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임금' 받고 사는 게 행복해졌어요

[전국기획-서울 노원구의 도전②] 노원구의 '행복한 비정규직' 이야기

등록 2013.10.25 12:19수정 2013.10.2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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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 일상생활과 지방자치단체의 관계 밀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양해진 주민의 이해와 요구를 능동적으로 실현해가는 지방자치단체의 혁신 사례를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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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5월 노원구서비스공단 소속 환경미화 노동자였던 김순희씨는 기간제 노동자에서 정년 보장 상용직으로 전환됐다. 사진은 김씨가 업무 구역인 노원구민회관 앞을 청소하는 모습. ⓒ 박현진


"이번 추석에는 명절 상여금으로 60만 원 정도를 받았어요. 비정규직일 때에는 없었던 일이죠. 주부에게는 명절 쇠는 일도 다 돈이잖아요? 큰 도움이 됐어요."

올 추석을 떠올리는 김순희(55)씨 표정이 밝았다. 비정규직(기간제 계약직)에서 상용직(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된 이후 첫번째 맞은 명절이다. 김씨는 무엇보다 명절 상여금 덕분에 연로하신 부모님께 용돈을 더 드린 일이 뿌듯했다. 한결 여유가 생긴 김씨 모습에 가족들도 기뻐했다. 김씨의 명절 풍경은 비정규직 시절보다, 그렇게 조금 더 넉넉해졌다.

김순희씨는 2011년 4월 노원구서비스공단(구 노원구시설관리공단)에서 일을 시작했다. 김씨 일터는 노원구민회관이다. 이곳에서는 노래교실, 에어로빅 강좌 등 구민을 위한 여가생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많을 때는 하루 천명도 넘는 주민이 찾는다. 김씨는 4명의 동료들과 함께 노원구민회관 안팎의 환경미화를 맡고 있다.

일 자체는 힘들지 않았지만, 노동환경은 열악했다. 우선 9개월마다 반복되는 고용 재계약이 부담스러웠다. 초과근무 수당은 주말에 일하더라도 바라기조차 어려웠다. 정규직에게 주어지는 각종 상여금이나 콘도 등 복지시설 이용도 먼 이야기였다. 김순희씨는 "같은 장소에서 일하는 정규직에 비해 처우, 복지에서 차이가 난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노원구 비정규직을 상용직으로, 지방자치단체 첫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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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는 2010년부터 구청과 노원구서비스공단 등 산하기관 비정규직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단계별로 추진하고 있다. 2년 연속 근무하고, 55세 미만인 모든 노동자가 대상이다. 이는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첫 번째 사례다.


노원구는 2010년부터 구청과 노원구서비스공단 등 산하기관 비정규직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단계별로 추진하고 있다. 2년 연속 근무하고, 55세 미만인 모든 노동자가 대상이다. 이는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첫번째 사례다.

우선 구청과 산하기관 소속 기간제 노동자는 정년보장 상용직으로 고용형태를 바꾼다. 용역회사 소속 파견 근로자도 산하기관이 기간제 노동자로 직접 고용한다. 이들도 2년을 근무하면, 정년보장 상용직으로 전환된다.


노원구는 "정규직 전환 결과 업무능률이 증대되고 민원 서비스가 현저히 개선되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산하 기관에 비정규직이 많이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합리적이고 적극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정규직이었을 때는 회사와 관련된 소식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려주려는 사람도 없었어요. 이제는 소속감이 생겼죠. 정규직과 똑같은 사원증도 받았고요. 지금은 누가 '어디서 일하느냐'고 물으면, '노원구 서비스관리공단에서 일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됐어요. 임금도 매년 오르니까, 삶이 점차 나아지리란 기대도 생겼어요."

지난 5월, 김순희씨와 동료들도 노원구서비스공단 소속 상용직으로 고용형태가 바뀌었다. 초과근무 수당, 각종 상여금도 정규직과 동일하게 받고 있다. 여가생활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복지카드도 지급됐다. 김씨는 "지난 여름휴가는 복지카드를 써서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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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희씨가 상용직으로 전환된 이후 받은 노원구서비스공단 사원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 박현진


비정규직이던 구청의 '얼굴'도 상용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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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27)씨는 노원구청을 찾은 민원인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구청의 ‘얼굴’이다. 김씨는 노원구청에서 민원인 안내 업무를 맡고 있다. 그도 노원구서비스공단 소속 기간제 계약직에서 이번 5월 상용직으로 전환됐다. ⓒ 박현진


김현미(27)씨는 노원구청을 찾은 민원인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구청의 '얼굴'이다. 김씨는 노원구청에서 민원인 안내 업무를 맡고 있다. 그도 노원구서비스공단 소속 기간제 계약직에서 이번 5월 상용직으로 전환됐다.

