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북한 정부 관점에서 정세 판단했다
변하지 않으면 30년 뒤에도 이석기 꼴 난다"

[연쇄인터뷰-이석기 사태와 진보⑥] '수유너머N'에서 활동하는 이진경 교수

등록 2013.09.26 09:41수정 2013.10.0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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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일심회 사건과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폭력사태를 거쳐 최근 '이석기 사태'(내란음모 의혹)까지 터지면서 진보운동은 이제 임계점에 이르렀다. 이석기 사태를 진보운동의 위기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진보운동에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면 진보운동은 이석기 사태에서 무엇을 성찰하고 얻어야 하나? <오마이뉴스>는 보수와 진보진영 등에서 활동해온 인사들과 연쇄인터뷰를 해 그 해답을 찾아본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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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인터뷰 중인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 이희훈


"허허허. 황당했다."

연구자들의 공동체 '수유너머N'에서 활동하는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지난 24일 만난 취재진 앞에서 연신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 교수는 "거기서 한 얘기들이 완전히 생소한 것들이 아니었다"라며 "예전에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들어봤거나 직접 해본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멈춰 있구나, 그 멈춘 시간 속으로 우리가 불려 들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 교수는 "사회가 변하는 데 따라 운동도 계속 달라졌어야 하는데 그들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그가 보기에 이석기 그룹이 멈춰 있는 시간은 '1950년대'였다. 그가 철학을 공부해온 것을 헤아려 기자가 "이들이 성찰할 만한 철학자가 있느냐?"고 묻자 차가운 답변만 돌아왔다.

"시대착오는 특별한 철학자를 빌리지 않아도…. 특별히 현대 철학자를 동원할 요소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북한 정부의 관점에서 정세 판단"

이 교수는 25살 대학원생이던 1987년 5월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을 펴냈다. 이 책은 '사사방'으로 불리우며 당시 운동권에 전설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NL진영에서 김영환씨가 '강철서신'으로 남한 주체사상파의 원류를 만들어 냈다면, PD진영에서는 그가 <사사방>으로 남한 사회를 맑스-레닌주의의 시각에서 분석하는 입론을 처음 세웠다. <사사방>의 출간으로 한국사회 'NL-PD 논쟁'은 좀더 정교화됐다.


이 교수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녹취록에 나온 내용 중 제일 황당했던 것은 지금을 전쟁 상황이라고 파악한 것이었다"며 "어떻게 봐도 전쟁 상황이라고 감지되지 않았는데 이들은 난데없이 전쟁 상황이라고 총을 준비하자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보니까 북한의 정전협정 폐기 선언 때문이었다. 제가 운동을 하면서 배운 것은 (정전협정 등과 같은) 법은 사회의 중요한 부분을 반영하지만 '부분'만 반영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법적으로 사고하면 안 된다. 필요에 따라서 법을 지킬 수도 어길 수도 있다. 법에 매여서 무슨 운동을 하겠나? 그래서 법에 얽매이지 않고 사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법보다는 실체적 관계를 가지고 사고해야 하는데 그들은 법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다."

60여 년 전에 체결된 정전협정의 폐기를 바로 전쟁 상황으로 등치시키는 그들의 정세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법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 안 된다'는 독특한 관점에 바탕을 둔 그의 주장은 계속됐다.

"정전협정이 폐기됐다고 해서 전쟁이 벌어질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정전협정 폐기를 가지고 전쟁 상황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들이 완전히 법에 얽매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정부 관료들의 사고방식과 같다. 관료들의 경우에는 법조항이 바뀌면 (세상의)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특히 그들은 한국 정부보다는 북한 정부의 관점에서 판단한 것 같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정전협정을 폐기했다고 선언해도 전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 않나. 그런 점에서 국가의 관점에서 법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을 하게 된 배경이다."

