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살 수 있다

[서평] <조용한 대공황>

등록 2013.10.04 19:20수정 2013.10.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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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높은 가계부채는 앞으로 심각한 문제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계속 확대된 소득 격차와 지역 간 격차를 줄이기에는 한국 정부의 지출 규모가 너무 작다. 통화 가치의 급격한 변동에 따라 글로벌 기업의 실적이 오락가락하는 불안정한 경제 상태도 계속될 것이다. 일본 이상으로 무역 의존도와 시장 개방도가 높은 한국은 글로벌 경제의 혼란으로 발생하는 악영향을 일본 이상으로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되어 있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정확한 현실 직시와 돌직구적인 발언으로 시선을 끄는 이 책 <조용한 대공황>(동아시아). 이 책은 제목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듯이,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촉발된 세계 금융 위기가 1930년대의 세계 대공황과 유사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아가 세계 금융 위기에 관해 다룬 대부분의 책들에서 '세계 금융 위기는 일시적인 것이다'라고 피력하는 것과는 다르게, 작금 세계 금융 위기는 결코 일시적으로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에는 세계화와 자유화가 있다. 1997년 외환 위기를 타개한 제일의 선봉장이었던 세계화가 어찌 위기를 확산시킬 주범이 되는 것인가?

19~20세기의 전 세계적인 경제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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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대공황> 표지 ⓒ 동아시아

먼저, 19~20세기의 전 세계적인 경제 지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운 내용이기도 하고 책에 나오는 내용이기도 하다. 19세기까지 서양 제국주의 나라들은 월등한 군사력과 기술력을 앞세워 세계적인 수탈을 계속한다. 동시에 찾아온 전 세계적인 무역의 시대. 저자에 따르면 지금부터 100년 전에 이미 현대와 비슷한 수준의 세계화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자유방임주의에 의한 세계화의 가속은 단기 자본의 유입으로 버블이 형성되고 그 거품이 꺼지면서 대공황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전에 세계화가 한창 진행될 시점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도 하였다. 이 전쟁 뒤에 찾아온 부흥은 버블을 더욱 가속시켰다.

결국 세계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뉴딜 정책으로 대표되는 큰 정부에 의한 극도의 보호주의와 블록화가 실시된다. 이 보호주의는 당시 신흥 대국으로서의 기반을 닦고 있던 독일과 일본 등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했고, 이들이 곧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치열한 국가간의 경제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그 뒤 전전의 통화 절하 경쟁과 블록화 실패에 대한 반성 아래 마련된 브레튼우즈 체제. 전후 세계 최고의 패권 국가인 미국의 힘 아래에서 수립된 이 체제로, 주요국의 내수가 확대되고 사회제도가 충실해짐에 따라 '자본주의의 황금시대'가 도래하였다. 하지만 이후 석유파동 등으로 다시 찾아온 위기로 막을 내리고, 세계적으로 다시금 신자유주의에 의한 세계화와 자유화가 추진되었다. 저자는 이를 제2차 세계화라 명명하였다. 제1차 세계화는 100여년 전에 진행되었던 세계화이다.

그리고 지금이다. 세계 금융 위기의 시대. 저자는 세계 경제 역사를 꼼꼼히 반추하면서, 작금 세계 금융 위기의 원인을 고찰했다. 주지했듯이 그 원인은 세계화와 자유화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확실한 증거는 바로 100년 전 제1차 세계화이다. 그 당시 세계 경제의 통계가 현재와 매우 유사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조용한 대공황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사실 작금의 위기는 1930년대 세계 대공황 당시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떠안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조용하기에 문제가 별로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 이유는 2008년 이후 각국 정부가 완전히 체면을 가리지 않고 온갖 구제책을 적극적으로 동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전의 대공황 시절과 비교해볼 때 경제 운영의 지혜가 쌓이고 정부 활동의 여지가 커졌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경제 붕괴는 피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대공황에 필적하는 위기의 수준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붕괴된 버블의 규모를 보아도 과거의 대공황 이전에 부풀었던 버블을 훨씬 웃돌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국가에 의한 적극적인 구제책으로 조용히 흘러가고 있는 듯한 작금의 위기. 이는 사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지금 한국에 통용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일본은 1980년대 엄청난 버블 붕괴로 나라 살림이 반토막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잃어버린 10년' 내지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하는데, 당시는 세계화가 시작하는 단계라 일본의 위기가 세계 위기로 번지지는 않았다. 이야말로 조용한 대공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완벽한 세계화의 정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미국과 같은 주요국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그 위기가 전 세계로 파급된다. 지금은 그 불씨가 유럽으로 튀어 혼란을 빚고 있지만, 언제 한국이나 일본으로 옮겨 붙을지 알 수 없다. 내수는 형편없고 수출로 먹고 사는 이 두 나라야말로 세계화와 자유화의 최전선에 서 있지 않은가. 저자는 그 핵심을 찌르며 고름을 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세계 금융 위기의 미래

