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쉴 때'라는 말,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5월'이 승화된 광주 비엔날레에 가다

등록 2013.10.22 19:53수정 2013.10.2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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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비엔날레 전시관입니다. ⓒ 임현철


"별을 만들어낸 것은 하늘이지만 별자리를 만들어낸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광주 비엔날레 주제관에 붙은 문구입니다. 어떻게 이런 문구를 생각 했을까, 놀라웠습니다. 자연의 멋을 이용할 줄 아는 인간의 위대함이 그대로 녹아 있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별 거 아니었습니다.

지난 20일, 광주 비엔날레에 갔습니다. 참고로 비엔날레는 11월 3일까지 열릴 예정입니다. 매년 가는 비엔날레지만 올해에도 또 가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빠, 광주 비엔날레 가요!"

이번에는 중학교 3학년 딸이 먼저 제안했습니다. 딸은 비엔날레 전시를 보며 "디자이너를 꿈꾸며 아이디어도 얻고 생각 주머니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희 부부, "네가 웬일?"하면서도 "야호" 쾌재를 불렀습니다. 왜냐? 광주 비엔날레는 꿈을 먹고 자라는 자녀를 둔 부모로서 일부러라도 시간 내 가야할 곳이니까요.

게다가 아이들의 거부로 번번이 무산되는 가족 여행지로 적격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난관이 있었습니다. 청소년기 질풍노도의 중심에 들어선 아들이 같이 나설지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웬일일까.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순순히 가겠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에게 광주 비엔날레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광주 비엔날레는 1980년 5월의 함성을 문화 예술로 승화시킨 산물 중 하나다."

주제관, '거시기(것)'와 '머시기(멋)'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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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비엔날레 주제인 '거시기'와 '머시기'는 것과 멋을 의미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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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구니'를 예술로 승화시켜 전시했더군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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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를 배경으로 선 딸입니다. ⓒ 임현철


올해 전시 주제는 디자인, '거시기'와 '머시기'였습니다. '거시기'는 누구나 디자이너요, 디자인은 누구에게나 일상에서 보편적으로, 사회적 정체성을 띠는 '것'이었습니다. '머시기'는 누군가에겐 디자인이요, 디자인으로 남다르게 보이기 위한 개인의 취향과 특성, 가치에 따라 타깃에 변화를 주는 '멋'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주제관 '거시기 머시기'는 이어령 선생님의 저서 <우리문화박물지>에 실린 64개의 사물에 담겨 있는 한국인의 문화 DNA 중 일부를 간추렸더군요. 이는 사물의 이름 뒤에 붙여진 시적인 함축성과 우리 전통문화의 실용성 그리고 미의식과 소통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주제관을 둘러보니 우리 것에 대해 새롭게 눈 뜨게 되었습니다.

"한국인들이 사용해온 물건들 하나하나에는 한국인의 마음을 그려낸 별자리가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것들은 서명되어 있지 않은 디자인이며 조각이며 책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게 널렸더군요. 바구니, 계란 꾸러미, 키, 버선, 골무, 갓, 항아리, 엿장수 가위소리 등등…. 그저 바구니이거니 라고 여겼을 뿐 그 안에 담긴 해학과 풍자 등 우리만의 독특한 철학과 미학을 몰랐으니, 둔해도 엄청 둔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문구로 옛날 일상기구 중 바구니와 키에 담긴 깊은 의미를 볼까요.

"'바구니'는 옛날 우리 누이들이 밖에 나올 때 손에 들려 있던 것이다…  바구니는 뭔가 가득 채우기 위해 있는 것이다. 봄에는 나물을 캐고 여름에는 뽕잎을 따고 가을에는 빈 밭에서 이삭을 줍는다. 캐고, 따고, 줍고…. 바구니를 들고 나물 캐러 가는 그 봄 들판은 무도회장과도 같은 것이다. 나물만 캐는 것이 아니라 봄의 아지랑이와 그 향기를 채집한다. 바구니에 담기는 것은 바로 사랑과 모험을 향한 마음이다."

"'키'는 곡물을 바람에 날려 가벼운 쭉쟁이는 밖으로 날아가게 하고, 묵직하게 잘 영근 곡물은 안으로 고이게 하는 키는 마치 비행기가 그렇듯이 그 기능 자체가 빚어낸 독특한 미의 형태를 드러낸다… 한국의 키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은 장식적인 것과 기능적인 것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것으로 우선 평면과 입체의 다른 두 공간이 교묘하게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지금은 쉴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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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꾸러미'에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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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특산물인 대나무로 만든 '낭창낭창'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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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 컬러 테라피 전시입니다. ⓒ 임현철


광주 비엔날레 주제관에서 배운 것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오늘날 포장의 원형을 '계란꾸러미'에서 찾았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사람은 디자인을 발전시키고 디자인은 생활을 발전시킨다"고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계란꾸러미에 이런 깊은 뜻이 담겨 있을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짚으로 달걀꾸러미를 만들었다. 충격과 습기를 막아주는 그 부드러운 재료 자체가 이미 새의 둥지와 같은 구실을 한다… 계란꾸러미는 형태와 구조를 노출시킨 아름다움, 깨지지 않게 내용물을 보호하는 합리적인 기능성, 그리고 포장 내용을 남에게 알려주는 정보성의 세 가지 특성을 동시적으로 만족시켜 주는 포장 문화의 가장 이상적인 모형이라 할 수 있다."

아빠처럼 딸도 그랬을까. 딸은 "비엔날레를 돌아본 건 아주 신선한 배움의 기회였다"며 "머릿속에만 있던 아이디어가 비엔날레와 만나니 아이디어를 하나의 컬렉션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얻은 게 많았던 비엔날레 관람이었습니다.

다음은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시입니다. 이 시는 정용철님이 의자와 함께 휴식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마음 상태를 대변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쉴 때입니다

                                             - 마음이 쉬는 의자 정용철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도 소리만 들릴 뿐 마음에 감동이 흐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방글방글 웃고 있는 아기를 보고도 마음이 밝아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식구들 얼굴을 마주보고도 살짝 웃어 주지 못한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문을 비추는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고 "바쁘다"는 말만 하고 끊었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기 위해 한 번 더 뒤돌아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침과 저녁이 같고, 맑은날과 비오는날도 같고, 산이나 바다에서 똑같은 느낌을 받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당신은 그동안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쉬는 일입니다.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곧게 사는 법을 담담히 읽어주는 듯한 작가의 감성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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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철 님의 작품 <지금은 쉴 때입니다> ⓒ 임현철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광주 비엔날레 #이어령 #거시기 머시기 #바구니와 키 #우리문화박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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