이 교수는 "'정전협정 당사자가 미국과 북한이었기 때문에 남한 사회는 식민지이고, 정전협정이 폐기되었기 때문에 전쟁 상태다'라고 하는 것이 법적으로는 논리적인데 그 논리가 현실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다"라며 "법적으로 사고했을 때 얼마나 세상을 잘못 볼 수 있는지 그것이 이번에도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특히 이석기 사태와 관련해 정의당에서 '헌법 안의 진보론'을 제기한 것에도 "말의 문제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사고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법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식민지 해방투쟁이 아니어도 미국과 싸울 수 있어"

이 교수는 5·12 합정동 모임 녹취록에 뚜렷하게 나타난 '반미 자주' 사상에도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이를 위해 미군기지가 위치한 일본 오키나와를 끌어왔다.

"일전에 오키나와에 가보고 놀랐다. 도시의 25%가 미군기지였다. 밀림을 빼니까 반은 미군 기지더라. '미제 식민지가 여기 있네'라고 생각했다. (웃음) 용산 미군기지를 보면서 크다고 했는데 오키나와에 비하면 크다고 말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오키나와가 미제 식민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미군기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군에 반대해 운동을 하지만 식민지 해방투쟁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일본에서 미군에 반대하며 운동을 하는 분들이 미국에 칼날을 세우는 것과 한국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크게 다를까?"라며 "이것은 미국이 통치하는 지구적 상황에서 마주하는 일반적 문제이고, 6·25라는 전쟁당사자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여기 있는 연구실 친구들과 평택에도 가고, 제주 강정마을에도 가서 싸웠다. 기지(미군기지, 해군기지)를 만드는 데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 싸우는 것이지, 그것을 식민지 해방투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식민지 해방투쟁이 아니어도 미국과 대결하고 싸울 수 있다. 식민지 해방투쟁으로만 싸운다고 생각하면 1950년대와 같게 된다."

그렇다면 왜 그들의 사고는 60년 전인 1950년대에 머물러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이 교수가 내놓은 대답은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1950년대에 멈춰 있기 때문이다"였다.

이 교수는 "북한과 미국은 정전협정을 체결한 다음 북한은 미국에 폐쇄적이고, 미국도 북한을 봉쇄해 오는 등 계속 대치관계에 있었다"며 "북한은 그런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보지 않고, 이라크가 미국에 깨지는 걸 보면서 미국을 실질적 위협으로 느껴 마지노(방어)선으로서 핵을 개발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북한과 미국의 양자관계는 1950년대 이후 근본적 변화가 없었다. 북한 체제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반면 한미관계는 1950년대 그대로 동결된 것은 아니다.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 시대가 각각 다른 시간 속에 있다. 북미관계와 한미관계에는 서로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북미관계를 중심으로 정세를 읽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멈춘 시간으로 돌아가고, 동결된 시간 속에 멈춰 있는 것이다."

이 교수는 "북한 정부의 관점을 가지고 한미관계를 설정한 시점에 서 있으니까 남한에 살고 있는데도 남한에서 흐르는 시간이 아닌 동결된 북미관계 시간 속에 멈춰 있었던 것"이라고 거듭 지적했다. 그들이 "정전협정이 세워지고 지속되는 시간을 축으로 만들어진 북미관계의 동결된 시간 속에 멈춰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이석기 그룹은 자신들이 발딛고 있는 시간(2013년)과 공간(남한)을 부정한 채 '1950년대'와 '북한'의 관점에서 정세를 판단하고 운동적 실천을 해왔다는 것이다.

