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죽을 수가 없다, 그게 노무현 정신이다

사람 사는 세상 구미 바자회 현장 스케치

등록 2013.10.20 10:31수정 2013.10.2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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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 라는 노래의 일부이다. 그렇다. 그들은 별일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간담은 서늘해 질 수도 있다. 지금부터 쓸 내용은 지극히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의 소박한 이야기지만, 보는 관점의 차이, 정확히 말하면 비뚤어진 시선의 각도에 따라서 무시무시하게 들릴 법도 한 이야기들이다. 노무현의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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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 사람 사는 세상 구미 2013 바자회 전경 ⓒ 이정혁


미안하다, 살아있다. 부관참시도 모자라 고인의 유골까지 가루로 만들 기세로 덤벼드는 누군가에게 무척이나 미안한 사실이지만, 그들은 시퍼렇게 살아서 밥 잘 먹고, 똥 잘 싸고 지내고 있다. 친노니 반노니 노빠니 하며 야바위 정치꾼들이 투전판 용어로 지들끼리 박터지게 싸워도 눈 하나 꿈쩍 않고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겨우 3% 차이로 정권 연장에 성공한(?, 두고 볼 일이다) 누군가들에게 이 얼마나 섬뜩한 이야기인가? 지금쯤 멘붕과 실의에 빠져 정치판에 신경 끊고, 풀죽어 지내야 할 그대들이 아니던가? 제2, 제3의 노무현 죽이기를 감행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노무현을 추종하고 맹신하던 좀비 세력들도 함께 생매장되는 것 아니었던가?

하지만,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다. 노무현의 생명과 그 후예들을 찍어 낼 수 있을지언정, 그 정신만은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그렇다고 노무현 정신이라는 것이 천년의 비기처럼 봉인되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물처럼 공기처럼 너무나 손쉽게 접하는 것이기에 사고가 삐딱한 누군가는 오히려 손 쓸 도리가 없게 되는 모양새인거다. 노무현 정신에는 거창한 수식어가 없다.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사회.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 바로 그런 사회에서  평범한 이웃들이 더불어 사는 사람 사는 세상. 뭐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다. 너무나 당연한 말들이니까. 그것이 바로 노무현의 정신이고.

여기, 그러한 노무현의 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는 모습들을 하나씩 그려보고자 한다. 누군가여!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겁주려는 거 아니니까 괜히 쫄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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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세상 구미 행사용 현수막 ⓒ 이정혁


2013년 10월 19일, 사람 사는 세상 구미 바자회 현장 스케치(사람 사는 세상 구미라는 이름은 고 노무현 대통령 퇴임에 맞춰 기존의 구미, 김천, 칠곡 지역의 노사모 회원들이 정치적 성향을 지양하고, 친목 위주의 모임으로 만들고자 변경한 명칭이며, 현재 가입 회원이 5백여 명이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회원들도 백여 명에 이르는 구미 지역의 온라인 카페 모임이다).


지난 밤 일기예보가 흐린 하늘에 비 소식이어서 잠자리가 뒤숭숭했을 것이다. 한 달 넘는 기간, 바깥양반들 도움 없이 바자회 준비하느라 고생하신 안방마님들의 간절한 바램은 하늘에 닿고도 남음직 했다. 구름을 엷게 덧댄 파란 하늘에 야외 활동하기 적당한 온도에다 숨 죽인 바람까지, 그네들의 순수함과 열정에 하늘이 감동해서 내린 덤 인게다.

어렵사리 구한 티가 너무도 나는 가지각색의 천막 아래, 한 짐 보따리 크게 펼쳐진다. 세 살배기 아기의 장난감에서부터 꽃중년을 겨냥한 화사한 남방까지, 화개장터도 와서 울고 갈 다양한 물건들이 앞 다투어 손을 흔들어 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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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회 풍경 스케치 ⓒ 이정혁


"2009년에 한 번 하고, 한동안 못 열다가 작년부터 안방마님(여성 회원들)들의 성화로 다시 하게 되었어요. 뭐, 거창한 타이틀 걸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안 쓰는 물건 돌려쓰고 수익금 나오면 좋은데 쓰고, 그러는 게 더불어 사는 거 아닌가요?"(닉네임 수신)

작년부터 틀을 갖추어 열고 있는 바자회의 목적은 여러 가지지만 그 중에 독특한 내용이 하나 있다. 이른바 키다리 아저씨 후원금. 4년째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한 학생을 돕고 있는 후원 형태이다. 중증 장애인이던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도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깨어난 후로 손발을 제대로 쓸 수 없다고 한다. 생활보호대상자 지원금으로만 생계를 꾸려나가던 초등학교 6학년의 아이에게, 많지는 않지만 지난 4년간 꾸준히 후원금으로 먹거리나 학용품등을 사주고 있다고 한다.

