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학교에서 '내쫓긴' 여고생..."지금이 더 행복"

[공익제보자 그 후 ①] 강제 종교수업 반대한 홍서정양... "원하는 삶 살겠다"

등록 2013.10.14 20:46수정 2013.10.1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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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는 부정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양심선언자' '내부 고발자' 등이 늘 존재했습니다. 이들의 용기로 한국 사회는 조금 더 밝아졌고 깨끗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익제보자'라 불립니다. 국가 기관, 기업, 학교 등에서 내부의 부정부패를 고발한 그 공익제보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그들의 용기 덕분에 좋아진 사회만큼, 안정된 삶을 보장받고 있을까요? 한국에는 '공익신고자 보호법'과 '부패방지법'이 있지만 완전하게 공익제보자를 보호하지 못합니다. <오마이뉴스>는 '공익제보자, 그 후' 기획을 시작합니다. 공익제보자의 현재를 통해 제도 보완 등을 고민하는 단초가 되길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종교수업 등을 문제 삼아 스스로 학교를 그만 둔 홍서정씨. ⓒ 김혜란


홍서정(18)양은 원래 보컬트레이너가 되고 싶었다. "대학 실용음악과를 졸업한 뒤 학원에 취직해 '적당히' 살고 싶었다"고 했다. 평범한 삶을 원했던 그의 계획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는 학교의 인권침해 문제를 교육청과 언론을 통해 제기했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교 안에서 왕따가 됐다.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대학진학과 보컬트레이너의 꿈도 접었다. 문제제기 한 번 했다고 인생이 바뀔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다. 모든 일은 지난해 3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신입생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 학교는 전교생을 모아놓고 기도를 시켰다. 입학한 뒤에도 월요일 아침 1교시는 예배시간이었다. 또 매주 1시간씩 종교 수업을 들어야 했다. 학기가 끝날 즈음엔 3일 동안 신앙부흥회가 열렸다. 학교가 기독교 재단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8시께 10분간 교실에서 '큐티(QT)'도 했다. 큐티는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이다. 기독교신자가 아닌 홍씨와 주변 학생들은 그런 시간이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종교재단 학교에 우열반이 버젓이...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지침은 종교 과목을 개설할 때는 반드시 대체과목을 마련하도록 정해 놓았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제16조는 학교는 학생에게 특정 종교 행사 참여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특정 종교 과목의 수업을 원하지 않는 학생을 위해 대체과목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대체수업은 명목상으로만 존재했다. 학기 초에 담임교사가 "여기는 기독교 학교니 어차피 종교 과목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체과목을 선택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우열반 나눔과 자율학습 공간에 차별을 두는 것도 불편했다. 야간자율학습실에서 우등생과 일반학생은 분리됐다. 우등생에게는 인체공학의자와 눈이 아프지 않은 조명이 제공됐다. 우열반도 있었다. 입학 전 영어를 좋아하는 학생들의 신청을 받은 뒤 신청한 학생 중에서 영어 성적을 기준으로 우등생을 선발했다.

여기서 뽑힌 우등생은 '영어과제반'에 들어갔다. 사실상 성적에 따라 반편성을 한 셈이다. 그 외에도 휴대 전화 강제수거, 두발 규제 등 학생인권조례에 반하는 일들이 이루어졌다.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됐는데 학교는 이를 왜 안 지킬까?' 홍씨의 고민과 갈등은 깊어졌다.


홍씨는 몇 년 전 학내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다 퇴학당한 강의석씨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 사건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학생인권조례도 공포됐다. 학생인권조례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질문하는 건데 설마 큰일이야 있을까 싶었다. 지난해 4월 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홈페이지에 익명으로 인권침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제보 뒤에도 학교는 달라지지 않았다. 두 달여 뒤 이번에는 학생인권교육센터로 직접 찾아갔다. 반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받은 인권 침해 내용을 자유롭게 적어보자고 제안했다.