"통일운동이 다른 운동에 비해 특권적 위치를 갖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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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문제는 노동문제, 환경문제, 미군기지문제 등 가운데 하나이지 그것을 특권화할 이유는 없다" ⓒ 이희훈


이어 이 교수는 "남한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은 여기 사는 사람들의 문제를 가지고 문제제기하고 대결해야 한다"며 "북한 문제는 노동 문제, 환경 문제, 미군기지 문제 등 가운데 하나이지 그것을 특권화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북한의 경우 남한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여러 가지 사안 중에서 어떤 변수가 되는지 등을 판단해야 한다"며 "포지션(자리)을 통일이나 민족에 선다고 하면서 거기에다 북한 입장(관점, 의견)을 가져다 놓으면 오류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NL친구들은 남한에서 벌어지는 노동운동, 예를 들면 비정규직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 운동을 잘 하지 않는다. 물론 노동운동을 하긴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조직을 만들기 위한 것이지, 이들이 전태일의 정서를 가지고 노동운동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비정규직운동을 한다고 하지만 관점도 다르고, 거기에 비중도 두지도 않는다. 이들은 주로 통일운동을 해오지 않았나? (비정규직운동 등) 나머지는 통일운동에 종속된 것이다. 그것이 오류다. (통일운동이) 다른 운동에 비해 특권적 위치를 갖는 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를 제대로 보기 어렵다."

NL그룹이 통일운동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은 분단에 있긴 하다. 하지만 "분단이 해결되지 않으면 나머지는 의미가 없다"는  판단은 '분단의 특권화' 혹은 '분단 환원주의'라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80년대 주사파 NL운동이 등장했을 때 그들이 사람들의 인식을 치고 들어온 것이 '왜 북한문제,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고민하지 않느냐?'였다. 북한문제를 중요한 변수로 취급하지 않으면 '너도 반북 이데올로기에 침윤돼 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이에 '맞아'하는 순간 북한의 처지에서 세상을 보는 것으로 관점이 확 바뀐다. 북한의 처지에서 세상을 보게 되면 남북문제, 북미문제의 핵심고리는 통일문제이기 때문에 남북분단은 모든 것의 중심고리가 되고, 특권적인 문제가 된다.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것은 의미가 없게 된다."
      
이 교수는 "그렇게 해서 문제의식을 갖게 되면 상황을 보는 눈 자체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틀 속에서 남한문제를 보게 된다"며 "노동문제든 뭐든 다 그것에 포섭되는 방식으로 이해했고, 정부가 바뀌는 문제도 그런 차원의 문제로 해석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북한 정부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되면 그것이 사고방식만이 아니라 말하는 방식도 결정하게 된다"며 "특히 일상어까지 (북한에) 맞춰갈수록 확고한 입장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녹취록에 자주 등장하는 북한식 언어구사를 염두에 둔 지적이다.

"이석기, 국회에 들어왔으면 조직에서 탈퇴했어야"

이 교수는 "(합법정당과 지하운동조직) 두개가 겹쳐지지 않도록 분리해야 했다"며 "분리할 수 없을 때 지하 얘기를 지상에서 해야 하는 난점이 생기거나 (지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그 둘 중에 하나는 선택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것도 하지 않았다. 둘 다 하면서 겹쳐놨으니 이것(지하운동조직)이 문제가 됐을 때 이것이 깨지고, 이것의 제약으로 인해 여기(정당) 활동도 제약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석기 의원 등이 대의에 충실했다면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 조직에서 떠났거나 말단직으로 내려갔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 (지하운동) 조직의 중심적 역할을 하려고 했다면 국회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국회의원이 했기 때문에 다 책임져야 하고 대중을 설득하는 문제가 되어 버렸다." 

특히 이 교수는 통합진보당 등에서 이석기 사태를 '사상의 자유'로 맞서는 것에는 "잘못된 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경우에 취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조작이라고 비판하면서 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뭐가 잘못이냐?'며 싸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저는 '그래,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주장했다, 왜 그런 주장을 했냐면'식으로 재판투쟁을 벌였다. '안했다, 조작이다'가 아니었다. 정치범의 경우는 '맞아, 그런데 뭐가 잘못됐나?'라고 싸우고, 조작인 경우에는 '조작이고 거짓이다'라고 싸우는 건데 사상의 자유를 얘기하려면 전자여야 한다. 조작이라고 말하는 순간 사상의 자유를 걸고 싸울 수 없다."