세계 금융 위기의 원인은, 주지했듯이 세계화와 자유화에 있다. 그렇다면 이 위기의 다음은 무엇일까? 어떤 결과로 귀결될까? 역사에서 살펴보았듯이 보호주의와 블록화가 진행되고 그 다음은 전쟁일까?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궁금한 건 결과에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역시 역사에 반추해 단호하게 그러나 확신을 두지 않는 선에서 주장한다. 이렇게 계속해서 세계화와 자유화를 앞세운 정책을 펼칠 시, 최소한 '경제전쟁(통화전쟁)'은 발발(?)할 것이라고 말이다.

저자가 말하길, 세계화와 자유화로 인해 단기 자금이 유입되고 버블이 일어나 붕괴되었고, 그 파급 역시 세계화와 자유화로 인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보호주의와 블록화는 당연한 수순. 그렇게 될시 신흥국들은 100여년 전 독일과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강한 반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 자체로 이미 경제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먼저 국가자본주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 경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내수를 늘리고 글로벌 임밸런스의 시정을 추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소비와 투자를 증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고, 각국이 소득 격차를 줄이는 노력 또한 불가결하다." - 본문 중에서

이어 경제의 재국민화를 말하고 있다. 재국민화는 1930년대 대공황 발생 이후 일종의 경제 통제 쟁책을 취함으로써 자국 경제를 자국민의 손에 돌려주려 한 움직임을 말한다. 물론 전전의 경제 통제를 칭찬하려는 생각도 없고 전쟁이라는 결말을 옹호할 수도 없지만, 이 시기에 시작된 우호적인 움직임인 것만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케인즈가 말했던 '투자의 사회화'를 언급한다. 투자의 사회화란 통상적인 해석으로는 정부에 의한 공공 투자를 의미한다. 여기에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 말의 의미를 확장시켜, 자본의 개념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유형 자본을 넘어서 무형 자본까지, 자본의 개념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본이라는 말에는 단순히 물적인 자본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인간 관계나 조직의 신뢰 같은, 딱히 화폐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자본도 들어간다. 그런 것들이 바탕에 깔린 뒤에야 기업의 활동이나 나날의 경제 활동이 존재한다. (중략) 유감스럽게도 오늘날의 사회과학에서 이런 무형의 자본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중략) 그러나 화폐로 환산 가능한 유형의 자본뿐만 아니라 화폐로 환산이 불가능한 무형의 자본도 늘어나지 않으면 우리의 생활이 풍요로워지지 않게 될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 본문 중에서

책에 대한 코멘트

책에 대해서 간단히 코멘트 하자면, 일단 굉장히 재미있다. 딱딱한 경제 이야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치 잘 읽힌다. 개인적으로 경제에 대해서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데, 이 책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역사, 사상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지식을 끌어다 써서 이해에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다고 결코 가볍게 볼 책은 아니다. 채 200페이지가 되지 않지만, 기름기를 쪽 빼낸 단백질 덩어리같은 책이기에 시종일관 긴장감을 늦춰선 안 될 것이다.

다만 표지와 약표제에서 조금의 아쉬움을 보였다. 'WE ARE THE 99%!'라고 큼지막하게 써놨는데, 책 내용과 거의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대다수 서민을 뜻하는 99%에 대한 발언은 책에서 딱 한 번 나온다. 세계화가 추진되면 기업은 살지만 노동자는 값싼 노동력에 밀려나게 되는데, 그로 인해 계층 간의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은 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책의 표지를 차지할 만큼의 비중은 안 된다고 생각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용한 대공황>, (시바야마 게이타 지음, 전형배 옮김, 동아시아 펴냄, 200페이지, 2013년 9월, 12000월)

조용한 대공황 - 앞으로 20년, 저성장 시대에서 살아남기

시바야마 게이타 지음, 전형배 옮김,
동아시아, 2013


#조용한 대공황 #세계 대공황 #세계 금융 위기 #세계화 #자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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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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