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없는 채용박람회... 이력서는 왜 받았나

채용계획 아예 없고 면접도 안 보기도... 대부분이 '기업 설명회'

등록 2013.10.24 14:51수정 2013.10.2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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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에 참가한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 최유진


10월 10일, 서울 코엑스에서 코트라(KOTRA)가 주최하는 2013 외국인투자기업 취업박람회가 열렸다. 11일까지 2일간 진행되었으며, 주최 측은 포춘 글로벌(Fortune Global) 500대 기업 32개사를 포함한 국내 진출 글로벌 외투기업 110개사가 참가해 신입 및 경력직원 1400여 명을 채용한다고 밝혔다.

열악한 취업난을 반영한 것일까. 학교 수업이 있는 평일임에도 참가한 대학생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이번 박람회는 개최 전부터 역대 최대 규모의 채용이라며 홍보했다. 그렇다면 채용박람회가 구직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었을까.

현장에서 막 면접을 마치고 회장을 나선 두 명의 대학생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A씨와 올여름 막 졸업한 B씨. 그들은 둘 다 일어일문학과에 재학 중이며 박람회에 일본 기업이 많아 참가했다고 밝혔다.

"이력서 써서 제출했는데 괜한 고생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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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채용박람회 구직자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있다. ⓒ 최유진


이번 채용박람회는 면접을 보려는 구직자를 대상으로 사전에 접수를 받았다. 온라인으로 이력서를 제출하면 회사 부스별로 시간 내에 정해진 인원을 받는다. 현장에 도착하니 회사 별로 채용 인원이 적혀 있었다. ○명부터 ○○○명까지 다양한 인원을 모집했는데, 가장 다수인 ○○○명을 채용한다고 하는 기업의 경우 알고 보니 현장 모집이 아니었다.

"한 기업은 아예 도착하니 채용 설명회라고 말하더라고요. 사전등록자는 면접 기회를 준다고 해서 이력서 작성하고 수정하는 데 공을 들였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사전등록하지 않았을 거예요."(A씨)

회사 방침이 다른데도 마치 정식으로 면접을 할 것처럼 구직자를 현혹시키는 기업들이 대다수였다. 심지어 이미 온라인에서 채용이 진행 중이어서 구직을 원한다면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기업도 있었다. 약속된 면접시간을 맞춰서 가도 결국은 기업 핵심가치나 인재상과 같은 채용설명회를 진행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왜 등록하라고 했는지 모르겠다는 게 그들의 불만이다.


"사전에 이력서를 제출하면 면접기회를 주고 첨삭도 해주는 것으로 알고 왔어요. 그런데 막상 부스로 가보면 기업 설명회가 대부분이에요. 면접 시 받을 질문 내용도 생각하면서 자기소개서를 공들여 써서 제출했는데, 헛수고한 것 같아요."(A씨)

그는 박람회 부스에서 회사 상품, 인재상 등만 안내해 주는데 인터넷으로 알 수 있는 정보와 뭐가 다르냐며 불만을 표했다.

분명 사전에 시간을 정해두고 맞춰서 오라고 했는데 왜 여전히 부스마다 줄이 길게 늘어섰는지 물어봤다. 그러나 사전등록자와 현장등록자의 구분을 두지 않아서 예약을 하고 제시간에 도착해도 현장예약자가 줄을 서 있다면 그 뒤에서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별로 사전에 등록한 참가자의 이름을 적어두고 미리 제출한 이력서를 출력해둔 곳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 소수인 것 같아요."(B씨)

사전등록과 현장등록을 구분하는 여부인 참가 스티커 색깔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입장 시 줄을 서서 사전접수를 증명하는 빨간색 스티커를 받아야 했는데 대기하는 시간이 꽤 길었어요. 근데 막상 입장하고 나니 빨간 스티커나 파란 스티커(현장접수)나 아무런 차이가 없네요. 이럴 거면 뭐 하러 줄 서서 스티커는 받으라고 했는지…."(A씨)

이런 취업박람회가 한 번 더 열린다면 또 방문하겠냐는 질문에 "시간이 되면 오겠지만 없는 시간을 쪼개서 올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답한 그들은 꽤나 실망한 듯했다.