당시 최대 노동운동조직이었던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의 활동가들도 재판정에서 "나는 사회주의자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또한 통합진보당의 해명이 '조작이다→ 회의에 참석했지만 그런 발언을 안했다→ 그런 발언은 했지만 농담이었다'로 바뀐 점도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교수는 "그 이후에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며 "이러한데 어떻게 사상의 자유라고 싸울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이들이 아직까지도 '그래, 우리의 확신이다'라고 얘기하지 않고 있다. '이게 뭐가 잘못됐어? 우리는 이렇게 할 거다'라고 하면 사상의 자유를 가지고 싸울 수 있다. 저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런 사상을 가질 수는 있다'고 얘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조작이라고 주장했을 때는 조작 여부를 밝히는 증거싸움이 된다. 거기에 사상의 자유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이 교수는 "그들도 이런 얘기가 대중은 물론이고 운동권한테도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녹취록이 나왔는데도 '그래, 우리가 했다'고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했다'고 하는 순간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럴 경우 신념(사상의 자유)을 가지고 싸울 수 없는데 이것이 그들에게 가장 난감한 지점"이라고 분석했다.

"진보진영 전체에 타격주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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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사람들 누가 보더라도 그들(이석기 그룹)의 상황인식, 전략전술 등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해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 이희훈


한국 사회운동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최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관련기사 : "MB정부 5년간 진보정당 주변화˙자폐화")에서 "이석기 사태는 1기 진보정치세력화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러한 비관론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진보운동 내부가 무너질 사건은 전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사태는 진보진영 전체에 치명타를 안겼다. 대중들로 하여금 '운동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런 사람들이었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건(이석기 사태)은 진보진영 전체에 타격을 주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석기 그룹이) 진보진영에서 가진 상황인식, 운동방식, 운동관 등이 아주 다르고, 조직적으로도 분리됐기 때문이다. 운동하는 사람들 누가 보더라도 그들의 상황인식, 전략전술 등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해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국정원 등 정권에서도 이것을 진보진영 전체에 뒤집어 씌우고 싶지만 그렇게 되기에 어려운 간극이 있는 것 같다."

이 교수는 "(진보진영) 뒤에서 이런저런 매카시즘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잠시 지나는 일에 불과하다"며 "우파들도 이것을 운동권 전체의 일이라고 말하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얘기해봤자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운동은 현재를 바꾸는 것이고, 특히 변화된 상황 속에서 현실보다 반 걸음 앞서 가야지 전위가 될 수 있거나 전위가 못되더라도 앞에서 끌고 갈 위치가 된다"며 "지금 (이석기 그룹처럼) 이렇게 60년 뒤처진 세력만 남아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회주의 붕괴 이전 상황 속에서 가지고 있던, 오래되고 낡은 관념들도 남아 있다. 그 모든 것들을 다시 생각하면서 지금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운동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주류 틀에 들어가 비정규직운동이나 이주노동자 문제 등을 외면해서 비난받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나 노동자연대 조직을 중심으로 운동을 하는 게 과연 적절한가? 이런 것도 다시 물어야 한다. 이런 것을 묻지 않으면 공허한, 비현실적인 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질문하지 않고 그대로 안고 간다면 30년 뒤에 우리도 저 꼴이 날 수도 있다. (이석기 사태가) 그것을 보여줬다."

이 교수는 "그들이 시대착오적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시대착오가 그들만의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그들을 비판하는 진영에도 그런 요소가 없는지 성찰해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이진경 교수는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에서 강의하고, 연구자들의 공동체 '수유너머N'에서 활동하고 있다. <주체사상비판1>, <철학과 굴뚝청소부>, <맑스주의와 근대성>,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수학의 몽상>, <자본을 넘어선 자본>, <미-래의 맑스주의>, <외부, 사유의 정치학>, <코뮨주의>, <노마디즘>, <철학의 외부>, <역사의 공간>, <대중과 흐름> 등을 썼다. 80년대 맑스와 레닌을 만난 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에는 푸코와 들뢰즈, 가타리 등의 철학을 사유하고 있다. 여전히 스스로 '맑스주의자'(Marxist)를 자처하며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다.

