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광기의 도가니'에 빠지지 않으셨나요?

채동욱 총장의 사퇴와 연극 '광기의 도가니'

등록 2013.10.12 14:43수정 2013.10.1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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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는 여전히 세간의 화제다. 정권의 핵심부를 겨냥한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 수장이 법무부 직권 감찰까지 받는 상황에 내몰리며 사퇴한 사례는 채동욱 총장이 유일하다. 게다가 그 이유가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 한 "내연녀의 혼외 자식"이라니 말이다.

채동욱 전 총장의 입장은 명확하다. "유전자 검사를 신속히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전망은 쉽지 않다. 채 전 총장의 이른바 "혼외자식"으로 거론되고 있는 채모군이 느닷없는 유전자 검사에 쉽게 응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언론의 여론몰이는 거세다. TV조선은 아예 이른바 "혼외자식"으로 알려진 채모군을 생후 7개월부터 6살 때까지 키웠다는 이모씨를 등장시켰다. 이모씨는 방송에서 "(채 전 총장이 이른바 '내연녀'로 알려진 임모씨 집에) 들락날락했다"며 자신이 직접 식사를 대접했으며, 대화도 나눴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른바 '채동욱 부인 호소문'으로 알려진 글까지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 글이 실제로 "최성령"이라는 작성자가 '조갑제닷컴'에 "채동욱 부인 호소문(가상)"이라고 쓴 글이 왜곡되어 유포되었다는 것이 최근 밝혀진 것이다. 한 개인을 상대로 불특정 다수가 근거 없이 '인격 살인' 하는 묻지마 여론몰이가 결국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채동욱 전 총장의 사퇴와 이후 전개 과정은 한국 사회에 근거 없는 여론몰이가 횡행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채동욱 전 총장과 관련된 "혼외자식"설은 청와대와 국정원에 의해 기획되었다는 의혹이 국회에서부터 제기됐다. 9월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그전부터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이 채 총장을 사찰하고 있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알려지고 퍼져 있었다"며 "곽 전 수석이 (8월5일) 해임되면서 (휘하의) 이중희 청와대 민정비서관에게 채 총장의 사찰자료 파일을 넘겨줬고, 본격적으로 8월 한달 동안 채 총장을 사찰했다", "사찰 내용은 이 비서관과 김광수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 단둘만 연락하며 유지가 됐다. 심지어 이 비서관은 김 부장에게 '채 총장이 곧 날아간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고 구체적으로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동욱 전 총장을 둘러싼 유언비어는 그칠 줄 모르고 확대되고 있다.

21세기에 횡행하는 17세기 '마녀사냥'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의도적인 유언비어가 언론에 의해 살포되었다. 그리고 채동욱 검찰총장은 순식간에 여론에 의한 사냥감으로 전락했다.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개인의 인격은 물론 한 가정의 파괴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 것이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 사건은 같은 보수 세력이라도 정권에 협조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제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이것이 박근혜 정부가 휘두르고 있는 권력의 현 주소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 과정은 17세기 "마녀사냥"을 떠올리게 한다. 본래 "마녀사냥"은 중세 중기부터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북아메리카 일대에 행해졌던, 일종의 여론몰이에 의한 종교재판이다. 유태인에 대한 배타주의도 결합했다. 당연히 물증은 없고 각색된 증언만 난무한다. 조작된 "마녀"는 자신의 "죄 없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으며, "마녀"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마녀에 대한 비난에 동참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도 "마녀"와 같은 죄를 뒤집어쓰고 끝내 목숨을 내놓아야만 했다.

2013년에 "마녀"로 내몰린 이는 채 총장만이 아니다. NLL을 소재로 고 노무현 대통령이 근거없는 종북논란에 휩쌓였으며, 증거능력조차 의심되고 있는 조작된 녹취록에 의해 통합진보당 당원들과 국회의원이 초유의 '내란음모'혐으로 구속되었다. 급기야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전면에 나서고, 통합진보당 당원들도 연일 결백함을 주장하는 캠페인에 나서는 형국이다.

대한민국은 어느 새 '죄 없음'을 스스로 증명해야하는 사회로 변했다. 17세기 마녀 사냥은 21세기 종북 몰이, 막장드라마로 변했을 뿐이다. 정권과 여론이 강요한 '종북이냐 아니냐'의 프레임 속에 다른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을 각색한 소중한 연극 한 편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의 진보를 연극으로 실천하는 동인제 프로젝트 극단, '경험과 상상'이 21세기 마녀사냥을 우려하며 한 편의 소중한 연극 '광기의 도가니'를 내놓았다.

연극의 원작은 아서밀러의 <The Crucible>다. 아서밀러는 <세일즈맨의 죽음>이란 작품으로 유명한 미국의 극작가다. 그는 젊은 시절에 공산당에 가입했던 전력이 문제가 되어 매카시 선풍에 휘말린다. FBI와 미 의회는 아서밀러에게 있지도 않은 <반체제 작가들>의 명단을 불라고 요구하지만, 밀러는 이를 거부한다. 지금으로 치면 조작된 통합진보당 내란음모조직, 이른바 'RO'의 문예분과에 해당하는 셈이다.

아서밀러는 이 일을 겪은 후 <The Crucible>을 창작하여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17세기 메사츠세추에서 벌어졌던 마녀재판 실화를 배경으로 하며, 매카시 선풍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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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광기의 도가니" 포스터 ⓒ 경험과 상상


프로젝트 극단 '경험과 상상'은 이번 공연을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비유했다. "은산철벽처럼 높고 단단한 이 세상이 이깟 공연들이나 한다고 꿈쩍이나 할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그 자체로 예술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흔적"은 남습니다. 그 흔적은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그 행위만큼 감동적인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 자체가 예술이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 그러면서, 이들은 말한다. ""더 이상 우리의 양심을 속여선 안 됩니다. 이젠 이 재판을 끝내야 됩니다."

연출을 맡은 김진휘(우리연극 덧뵈기 대표)는 "아서밀러가 The Crucible을 쓸 당시의 상황과 2013년 가을 한국의 상황이 너무도 흡사해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김진휘는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아서밀러 시대의 매카시즘은 미국국민의 패배로 정리됐지만, 2013년 극단 경험과 상상 시대의 매카시즘은 한국국민의 승리로 정리될 것이라는 점"이라 힘주어 말했다.

2013년 가을, 연극 '광기의 도가니'와 함께 대한민국에 "계란"을 던지자.

#광기의 도가니 #연극 #매카시즘 #마녀사냥 #채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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