"비정규직일 때는 민원인에게도 공무원에게도 우리는 '같은 직원'이라고 인식되지 않는 게 아쉬웠어요. 저 스스로도 노원구청 소속도, 서비스공단 소속도 아니니까, 소속감을 가지기 어려웠죠. 이제는 직원 봉사활동이나 행사가 있을 때 참가하라고 챙겨주기도 해요."

김현미씨도 상용직 전환의 장점으로 소속감이 생겼다는 사실을 꼽았다. 정년보장을 두고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안심이 든다"며 반겼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상용직 전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임금이 오를 것이란 기대가 있었는데, 오히려 월 20만 원 정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현미씨 동료인 정지현(31)씨도 "같은 업무를 하는 5명 중 김현미씨가 가장 먼저 전환되는 것을 보고 기뻐했는데, 월급이 줄었다기에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정씨는 내년 3월 상용직 전환 대상자가 된다.

이에 이락휘 노원구청 디지털홍보과 주무관은 "상용직 전환 후 비정규직과 다른 임금 기준이 적용되어 체감 임금이 떨어졌을 수 있다"면서도 "상여금과 복지카드 등을 포함하면, 실질 임금은 연 100만 원 정도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어 "상용직은 연차가 쌓이면서 기본금도 오르기 때문에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라고 덧붙였다.

"최저임금이 사실상 최고임금"... 생활임금으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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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임금은 우리사회 최저임금 수준이 지나치게 낮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최저임금은 2013년 기준으로 시급 4,860원이다. 이는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38% 수준에 그친다. OECD는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를 최저임금으로 권고하고 있다. 노원구 등은 올해 생활임금 수준을 노동자 평균임금의 58%로 책정했다.


한편 노원구는 지난해 11월 성북구, 참여연대와 더불어 '생활임금 우선적용방안 발표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여연대 제안을 바탕으로 두 지방자치단체가 올 1월부터 공공부분 저임금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생활임금은 우리사회 최저임금 수준이 지나치게 낮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최저임금은 2013년 기준으로 시급 4860원이다. 이는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38% 수준에 그친다. OECD는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를 최저임금으로 권고하고 있다. 노원구 등은 올해 생활임금 수준을 노동자 평균임금의 58%로 책정했다.

이에 따라 노원구는 올 1월부터 약 1억 6천만 원의 예산을 투입, 공공부분 비정규직 근로자 68명에게 월 평균 20만6091원을 추가로 지급하고 있다. 대상은 2년 연속근무 기준을 채우지 못해 상용직 전환 전이거나, 규정상 정규직 채용이 어려운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환경미화, 경비, 사무보조 업무 등을 맡고 있다.

생활임금 지급을 통해, 관내 공공부분 비정규직의 임금은 월 평균 135만 7000원까지 올랐다. 월 노동시간 209시간을 기준으로, 시급 6493원이다. 노원구는 매년 서울시 물가상승률과 최저임금 인상을 반영해서, 생활임금 수준도 점진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노원구 내 도서관 비정규직 노동자 등으로 대상도 확대한다.

장주현 노원구 일자리경제과 주무관은 "우리사회에서는 최저임금 이상으로 임금을 주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사실상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다"라며 "생활임금은 근로자들이 최소한 자녀교육이나 문화생활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생활임금에 대한 관심이 높다. 장주현 주무관은 "경기도를 비롯해 생활임금 추진과 관련된 자료를 보내달라는 지자체가 많다"며 "낭비되는 예산을 줄여서 노원구가 좋은 선례를 만들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좋은 일 아닌가요?"

구에서 정규직 전환 및 생활임금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아느냐고 묻자, 노원구에서 10년 이상 거주했다는 이강복씨가 기자에게 되물었다. 이씨 말처럼, 가능만하다면 '당연히' 이뤄져야 할 일이 이제야 막 첫걸음을 뗐다.
#노원구 #비정규직 #정규직 #생활임금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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