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처세술 이야기

강된장과 고구마튀김

등록 2013.10.22 09:39수정 2013.10.2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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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두 가지 가르침을 지금도 유산처럼 지키고 있다. 그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식성과 남의 집을 방문할 때 들고 가는 작은 선물에 관한 것이다. 까다롭지 않고 무엇이나 잘 먹는 보편적인 식성은 아버지로부터 배웠고, 어머니한테는 작은 선물이 주는 행복과 즐거움을 배웠다.

아버지가 청년시절 친구와 함께 다른 마을로 심부름갔을 때의 일이다. 아마 부고장을 전달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마을 사람이 상을 당하면 청년들이 대개 둘 씩 짝을 지어 각 마을로 다니면서 부고장을 전달하였다. 우체국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먼 곳은 우편으로 전달하기도 했지만,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만해도 사람이 직접 가가호호 다니면서 부고장을 전달하곤 했다.

부고장을 돌리는 일은 같은 면내라고 해도 이 마을 저 마을 돌다보면 수십 리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저녁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 올 정도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보니 젊은 나이 청년의 몸이라도 지치고 한창때라 몹시 시장했다.

아버지는 그 날도 친구와 둘이 짝을지어 면내 북쪽지역을 맡게 되었다. 마을을 출발해서 위로 고척리쪽으로 방향을 잡아 봉투를 돌리면서 서수와 구절리를 지나 점심 무렵에는 임피읍내 한 집에 봉투를 전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 주인이 고생한다며 끼니 때도 되었는데 찬은 없지만 밥이나 먹고 가라고 해서 식사 대접을 받게 되었다.

내남없이 가난하던 시절이라 집집마다 양식이 충분치 않을 때여서 끼니 때에 맞춰 온 손님이라도 그냥 보내도 큰 흉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친 길손의 배고픈 사정을 알아주는 주인 어른의 그 마음 씀씀이에 아버지는 더욱 큰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찬이 없다는 주인의 말대로 점심으로 내 온 상위에는 부슬거리는 꽁보리밥에 반찬이라고는 그 흔한 김치도 없이 달랑 강된장 한 그릇 뿐이었다.

같이 간 아버지 친구는 그 상을 보고, "집에서도 주구장창 먹는 게 강된장인데 여기까지 와서 또 먹기는 싫다" 면서 너나 맛나게 먹으라고 밥그릇을 밀어주고 먼저 나가 버렸다. 아버지는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모처럼 대접한다고 차린 음식상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말릴 사이도 없이 방을 나가 버린 친구를 따라 나갈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막상 아버지가 수저를 들고 밥을 먹다 보니 전혀 다른 상황이 새롭게 전개되었다.

잠시 후 주인 아주머니가, 김칫독을 멀리 묻은 탓에 다녀오느라고 늦어졌다면서 맛있는 김치 한 보시기를 가져왔다. 거기에 더욱 놀라운 일은  막장에 풋고추만 든 줄 알았던 투가리(뚝배기)속에 고기가 잔뜩 들어 있던 것이다. 물론 풋고추도 들어갔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돼지고기가 들어 있었다. 고기가 얼마나 많이 들어갔는지 아버지 표현대로 하자면 젓가락을 꽂아도 넘어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태어나 한 끼에 그렇게 많은 고기를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세상에서 다시 없이 맛있게 밥 두 그릇에 고기가 가득한 강된장 한 투가리를 해치우고 고샅으로 나와보니 먼저 나와 기다리다 하릴없이 땅금만 긋고 있던 친구 분이 "너는 베알도 없냐? 그 따우 밥상을 손님대접이라고 맛나게 먹게..." 그러더란다. 아버지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너 나간뒤에 된장속을 숟갈로 뒤져 봉게 뒤야지고기가 뻑뻑허게 들었드만그려, 얼추봐도 반근은 넘겄든디이~~", "뭐라고~~~?" 친구 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이야기는 금세 온 마을에 퍼졌다. 급기야  며칠 전에 그 마을에서 200근짜리 돼지를 잡아 추렴했다는 소문을 면 소재지에 출입하는 이들이 들었다는 말이 나왔다. 그 집에서 돼지고기가 가득한, 범상치 않은 강된장을 만든 이유가 밝혀진 것이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고기가 좀 남으면, 장조림을 하거나 된장을 진하게 풀어 강된장을 만들어 오래 보관해 먹었던 것이다. 별다른 화젯거리가 없는 시골마을이라서 이 이야기는 꽤 오랜동안 마을 사람들 입에 오르 내렸다.