[인터뷰 어록] 국정원과 이석기 그리고 시뮬라크르
"국정원과 이석기 그룹의 관계가 현대철학자들이 얘기하는 '시뮬라크르'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는 '감옥이 시뮬라크르다'고 얘기했다. 감옥은 실패했다는 거다. 감옥이 사람을 교정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교정한 게 아니라 가르친 게 됐으니까. 그런데도 감옥이 저기 왜 존재하느냐? 그 감옥이 없다면 거대한 통제장치를 대중들이 어떻게 용인하겠나? 감옥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걸 용인하면서 CCTV를 설치해 달라고 하는 거다. 이런 걸 위해서 여기 감옥이 따로 있다는 거다. 그러나 이런 위험스러운 존재가 여기 있다고 가시화하면서 도청이나 탄압을 합리화한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감옥이 따로 있는 건 이 사회 전체가 감옥이라는 걸 은폐하기 위해서라고 얘기했다. 그게 없다면 이 사회가 감옥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텐데, '감옥이 저기 따로 있으니 여기는 감옥이 아니지'라고 생각한다. 이석기 그룹을 국정원에서 오랫동안 감청하고 감시했다는데 이번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서 압수수색해서 '웬일이야?' 했다. 사실 그걸 보면서 사람들은 '그쪽이 감시되고 있으니까 우리는 그렇지 않을 거야'라고 착각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가 청와대까지 나서서 민간인을 사찰했다. 사찰과 감시가 일상화돼 있는 건데 그들만 하는 것처럼 분리시켜서 '우리는 감시되지 않아'라는 착각을 일으키는 효과를 만들낸다는 점에서 하나의 시뮬라크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남북 정부가 필요에 의해 (적대적으로) 공존했던 것처럼 양자가 필요로 하는 존재들 가운데 이석기 그룹과 같은 집단이 없어지면 가장 곤혹스러운 건 국정원이다. 국정원을 위해서 그런 집단이 있어야 하는 거다. 반대의 면도 있다. 이석기 사건이 처음 났을 때 누가 '경기동부연합에 프락치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왜 그러냐?' 했더니 이석기 그룹 등 경기동부연합은 잊힐 만하면 사고를 터뜨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한다는 거다. 하고 싶어도 쉽지 않는데 거기에 국정원 프락치가 있는 게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하겠나? 뒤집어 얘기하면 그쪽도 그게 필요했을 거라 생한다. 그게 없었다면 그런 시대착오적 사고를 누가 정상이라고 생각하겠나? 역시 저렇게 탄압하고, 유신시대 방식으로 탄압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들도 존재 이유를 찾는다는 거다." 

"의회를 전술적 단위로 생각했다면 전술적 단위를 분리, 독립시키고 관여하지 않는 상태로 갔어야 했다. (의회와 지하운동조직 간의) 연결도 간접적이어야 한다. 의회라는 전술단위 중심이 지하조직의 중심이 되니 이것은 자살이다. 이 사람은 좋든 싫든 빛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고, 대중의 시선이 모이는 자리인데,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얘기를 해야 하고 감시를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여야 한다. 그런데 지하조직 수장이라는 것은 감시를 감당할 수 없는 자리다. 그들이 생각한 전술은 대중 시선을 감당할 수 없다. 두 가지 다 하려고 욕심을 부린 거다. "

"지금 많은 경우 지하조직은 없다. 합법정당을 만들어서 운동하는데 그렇게 운동하려고 했을 때 당 개념이 정말 타당한가 생각해봐야 한다. 당 개념이 근대적 대의제정당을 모델로 하는데 대의제라는 게 근본적 위기에 빠져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선거투표율이 낮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투표해서 대표를 뽑아봤자 별 소용없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지역에서 대표자를 만들고, 이들이 대의제로 운영되는 정당개념이 적절한지, 꼭 당이어야 하는가도 다시 물어야 한다. 당도 그런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다른 방식이 있는지도 물어야 한다.