이번 바자회 수익금의 일부도 키다리 아저씨 후원금으로 지원 될 예정이며, 나머지 수익금들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제 행사, 투표 독려와 같은 선거 캠페인 및 지역 사회의 각종 행사에 지원금으로 쓰인다고 한다(지난 8월 29일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구미시민 촛불문화제에도 사사세 구미의 후원금이 매우 요긴하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장사하는 분들부터, 애 엄마들까지 다 같이 모이기가 쉽지 않은 분들인데, 다들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물품 기증 해주시고, 며칠 밤 잠 못 자고 인형 만들고, 너무들 자발적으로 움직여줘서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닉네임 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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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봉지를 한장씩 빼 쓸때 사용하는 일명 봉다리 인형 ⓒ 이정혁


준비하는데 어려웠던 점이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냐는 지극히 진부한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해주는 안방마님 대표님의 호쾌한 말씀이다. 천막 한쪽에 텐트가 눈에 띄어 물었더니, 작년에 옷 팔면서 입어보고 싶어 했던 분이 계셔서, 그걸 기억하고 텐트까지 준비했단다. 노천 바자회에 탈의실이라, 악마도 무릎 꿇을 디테일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나이 지긋하신(?) 큰 형님들이 선선한 가을 날씨임에도 반팔 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고 계신다. 바자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솜사탕 만들기. 나무 젓가락 돌리는 손놀림이 전혀 예사롭지 않고 어색할 따름이다. 알고보니 작년에도 솜사탕 담당이어서 올해도, 울며 겨자먹기로 맡게 되었다고 한다. 호시탐탐 다른 사람에게 넘길 기회만 엿보고 있는 꾸러기의 느낌이랄까? 하하. 군대든 사회든 일단 줄은 잘 서고 볼일이다. 현란한 손 동작은 아니더라도 솜사탕 인심만큼은 한강 이남으로는 최고라고, 어른 머리만한 크기의 솜사탕이 단돈 오백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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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손놀림의 솜사탕 제조꾼들 ⓒ 이정혁


그 옆으로 설치된 부스에는 각종 먹거리들이 각 잡힌 자세로 진영을 짜고 있다. 일부 식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손수 만들어 온 것들이다. 풋내기 장사꾼들의 어설픈 수근거림이 고스란히 들려온다. "이걸 천원에 팔자고? 재료 값이 얼만데? 그럼 천 오백원에 팔까?...". 다양한 메뉴들과 정성이 담긴 먹거리에 자연스레 손님들의 발걸음은 끊이질 않고, 까칠한 고객의 투덜거림에도 늘 웃음 잃지 않는 그네들의 순수한 마음은, 카메라가 잡아내지 못하는 그 무언가이다.

한 권에 천 원짜리 헌책방에서 한참을 고르다가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를 샀다. 단 돈 천원에 대가의 소설책이라니, 너무 좋기도 하고, 고리끼한테는 좀 미안한 생각도 들고. 아이들 서적에서 세계문학전집까지 헌책방은 바자회에서 단연 돋보이는 코너다. 아직도 활자 책을 읽는 이가 적지 않음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 옆으로 옷가지와 신발류등의 코너가 보이고, 단돈 990원에 판매하는 스마트 폰 악세서리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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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종류의 헌책들이 단돈 천원. ⓒ 이정혁


자기 물건을 파는 사람들에게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신명스러움과 오랜 시간 함께 한 동지애에서 오는 끈끈한 사람 냄새가 어우러져 바자회 공간은 마치 동네잔치를 방불케 했다. 귀찮을 법 한 흥정에도 반값으로 후려쳐주는 통 큰 아량도 베풀어주고, 음료수 잔이 넘칠 정도로 그득히 따라주는 그네들의 잔정에서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노무현의 정신이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닉네임 은둔자사님의 말씀을 끝으로 바자회 스케치를 정리한다.

"대선 끝나고 뭐, 멘붕이니 뭐니 떠들어 대도, 뭐, 별거 있나요? 언제까지 절망하고, 언제까지 가라앉아 있을 건데요. 예전에 노 대통령 퇴임하시고, 진영 공설운동장에서 하셨던 말씀 이 기억나네요. 기본적으로 십년은 걸릴거다. 느긋하게 마음먹고 준비하자. 뭐, 그런 말씀이셨는데, 이렇게 즐겁게 지내면서 기다려보는 거죠. 재미있게 모여 있는 사람들처럼 에너지 넘치는 데가 또 있을까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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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선거 개입 규탄 풍선 ⓒ 이정혁


덧붙이는 글 10월 14일자 한겨레 신문 기사인, '노무현, 한국 보수의 ‘주술 인형’…망자 불러내 찌르고 또 찌르고'를 읽고, 한국의 얼치기 보수들에게 진짜 무서운게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어서 작성하였습니다. 대구, 경북 지역의 노사모 회원들의 움직임에 대해 틈나는대로 적어볼 예정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 #바자회 #키다리 아저씨 #노무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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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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