주최 측인 코트라(KOTRA)에서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행사 당일 어떤 구직자들이 방문하는지에 대해 미리 알아야 기업도 준비하기 수월하기 때문에 사전접수를 받고 있다"며 "채용계획은 기업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채용을 강요할 수는 없다. 1400명을 모집하는 것은 현장뿐 아니라 참가 기업이 현재 온라인에서 채용을 진행 중인 경우도 포함한 인원"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불필요한 사전접수... "현장채용 계획은 없습니다"

최근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 친구에게 취업박람회는 왜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차피 거기서 채용 안 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시간에 집에서 이력서나 한 장 더 쓰겠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이런 형태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뽑을 것처럼 사전에 이력서도 받고 면접 시간도 정해준다. 하지만 면접 후 채용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면접시간을 지켜주지도 않는다.

확인을 위해 최근 코엑스에서 열린 취업박람회를 한 군데 더 방문했다. 운영사무국을 방문해 현장에서 몇 명을 채용할 계획인지 묻자 "70여 개 기업이 참가하지만 정확히 몇 명을 채용할지는 기업에 달렸다"고 답했다. 채용 여부는 기업의 자유에 맡긴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얼마나 채용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직접 부스를 돌아다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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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외국인투자기업채용박람회 사이트에서는 면접을 위한 사전접수를 받았다. ⓒ 2013외국인투자기업채용박람회


재미있는 광경이 있었다. 부스에 방문한 구직자가 사전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하자 "이력서만 제출하고 다른 부스를 둘러보고 계시면 사전등록 대상자 면접이 끝난 후 연락 드리겠다"고 안내하는 것이었다. 부스 앞으로 면접 희망자를 길게 줄지어 세워두는 방식에 비해 구직자에 대한 기업의 배려가 돋보였다.

그러나 이런 형식을 고수하는 곳은 더 발견되지 않았다. 다시 줄 세우기가 시작된 것이다. 사전등록을 했냐고 묻자 같은 줄에서 한 사람, 안 한 사람이 섞여 나왔다.

"현장에서 채용 계획이 있으신가요?" 부스를 여기저기 방문하며 물었다. 한 기업 인사담당자는 "면접을 하지만 정해진 채용계획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 회사에 맞는 인재라면 추후에 연락을 드리고 재면접을 할 생각은 있습니다"라고 안내했다. "그렇다면 사전에 이력서는 왜 제출하는 건가요?"라고 묻자 "어떤 사람들이 방문할 예정인지 미리 알고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스를 나서면서 의문이 들었다. 면접을 하지만 채용 계획은 없다는 게 무슨 말인가. 면접 당사자가 들었으면 참 맥 빠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면접은 합니다. 그러나 오늘 당락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온라인에서 진행중이니 거기서 등록하세요."

많은 기업들에게서 채용 계획이 없다는 말을 듣고 나니 부스마다 앉아서 면접을 보는 면접관과 구직자의 모습이 한편의 연극처럼 보였다.

주최 측 "기업에 채용 강요할 수 없다... 온라인 채용인원 포함해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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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면접을 위해 길게 줄 서 있는 모습 ⓒ 최유진


외국인투자기업 취업박람회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들에게 "1400명을 모집한다고 하던데 실제로 구직자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나요?"라고 묻자 A씨는 "1400명은커녕 100명이나 뽑을까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설마 100명밖에 안 뽑을까.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느낀 기업의 채용 의지는 그만큼 적었다.

'면접을 봅니다'라고 해서 정장을 빼 입고 오고 미리 질문지를 준비하고 청심환을 사먹은 구직자들은 속은 기분을 누구에게 풀어야 할까. 인사담당자를 앞에 앉혀놓고 '왜 면접은 안 보나요?', '오늘 채용하긴 하나요?'라고 따질 수 없었을 것이다. 가릴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서류를 넣어서 통과한다면 다시 볼 얼굴인데 1초라도 더 웃으며 뒤돌아야 했다.

요즘 같은 취업난에 기업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채용박람회가 있다는 것은 구직자들에게 좋은 기회이다. 인사담당자도 직접 만날 수 있고 자기소개서에 써넣을 만한 여러 조언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력서를 제출하면 면접을 본다'는 말로 현혹시켜도 아쉬운 소리 한마디 못할 불쌍한 구직자에게 을의 위치를 한번 더 상기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최유진·윤예지 기자는 서울여대 학생입니다.
#채용박람회 #2013외국인투자기업채용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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