저번에 안철수 의원이 대선에 나왔을 때 당없이 대선을 치르겠다고 했다. 저는 그걸 높이 평가한다. 성공여부를 떠나서 그건 실험이다. 어떤 혁신적 사고를 하는 사람도 '어떻게 당 없이 대선을 치러?'라고 하는 상황에서 당 없이 대선을 치르겠다? 다른 정치의 가능성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당이 200년 넘은 조직인데, 이런 조직이 움직이는 방식을 보면, 부르주아 기득권층은 돈과 조직에 의해 움직인다. 지배세력을 돈과 조직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다들 돈과 조직이 없이 당이 안된다는 건 알잖아? 그러면 당 없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다른 걸 창안해야 하는데 그걸 안한다. 오히려 이런 것도 낡은 생각이라고 한다. 이런 걸 묻지 않으면 다음 대선도 별로 희망이 없을 거다.

최장집 교수의 주장은 대의제로 귀속시키는 논리다. 2008년 촛불집회가 쓸 데 없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제도로 귀속된 사고, 법에 얽매인 사고다. 제도와 법을 바꾸는 요소가 있을 때만 성과라고 생각한다. 운동은 그렇게 사고하면 안된다. 그렇다면 전태일 분신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것이 무얼 바꿨나? 제도나 뭐 하나 바꾼 게 없지 않나. 하지만 그것이 의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한국운동사적 의미를 모르는 거다. 전두환 시대에 돌을 던지면서 무얼 바꿨나? 하지만 그런 것들은 잠재적 형태로 남는다. 잠재성은 눈에 안보인다. 나중에 한참 있다고 터져 나온다. 특히 합법정당에 들어가면 제도를 통해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제도화, 법조문된 것을 사고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계속 못 보게 된다. 촛불집회가 즉각 반영되어야 의미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일은 예외적이다. 예를 들어 87년 전두환이 직선제를 받아들인 게 87년만의 투쟁이라고 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집권 내내 있었던 것(움직였던 것)이 87년을 만든 거고, 이것이 그때 반영된 거다. 잠재적인 것과 현행화되는 것에는 시차가 언제나 있다. 심지어 반대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데 자꾸 제도에 반영되는 걸 통해서 세상을 보려하면 이석기 그룹과 똑같아진다."

"주체사상이 뭔가? 남한에서도 주체가 돼야 하는 것이 주체사상이다. 저는 이석기그룹이 주체사상과도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주체사상파라고 말하는 건 잘못됐다. 주체사상에 따르면, 자기 조건에서 자신이 주체로 서야 하는데 그들은 북한의 관점에서 그렇게 하는데 그게 무슨 주사파인가? 주체사상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주성도 전혀 없다. 제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도 자주적이지 않았다. 북한 이야기를 따라서만 했다."

"가장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건 내부에서 신념이 무너져 갈 때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사태가 그랬다. 옛날에는 사회주의권 붕괴로 무너졌다고 얘기하는데 실제로 사회주의를 한 것도 아닌데 뭐 있겠나? 그게 사람의 내부, 신념을 와해시키고 그로 인해 운동 전체가 크게 몰락한 것이다. 전두환 시절에는 얼마나 물리적, 신체적 탄압과 고문이 심했나? 하지만 신념이 유효했기 때문에 그걸 감내하려 했다. 그런 점에서 탄압보다 남간한 건 내부에서 붕괴하는 거다. 내파(內波)되는 거다.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은 내파 위험은 전혀 없다. 운동하는 어떤 사람도 이 파가 아닌 사람이라면 이거에 의해 신념이 무너지고 '이제 안되겠다'고 할까? 다 우스울 것 같다. 이석기 그룹은 내파되어야 한다. 내파되면서 자신들의 운동을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진경 #이석기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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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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