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점심시간마다 사표를 쓰고 싶었나

[직장인 일기①] 다함께 먹는 우리 식습관... 앞접시 문화 필요해요

등록 2013.10.24 16:16수정 2013.10.24 16:51
3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KBS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편하게 있어'에 직장인들이 '폭풍 공감'하고 있다. 회식을 마치고 상사의 집에 간 부하직원은 빨리 귀가하고 싶지만 상사는 "편하게 있어"를 연발하며 더욱 힘들게 한다.


우여곡절 끝에 직장을 구했지만, 상사에게 치이고 후배에게 쫓기며 늘 동분서주한다. 카드 값과 보험료, 대출금 이자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통장 잔액. 가족 앞에서도 어깨를 펴지 못하고 갈수록 왜소해진다. 이렇듯 누구나 공감할 만한 직장인이 겪는 애환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기자주

10여 년 전, 다니던 직장에서 제조업종으로 이직한 때였다. 옮긴 직장은 큰 규모치고는 참 가족적인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느낌은 딱 거기까지였다.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직장 생활의 기대감과 설렘에 부풀었던 나의 생활은 기대와는 달리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입사 이튿날 점심시간, 식당에 들어온 지 5분 사이에 벌어진 이 현실에 나는 완전 당황하고 말았다. 어차피 어디를 가든 찌개 하나에 함께 밥을 먹는 우리들의 고유의 식습관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했다. 각자의 입에 들어간 숟가락을 개인 접시와 국자가 뻔히 놓여 있는데도 식탁 가운데서 끓고 있는 냄비를 향해 부지런히 놀리는 현실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앞접시'는 전시용... 함께 먹다가 당황하셨어요?

a

직장인들의 흔한 점심메뉴 ⓒ 김학용


이후 점심시간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심신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도대체 개인접시는 누구를 위한 그릇들이란 말인가? 피 섞인 혈연조차 어쩔 때는 꺼림칙한데 남이야 오죽했겠는가. 정오만 되면 끌려가는 듯 느껴지는 이 분위기, 언제부터인가 점심시간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특히 상사들과 함께 하는 점심시간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저도로 최대의 곤욕이었다. 정말이지 부하 직원에 대한 식사예절은 꿈도 꾸지 못했고 최소한의 배려조차 없었다. 웬만하면 메뉴가 통째로 나오지 않고 각자 먹을 수 있는 메뉴로 선택하려고 하지만, 그게 또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방금까지 입에 넣던 그 숟가락으로 찌개 한술을 뜨더니 숟가락 밑 부분을 (국물이 떨어지지 않게) 그릇 테두리 부분에 '찍' 긋는다. 어디 그뿐인가, 그 숟가락으로 동치미 국물까지 담그니 색깔이 불그스레 변하고 만다.

하루하루 점심시간이 다가오는 것도 스트레스였지만, 내가 이 회사를 나가기 전에는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과거+현재+미래 진행형'이었다. 특정 식당 한곳을 정해 한 달 동안 식사를 하고 월말에 정산하는 방식이라 독자적 개인행동은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법이 딱 하나 있긴 했다. 상사가 먼저 손을 대기 전에 얼른 먼저 먹는 방법인데 그렇다고 상사 앞에서 먼저 숟가락을 드는 것도 좀 그랬다. 두 번째 방법은 바쁘다는 핑계로 혼자 컵라면이나 패스트푸드를 먹는 거였다. 어쩌다 한두 번 혼자 컵라면 먹는 것 따위는 이미 익숙해졌지만 조금 처량 맞긴 했다.

그리고 그 '함께 먹는' 식탁 문화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혹시라도 당신의 직장에 아직도 이런 식사 문화가 남아 있는가? 음식을 한꺼번에 놓고 먹는 것이 싫은 나에게, '아! 저 사람은 따로 먹게 해줘야지!' 하며 알아서 미리 배려해 주길 바라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으리라.

딱 한 끼 제대로 먹는 직장인의 점심식사

직장생활에서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기쁨은 나만의 즐거움이자 특권이리라. 또, 이 시대를 살아가며 꼭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딱 한 끼 점심 식사만큼은 특별히 먹어야 한다는 건 진리다. 그런데 스트레스까지 안겨주며 개선의 여지가 전혀 없다면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차이는 있지만 문화는 대개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행동과 생활양식의 총체를 이른다. 하지만 두루마리 휴지를 식탁에서 쓰는 것 다음으로 꼽히는 국그릇 하나로 같이 먹는 이 불편한 식사습관, 이젠 고칠 때도 되지 않았나?

바이러스 전염이 함께 찌개를 떠먹는 습관과의 연관성이 아직 명확하게 규정되지는 않지만, 수인성 전염병은 침을 매개로 전파될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특히 성인 70% 이상이 감염된 것으로 알려진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균은 과거 부모가 음식을 씹어서 아이에게 먹이던 관습이나 국이나 찌개를 같이 떠먹는 식사습관이 주된 감염 경로로 추정된다.

보건복지부 국가건강정보포털에 실린 건강상식별 세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 음주문화 특징 중의 하나인 술잔 돌리기는 비말(입에서 배출되는 작은 물방울) 접촉으로 신종플루 등의 감염을 확산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은 술잔을 통해 전염되는 가장 흔한 균으로 이로 인해 위염은 물론 심한 경우에는 위암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가톨릭의대 이해국 교수).

 '앞접시 문화', 이제는 직장에서도 실천을

a

구내식당의 개인용 식판에 담긴 음식 ⓒ 김학용


굳이 전문가의 의견이나 연구 결과까지 들이대지 않더라도 여럿이 식사할 때 입에 넣었던 수저를 찌개 그릇에 넣으며 함께 떠먹는 식사문화, 이제는 바꿔야 하지 않겠나. 개인별로 작은 접시에 적당한 양만큼 덜어서 먹는다면 위생적일 뿐만 아니라 과식까지 줄이는 효과가 있다.

개인별로 작은 그릇에 따로 덜어먹는 '앞접시 문화', 이제는 직장에서도 실천하자. 조금 어색하더라도 익숙해지려면 오늘부터 당장 시도해보자. '정(情)' 문화로 음식을 한꺼번에 놓고 무심코 입에 넣었던 불편한 진실, 이제 더 이상 아름다운 '한민족의 정'은 아니리라.

'동료인데 뭐 어때'라며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화목도 깨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개인 식판에 밥 먹는 식당을 찾아 동료 한명이 오늘도 홀로 떠날지도 모를 일이다.
#앞접시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존 언론들이 다루지 않는 독자적인 시각에서 누구나 공감하고 웃을수 있게 재미있게 써보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사, 저에게 맡겨주세요~^^ '10만인클럽'으로 오마이뉴스를 응원해주세요.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3. 3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