"거부반응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잘 적어줬어요. 그래서 그때까지 만해도 '아, 뭔가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진정을 넣었다. 2012년 8월, 언론을 통해 학교 문제가 세상에 알려졌다. 그 후 서울시교육청은 학교에 질의서를 보내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이 학교에 왔다. 학교는 내부고발자를 찾아 나섰다. 몇몇 학생이 후보에 올랐다. 내부고발자로 의심받던 홍씨의 부모님이 학교로 불려 왔고, 사실이 밝혀졌다.

학교는 전학을 권유했다. 교감은 언론을 통해 "우리 학교는 '기독교 이념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고 홍보하고 입학할 때 서약서도 받는다"며 "전학 가고 싶은 학생들은 언제든 전학 보낼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많은 학생이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줬어요. '터질게 터졌네' '잘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언제가 누군가는 말해야 하는 일'이라고 얘기해 주었어요. 그땐 내가 뭔가 바꿀 수 있겠구나 싶었죠."

하지만 분위기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갔다. 홍씨의 문제제기는 '기독교 학교의 설립 정신을 존중하라'는 비난과 공격으로 돌아왔다. 그가 처음 제기한 '학생 인권 침해'라는 문제의 본질은 뒤로 사라지고, '강제 종교교육' 논란만 부각됐다. 기독교계 신문에서 많은 반박기사가 나왔고, '기독교학교탄압저지결의대회'까지 열렸다. 종교탄압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학교는 기독교계 신문에서 보도된 기사를 스크랩해 학생들에게 보여줬다. 기독교 학교의 설립정신도 가르쳤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이 일로 학교 이미지가 나빠지면 입학사정관제나 수시전형에서 불리해진다"고 말했다. '불교계의 사주를 받았다' '기자에게 돈을 받고 학교를 팔았다더라' 등 출처도 모르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서 퍼졌다. 아침 큐티시간엔 방송스피커에서 기독교 학교의 설립목적을 읊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방송부 학생들은 점심 방송시간에 "학교에 불만이 있는 학생은 전학 가세요"라고 말했다. 학생회는 담화문을 발표해 "학교에 상처 주지 말라"며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학생들이 하나둘 홍씨를 떠났다. 그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다.

<한겨레> 2012년 8월 9일자의 보도 내용. ⓒ 한겨레PDF


학교의 '배제'는 견딜 만했는데...

"선생님들이 저한테 그렇게 하는 건 견딜 수 있었어요. 숭고한 믿음을 갖고 세운 미션스쿨이잖아요. 저같은 '반동분자' 하나 내쫓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학생들의 외면은 견디기 힘들었어요. 학교 여론이 점점 저한테 나쁘게 돌아가니까 저를 지지하고 함께 해주던 학생들도 힘들어 하더라고요. 하지만 학생들의 그런 반응을 이해해요. 고등학교에는 '대학 못 가면 인생 망한다'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선생님께 찍히면 학교생활 망치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저를 나쁘다고 말하니까... 어쩔 수 없었던 거죠."

11월, 결국 홍씨는 스스로 학교를 나왔다.

"제가 스스로 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어요. 학교가 저를 내쫓으려 하고, 모두가 저를 욕하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어요. 처음엔 전학 갈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덜하고 더하고의 차이만 있을 뿐, 어디를 가도 근본적인 현실은 바뀔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힘들기도 하고요. 그냥 도망치고 싶었어요. 처음엔 좋은 의도로 뭔가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이미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더라고요."

서울시교육청에서 홍씨에게 불이익을 주지 말라는 공문을 학교에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당시 인권위 조사관은 홍씨에게 "다른 학생들을 직접 만나보니 (제보한 인권 침해 내용)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홍씨는 "인권에는 타협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학교라는 특수한 현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굉장히 실망스러웠고 당황스러웠죠. 인권위 조사관이 다녀갔는데도 전혀 달라진 게 없으니 정말 황당한 거예요. 배신당한 느낌이었어요."

