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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프로젝트' 뭐가 두려워 이 영화를 못보게 합니까

[리뷰] '그럴 수도 있다'를 말하는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13.10.28 11:43최종업데이트13.10.2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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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안한 프로젝트>의 포스터 ⓒ 아우라 픽쳐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 가족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인터넷 언론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와 <시사IN> 주진우 기자가 법정에 섰다. 재판 결과는 무죄. 김어준은 판결의 의미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상한 사건을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일반 국민들이 상식의 눈높이에서 지켜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입니다."

적확한 해석이다. 이상한 사건을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언론, 아니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탄생도 이런 관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그럴 수도 있다'를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독립영화를 찾는 관객들을 위해 상영관을 곧잘 내주던 메가박스 측이 이 영화의 상영을 중단했다면서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한 < MB의 추억 >이라는 다큐멘터리도 메가박스에서 봤던 기억이 있기에 이런 논란의 중심에 메가박스가 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메가박스는 보수단체로부터 강한 협박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하여 관객들의 안전을 위해 상영을 중단한다고 했다. 메가박스의 입장은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전화를 건 측이 보수단체일 수도, 아니면 더 높은 누군가일 수도 있다. 이런 의심은 아주 자연스럽다. 이상하니까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상영 중단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영화가 자신의 메시지를 드러낼 수 없는 데 대한 억압. 이 영화가 상영 중단 사태를 맞자 다수의 영화감독들이 이런 현실에 분개, 현 정부를 성토했다. 최근 개봉작 <소원>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찍을 때 어떤 앵글로 찍을 지 고민하기보다 이제 이 장면을 찍어도 되는지를 고민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만큼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 예술을 하는 그들의 입장이다.

▲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한 장면. 천안함 사건 법정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 아우라 픽쳐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상영 중단까지 불사할 정도로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이념갈등을 부추기는 영화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에는 그럴만한 의도도, 내용도 없다. 다분히 '의구심에서 출발한 진실 규명'이 영화의 순수한 제작의도로 보일 뿐이다. 그만큼 영화는 사실 관계만 다루려 애쓴다(그래서 오히려 여러 모로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다).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한 당시 정부의 발표 내용은 천안함이 좌초가 아닌 북한 어뢰에 의해 침몰됐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세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첫째, 왜 좌초가 아니라고 하는가? 둘째, 어뢰에 의해서 침몰됐다? 셋째, 그 어뢰가 북한 것이다? 영화가 밝히고자 했던 사실은 이 세 가지뿐이다. 이 세 가지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그것만을 알아내겠다는 것이 이 영화의 전부,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

영화는 우리가 믿었던 믿지 않았던 정부의 천안함 발표 내용에 대해 증거와 증언을 가지고 반박한다. 좌초를 침몰의 원인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처음 등장했던 어뢰와 나중에 매직 글씨가 새겨진 어뢰가 다른 종류라는 것 등. 신빙성 있는 자료 제시와 차분한 설명으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에 접근한다.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는 또다시 생각의 자유가 주어진다. 관객들은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을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있다. 생각과 판단은 각자의 자유다. 이 영화 역시 '그럴 수도 있다'라는 의심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이 영화의 내용을 반박하고자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내용을 담아 영화가 됐든, 뭐가 든 그 생각을 밝히면 된다. 이러한 자유로운 움직임이 곧 '소통'이 될 수 있다. 혹자는 사회혼란, 이념갈등을 부추긴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문제는 이러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지난 5년을 겪고서도 모르는가….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에는 '소통'이란 단어가 지나칠 정도로 활용되고 있다. 시대가 얼마나 불통이기에 '소통' 잘하는 것이 개인 혹은 사회의 장점과 미덕으로 평가받는 것인지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은 의도적으로 그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이 영화의 개봉이 순탄치는 않을 수 있겠다고 예측한 듯, 철학자 김성환씨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어린 애가 나 다리 밑에서 주어왔어? 나 어떻게 생긴 거야? 묻는데 아빠가 그런 건 알아서 뭐해? 이렇게 대답하면 대화가 끝난 거잖아요, 소통이 없어지잖아요. 그런데 엄마가 넌 다리 밑에서 주워오지 않았다. 엄마 아빠 아래서 태어났다. 그러면 애가 다시 물어요. 나 어떻게 엄마 아빠 아래서 태어났느냐? 그러면 소통이 시작되잖아요. 애의 의심을 막으면, 호기심을 막으면 소통은 끝나죠, 그 의심을 풀 길을 열어 놓아야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죠. 의심이라는 것은 소통의 출발점이죠."

의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의심을 말할 수 있다. 세상 어느 누구에게나 그럴 만한 자유가 있다. 윗세대가 그토록 갈구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도 그 시작이 의심이었다. '독재'에 대한 의심. 끝없이 의심하고 갈구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소통의 진리는 그렇게 온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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