게 힘없이 축 쳐져 있었어.

당황한 어머니가 '수진아, 수진아 일어나~ 수진아, 일어나~' 아이의 죽음을 부인하듯이 '아냐, 이건 아냐, 이건 아니라고~ 수진아, 아빠 잠들면 들어오라고 했잖아, 수진아~ 수진아~ 흑흑흑' 수진이를 꼭 끌어안고는 흐느끼셨어. 지금도 보고 싶은 내 동생이란다.

그 일이 있고 가족이 모든 잠든 어느 날 밤. 어머니는 보따리를 옆에 두고 속삭이듯이 말하셨어. '태호(형, 가명)아, 수경(큰누나, 가명)아 어서 일어나~ 수경아, 태균이 안어. 얼른 나가자'라고 하셨지. 그 소리에 깨신 할머니께서 갑자기 일어나셔서 어머니께 '너, 뭐하냐?'라고 추궁하셨어. 깜짝 놀란 어머니는 '저 더 이상 이렇게 못살아요'라고 차분하게 말하셨어. 할머니는 '뭐, 이 미친년이~'라고 온갖 욕설을 퍼부으셨어. 그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어머니는 말을 침착하게 이어나가셨어.

'아범한테 두들겨 맞아 허리병신 되고, 어머니까지 저 때리시는데 더 이상 이렇게 못 살아요. 애들 데리고 나갈 거예요.' 확고한 마음을 정하신 듯 단호한 어조로 차근차근 말을 이어나가셨지. 가만히 듣고 있던 할머니도 더는 안 되는 걸 아셨는지 '나가려면 너나 나가라 이년아', 우리들을 잡아당기시면서 '애들은 절대. 어디서 근본도 없는 년이 내 잘난 아들 망쳐놓고 이제 내 새끼들까지 데리고 나간다구? 절대로 못 준다. 못 줘. 이~ 시아비 잡아먹고, 자식까지 잡아먹은 년이~ 내 새끼들 절대 못 줘~ 니나 나가' 하셨어.

하지만 어머니도 완강하셨지 우리를 다시 어머니 품으로 끌어 오며 '안 돼요. 애들 제가 데리고 나갈 거예요' 하셨어. 누나와 나는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어머니 품에 안겨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난다."

내가 제일 불행하다 생각했는데... 형님과 함께라서 이제 행복합니다

그리고 형은 빛바랜 일기 한 쪽을 펴서 보여줬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와 싸우다 할아버지가 쥐약을 먹고 돌아가시고, 남동생(글쓴이)이 태어난 지 일주일 후 여동생(작은누나)이 죽었다. 그리고 엄마도 집을 나가셨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보험회사에 다니던 누나마저 빚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을 했다. 평생을 술로 사셨던 아버지도 간암으로 돌아가신 그해, 영장이 나왔었다. 9살짜리 동생과 할머니를 두고 차마 군대를 갈 수 없어 고민하던 차에 나는 운 좋게 군복무 특례업체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회사 경리로 있던 직원의 소개로 내 아내, 지금의 네 형수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면 엇나가던 너도 말 잘 듣고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리고 결혼 뒤. 할머니와 아내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었다. 결국 아내의 성화로 6개월쯤 할머니와 떨어져 살게 되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담낭암 말기라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첫아이를 임신한 채 아내는 병수발을 하게 되었고 1년 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그 후 나는 동생을 위해 어머니를 찾았고 이미 재가한 어머니를 한 번씩 만나러 갔다."

힘들었던 형님의 인생 이야기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내게 하는 말. 

"그 뒤는 말 안 해도 알지?"

할아버지의 죽음, 작은누나의 죽음, 큰누나의 자살, 죽음으로 얼룩진 우리 가족 이야기. 가슴이 먹먹했다. 뜨문뜨문 들어 흩어진 퍼즐 조각 같던 이야기였다. 알려고 했으나 막상 알기에는 두려웠고, 그 뒤가 감당되지 않을 것 같아 부담되었다. 이제 스물여섯이라는 나이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거웠던 마음이 사르르 가벼워진다.

그리고 누구보다 형님에게 감사하다. 우리 가족을 이끌어주고 지켜줘서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내가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그건 내 생각이고,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우리 형님과 함께 있다. 그래서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나를 보살필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산업체 군복무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전에는 그걸 몰라서 군대 이야기할 때 형을 무시했었는데….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형님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가족 인터뷰(가족 이야기)' 공모 응모글입니다.
#가족인터뷰 #가족인터뷰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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