이 사건을 계기로 홍씨는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 활동을 시작했다. 인권단체 활동은 그를 조금씩 회복시켰다. 

사실 그는 자퇴하면서 가출(?)도 했다. 부모님은 자퇴를 반대했고, 이 과정에서 갈등을 겪었다. 부모님의 집을 나온 지 어느덧 약 10개월, 그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비를 해결한다. 난생 처음 스스로 돈을 벌어 봤다. 학교 밖에서도, 인권이 침해받는 현실은 마찬가지였다. 청소년에게 특히 부당한 노동현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청소년 활동가 10여 명과 뜻을 모았다. 내년에 '청소년 노동조합'을 출범시킬 계획을 세우고, 노동법부터 차근차근 공부하고 있다.

그는 2012년 참여연대가 공익제보자에게 주는 '의인상'을 받았다. 참여연대는 국가기관, 기업 등 내부의 부정부패와 비양심 행위 등을 신고하거나 언론 등에 알린 공익제보자(내부고발자)를 기리는 의인상을 제정해 2010년부터 매년 시상하고 있다.

"그때 정말 훌륭한 내부고발자분들이 많으셨어요. 그런 상을 제가 받은 건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인권침해 신고도 분명 공익제보라고 인정해줬고, 청소년도 인간이고 시민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의 청소년 인권 침해 문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홍씨는 그저 단순히 소신을 갖고 이야기했을 뿐인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에 휘말리게 됐다. 후회는 없을까?

"후회하냐고요? 행복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홍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저와 학생들의 권리를 찾으려고 했을 뿐인데, 인권을 요구했다고 '배신자' '학교를 팔았다'는 비난하는 세상이 옳은 걸까요? 다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조금 더 준비를 철저히 할 거예요. 뜻을 함께하는 학생들을 모아 조직하고, 녹취하는 등 증거를 만들어 제보할 거예요"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은 인권을 옹호하고 자기나 다른 사람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가지며 그 행사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홍씨는 사실상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했다. 홍씨가 학교를 떠난 후, 치른 대가에 비하면 변화는 많지 않다. 우열반은 없어졌지만, 종교활동 강요 문제는 여전하다.

홍씨는 억울함을 간직한 채 학교를 떠났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그는 웃을 수 있다. 홍씨가 말했다.

"학교 다닐 땐 항상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만 있었는데, 이제 제 안에 뭔가 억눌려 있던 걸 털어버린 느낌이에요. 진짜 제 자신을 찾은 것 같아요. 행복해요."

학교 측 "전학 권유한 적 없다"
학교 측은 "(홍씨가) 학교 생활에 적응을 못해 스스로 자퇴한 것"이며 "전학을 권유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또 학교 측은 휴대 전화 강제 수거, 두발 규제 등 학생인권조례에 반하는 교칙에 관해서는 "학교장이 재량권을 행할 수 있도록 개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른 것"이며 "학급 아이들의 전체 의견을 수렴해서 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자율학습실은 성적순이 아닌 '선착순'으로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자율학습실을 배정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영어과제반은 "해체했다"며 "교육청에서 시정하라는 것은 다 시정했다"고 답했다. 종교수업 대체과목과 관련해 "당시에(홍씨의 문제제기 이후에) 대체과목 수요 조사를 해서 아이들이 희망하면 수업을 만들어줬다"며 "현재 종교수업 대체과목을 듣는 학생이 있다"고 말했다. 월요일 예배수업이나 큐티에 관해서는 "예배에 참여하기를 원치 않는 학생은 교실에 남아서 자율학습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 ㄱ씨는 "올해부터 영어과제반은 없어졌지만, 성적우수자를 대상으로 방과후수업을 강제로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그 이후에도) 종교에 관해서는 거의 변한 게 없다"며 "대체과목도 여전히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며, 종교수업대신 대체과목을 듣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학생은 담임선생님이 따로 불러 종교수업을 선택하도록 권유했다"고 말했다.

#종교수업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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