마을 어른들은  말씀하시길, "손님 대접을 어떻게 하든 그것은 주인 몫잉게. 손님된 입장에서는 반찬 타령하지 말고 좌우당간 무엇을 내놓든지간에 고맙게 먹어야 허는 것인디...." 없는 반찬이라도 맛나게 먹어주는 것이 복 받는 일이라며 혀를 찼다. 그 사건 이후 아버지 친구는 반찬 가리다가 제 몫도 못 찾아 먹은 놈으로 찍혀 동네 어른들로부터 핀잔을 많이 얻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 '보물 투가리'를 보통의 강된장 찌개로 넘겨짚고 자기 밥그릇을 아버지에게 통째로 넘기고 밥을 굶은 당사자가 두고두고 아쉬워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 시절엔 고기 반찬이 귀했다. 고기반찬은 1년에 몇 번 명절이나, 제사 때 아니면 집에 큰 손님이나 와야 맛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쇠고기 돼지고기 가릴 것 없이 1년에 대여섯 번 구경하면 자주 보는 것이고, 그것도 요즘처럼 구워 먹는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그저 많은 사람이 국물이라도 조금씩 나눠 먹기 위해서는 솥에 물 붓고 시래기나 무우를 잔뜩 썰어 넣은 국으로 끓여 먹는 것이 최고였다. 고기가 가득한 강된장 투가리는 당시로서는 최고의 접대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우리 형제에게 들려주시면서, 누구나 손님한테는 성의껏 정성을 다해 대접하게 마련이라면서 어디서도 반찬 타령하지 말고 무엇을 내 놓던지 간에 고맙게, 맛나게 먹으면 복 받는다는 말씀을 거듭 거듭하셨다. 그 가르침대로 나는 지금껏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회식을 하거나 여럿이 식당에 가서 무엇을 시키더라도 다 잘 먹는다. 해물이건 고기 종류 건 다 좋다. 물론 나도 더 좋아하거나 덜 좋아하는 종류가 있지만, 팀장이라고 내 주장만하지 않고 그냥 대세를 따라 먹는 편이다. 설사 내가 좀 안 좋아하는 음식이라 해서 나 때문에 회식 장소를 바꾸거나 하진 않는다.

다음은 작은 선물에 관하여 어머니가 남긴 이야기다.

"남의 집에 갈 때는 나이든 어른이 계시면 어른들이 드실 것, 아이들이 있으면 과자 종류를 준비해라. 이도저도 아니라면 하다못해 삶은 고구마라도 몇 개 들고 가라." 이것은 우리 어머니가 생전에 늘 하시던 말씀이다.

어릴 때 친척집에 다니러 갈 때 보면 어머니는 절대 빈손으로 가지 않았다. 마침 모아 둔 달걀이 있어 보자기에 몇 개 쌀 수 있다면 그것은 흔치 않은, 귀한 선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수수처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그 때 주로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들고 갈 만한 것이 변변찮아 뭘 챙겨가지 못 할 때는 친척 집 근처에서 가게나 시장을 찾아 과일이나 과자 봉지를 사서 내게 들게 했었다.

선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도 있지만, 남의 집에 빈손으로 들어가기보다 뭔가 들고 가면 서로 이야기하기가 편해진다. 삶은 고구마로 표현했듯이 비싸고 좋은 것만이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격에 어울리지 않는 비싼 것은 오히려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부담없는 선에서, 가급적 그 자리에서 풀어서 주객이 함께 어울려 맛 볼 정도로 대중적인 것이면 더 좋다. 조금은 서먹한 어려운 자리라도 첫 대화가 잘 풀리는 것이다.

이런 마음 씀씀이는 처음 방문하는 집뿐만이 아니라 평소 잘 아는 사이에서도 통한다. 더구나 아직은 서로가 덜 친한 사이라면 더더욱 가지고 간 선물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얼마 전에 노고산동 사시는 선배 댁에 좀 오랜만에 찾아 뵐 일이 있어 가는데, 직장에서 바로 퇴근하던 길이라 빈손이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뭐 좀 준비할 게 없나 찾아 보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게 내외부를 온통 노란색으로 장식한 튀김가게가 보였다. 그 가게에서 풋고추 속을 채워 튀긴 것, 고구마, 오징어 튀김을 섞어 한 봉지 사 들고 갔더니 형수님이 반색을 하셨다.

"요 앞에서 버스 내리는데 보니까, 튀김이 참 맛있게 보여서 조금 사와 봤어요."
"아유, 뭘 이런 걸 사오셨어요. 그냥 오시지."
"같이 먹을려구요. 저도 튀김을 좋아해요. 차에서 내리는데 어찌나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구요."
"어머, 정류장 앞에 튀김 가게 말이지요? 기름을 깨끗한 걸 써서 저희도 그 집 튀김을 자주 사 먹거든요. 저희 집 아이들도 좋아하구."

몇 천원짜리 튀김 한 봉지가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해 주어 기분 좋고 자연스러운 대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가 지금 어디 가든, 누구에게라도 푸대접받지 않고 나름 환영 받는 사람으로 행세한다고 말 할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은 일찍이 나에게 이 험한 세상을 바로 살아가도록 올바른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신 아버지 어머니의 덕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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