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확보한 '회의록 2개'의 미스터리

[분석] ①뒤바뀐 검찰 ②이지원은 쌍둥이 ③삭제? ④국정원의 의도 ⑤누가, 왜?

등록 2013.10.02 22:25수정 2013.10.02 23:14
38
원고료로 응원
a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 관계자들이 압수수색을 위해 지난 8월 16일 오전 경기 성남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압수수색에는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DFC)가 보유한 국내에 한 대밖에 없는 디지털 자료 분석용 특수차량(버스)도 동원됐다. ⓒ 연합뉴스


검찰은 국가기록원을 이 잡듯 뒤졌다고 했다. 압수수색영장에 근거해 지난 8월 16일부터 이관용 외장하드(97개), 팜스(PAMS. 대통령기록물관리시스템), 이지원(e知園. 참여정부 청와대 기록생산·관리시스템) 소스코드 및 데이터 저장매체(나스. NAS), 서고, 봉하 이지원 등에 있는 참여정부 시절 기록 약 755만 건을 샅샅이 찾았다고 했다. 고가의 희귀 장비가 동원됐고, 사이버요원 한 명은 허리디스크가 파열돼서 병가를 가기도 했다고도 설명했다. 검찰은 "국회에서는 팜스를 나흘간 봤지만, 우리는 50일 가까이 봤다"고 말했다.

그 결과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힌 것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공식 이관된 기록에는 2008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없다. 검찰은 "팜스에도 없고, 팜스에 가려면 이관용 외장하드에 담겨야 하는데 여기에도 없었다"고 말했다.

둘째, 공식 이관되지 않은, MB 정부 초기 유출 논란으로 인해 봉하마을로부터 회수된 이지원(봉하 이지원)에서 회의록이 삭제된 흔적을 발견해 복구하는데 성공했다(이하 복구본).

셋째, 역시 봉하 이지원에서 또 다른 회의록을 발견했다(이하 발견본). 결국 현재 검찰 손에는 서로 다른 버전 2개의 회의록이 있는 것이다.

어찌됐든 중대한 진전이다. 무단 공개 논란이 일었던 국정원본 외에도 최소한 2개 버전이 더 확보됐으니, 일각에서 제기됐던 NLL 포기 발언 논란에 종지부가 찍힐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검찰 발표로 의문점들이 새롭게 더 증폭되는 상황이다.

[의문점 ①] 5년 만에 뒤바뀐 검찰


a

2008년 7월 1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을 방문한 국가기록원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


잠시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검찰은 이미 2008년 기록물 유출 논란 당시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있던 기록물과 봉하마을에서 반납한 내용을 대조한 적이 있다. 그때 검찰의 결론은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2일 발표로 이 내용을 스스로 뒤집은 셈이 됐다.

노무현재단은 "2008년 당시 검찰은 2개월 이상의 조사를 거쳐 청와대 이지원을 복사한 봉하 이지원에는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하지 않은 기록물은 없다고 밝힌 바 있어 지금의 검찰 발표와 모순된다"며 이 점을 상기시켰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은 실수, 또는 작은 차이로 설명하기에는 무게감이 크다.

[의문점 ②] 이지원은 쌍둥이

대통령기록관에는 봉하마을 이지원의 '일란성 쌍둥이'가 있다. 청와대 이지원 시스템 자체를 보관한 '백업본'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지원 시스템 복제본을 두 개 만들어 하나는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하고, 다른 하나는 노 전 대통령의 열람을 위해 봉하마을로 가져갔다가 논란이 일자 대통령기록관으로 반납했다.

그런데 검찰은 봉하 이지원에서'만' 회의록을 찾았다고 했다. 삭제 흔적을 복구했던 것은 그렇더라도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발견본마저 백업본에는 없었다는 설명은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다. 백업본과 봉하 이지원은 탄생이 같다. 쌍둥이의 모습은 왜 달라졌을까.

[의문점 ③] 삭제?

지금까지 노 전 대통령 측의 공식 입장은 참여정부 청와대의 이지원 시스템에는 삭제 기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록물의 최종본 뿐 아니라 변화되는 히스토리까지 알 수 있다는 것이 참여정부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검찰 발표에 따르면 이지원에서 삭제를 확인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복구하기까지 했다.

검찰은 2일 "공공기관의 전자결제 시스템에는 삭제 기능이 없고 그게 법의 정신에 맞다, 이지원 시스템도 마찬가지"라면서도 "그런데 삭제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냥은 아니지만 가능은 하다"라고 말했다. 그냥은 아니지만 가능은 하다? 누가? 어떻게? 왜?... 최종 수사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삭제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까지 노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은 상당부분 신뢰를 잃게 됐다.

[의문점 ④] 국정원은 왜 따로 만들었나

a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6월 25일 오전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공개한 것에 대한 적법성 여부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는 모습이 문틈으로 보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어쨌든 검찰이 봉하 이지원으로부터 회의록 2개를 입수함으로써 지금까지 노 전 대통령 측이 주장했던, 국정원본과 별개의 회의록(일명 원본)이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게 됐다. 2007년 10월 정상회담 직후 국정원으로부터 문서형태로 받은 초안을 가지고 관계자들이 좀 더 보완해 그해 12월 최종본을 만들어 이지원을 통해 보고했다는 것, 또 대통령의 지시로 다음 정부가 참고하도록 국정원에도 전달했다는 것이 지금까지 일관된 노 전 대통령 측의 설명이었다.

그렇다면 작성시점이 2008년 1월로 되어있는 국정원본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까지 국정원의 설명은 청와대에 초안을 보고한 이후 국정원 자체 보완 작업을 거쳐 완성했으며, 청와대에는 초안까지만 보고했다고 밝혀왔다. 청와대가 회의록을 완성하고 있었음에도 국정원이 별도 회의록을 작성했다? 청와대로부터 전달받았는데도? 왜? 또한 둘 간의 내용 차이도 최종 수사에서는 명확히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의문점 ⑤] 이관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 누가, 왜, 어떻게?

만약 봉하 이지원에서 발견한 회의록 두 개가 이관 대상 기록물인데도 이관되지 않은 것이라면 명백한 법 위반이다. 하지만 만약 이관 대상으로 분류되지 않았다면? 상황은 미묘해진다. 검찰은 복구본에 대해서는 "이관대상 기록물로 분류가 안 된 상태에서 삭제가 됐다"고 말했지만, 발견본에 대해서는 "대통령 기록관으로 이관되지 않은"이라고만 말했다. 이관 대상이었는데 안 된 것인지, 처음부터 이관 대상으로 하지 않았는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현재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후임 대통령이 대화록을 보고 국정에 참고할 수 있도록 노 대통령이 마지막에 이관 제외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사본을 국정원에 보냈다 하더라도 원본이 국가기록원에 대통령기록물 또는 대통령지점기록물로 보관되어 있으면 사본도 그에 준해서 관리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연히 후임 대통령이 보기 힘들어진다. 만약 이런 이유라면 사초 실종 논란은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다. 반면 그게 아니라면 쉽게 설명하기 힘든 범죄 또는 음모론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참여정부 대통령기록물 이관작업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통화에서 이관 작업 자체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을 강조하며 "기록물 이관 직전인 2008년 1월 중순 쯤 (퇴임 전 업무 정리를 위해) 이지원 시스템을 닫아버렸고, 이후에는 청와대 업무혁신비서관실을 거쳐야 했다"며 "이후 회의록을 뺀 채 이관했다면 이관단계에선 모를 수 있다"고 말했다. 누가, 어떤 단계에서, 어떤 작업을 거쳐, 왜 회의록을 이관시키지 않았을까? 향후 관련자 수사를 통해 검찰이 밝혀야 할 핵심이다.

검찰은 쏟아지는 각종 의문점에 대해 "최종 수사결과 발표 때 다 말하겠다"까지만 답하고 말을 아꼈다.
#남북정상회담 #국가기록원 #회의록 #이지원
댓글3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단독] 김건희 일가 부동산 재산만 '최소' 253억4873만 원
  4. 4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